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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곰 Dec 02. 2021

바다 위를 걷고, 바다를 바라보다.

울진 등기산 스카이워크&등기산 공원

앞선 글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여행을 떠난 곳은 영덕이었다. 그런데 왜 오늘 갑자기 울진여행기가 된 것일까. 왜 우리는 영덕 여행을 미처 다 하지도 않았는데, 울진으로 가게 된 것일까. 그에 대한 이야기를 오늘 해보려고 한다. 오늘은 울진 후포항 근처에 있는 등기산 스카이워크와 등기산 공원을 다녀온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 경계선이란 무엇일까


울진과 영덕은 동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붙어있는 두 지역이다. 그리고 우리가 머문 곳은 영덕의 고래불해수욕장 근처였는데, 이곳에서 차로 5분 정도만 올라가면 울진으로 넘어가게 된다. 짝꿍이 가볼만한 곳을 이리저리 찾아보더니 나에게 사진 하나를 보여줬다. 바닷가로 뻗어나가는 스카이워크 사진이었고, 위치를 찾아보니까 우리 숙소와 그렇게 멀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왜 나는 영덕에 대해서 찾아봤을 때 이 스카이워크를 못 봤을까'라는 의문이 들었고, 그 이유는 금방 풀렸다. 바로 이 스카이워크가 울진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울진으로 경계를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문득 이곳에 가는 것이 망설여졌다. '우리는 영덕으로 여행을 왔고 아직 영덕에도 볼 게 많이 남은 거 같은데 굳이 울진까지 가야하는 건가'라는 의문이었다. 그럼에도 짝꿍은 계속 가자고 얘기했고, 우리는 결국 경계를 넘어 울진으로 들어섰다. 그렇게 망설여지던 마음이 경계를 넘는 순간 탁 풀려버렸다. 이미 저질러진 일이고 어차피 가기로 했으니까 마음을 비운 것이다. 그리고 아래 사진에서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나와 짝꿍은 등기산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고 그 시간을 진심으로 즐겼다. 

경계선이란 무엇일까. 눈에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마음 속에 있는 그 경계선이 두 지역을 완전히 갈라놓고 있었다. 우리가 원하고 우리가 즐길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를 가든, 그곳이 울진이든 영덕이든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거늘 왜 나는 울진으로 가는 것을 망설였던 것일까. 그 경계라는 개념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안에서 꽤 큰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마음 속에 있는 경계를 허물고 그저 우리의 순수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지리적인 경계이든, 문화적인 경계이든 간에 말이다. 


후포항을 지나 우리는 등기산 스카이워크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매우 협소했는데, 다행히도 우리는 빈 자리가 하나 있어서 바로 주차할 수 있었다. 주차장에서 위를 올려다 보면 스카이워크가 바로 보인다. 바다를 향해 쭉 뻗어나가는 듯한 모습의 이 스카이워크는 아래서 봐도 높이가 꽤 아찔하다. 계단을 오르다가 옆을 보면 등기산 아래 자리잡은 작은 마을이 보인다. 전체 가구수를 셀 수 있을 만큼 작은 마을이었는데, 절벽 아래 포옥 안겨있는 듯한 모습이 정말 아늑해 보였다. 

계단을 다 올라가면 매표소가 보이는데, 표를 팔지는 않고 있었다. 왜 무료 입장인지, 언제까지 무료인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우리는 무료로 들어갈 수 있었다. 들어가기 전에 다른 스카이워크처럼 천으로 된 덧신을 신었고, 우리는 신나게 안으로 들어섰다. 바다 위에 있는 다리라서 그런지 바람이 참 많이 불었다. 바다 위에 붕 떠 있다고 상상하면서 강한 바람을 맞다 보니까 문득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렇다고 뒤로 돌아 나오지는 않았다. 중간중간 아래를 볼 수 있도록 투명 유리로 되어 있었는데, 그 유리가 정말 깨끗했다. '조금 흐려서 아래가 잘 안 보여도 괜찮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그렇게 스카이워크 중간에 도착했는데, 앞으로 더 나아가는 길이 막혀있었다. 보수공사로 인해 중간까지밖에 갈 수 없었던 것이다. 스카이워크 끝에 있는 조형물을 보고 싶었는데, 그것을 못 보고 돌아오는 것이 조금 아쉽긴 했다. 다시 중간이긴 했지만, 그곳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모습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다리 아래에는 갯바위와 그곳에서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고, 바닷물은 물 속이 고스란히 보일 정도로 너무도 깨끗하고 청명했다. 앞을 바라보면 광활한 바다와 수평선이 보인다. 내가 바다를 찾는 가장 큰 이유가 바다에서만 느낄 수 있는 탁 트인 개방감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다를 바다보는 것은 어느 계절, 어느 날씨에 오더라도 언제나 좋다. 바다가 주는 개방감은 언제가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바다를 볼 만큼 봤으면 이제 현실로 돌아올 시간이다. 우리는 여전히 스카이워크 위에 있었다. 아래 바닥은 여전히 투명 유리로 되어 있었고, 너무도 관리가 잘 된 그 유리는 바다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고소공포증이 조금 있는 나와 짝꿍은 그 유리 위에 올라서는 것을 거부했고, 그 바로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난간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사진도 찍고 영상도 찍으면서 할 건 다 하고 돌아왔다. 어느 스카이워크를 갈 때마다 가기 전에는 '오늘은 꼭 유리 위에 서봐야지!'라고 다짐하지만 막상 현실로 다가오며 그 다짐은 마음 깊은 곳에 숨어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이번에도 유리 위에 서는 것은 실패하고 말았다. 



