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랑곰 Jun 11. 2022

[제주] 제주 남쪽 해안산책로

큰엉해안경승지

"표지판에 경승지라고 써 있는데? 저기로 가보자."

"응, 나도 봤어. 잠깐 들렀다 가볼까?


우리는 제주도 남쪽 바다를 따라서 계속해서 동쪽으로 이동했다. 정방폭포의 시원한 폭포를 만끽하고 구두미 포구에서 섶섬도 바로 앞에서 본 후에 표선해수욕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표선해수욕장은 명목상 목적지였을 뿐, 우리는 전혀 서두르지 않았고 중간에 바다를 볼 수 있는 지점이 보이면 잠시 멈춰서기도 했다. 그렇게 달리던 중, '경승지'라는 표지판을 보게 되었고 우리는 망설임 없이 표지판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표지판을 따라서 우리가 도착한 곳은 큰엉해안경승지였다. 오늘은 이곳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보려고 한다. 



□ 여행 계획은 계획으로만


우리가 표지판을 따라 도착한 곳은 서귀포에 있는 금호리조트 주차장이었다. 큰엉해안경승지로 마련된 주차장은 보이지 않았는데, 금호리조트에 무료주차가 가능해서 우리는 이곳에 주차를 하고 바다 쪽으로 걸어갔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곳에 주차하고 산책하는 사람들도 꽤 많아 보였다. 


주차를 하고 금호리조트 앞쪽으로 조성된 넓은 잔디밭을 지나면 나무가 우거지고 옆에는 바다가 보이는 아름다운 산책로가 나온다. 이 산책로가 바로 큰엉해안경승지이고, 제주 올레길 5코스이다. 지도 상으로 보면 큰엉전망대라는 장소가 나오긴 하는데, 딱히 그 전망대 한 곳만 보고 가기보다 바다를 따라 산책로를 걸어보는 것이 좋다. 걷기 편하게 데크길로 잘 조성되어 있고, 위로는 나무가 덮여있어서 아무리 더운 여름날에도 시원하게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언제 어디서나 바다를 보면서 걸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 여기서 조금 더 걷자. 너무 좋은데?"

"응, 잠깐 걷다가 돌아가기에는 풍경도 너무 아름답고, 나도 더 걸어보고 싶어."



이곳에 도착하기 전만 해도 우리는 잠시 걷다가 우리의 원래 목적지였던 표선해수욕장으로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곳에 도착해서 걷기 시작하니까 쉽게 돌아설 수 없었다. 바다를 보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걷다 보니까 꽤나 많이 걸었고 우리는 이곳에서 이날의 여행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시간의 부담 없이, 편안하게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서두르지 않고 걸으니까 비로소 이곳의 아름다운 모습이 조금 더 자세히 눈에 들어왔다. 다음에 어디를 가야한다는 계획이 있는 것이 여행을 할 때 도움이 될 때도 많지만, 가끔은 그 계획이 우리가 정말 좋아하는 장소에서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하게 되는 제약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여행을 할 때마다 그런 제약을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을 하기 전에 가보고 싶은 곳을 찾아보고, 계획을 세우되 그 계획은 계획으로만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장소도 직접 가보기 전까지는 우리가 그 장소를 얼마나 맘에 들어할지, 그곳에서 얼마만큼의 시간을 보내고 싶을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앞서서 다녀온 사람들의 의견을 살펴보지만, 사람마다 여행 스타일도 다르고, 같은 장소를 봐도 느끼는 감정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그런 리뷰를 맹목적으로 믿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 장소에 도착한 이후에 그 다음 일정을 매번 바꾼다. 어떤 경우에는 한 장소에서 오후 반나절을 모두 보낸 적도 있었다. 그래도 그 뒤에 가보지 못했던 우리의 계획이 어그러진 것에 결코 후회하거나 미련이 남았던 적은 없었다. 



