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 안산
봄 바람이 코 끝을 스치던 날, 벚꽃잎이 흩날리던 날, 2022년 어느 한 봄날에 우리는 서대문 안산으로 갔다. 날씨가 더워지기 전에 산에 올라가보고 싶다던 짝꿍의 바람과, 오랜만에 산에 올라서 서울을 조망하고 싶은 나의 작은 소망이 한데 어우러진 결과였다. 오늘은 우리가 서대문 안산을 등반했던 어느 하루의 이야기이다.
서대문 안산에 우리는 차를 가지고 갔다. 미리 알아본 결과 안산 옆에 있는 연북중학교 운동장을 주차장으로 개방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은 바로 옆에 있는 서대문 자연사박물관에 오는 관람객을 대상으로 개방하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 안산에 온 사람들도 주차를 할 수 있었다. 주차비는 시간 제한 없이 2,000원으로 아주 저렴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약 1시 즈음(주말)이었는데, 주차장에 차 댈 공간은 꽤 많이 남아있었다. 다만, 등산을 하고 약 4시쯤 내려오니까 주차장이 꽉 차 있었다. 언제쯤 만차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차가 필요하다면 너무 늦지 않은 시간이 오는 것이 좋을 듯하다.
아무튼 우리는 무사히 주차를 하고 마음 편히 안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사실 안산을 가기로 결정하고 그냥 온 거라서 안산에 등산로와 자락길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안산에 들어서자마자 걷기 편하게 조성된 나무데크 길이 나와서 아무 생각 없이 그 길을 따라 걸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자락길에서 등산로로 들어서야 안산 정상에 오를 수 있었는데, 우리는 그 사실을 조금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안산 자락길을 따라 걸었는데, 실수였지만 괜찮았다. 안산 자락길이 꽤 아름다웠고, 길을 걸으면서 여러 봄꽃들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울창한 숲길 한가운데를 지나기도 했고, 이름 모를 야생화에 시선을 빼앗겨 잠시 멈춰서기도 했다.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 자연 속에서 좋은 공기를 마시면서 편하게 걸을 수 있어서인지 안산 자락길에는 산책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렇게 자락길을 따라 걷다가 안산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로 들어섰다. 등산로도 걷기 편하게 잘 만들어져 있긴 했지만, 자락길과 다른 점이 있다면 끊임없이 오르막이라는 사실이다. 그래도 가파른 경사는 거의 없고 완만하게 계속 오르막이라서 산책 삼아서 천천히 올라가면 비교적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는 길이었다. 등산 경험이 거의 없는 짝꿍도 힘들다는 소리 한 번 하지 않고 오른 것을 보면 안산이 올라가는 데 그렇게 어려운 산은 아니다. 물론 우리가 빠르게 오른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 멈춰 섰던 적이 많아서 덜 힘든 것일 수도 있다.
안산을 오르면서 우리는 참 많은 것을 봤다. 나무 기둥에 매달려서 피어난 노란 꽃도 봤고, 초록색 나무 위를 덮을 정도로 흐드러지게 피어난 벚꽃도 봤다. 하늘을 찌를 듯이 올곧게 솟아오른 나무가 가득한 숲도 있었고, 벚꽃잎이 떨어져서 분홍빛으로 변해버린 길 위를 걷기도 했다. 우리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잠시 멈춰서서 가만히 들여다봤다. 전혀 서두름이 없었고, 그저 우리의 감각이 느끼고 싶어하는 대로 몸을 맡겼다. 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보고, 좋은 냄새가 나면 냄새의 근원을 찾아보고, 자연의 소리가 들리면 가만히 눈을 감아도 봤다. 우리는 자연 속에서 우리의 모든 감각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자연의 기운을 오롯이 느껴보았다. 비록 설악산, 지리산과 같은 명산은 아니지만, 서울 안에서 자연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공간이었다.
우리는 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우리는 작은 공터와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 이 장소가 무악재 쪽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곳이었다.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사람도 꽤 있었고, 정자 위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우리도 잠시 쉬었다 가기 위해 정자로 올라가서 앉았다. 불과 계단 몇 개를 올라왔을 뿐인데 시원한 바람이 우리의 땀을 식혀주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우리는 등산을 온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짝꿍이 항상 하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한국 사람들은 등산 장비들을 다 갖고 있나봐."
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등산복부터 해서 배낭, 등산화, 등산 스틱까지 많은 등산 장비를 가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처럼 등산이 대중화되지 않은 도미니카공화국과 영국에서 자라다 보니까 한국의 등산 문화가 많이 신기하면서도 낯선 것이다. 그래도 요즘에는 많이 익숙해졌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 부모님의 역할이 컸다. 우리 부모님의 옷장에는 등산복이 한가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이 등산을 하기에 아주 좋은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한국의 등산 문화를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등산 장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 조금은 신기했던 것 같았다.