"스카이워크에서 이제 막 벗어났는데, 이번엔 흔들다리야?

 그래도 다리가 별로 안 길어서 다행이네."


□ 등기산 정산은 아름답다. 


등기산 스카이워크를 나와서 앞으로 직진하다 보면 등기산 공원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그 공원까지 갈 계획은 사실 아니었는데, 산책도 조금 할 겸 공원에 잠시 들렀다 가게 되었다. 그리고 조금 가다보니까 공원과 스카이워크를 연결하는 다리가 나왔는데, 그 다리가 흔들다리였다. 일반적인 다리로 만들어도 괜찮았을 텐데 말이다. 그래도 우리가 지금까지 건넜던 흔들다리에 비하면 정말 짧은 다리여서 우리는 후다닥 다리를 건넜다. 그리고 비로소 마음 편하게 등기산 공원을 산책하기 시작했다. 

등기산 공원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잘 꾸며져 있었고, 볼 거리도 꽤 많았다. 잠시 산책만 하고 돌아가자던 우리는 결국 이곳에서 해가 질 때까지 머물게 되었다. 다리를 건너면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 한 길은 정자로, 다른 한 길을 등기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다. 우리는 우선 정자 쪽으로 발길을 틀었다. 절벽 끝자락에 세워진 정자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정말 일품이었다. 우리나라에는 마치 '정자가 있는 곳=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라는 법칙이 있는 것 같다. 그만큼 어딜가나 정자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그게 산이든 바다든 절경을 마주하게 된다. 



정자를 뒤로하고, 아까 마주했던 갈림길이 다시 나왔다. 원래 계획은 여기서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는데, 우리는 등기산 정상 방향으로 직진해 버렸다. 햇살 좋은 날, 초록색 가득한 공원은 그 자체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공간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곳에서 푸르른 바다를 볼 수 있다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완벽한 장소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등기산 정상은 완벽한 장소였다. 우리 주변으로는 온통 녹색이었고, 곳곳에는 조각품이 있어서 공원에 생기를 넣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공원 한 가운데에는 커다란 등대가 있었고, 그 위에는 전망대가 있었는데 우리는 굳이 올라가보지 않았다. 그곳에 올라가나, 공원에서 바라보나 눈에 보이는 모습은 똑같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다를 바라볼 수 있으면서 햇살이 기분 좋게 내리쬐는 자리에서 한동안 앉아있었다. 굳이 서둘러 이동할 이유도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이게 나와 짝꿍의 여행 스타일이다.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그곳에서 주구장창 시간을 보낸다. 결코 서두르지도, 다음 번에 어디를 갈 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냥 지금 우리가 마음에 드는 이 곳이 온전히 우리의 마음 속에 자리할 때까지 그곳에 머물다가 돌아온다. 한 번으로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간혹 다음 날 다시 찾아갈 때도 있었다. 여행 계획은 그냥 숙소를 예약하는 것 뿐이고, 그 안에서의 세부 일정은 즉흥적일 때가 대부분이다. 



햇빛이 내리쬐는 장소에서 한동안 앉아있다가 나무 그늘 아래에 있는 흔들 의자로 자리를 옮겼다. 의자에 앉으면 바다가 눈에 들어오고, 우리가 갔던 스카이워크도 보인다. 등 뒤로 넘어가는 해가 우리의 그림자를 길게 만들어줬다. 우리 키의 두 배는 될 법할 정도로 우리의 그림자는 길쭉했다. 흔들흔들 의자에 몸을 맡긴 채 또 다시 우리는 하염없이 앉아있었다. 서로의 어깨에 기댄 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말이다. 때로는 우리의 대화가 끊어지고 침묵이 찾아와도 우리는 그저 그 상태 그대로 우리만의 시간을 함께했다. 가끔은 서로의 손을 잡고,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있는 그 상황 만으로도 모든 이야기가 완성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침묵이 오히려 더 의미있는 우리만의 대화가 되기도 한다. 

해가 조금 더 넘어가서 우리의 그림자가 사라질 때쯤 우리는 흔들의자에서 일어났다. 그 의자에 앉아서 짝꿍은 열심히 식당을 찾고 있었고, 배가 고파진 우리는 근처 후포항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잠시만 머물다 가려고 계획했던 등기산에서 반나절을 고스란히 보내고 돌아왔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장소였고, 내 마음 속에 나도 모르게 만들어져 있던 경계가 한 단계 허물어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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