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인턴, 왜?

대학생활 Phase 2.

by GOYA

0. 막연한 미래.

고등학생이던 나는 막연히 대학생활을 꿈꿨다. 영화를 보면서 매료된 배경이 어딘지 찾았고 공부하다 떠오르는 것이 있으면 책상 한편에 자리 잡고 있던 소원 통에 메모를 적어 넣었다. 모두가 으레 그렇듯이, 공부보다는 노는 것들만 가득했다. 터키, 태국, 프랑스를 여행하는 날을 꿈 꿨고 캄보디아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나를 바랐다.


1. 선택과 집중

대학에 오니 생각보다 많은 자유가 주어졌다. 분명히 학창 시절보다 더 바쁜 기간도 있지만 순간이었고 몇 주 정도면 상황들이 해결되곤 했다.

자유가 찾아오니 처음에 당황했다. 대학생활의 방학은 분명히 학창 시절의 보충으로 대변되는 ‘명목상’ 방학과는 차원이 달랐고 기간도 길었다. 그래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문득 과거에 적어놨던 메모지들이 떠올랐다. 메모지들에는 내게 의미 있는 것들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하나씩 그 리스트를 지워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오랜만에 들춰본 리스트들은 말 그대로 ‘기대’였기 때문에 현실과는 조금 떨어졌다. 대학생이 하기에는 돈과 시간의 제약을 받는 리스트들도 있었고 시기상 적절한 때를 찾지 못해 보류할 수밖에 없는 리스트들도 있었다. 게다가 내게 주어진 조금은 자유로운 방학은 6번 남짓이었고 이 방학을 모두 할애하기에는 불확실성도 너무 컸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했다. 여행을 가되, 시간과 비용이 많이 필요한 여행은 되도록 빨리, 그리고 가볍게 할 수 있는 것들은 조금 뒤로 미뤘다. 이렇게 4년이란 학창 시절을 채울 계획들로 목차를 만들었다.



고등학생 때 꿨던 꿈들이 이뤄지던 순간들.


2. 이제는 미래를.

지금까지 이뤘다고 자부한 순간들은 전부 경험이었다. 해외봉사, 러이 끄라통, 카파도키아는 내게 경험으로 성장의 자양분이 되었다. 여기엔 적어놓지 않았지만 이전에는 싫어하던 독서를 통한 경험, 다양한 스포츠 입문 등도 큰 도움이 되었다. 잘 다진 토대 위에 올라보니,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삶을 꿈꾸는지 조금 보였다. 대한민국 학생들의 꿈은 공무원(대통령)으로 시작해 공무원으로 귀결된다고 하지만, 나는 오히려 반대였다. 무채색의 삶을 그리던 내게 하고 싶은 꿈들이 생겼다. 그리고 대학생활의 두 번째 장은 공부와 더불어 내 꿈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겠다고 다짐했다.



3. 세 가지 선택지

내게는 세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세계일주, 교환학생, 그리고 해외인턴이 바로 그것이다. 가장 쉽게 거를 수 있었던 것은 세계일주였다. 그 이유는 명료했다. 내가 여행을 즐기는 것은 업(業)이 아니라 취미였다. 여행은 분명히 많은 경험을 하고 세계를 보는 시야를 트는데 큰 도움이 되겠지만, 적지 않은 돈과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게다가 바라던 여행 스폿은 대부분 방문했으니, 무의미한 여행의 연속인 세계일주는 내 선택지에서 과감히 버렸다.

이제 두 개의 선택지가 있었다. 이 양자택일의 문제는 쉽게 정해지지 않았다. 각자의 장단점이 뚜렷했기 때문이다. 교환학생은 대학생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수업을 수강할 수도 있고 자연스럽게 주위 유학생이나 현지 학생들과 교류한 기회가 열려 있었다. 게다가 소정의 장학금도 경제적 부담을 덜어내는 큰 요인이었다. 해외인턴은 경제적 지원도, 주위 사람들과의 교류도 조금은 부족하지만 실무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포인트였다. 그것도 미국에서 말이다.

둘 중에 갈팡질팡하다 결국 나는 ‘해외인턴’에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그 이유는 한 권이 책 덕분이다. 언젠가 내 책장에 먼지가 소복이 쌓인 '열하일기'를 펼쳐보았다. 크게 꼭 읽어야겠다는 마음보다는 예전에 꽤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 시간을 때울 요량으로 책을 집었다. 열하일기는 연암 박지원이 청나라를 여행하면서 경험한 것들을 적은 유랑기다. 과거에는 호질처럼 조금 해학적인 부분을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은데, 다시 읽어보니 박지원이 느끼는 청나라가 흥미로웠다. 작은 세상에서 큰 세상에 온 기분은 분명 보이지 않던 시야가 트이는 순간이 글로 쓰여있었다.

박지원의 시각은 내게 지금의 청나라인 '미국'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세계 초강대국의 지위를 넘어서 역사적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권력과 생산성, 경제력을 거머쥔 미국이란 나라가 어떨지 호기심이 생겼다. 물론,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갈 수 있겠지만 학생 신분으로 미국을 보는 것과 사회인으로 미국을 보는 것은 분명히 큰 차이가 있었다. 학생의 관심사는 교육(수업, 성적, 교수님)과 친구 정도로 관심사가 국한되는 반면, 사회인으로서 미국 땅을 밟는다면 내가 머무르는 지역의 문제, 경제 문제, 정치 이슈 등에 더 깊숙이 파고들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결심을 하고 나는 미국 인턴쉽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찾아봤다.


