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얄 파빌리온과 브라이튼 박물관
한 도시를 여행할 때 여행객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찾는 장소는 어디일까?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그래도 가장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장소가 역사적인 명소일 것이다.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그 지역을 대표하는 유적지는 여행객들에게 인기있는 여행 장소가 된다. 오늘은 브라이튼에 있는 역사적인 장소, 로얄 파일리온(Royal Pavilion)과 브라이튼 박물관(Brighton Museum & Art Gallery)에 대한 이야기이다.
로얄 파빌리온의 역사는 18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783년에 브라이튼을 처음으로 방문한 웨일스 공(The Prince of Wales; 후에 조지 4세가 된다)은 이곳에 본인이 머무를 수 있는 거처를 짓기로 결정한다. 1787년에 시작된 공사는 19세기 초반 두 번의 확장공사까지 이어져서 지금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 이후 조지 4세와 윌리엄 4세가 머무는 장소로 활용되다가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이 1850년에 로얄 파빌리온을 브라이튼에 판매하면서 왕의 거처로서의 기능을 막을 내렸고, 현재 연간 약 40만 명이 찾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브라이튼의 로얄 파빌리온은 건축 양식이 독특하다. 우리가 흔하게 보는 유럽의 건축 양식과 다르게 인도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 그래서 로얄 파빌리온을 처음 봤을 때 신기하면서도 독특한 건축물의 모습에 매료되었다. 실제로 보게 되면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규모가 더 크고 웅장해서, 한순간에 압도되기도 하고 빠져들게 된다. 멀리서 보면 그 웅장하고 화려함에 감탄을 하면서 가까이 다가가면 매우 정교하고 섬세하게 조각된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데, 그 정교함에 할 말을 잃게 된다.
내가 다니던 학원이 로얄 파빌리온 바로 앞에 있어서 거의 매일 지나치고, 친구들과 수다도 떨던 곳이었다. 바로 앞에 잔디밭이 있는데, 그곳에서 점심을 먹기도 하고 친구들과 간단한 피크닉을 즐기기도 했었다. 뭐든지 자주 보고 흔해지면 그것에 대한 소중함이나 특별함을 잊게 되는 것처럼, 나도 로얄 파빌리온에 매료되었던 첫 인상이 이내 사그라들었다. 그래서 이 글을 위해 사진을 찾아보는데 대부분 초반에 찍은 사진들 뿐,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사진도 찍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다시 한 번, 내 옆에 있고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것에 대한 고마움과 소중함을 되새겨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얄 파빌리온 바로 앞에 잔디밭을 사이에 두고 파빌리온과 비슷한 형태의 큰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이 브라이튼 박물관/미술관이다. 과거 조지 4세가 로얄 파빌리온을 지을 때 이 건물도 파빌리온에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빅토리아 여왕이 이곳을 브라이튼 시에 판매한 이후, 브라이튼은 1851년부터 로얄 파빌리온의 일부를 지역 예술가들을 위한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브라이튼 박물관은 입장료가 있다. 그래서 브라이튼에서의 생활이 끝날 즈음까지 박물관 내부를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런던에 있는 박물관도 아니고, 작은 도시에 있는 박물관에 돈을 내면서까지 볼 만한 가치가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브라이튼을 떠나기 얼마 전, 마침내 입장료를 내고 박물관 안으로 들어섰다. 그 때는 '그래도 브라이튼에 6개월 동안 있었는데, 이곳은 봐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는데, 사실 들어가보지 않았어도 될 뻔했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나는 이곳에서 특별함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 당시에 이미 런던에 있는 많은 박물관들을 본 이후라 더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었겠지만, 썩 만족스러웠던 박물관은 아니었다.
여행을 할 때 다른 사람들이 다 가는 곳이라서 무작정 가보고 나서 실망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개인의 취향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이 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거야'라는 두루뭉술한 기대감을 갖고 찾아갔지만, 두루뭉술했던 기대감은 결국 손에 잡이지 않고 달아나 버렸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여행을 계획할 때마다 나만의 여행 루트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밟았던 코스를 그대로 따르기보다 내 취향에 맞는 장소를 선별하고, 그에 맞게 코스를 설정하는 것이다. 그 장소가 유명하든, 유명하지 않든 그것은 상관이 없다. 그저 내가 끌리고, 가고 싶은 장소만 고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많은 경우에 유명하고 관광객들이 필수로 들르는 장소에 가게 되지만, 때로는 그 지역 사람들도 잘 모르는 장소에 다다르기도 한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만의 비밀 장소를 발견한 것만 같은 희열에 휩싸인다. 그 감정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아직까지도 나는 나만의 여행코스를 개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 지역에서 적어도 한 장소만큼은 관광객들이 잘 찾아가지 않는 곳을 찾아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브라이튼의 역사이야기는 이렇게 끝을 내야겠다. 다음 번에도 브라이튼에 대한 이야기로 찾아올 것이다. 영국의 동네이야기를 기획할 때 브라이튼은 약 2~3개의 글을 예상했는데, 런던과 마찬가지로 글이 많아지고 있다. 그래도 조만간 영국의 다른 동네로 넘어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