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포드(Oxford)
영국에는 유명한 대학교가 꽤 여럿 있다. 그 중에서 어느 대학교가 최고일까에 대답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고, 사람마다 대답이 다를 수가 있을 것이다. 오늘은 영국 최고라고 평가받는 대학교를 품고 있는 도시 한 곳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바로 옥스포드(Oxford)이다. 도시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이 곳에는 세계 최고의 대학교 중에 하나라고 평가받는 옥스포트 대학교가 있다. 그럼 옥스포드 안으로 들어가보자.
내가 옥스포드를 가게 된 것은 브라이튼(Brighton)에서 함께 학원을 다니던 대만 친구가 가고 싶다고 해서였다. 원래는 다른 친구들도 함께 갈 계획이었는데, 어쩌다 보니까 이 친구랑 단 둘이 가게 되었다. 이 여행이 외국인과 단둘이 하는 첫 여행이라 옥스포드에 대한 기억이 조금 더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 친구는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어학연수를 마치고 대만으로 돌아갔다가 독일로 대학원을 갔다는 소식까지는 들었는데, 나름 친하게 지냈던 친구라서 간혹 기억이 나고는 한다. 옥스포드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 친구가 함께 떠올랐다. 그래서 이렇게 잠시나마 그 친구를 언급하고 지나가본다.
브라이튼에서 옥스포드까지 가는 길은 그렇게 순탄하지는 않다. 런던 빅토리아(Victoria) 역에 도착한 후에 지하철을 타고 런던 북쪽에 있는 다른 기차역으로 가서 옥스포드까지 가는 기차를 다시 타야 한다. 런던에서 옥스포드까지는 약 1시간 정도면 가지만, 브라이튼에서 가는 여정은 3시간 남짓 걸린다. 당일여행으로 다녀오기에는 조금 오래 걸리는 시간이지만, 그 당시에는 영국의 다른 도시를 보러 간다는 설렘과 기대로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함께 갔던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가서인지, 시간은 더욱 짧게 느껴졌다. 오전에 서둘러서 출발한 우리는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옥스포드에 도착했다.
옥스포드 기차역을 나와서 조금만 걷다보면 옥스포드 시내가 나온다. 세계 최고의 대학교가 있는 곳이라고 해서 도시가 작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막상 도착해서 본 옥스포드는 꽤 작은 도시였다. 내가 당시 살고있던 브라이튼보다도 훨씩 작았고, 시내는 한바퀴 둘러보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시내에 문화시설도 많지가 않아서 이곳에서 지내는 대학생들은 꽤나 지루한 시간을 보낼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세계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여있어서 공부만 하는 곳인가...란 생각이 들다가도, 그래도 그들도 활기 넘치는 젊은 대학생들인데 답답하거나 지루하진 않을까라는 의문도 들었다. 물론 그 의문을 시원하게 해결해 줄 사람은 내 주위에 없었다. 내 주위에 이 대학교를 다니거나, 졸업한 사람은 없으니까 말이다.
옥스포드에서 우리가 처음으로 간 곳은 옥스포드에 있는 자연사박물관인 피트리버스 박물관(Pitt Rivers Museum)이었다. 함께 갔던 친구가 꼭 가보고 싶다고 해서 따라간 곳이었는데, 당시 런던에 있는 자연사박물관도 가보지 못했던 나로서는 꽤 흥미로운 박물관이었다. 박물관 안에 들어서면 각종 동물의 뼈와 화석 등을 볼 수 있고, 지구가, 그리고 자연이 어떻게 지금까지 흘러왔는지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런던 자연사박물관과 비교하면 규모도 턱없이 작고, 소장품도 많지는 않지만 지방 도시에 있는 박물관임을 감안하면 결코 작은 박물관은 아니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옥스포드 대학교 탐방에 들어갔다. 대학교라고 해서 나는 우리나라 대학교처럼 일정한 공간 안에 캠퍼스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옥스포드 대학교는 옥스포드 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다. 딱히 대학교 캠퍼스라고 지정된 공간이 있기보다는, 시내를 걸어다니다 보면 대학교의 건물들을 차례대로 만나게 된다. 옥스포드를 돌아다니면서 든 생각은 옥스포드 대학교 건물이 옥스포드 시내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옥스포드 시내에 돌아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옥스포드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다. 그만큼 옥스포드는 옥스포드 대학교로 살아가는, 대학 도시인 셈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영국의 모든 대학교가 옥스포드 대학교처럼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대학들도 대학교 건물들이 한 곳에 모여있고, 캠퍼스를 이루고 있지만 우리나라 대학교처럼 정문, 후문과 같은 개념은 딱히 없는 듯 했다. 내가 가본 모든 대학교에는 담장도 없었고, 캠퍼스로 들어가는 문이 따로 있지도 않아서 사방팔방으로 대학교 캠퍼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즉, 우리나라 대학교보다 영국의 대학교가 조금은 열려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대학교 건물들을 하나씩 찾아다녔다. 