영국 남쪽의 하얀 바다절벽
브라이튼 중심부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 글을 끝으로 마무리 짓고, 오늘은 브라이튼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동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브라이튼에서 버스로 약 1시간 정도 걸리는 곳, 영국 남부 해안에서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 바로 세븐 시스터즈(Seven Sisters)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세븐 시스터즈는 영국 남부 해안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하얀 절벽을 일컫는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브라이튼을 통해서 세븐 시스터즈를 가기 때문에 이곳이 브라이튼에 속한 지역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위 지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세븐 시스터즈는 브라이튼에 속하지 않고, 오히려 씨포드(Seaford)와 이스트본(Eastbourne) 사이에 위치해 있다. 거리도 브라이튼에서 가는 것보다 이스트본에서 가는 것이 더 가깝다. 그럼에도 관광객들이 브라이튼을 거쳐가는 이유는 브라이튼이 영국 남부의 주요 도시이고, 런던에서 브라이튼으로 가는 교통편이 잘 되어 있기 때문이다.
브라이튼에서 버스를 타고 세븐 시스터즈로 향하는 길은 꽤나 아름답다. 버스가 영국 남쪽 해안을 따라 달리기 때문에 영국의 남쪽 바다를 원없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브라이튼과 세븐 시스터즈 사이에 작은 동네가 여럿 있는데, 그 동네를 지나갈 때 영국 특유의 작은 동네를 구경하는 것도 흥미롭다. 이런 이유로 세븐 시스터즈까지 가는 1시간 정도의 시간이 결코 지루하지 않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면서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내려야 할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게 된다.
세븐 시스터즈 버스 정류장은 바닷가에서 조금 떨어져있다. 하얀 절벽을 보기 위해서는 넓게 펼쳐진 공원을 따라 걸어야 하는데, 약 30분 정도 걸린다. 주말이나 날씨가 좋은 날에는 세븐 시스터즈로 향하는 사람들이 꽤 많기 때문에 그들만 잘 따라가면 길을 잃을 염려는 별로 없다. 그렇게 하염없이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눈 앞에 바다가 보이고, 하얀 절벽 위로 올라가는 오르막이 나온다. 그 오르막을 오르면 하얀 절벽이 내 발 아래에 놓이고,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이 내 시야에 들어온다.
세븐 시스터즈를 처음 봤을 때 놀랐던 부분이 있었다. 절벽이 꽤나 높은데도 불구하고 절벽 위에 아무런 안전 장치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절벽 가까이에서 사진을 찍는데, 아무런 안전 장치 없이 절벽 끝에 서있는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했다. 그리고 세븐 시스터즈의 절벽이 초크 성분으로 되어 있어서 쉽게 바스라지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그럼에도 이곳에 아무런 안전장치를 설치하지 않는 것은 자연 경관을 해치기 싫어서일까, 아니면 세븐 시스터즈 절벽이 워낙 길어서 설치할 엄두를 못 내는 것일까. 이유가 무엇이든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이곳에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설치되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세븐 시스터즈에 갈 때마다 들었다.
나는 세븐 시스터즈를 꽤 여러번 다녀왔다. 브라이튼에 머물 때 버스를 타고 다녀온 적이 많았고, 버밍엄(Birmingham)에서 공부할 때에는 부모님이 여행을 오셔서 차를 렌트해서 다녀오기도 했다. 버스를 타고 가면 항상 같은 곳으로 가기 때문에 세븐 시스터즈가 얼마나 길게 뻗어있는지 체감하지 못하다가 부모님과 함께 차를 타고 갔을 때 앞서 미처 보지 못했던 세븐 시스터즈의 다른 부분을 보게 되었고, 세븐 시스터즈의 규모에 새삼 놀랐다.
위에 있는 지도에서 이스트본부터 씨포드까지 이어지는 해안선이 대부분 하얀색의 해안 절벽이고, 이를 우리는 세븐 시스터즈라고 통칭해서 부르는 것이다. 그만큼 길고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고, 수많은 명소가 있는데 나는 이전까지 매번 같은 곳만 가면서 같은 모습만 봤던 것이다. 물론 버스라는 대중교통의 한계도 있었지만, 부모님과 함께 이곳을 여행하지 않았더라면 단 한곳에서 바라본 세븐 시스터즈의 모습만 기억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차를 타고 절벽을 잘 볼 수 있는 여러 명소들을 둘러볼 수 있었고, 지금은 꽤 다양한 모습의 세븐 시스터즈가 내 머리 속에 자리잡고 있다.
세븐 시스터즈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미 수많은 관광객들이 거쳐갈 만큼 유명한 관광 명소이다. 런던에서 브라이튼을 거쳐 대중교통으로 세븐 시스터즈까지 가기 위해서는 2시간 넘는 여정이 필요한데,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라도 한 번쯤은 가볼만한 장소라고 생각한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 브라이튼에서 1박을 하고 여유롭게 다녀오는 것이 더 좋다.)
사실 영국을 여행하면서 자연 경관을 보면서 감탄할 일은 많지 않은데, 세븐 시스터즈는 그런 갈증을 충분히 해소시켜 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세븐 시스터즈까지 가는 길에 보게 되는 영국 남쪽 바다, 드넓게 펼쳐진 초원, 그 위에서 자유롭고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소와 양과 같은 동물들, 그리고 세븐 시스터즈 위에서 보게되는 수평선까지, 영국을 여행하면서 쉽게 볼 수 없는 다양한 모습을 경험할 수 있는 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