"이렇게 배고파하면서까지 올라가는데, 전망이 별로면 정말 실망할 것 같아.
전망이 무조건 좋아야 돼!"
정자에 앉아 쉬면서 우리는 간식을 챙겨오지 않은 우리의 어리석음을 탓했다. 배가 조금씩 고파지고 있었는데, 우리 손에 먹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산에 갈 때는 아주 간단한 거라도 간식 거리를 항상 챙겨야 하는데, 미처 그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어쩌랴, 안산 정상까지는 가보고 내려가기로 한 것을. 우리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정자에서 안산 정상까지는 그렇게 멀지 않았다. 잠시 가파른 경사의 오르막을 오르긴 해야하지만, 그런 길이 그렇게 길지는 않았다. 그 경사를 오르고 나면 금방 정상이 나온다.
안산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다. 그 봉수대 위에 오르면 서울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배고픔을 이기고 정상까지 올라온 우리는 성취감에 한번, 그리고 아름다운 서울의 모습을 보면서 또 한번 희열을 느꼈다. 전망이 좋아야만 한다던 짝꿍은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그 모습에 빠져버렸다. 안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모습은 배고픔도 잊게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일단 안산 정상에서 바로 앞을 내려다 보면 서대문 형무소가 한 눈에 들어온다. 아직까지 차마 짝꿍을 데리고 가지 못한 곳, 나조차도 갈 때마다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관람하기 쉽지 않은 곳이 바로 서대문 형무소이다. 짝꿍도 일제 강점기에 대한 역사와 일본이 우리 선조들에게 한 만행을 알고 있다. 그 사실을 알아서 짝꿍도 선뜻 가보자고 하지 않는 것일까. 언젠가 한 번은 짝꿍과 함께 가보리라 생각하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눈길을 돌리면 서울을 한바퀴 둘러볼 수 있다. 한강도 보이고 더 멀리는 롯데타워도 보인다. 다른 쪽으로는 빨간색 빌딩이 인상적인 여의도의 모습도 볼 수 있고, 종로, 그 뒤로 낙산, 더 뒤에는 아차산과 용마산도 눈에 들어온다. 조금 더 고개를 돌리면 인왕산 성곽길도 보인다. 안산 자락길과 인왕산 성곽길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무악재역 위에 있는 다리를 건너면 바로 인왕산으로 들어서게 되는데, 안산과 인왕산을 하루에 등산하는 사람들도 꽤 많은 듯했다. 그리고 인왕산 뒤로는 서울을 품에 안고 있는 산, 북한산이 보인다.
배고프다는 이유로 발걸음을 재촉해서 정상에 올랐지만, 우리는 그곳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심지어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에 취해 잠시 앉아있기도 했다. 발길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었고, 그곳에 서서 서울의 모습을 하나하나 눈에 담아내고 싶었다. 그리고 원할 때마다 꺼내어 보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사진을 찍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우리 눈이 담아내는 그 모습을 사진이 온전하게 담아내지는 못한다. 그래도 사진을 보면 그 당시 기억이 떠오르고, 그 당시 감정이 떠올라서 추억에 휩싸이곤 한다. 그렇게 추억을 회상하는 그 순간을 위해 지금을 사진으로 남겨놓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충분히 둘러본 후에 안산을 내려왔다. 아쉬운 마음이 들긴 했지만, 우리는 내려오면서 다음을 기약했다. 우리는 어디를 가더라도 항상 다음을 기약하면서 돌아오는 편인데, 짝꿍은 그런 나에게 가끔 불만을 제기한다. 다음이 언제가 될 지 어떻게 아냐고, 심지어 다음이 없을 수도 있지 안냐면서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즐기자는 것이다. 그런 짝꿍의 말이 백 번 맞다. 나도 지금을 즐기면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다음을 기약하자는 말은 지금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아쉬움을 남기자는 뜻이 아니라,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과 즐거운 지금 이 순간을 즐기러 다음에 다시 오면 좋겠다는 의미이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갈 때와는 다르게 쉬지 않고 내려와서 꽤 빠른 속도로 내려왔다. 계단을 따라 계속 내려왔고, 다 내려와서 우리가 주차한 연북중학교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이렇게 나와 짝꿍의 안산 등산 이야기는 끝이 났다. 봄에 다녀온 것이라 시기적으로 맞지는 않지만 이 브런치는 여행장소를 소개하는 정보 제공 목적보다는 나와 짝꿍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목적이 더 크기 때문에, 늦게라도 글을 쓰게 되었다. 꼭 봄이 아니라 언제 올라도 좋을 안산이고, 정상까지 오르지 않고 안산 자락길만 걸어도 충분히 좋은 곳이다. 서대문 안산은 서울 속에서 자연을 만끽하고 싶지만 북한산처럼 어려운 산행이 부담스럽다면, 그런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장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