그래도 많은 건물들이 서로 가깝게 있어서 찾는 데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많은 건물 중에서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고, 깊은 인상을 받은 곳은 대학 교회(University Church)의 종탑, 그 중에서도 전망대였다. 5파운드의 입장료가 있기는 했지만,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옥스포드 전경은 입장료를 보상하고도 남았다. 우리가 갔던 날, 날씨가 많이 흐려서 시야가 그렇게 멀리까지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충분히 멋있었고 인상 깊었다. 다만, 종탑까지 올라가는 계단이 많이 좁고 어두워서 갇혀 있는 느낌이 많이 든다. 이런 공간에 공포나 불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종탑까지 올라가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옥스포드 대학교 교회 종탑 전망대에서는 대학교의 다른 건물들과 더불어, 옥스포드 시내의 모습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고풍스럽고 멋드러진 대학교 건물들과, 실제 사람들이 살아가는 건물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옛날에 지어진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건물들을 보면서 새삼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유지하는 데 수많은 비용이 들어가고, 그런 건물을 이용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역사의 모습을 간직하려는 그들의 노력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런 건물들이 남아서 옥스포드 대학교 만의 정체성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닐까. 그리고 우리와 같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것은 부수효과가 아닐까.
날씨가 흐렸지만 우리는 종탑 전망대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전망대 공간이 매우 협소하긴 하지만, 날씨 때문인지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방해받지 않고 옥스포드 시내 곳곳을 관찰할 수 있었다. 지도에서 보면 옥스포드 시내 외곽으로 초원과 공원 등이 넓게 펼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흐린 날씨 때문에 그곳까지 시야가 들어오지 않아서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다음에 날씨가 좋을 때 다시 와야지 다짐했고, 실제로 옥스포드를 다시 방문한 적도 있는데 그 때도 날씨는 흐렸다. 그렇게 옥스포드와 나의 인연은 흐린 날씨에만 맺어졌다. 다음에 또 가게 되면 그 때는 날씨가 맑을까. 그러기를 기대하고 싶다.
종탑을 내려와서 대학교의 다른 건물들도 찾아다녔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면 건물 하나가 나오고, 그 앞에 어떤 대학인지 팻말이 붙어있었다. 우리는 교회 종탑 이외에 다른 대학 건물을 들어가보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대학 건물에 외부인이 들어갈 수 있는 줄도 몰랐고, 시간도 다소 늦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브라이튼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고풍스러운 건물로 둘러쌓인 푸른 잔디밭이 인상적인 건물도 있었고, 대학 건물 사이사이에는 녹색 공간도 많았다. 조금 더 자세하게 둘러보고 싶었는데, 그럴만한 시간적 여유가 되지 않아서 조금 아쉬웠다.
아쉬운 대로 옥스포드 대학교 탐방을 마치고 기차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옥스포드 성(Oxford Castle)을 지나쳤다. 시간이 늦어서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이곳에도 성이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성으로 지어졌다가,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했던 이 공간은 현재는 관광객이 방문하는 장소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불 켜진 옥스포드 시내를 다시 가로질렀다. 불이 들어온 길거리의 모습은 낮의 그것과는 다소 달랐다. 조명의 영향일까, 옥스포드 시내의 모습이 한층 더 고즈넉하면서도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우리는 옥스포드를 떠났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나는 옥스포드에 다시 가서 조금 더 자세하게 둘러보리라 다짐했었다. 옥스포드에 다시 가는 것까지는 이뤘지만, 그 도시를 자세히 둘러보리라는 다짐은 아직까지 이루지 못했다. 다시 영국에 가게 되고, 옥스포드에 가게 된다면 그 때는 미처 몰랐던 옥스포드의 모습을 조금 더 발견해 보고 싶다. 옥스포드가 대학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매력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