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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곰 Jan 08. 2021

많은 눈이 내린 밤

영국인 짝꿍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이틀 전 밤, 쓰레기를 버리려고 밖으로 나갔다가 소복하게 쌓인 눈을 보게 되었다. 눈이 온다는 기상예보를 듣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쌓일 정도로 눈이 많이 올지는 몰랐기에 다소 놀랐다. 집으로 들어가서 짝꿍에게 눈 온다고 이야기하자마자 짝꿍은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갈 준비를 시작했다. 밖이 많이 춥다는 나의 의견은 눈에 대한 짝꿍의 기대감 앞에 수그러들었다. 


온 세상이 하얗게 뒤덮였고, 여전히 함박눈은 쏟아지고 있었다. 평소 추위를 많이 타는 짝꿍은 추위조차 잃어버린 채 어린아이처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동화같아. 눈이 와서 너무 좋아."


영국인이지만 도미니카공화국에서 20년 넘게 자라온 짝꿍은 살면서 눈을 본 적이 거의 없다. 도미니카공화국은 열대지방이라 한겨울에도 기온 25도 정도를 유지하는 나라이고, 영국도 북쪽의 스코틀랜드를 제외하고는 눈이 많이 오는 나라는 아니다. (최근 기상이변으로 조금 더 자주 오는 것 같기는 하다). 그래서 한국에 와서 겨울을 손꼽아 기다렸던 짝꿍인데, 작년 겨울에는 눈이 거의 오지 않아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하얗게 변해버린 한국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하얀 세상을 바라보면서 시원하게 웃었다. 나는 짝꿍이 언제쯤 추위에 굴복하고 집으로 들어가자고 할지가 궁금했다. 20분 정도가 지난 후에 짝꿍이 손이 시렵다고 했고, 그로부터 10분이 더 지난 후에 집으로 들어가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집으로 들어온 이후부터는 다음 날 출근 걱정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뉴스를 통해 마비가 된 도로를 보게 되었다. 짝꿍은 눈이 오고 난 이후의 결과는 알지 못했다. 지금까지 눈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눈이 왔다고 너무 좋아했는데, 저 분들께 죄송하다."


그렇다. 짝꿍은 눈을 통해 새로운 사실 하나에 눈을 뜬 것이다. 하지만 짝꿍은 여전히 눈을 그리워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짝꿍의 동심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 같아서 그런 모습이 너무 좋다. 그렇게 우리는 잘 맞는 짝꿍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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