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터베리(Canterbury)
영국 동남쪽 끝자락에 보면 캔터베리(Canterbury)라는 지역이 있다. 오늘은 이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브라이튼(Brighton)에서 거리가 꽤 있긴 했는데,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서 다녀왔던 기억이 있다. 그럼 영국의 아름다운 도시 캔터베리로 여행을 떠나보자.
캔터버리는 영국 동남쪽에 있는 켄트(Kent) 주의 중심 도시이다. 켄트는 영국의 정원(Garden of England)이라고 불릴 정도로 자연 경관이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캔터베리는 그 중심 도시로서, 아름다운 풍경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장소가 3곳이나 있을 정도로 역사가 잘 어우러져 있다. 이 때문에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캔터베리를 찾는다.
기차역에서 내려서 캔터베리 시내로 걸어들어가는데, 작은 강을 하나 만났다. 그리고 강 옆으로 길게 늘어선 공원과 주택들이 너무 고즈넉하면서도 아름다웠다. 그리고 조금 더 걷다 보니까 작은 강 하나가 또 나왔다. 그 곳에서는 관광객들이 탄 배 위에서 투어가이드가 유유히 노를 젓고 있었다. 작은 강 양 옆으로는 예쁘게 늘어선 주택들과, 그 사이로 흐르는 강, 그리고 그 위에 떠다니는 나룻배의 모습은 그 자체로 그림이었다. 이렇게 캔터베리에 대한 첫 인상은 물과 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운 도시가 되었다.
실제로 지도로 캔터베리를 찾아보면 도심을 가로지르는 스투어 강(River Stour)이 두 갈래로 갈라져서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기차역에서 도심까지 가는데 두 개의 물줄기를 지나친 것이다. 이렇게 도심 속으로 강이 흐르고, 그 강과 함께 어우러지는 캔터베리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이탈리아의 베네치아(Venice)를 떠올렸다. 그 모습이나, 살아가는 방식 자체가 완전히 다르긴 하지만 도시를 가로지르는 물줄기를 삶의 한 축으로 삼고 활용하는 측면에서는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베네치아는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배를 타고 이동할 정도로 물 위에서 살아가는 반면, 이 곳은 아주 일부의 사람들만 물을 본인들의 삶의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 큰 차이점이다.
두 개의 물줄기를 지나면 시내로 들어서게 된다. 시내의 모습은 영국의 다른 도시와 크게 다른 점이 없었다. 도시 안에 있는 상점도 비슷했고, 영국 특유의 도심 모습이었다. 그렇게 시내를 따라 걷다가 상점 위로 거대한 건축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 건축물이 바로 캔터베리의 중심인 캔터베리 대성당(Canterbury Cathedral)이다.
캔터베리 대성당은 597년에 지어져서 14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영국 성공회의 기반을 닦은 곳이고, 실제로 캔터베리 대성당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영국 성공회의 마더 교회(Mother Church)라고 소개할 정도로 영국 성공회의 상징으로 묘사되는 곳이다. 이런 역사성과 지역을 넘어 영국 전역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대성당의 가치를 인정받아 캔터베리 대성당은 성 어거스킨 수도원(St. Augustine's Abbey)과 성 마틴 교회(St. Martin's Church)와 함께 198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캔터베리 대성당이 1400년의 역사를 무탈하게 지켜온 것은 아니다. 중간에 불에 탄 적이 2번 있었고, 지진으로 손상을 입기도 했으며, 인간에 의해 파괴된 경험이 2번 있었다. (헨리 8세의 종교개혁 시기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공습) 그 때마다 캔터베리 대성당은 그 자리에 다시 세워졌고, 지금까지 이 자리에서 영국인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상징성 만큼이나 캔터베리 대성당의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내가 영국에서 가봤던 성당 중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큰 규모였다. 기차역을 빠져나와 강을 건너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미 이 대성당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정도로, 도심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멀리서는 캔터베리 대성당이 큰 성당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껴지지만, 대성당 앞에 도착하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규모에 일단 압도당하고 만다. 캔터베리에 가기 전까지 이미 꽤 많은 영국의 대성당을 다녀왔었고,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은 차원이 달랐다. 그렇게 나는 한참동안 건축물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성당 안으로 들어섰다. 원래 성당에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날은 아무도 나를 붙잡고 돈을 내라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까 내가 찾아갔단 시기가 부활절 주말이라서 캔터베리 대성당을 개방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찾아보니까 입장료가 성인은 14파운드, 약 22,000원이고, 학생증이 있으면 무료이다. 국제 학생증이 있으면 이럴 때 유용하다.)
외부에서 보는 것 만큼이나 대성당의 내부도 화려하고 높고 넓었다. 그렇게 넓고, 사람들도 적은 편은 아니었는데 신기하게도 성당 안은 너무나도 차분했고 고요했다. 어느 성당을 가더라도 성당이 내뿜는 고요하고 성스러운 분위기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그 느낌이 훨씬 더 강했다. 그리고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들도 성당이라는 장소의 특성을 존중하기 때문에, 이곳에서만큼은 큰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하게 관람하는 듯했다.
나는 유럽의 성당을 갈 때마다 넋을 잃고 쳐다보는게 있다. 바로 성당 유리창에 있는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다. 종교적인 의미로 넋을 잃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자체가 너무 화려하고 아름다워서 계속 쳐다보게 된다. 캔터베리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은 건축물의 규모가 커서인지, 작품의 크기도 다른 곳보다 더 컸다. 그래서 더 화려했고, 더 아름다웠다.
정말 오랜 시간 대성당 안에 머문 후에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한결 차분해진 마음으로 캔터베리 도심을 이리저리 걷기 시작했다. 상점이 모여있는 도심 지역을 벗어나자만 넓은 잔디밭이 나오고, 스투어 강의 한 줄기가 나왔다. 그리고 나는 그 강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강 옆으로는 주택이 있기도 했고, 오래된 성문이 자리잡고 있기도 했다. 그 성문은 오랜 옛날 캔터베리를 지나는 관문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괜히 성문 아래를 지나가보기도 했다.
성문을 지나 잔디밭으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여유를 즐기는 한무리의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도심에서 불과 걸어서 5~10분 정도만 벗어나면 이렇게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녹색 공간이 있다는 것이 참 보기 좋아보였다. 한 곳에 모여앉아 담소를 나누는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보았다. 잔디밭만으로는 자칫 밋밋했을 사진에 그들이 생동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내가 찾아갔던 날처럼 햇살 가득한 날이면 영국인들은 햇빛을 받기 위해 밖으로 많이 나온다. (영국은 햇빛이 이렇게 화창한 날이 많지 않다.) 그들도 그런 영국인들 중 한 무리가 아니었을까.
이렇게 캔터베리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다. 캔터베리는 영국을 다시 가게되면 꼭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도시이다. 그 때는 캔터베리를 넘어서 켄트 주를 여행해보고 싶다. 그리고 왜 이곳이 영국의 정원이라고 불리는지 직접 보고 느끼고 싶다. 주변에서 런던 말고 추천할만한 여행지를 추천해달라고 할 때 캔터베리를 많이 이야기해준다. 런던에서도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는 곳이고, 꼭 한번 가볼만큼 아름다운 도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