□ 한반도 포토존으로 유명한 곳


큰엉해안경승지 산책로를 따라 걸은 지 불과 10분이나 지났을까, 우리는 줄을 서고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무엇일까 궁금해서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근처에 안내문을 보게 되었고, 그 안내문은 나무가 만들어내는 빈 공간의 모습이 한반도 모양으로 되어 있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찾아보니까 이곳이 한반도 모양의 포토존으로 알려진 곳으로, 이곳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꽤 많은 듯했다. 그런 정보를 전혀 모르고 온 우리는 왜 길 한복판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굳이 기다리면서까지 사진을 찍고 싶지 않았던 우리는 그런가보다 하고 근처에 있는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는 줄이 더 길어져 있었다. 그 이유는 그 곳에 서서 20분 넘게 사진을 찍고 있는 세명의 그룹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리를 잡고 서서 한 명씩 사진을 찍고 확인하고 또 찍고 확인하고 또 찍고... 대화를 살짝 들어보니 사진이 아주 조금이라도 맘에 들지 않으면 계속해서 다시 찍는 것 같았다. 뒤에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본인들의 사진 찍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들과 함께 살아가는 배려심도 어느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역시 불편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들도 기분 좋게 제주도까지 놀러왔을 텐데...



"이런 산책로라면 얼마든지 걸을 수 있겠어. 

이렇게 잠시 멈출 수 있는 비밀스런 공간도 있고, 

바다도 마음껏 볼 수 있으니까."


길을 걷다 보면 오른쪽(바다 방향)으로 작은 오솔길이 꽤 많이 나온다. 처음 한 두개는 '뭐지?'라는 궁금증이 생기긴 했지만 그냥 지나쳤는데, 그 다음에도 계속 나오니까 그쪽으로 한번 들어가봤다. 오솔길을 따라 들어가면 바다가 코앞에 펼쳐지는 장관을 볼 수 있고, 그 오솔길은 바다를 품에 끼고 계속 이어진다. 아주 좁은 길인데 바다를 보면서 걸을 수 있도록 길이 계속 이어졌다. 두 명이 채 지나가지 못할 정도로 좁은 길인데 앞에는 바다가, 바로 뒤에는 나무들이 막고 있어서 그 공간이 정말 비밀스러웠다. 그리고 중간에 벤치가 있어서 잠시 앉아 있었는데, 정말 집에 있는 것과 같이 아늑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이 길을 따라 걷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많이 조용했고, 우리는 오롯이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가다 쉬다를 반복하다 보니까 우리는 꽤 많은 거리를 걸어갔다. 돌아가야 하는 길도 생각해야 했기 때문에 아쉽지만 돌아서기로 했다. 끝이 있는 길이라면 그 끝까지 가보자고 했을 텐데 올레길 코스다 보니까 이 산책로가 계속 이어지는 길이라서 무작정 가볼 수는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차에 바다 쪽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발견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그 계단만 내려가 보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는 바다를 정말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계단은 바다 위 갯바위로 우리를 이끌었고, 아무도 없는 그 갯바위에서 잠시만 쉬었다 가기로 했다. 그 잠시가 5분, 10분이 지났고, 우리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만히 들려오는 새소리, 바람소리, 파도소리만 눈을 감고 들을 뿐이었다. 



얼마 후,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저녁 시간이 되어가고 배가 고파졌기 때문이다. 걸어온 만큼 돌아가야 하는 시간도 있기 때문에, 더 늦어지기 전에 돌아가기로 했다. 바다가 코 앞에 있는, 우리만의 공간에서 즐기는 너무도 평온한 시간이었기에 돌아가야 하는 그 순간이 아쉬웠다. 그래도 그 아쉬움이 있어야 다음에 다시 올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 아닐까. 아쉬움이 남지 않는다면 이곳에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약간의 아쉬움을 남겨놓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한다. 그 아쉬움이 다음 기회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다음에 다시 와서 우리에게 남은 아쉬움을 달래기로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주] 제주도 남쪽에 펼쳐진 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