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 벌영리 메타세콰이어 숲
한국에는 정말 아름다운 바다를 품고 있는 지역이 많다. 역시 짝꿍과 여행을 계획할 때 바닷가로 일찌감치 결정했고 그 중에서도 우리가 가보지 않았던 영덕을 선택했다. 동해안 특유의 맑고 청명한 바닷물을 보고 싶었기 때문에 가기 전부터 나와 짝꿍은 매우 설렜다. 영덕 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앞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정말 여기로 가면 나오는 거 맞아? 아무리 가도 그냥 시골 마을 풍경일거 같은데..."
"응, 이 길로 가면 돼. 거의 다 왔어!"
"바다 보러 왔는데, 산으로 가고 있네."
"짝꿍도 분명히 좋다고 할거야."
영덕에서 우리가 처음으로 간 곳을 고래불해수욕장이었다. 바람도 많이 불고 날씨도 조금 차갑고 해서 바닷가를 걷기만 했다. 한참을 걷다가 다음으로 갈만한 장소를 물색하던 중에 벌영리 메타세콰이어 숲이라는 곳을 발견했다. 온통 초록색으로 가득한 이곳을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이곳으로 차를 몰고 가기 시작했다. 바다를 보러 왔는데 숲을 보러 가자고 하니 짝꿍에게는 다소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특히나 바다를 너무 사랑하는 짝꿍에게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함께 해온 세월이 짧지 않기에 짝꿍이 이곳을 좋아할 거라는 사실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망설이지 않고 벌영리로 갈 수 있었다.
벌영리 메타세콰이어 숲은 아직 사람들에게 입소문이 많이 나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알음알음 조금씩 찾아가는 곳인데 그러다 보니까 이곳까지 가는 길이 그냥 시골길 모습이랑 똑같다. 표지판이 있긴 하지만, 그렇게 크도 않고 거의 도착할 즈음에는 시골 동네 들어가는 듯한 길도 지나야 한다. 영덕의 주요 스팟이라고 할 수 있는 바닷가에서 약 20분 정도를 산 쪽으로 들어가야 할만큼 접근성도 좋은 편은 아니다. 그렇게 한적한 시골길을 가다 보니까 막다른 길이 나왔고, 그 옆으로 주차할 수 있는 공터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곳이 바로 오늘 우리의 목적지, 벌영리 메타세콰이어 숲이다.
벌영리 메타세콰이어 숲은 밖에서 보기에는 그렇게 넓어 보이지 않았는데 막상 안으로 들어오니까 숲의 규모가 생각보다 훨씬 컸다. 한 발짝씩 숲 깊숙히 들어가기 시작했고, 이내 우리는 위로 곧게 뻗은 메타세콰이어 나무들 한가운데 서있었다. 평일 오후 시간대라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우리는 숲이 주는 평화로움을 한껏 만끽할 수 있었다. 날씨도 비가 온 뒤라서 숲 안의 공기가 더욱 싱그럽게 느껴졌다. 고래불해수욕장에 있을 때는 흐린 날씨가 별로였는데, 숲 안으로 들어오니까 흐린 날씨도 나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숲 안에 들어오니까 자연스럽게 우리의 목소리는 차분해졌고, 한껏 여유를 머금기 시작했다. 이게 숲이 주는 매력일까 싶었다.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고, 주위를 둘러볼 여유를 준다. 빼곡하게 들어선 메타세콰이어 나무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고, 숲 안의 모습과 그곳의 공기는 숲 바깥과 다소 다른 세상처럼 보였다. 비가 온 뒤라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그곳에 있는 벤치에 앉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날씨가 좋고, 벤치가 젖어있지 않았더라면 나무 아래서 조금이나마 앉았다 오고 싶었다. 날씨 좋은 날, 벤치에 앉아 책 한 권 읽으면 더없이 좋을 것 같았다.
"너무 초록초록하고 싱그러워!
너무 좋다 정말.
힐링 된다는게 이런 기분일까 싶어."
우리는 숲 중간 정도까지만 들어갔다가 돌아왔다. 사진으로 이곳을 미리 보고 오긴 했지만, 벌영리 메타세콰이어 숲은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좋았다. 보통 메타세콰이어 나무로 유명한 곳이 담양인데, 개인적으로 담양의 그곳보다 이곳이 더 인상적이었다. 담양의 메타세콰이어 길은 숲이라가기보다는 가로수가 양 옆에 메타세콰이어 나무로 있는 도로이고, 이미 관광지화가 너무 많이 돼서 그곳을 찾는 관광객들도 정말 많다. 반면 벌영리 메타세콰이어 숲은 말 그대로 숲이었다. 그만큼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었고, 숲이 주는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나와 짝꿍은 이곳에서 힐링을 하고 돌아왔다. 바다를 보면서도 힐링을 하지만, 바다와 산이 주는 느낌은 다소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바다도 산도 좋아한다. 물론 어느 한 쪽으로 기우는 마음이야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나름 중심을 잡고 있다. 짝꿍은 바다, 나는 산,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서로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한 발자국 양보한다. 바다를 갈 때도 있고, 산을 갈 때도 있지만 그곳에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우리는 항상 만족하고 돌아온다.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중요하고, 그 장소에서 어떤 재미를 찾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시골에서도, 화려한 관광지에서도 우리는 우리만의 재미를 찾아서 여행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