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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곰 Jun 27. 2022

[서울] 장미의 향연

중랑장미공원

해마다 5월이면 장미가 만개한다. 벚꽃을 비롯한 4월에 피어나는 많은 꽃들이 떨어진 후에야 새빨간 색깔을 자랑하는 장미가 찾아온다. 장미가 만개할 때가 다가오면서 나는 장미를 보러 갈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멀리 가기는 부담스러워서 서울 안에서 찾았는데, 마침 집 근처에 장미 축제가 성대하게 열리는 곳이 있었다. 그곳은 바로 중랑장미공원이다.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이 나는 짝꿍에게 얘기해서 이곳을 다녀왔다. 장미의 열정을 마음 속에 담아내기 위해 말이다. 



□ 빨간 장미, 노란 장비


중랑장미공원은 6, 7호선 태릉입구역에서부터 시작된다. 8번 출구로 나와서 조금만 걸어가면 장미로 뒤덮인 공간이 눈에 들어오는데, 그곳이 바로 중랑장미공원이다. 지하철 역에서 가까워서 편하게 다녀올 수 있었는데, 주변에 주차장은 그렇게 넉넉해 보이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대중교통으로 가는 것을 추천한다. 묵동천과 중랑천이 합쳐지는 곳에 만들어진 중랑장미공원은 중랑천을 따라 길게 이어진다. 태릉입구역에서 시작해서 7호선 중화역까지 이어지는 산책로가 온통 장미로 뒤덮여있다. 한 방향으로 꽤 많이 걸어야 하는데, 차를 가지고 가면 차가 있는 곳까지 다시 걸어가야 해서 두 배를 걸어야 한다. 대중교통으로 가는 것이 더 좋은 또 다른 이유이다.


공원 한가득 피어난 장미를 보자마자 우리는 얼른 달려갔다. 여길 봐도 장미, 저길 봐도 장미, 온통 장미 천국이었다. 장미를 떠올리면 보통 빨간색을 생각하는데, 이곳에는 여러 색의 장미가 있었다. 분홍색, 노란색, 하얀색, 심지어 여러 색이 섞여있는 장미도 있었다. 장미가 빨갛기 때문에 장미를 뜨거운 정열에 비유하고는 하는데, 그렇다면 노란색, 하얀색 등 다른 색의 장미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새롭게 품종 개량을 해서 탄생한 장미인 것일까, 아니면 애초에 여러 색의 장미가 있었는데 빨간 장미만 유독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일까. 여러 종류의 장미를 보고 있자니, 이런저런 재밌는 의문들이 자연스레 생겨났다. 물론 장미를 보느라 바빠서 이런 의문들을 풀어낼 시간은 없었다. 그렇게 핸드폰을 보고 있을 시간에 장미 한 송이를 더 보는 것이 우선이었다. 우리는 장미로 뒤덮인 길을 따라 걸어갔다. 



그렇게 길을 따라 걸으면서 보게 되는 장미의 종류는 정말 다양했다. 서로 다른 종류의 장미들이 한데 섞여있어서 같은 장미라고 하더라도 보는 재미가 있었고, 다음에는 어떤 종류의 장미가 있을까 상상하게 되었다. 짝꿍도 장미의 종류가 이렇게 다양한 줄은 전혀 몰랐다고 했다. 짝꿍은 장미꽃이 예쁘긴 하지만, 다소 식상하면서도 새롭지 않은 꽃이라고 했다. 그만큼 장미는 언제 어디서나 수도 없이 등장한다. 사실 나도 장미라고 하면 진부한 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꽃을 선물할 때도 장미보다는 다른 종류의 꽃을 고르는 편이다. 그런 우리에게 중랑장미공원은 장미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사해 주고 있었다. 자기들도 이렇게 예쁜 꽃이라고, 자기들을 결코 과소평가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소리치면서 본인들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것 같았다. 


중랑장미공원에 있는 장미들을 바라보면서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어느덧 장미가 끝나고, 한강을 향해 유유히 흐르고 있는 중랑천이 눈에 들어왔다. 차를 타고 동부간선도로를 지날 때마다 차 안에서 바라보는 중랑천을 이번에는 물 바로 옆에 서서 바라보았다. 그러자 천천히 흐르는 물소리가 들려왔고, 물가 옆에 있는 풀과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빠르게 지날 때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을 천천히 걸으니까 비로소 보이는 것이다. 이럴 때마다 과연 빠른 것이 항상 좋은 것일까라는 의문에 휩싸인다. 너무 '빠름'에만 집착하기 때문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많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은 우리가 속도를 조금만 줄여야 그제서야 우리 옆에 나타날 것이다. 항상 우리 옆에 있지만, 우리가 볼 수 없었던 그러한 것들이 말이다. 



