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 죽도산 전망대
벌영리 메타세콰이어 숲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짝꿍이 차 안에서 카페를 찾고 있었다. 커피가 마시고 싶기도 했고, 바다를 보면서 잠시 쉬어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짝꿍은 바다 옆에 있는 카페 하나를 찾았고, 나는 그곳으로 차를 몰았다. 짝꿍이 찾은 카페는 축산항에 있었고, 긴 시간 지나지 않아 우리는 축산항에 들어섰다. 축산항 꽤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고 나서야 짝꿍이 찾은 카페가 나왔다. 그 카페는 짝꿍의 생각보다 훨씬 작았다고 한다. 그래도 우리는 카페를 온 것이기 때문에, 들어가서 메뉴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주문을 하려는데 우리가 원하는 메뉴가 안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다른 메뉴를 원하지는 않았기에 우리는 터덜터덜 카페를 걸어나왔다.
차 안으로 돌아와서 짝꿍이 근처에 있는 다른 카페를 찾기 시작했고, 나는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래도 항구라서 바다가 바로 옆에 있었고, 평일이라 조용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기분좋은 활기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바라보는데, 작은 산 위에 등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지도를 가만히 살펴보았다. 지도에는 그곳까지 올라가는 산책로가 표시되어 있었다. 등대까지 가는 길이 그렇게 멀어보이지 않았다. 나는 짝꿍에게 등대에 한번 올라가보자고 얘기했고, 짝꿍도 카페 찾는 것을 그만두고 나를 따라 나섰다. 그렇게 우리는 아무런 정보도 없이 그저 눈 앞에 나타나는 길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곧 오르막이 시작되었고, 등대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저기 무지개 봐바!!!
오늘의 우리를 축복 받는 기분이야.
너무 경이롭고, 아름다워."
등대에 오르는 길에 드넓은 바다가 눈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수평선 위로 일곱빛깔 아름다운 무지개가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치 우리의 발걸음을 축복하는 듯이, 오르막을 오르는 우리에게 힘을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바다 위에 그렇게 선명한 무지개는 처음이었는데, 그 모습이 가히 아름다움을 넘어 경이로웠다. '자연이 이렇게 경이로울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순간이었다. 무지개를 보면서 힘을 얻은 우리는 다시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했고, 곧 우리의 눈에 보였던 등대에 도착했다. 등대가 목적지인 줄 알고 올라왔는데, 막상 도착해 보니까 등대에서 올라가는 길이 더 있었다.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그냥 내려갈 수는 없지'란 생각으로 우리는 계속 걸어올라갔다.
등대에서 3분 정도를 더 올라가니까 그곳에 전망대가 있었다. 고도 자체가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산 정상에 있는 전망대라 그 위에서 360도 모두 조망할 수 있었다. 광활한 바다부터 기암괴석 가득한 해안선, 그리고 활기 넘치게 사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축산항 전경까지, 다양한 모습들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우연히 찾아온 장소라고 하기엔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짝꿍이 축산항에 있는 카페를 찾아준 것이 고마웠고, 그 카페에서 우리가 원하는 메뉴가 안 된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곳을 못 보고 갔다면,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됐다면 많이 아쉬웠을 것 같았다.
전망대에서 몸의 방향을 바꿀 때마다 새로운 모습이 나타났다.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정상이고, 바닷가라 그런지 바람이 그렇게 세게 불었는데도 우리는 개의치 않았다. 그저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이 모습을 충분히 보고 우리의 기억 속에 간직하고 싶었다. 그렇게 한 열 바퀴 정도 돌았을까, 이제는 충분히 보고 머리 속에 남겼다고 생각이 들 즈음, 우리는 그곳에서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도 수평선 위에는 무지개가 여전히 걸려 있었다. 우리에게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해서일까, 아직까지 그곳에 남아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그곳을 다 내려올 때 쯤, 무지개는 조금씩 모습을 감추었고, 이내 사라져 버렸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파도로 바위치기!'
우리는 올라갈 때와 다른 길로 내려왔다. 올라갈 때는 언덕길을 따라 올라갔는데, 내려올 때는 나무 데크로 된 계단으로 내려왔다. 그 계단을 내려오니까 바다를 조금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전망대가 하나 더 있었고, 거기서 더 내려오니까 큰 정자 하나가 있었다. 그리고 정자 앞으로는 방파제가 있었고, 그 방파제 위에 오르자 바위에 파도가 부딪쳐서 산산히 부서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부서진 파도의 일부는 방파제 위로 넘어오기도 했고, 대부분은 하얀 거품이 되어 다시 바다로 되돌아갔다. 파도는 끊임없이 바위에 와서 부딪쳤고, 바위는 그 자리에서 모든 파도를 견뎌내고 있었다. 문득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속담을 '파도로 바위치기'로 바꿔도 성립되지 않을까라는 의미없는 생각을 해보았다.
한참을 바위에 와서 부딪치는 파도를 바라보다가 차로 돌아왔다. 예상치 못한 만남이, 우연이 만들어낸 이 만남이 너무 즐거운 순간이었다. 여행 중 만난 우연은 아름답게 귀결되는 경우가 참 많다. 그래서 이렇게 계획 없는 여행이 때로는 더 즐겁고 매력적인 것이 아닐까. 여행이 주는 즐거움을, 그리고 짜릿함을 한껏 만끽했던 순간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축산항에 이곳에 들어올 때와는 전혀 다른 결과물을 가지고 그곳을 빠져나와서 새로운 곳으로 향했다. 새로운 곳에서는 어떤 즐거움이 우리는 기다리고 있을지 한껏 기대하면서 말이다. 영덕 여행을 하면서 축산항에 있는 죽도산 전망대에 꼭 한 번 올라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올라가는 길이 그렇게 길지 않은데, 그 위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그리고 혹시 우연이 따른다면, 우리를 반겨줬던 무지개가 또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