중랑천을 바라보다가 뒤로 돌아서 장미공원으로 다시 들어갔다. 공원에 장미로 된 터널이 있다는 사실을 사전에 보고 갔는데, 그 터널을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훑어보다가 우리는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랑천 물가 옆이 아니라, 중랑천을 따라 산책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산책로를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그곳에 올라서니까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산책로가 시작되는 지점에 광장 같은 공간이 있는데, 그 광장에 장미가 한가득 피어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 가운데에는 아름다운 동상도 세워져 있었다. 광장에는 정말 다양한 종류와 색깔의 장미가 있었고, 그런 장미들이 한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너무 아름다웠고 황홀했다. 


그렇게 우리는 또다시 발길을 붙잡히고 말았다. 평일에 퇴근하고 간 터라 이 공원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얼른 둘러보고 집으로 돌아가서 쉴 생각이었다. 공원이 이렇게 클 거라고 예상도 못했고, 이렇게 장미의 매력에 푹 빠져들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 장미를 바라보고 있으니까 평일이란 사실도 잊고, 피곤하단 느낌도 잠시 사라졌다. 우리는 광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구석구석 숨어있는 장미들도 발견하고, 거대한 꽃송이를 가진 장미도 봤다. 너무도 화려해서 눈을 뗄 수 없는 장미도 있었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빨간 장미도 물론 있었다. 수많은 장미 꽃송이들이 너무도 아름다운 장미 정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장미정원을 지나면 장미 터널로 된 산책로가 이어진다. 이 길이 내가 이 공원에 오기 전에 봤던 장미터널이었다. 우리는 장미터널이 어디까지 이어지나 계속 가보기로 했다. 이왕 집에 늦게 들어가게 된 거, 장미를 원없이 즐기고 가자고 서로 합의한 뒤였다. 우리는 장미터널를 계속해서 지나갔다. 산책로 장미터널에 있는 장미는 우리가 흔히 아는 빨간 장미와 분홍색 장미, 흰색 장미가 섞여 있었다. 언제 이렇게 수많은 장미로 뒤덮인 터널을 지나가보랴. 우리는 걷고 또 걸었다. 중간에 Rose라고 써져 있는 포토존을 제외하면 항상 비슷한 모습의 장미터널인데, 이상하게 지루하다거나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힘들다고 돌아가자고 했을 짝꿍도 이날 만큼은 힘차게 걸었다. 꽃이 우리에게 주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장미꽃은 봐도봐도 예뻤다. 


한참을 걷다가 문득 뒤를 돌아봤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리는 긴 거리를 걸어갔다.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집에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태릉입구역까지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우리는 온 길 그대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 길을 걸어올 때와 달라진 점은 장미터널에 불이 켜졌다는 것이다. 밝을 때 걸었던 장미터널을 어두워져서도 걷게 된 것이다. 불이 켜진 장미터널은 또 새로웠다. 장미 그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다운데, 거기에 조명을 더하면 그 아름다움이 배가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우리는 그런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의 손을 꼭 잡고 함께 걷다 보니까 어느새 장미정원에 들어섰다. 장미정원에 도착하니까 큰 장미꽃 한송이가 매달려 있는 거대한 반지 조형물에 조명이 들어와 있었다. 빨간 불이 켜진 조형물은 환할 때 봤던 것보다 더 아름답고 특별해 보였다. 



"집 근처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는 줄 전혀 몰랐네.

내년에 다시 오자. 장미가 필 때 다시 와서 또 걷고 싶어."



이렇게 중랑장미공원에 대한 이야기를 끝낸다. 근처를 지날 때마다 중랑장미공원이라는 표지판을 보면서 장미가 피는 시기에 꼭 한번 가보겠다는 다짐은 꽤 오래 전부터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다짐이 현실이 된 날이었고,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멋진 장소였다. 내년에도 짝꿍 손을 잡고 꼭 다시 가보리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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