열하일기, 미국으로 가는 길.


4, 해외인턴, 결정.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많지 않았다. 일단 사설로 가는 것들은 모두 제외했다. 경제적인 이유나, 정당성 등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도 나의 자질을 평가받고 싶었다. 쉽게 가기 싫었다. 경쟁을 뚫고 당당하게 해외인턴을 가고 싶었다. 만약 정부지원 프로그램에 불합격했다면 그것은 단순한 탈락이 아니라 내 자질과 마음가짐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렇게 내가 고르고 고른 프로그램 2개는 '아산서원'과 'WEST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둘 다 모두 합격한다면, WEST 프로그램에 참여할 계획이었다. 아산서원은 국내에서 합숙과 여러 커리큘럼과 경제적 지원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지만, 내게 철학적 소양은 중요한 것들 중에 조금 아래 것들이었다. (개인적으로 철학책과 철학을 전공하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하지만 내가 인턴을 통해 얻고 싶은 소양은 철학적 통찰이나 내 인생에 대한 회고보다는 실무적 경험, 영어능력이었다.) 그리고 워싱턴 DC의 NGO에서 겪을 경험도 내게 매력적이진 않았다.(내 전공은 기계공학이다.) 그래서 첫 상반기에는 WEST 프로그램을, 하반기에는 두 프로그램을 모두 지원할 계획이었다.*


※ 아산서원의 커리큘럼을 비하할 목적은 없다. 내 방향과 맞지 않았을 뿐이다. 교수진도 훌륭하고 커리큘럼도 정말 한국어로 들을 수 있는 최상, 그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어문, 상경, 사회과학 계열 학생들 혹은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은 아산서원이 주는 기회가 정. 말.로 좋은 기회다.


내가 지원할 두 인턴쉽, 아산서원과 WEST


5. 난관 봉착

2019년 1학기, 나는 계획대로 WEST 프로그램에만 지원했다. 나는 2차 인터뷰까지 순조롭게 합격했고 많은 블로그에서 2차 합격을 하면 비행기 티켓을 예매한다고 하여 나도 미국에서 어떻게 지낼지 계획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래서 딱히 플랜 B도 준비하지 않았고 오로지 내 미래는 미국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만약 WEST 프로그램에 일찍 불합격하면 특허전략대회를 준비할 생각이었다.) 5월 9일은 내게 합격의 날이 아니라 확인의 날이었다.

확인의 날이 밝았다. 당일 수업이 핸드폰 확인이 불가능한 실험수업이었기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조교님 몰래 아이패드로 내 결과를 확인했다. 그런데 아뿔싸, 최종 합격이 아니라 '예비합격'이었다. 번호표도 주지 않아서 나는 내가 몇 번인지도 모른 채로 며칠을 더 기다려야 했다. 정말 허망했다. 주위 사람들에게도 나는 이미 미국에 갈 사람인 것 마냥 떠들어댔고 부모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불합격이라니. 나는 부랴부랴 오픈 카톡 방에서 가지 않을 합격자들이 얼마나 있는지 물어보고 내 추가합격 가능성을 추측했고 국립 국제교육원에 전화해 대략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추가 합격하는지도 물어보면서 하루하루 아슬아슬하게 지냈다.

내가 결과에 목을 맨 이유는 바로 여름방학 계획의 부재였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방학들을 굉장히 소중히 여긴다. 그래서 이미 앞으로 남은 방학에 무엇을 할지 계획을 세웠는데 이대로 WEST 프로그램에 불합격하면 특허대회를 준비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할뿐더러, 모든 계획이 어그러진다. 그래서 내겐 결과를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내 실수였다. 나는 언제나 떨어질 것을 대비해 특허전략대회라는 PlanB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자만이 나를 덮쳤다. 예상보다 쉬운 인터뷰와 계속된 합격으로 나는 PlanB를 터부시 했다. 안면도 없는 사람의 말에 긴장을 풀었고 무장해제로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다행히도 학교 축제 마지막 날, 국제교육원은 내게 추가합격소식을 전했고 내가 준비한 일련의 미국 계획들을 실천할 수 있었다. 나에 대한 반성과 인턴쉽 합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고나 할까.


6. 이제야 보이는 방향.

가끔 예상치 못한 기회가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나는 대학원을 막연히 꿈꿨지만 아직은 취업과 학업 중에 고민을 하고 있었다. 대학원을 가는 것은 좋은 선택이지만, 내가 가진 실력이 과연 기계공학을 깊게 파고들 수 있는가 의문이 들었고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낼 자신감이 없었다. 사회생활에서 2년, 혹은 그 이상이 미뤄진다는 것에 막연한 공포도 무시할 수 없었다. 취업을 한다고 나아지는 상황은 또 아니었다. 취업을 한다면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할 수 있지만, 지금 내 상태는 어떤 것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애매한 사람이었다. 이런 내가 학부 2년 만에 가파른 성장을 하는 것은 크게 무리가 있었다. 3학년의 나는 대학원은 가야겠는데 마땅한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영어가 된다면?’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영어만 된다면 나는 한국 대학원에 목맬 필요가 없었다. 미국, 싱가포르, 홍콩의 유명 대학원에 가서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양질의 수업을 받는다면 나는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게다가 선택지도 훨씬 많아지니, 심적인 안정감과 내게 더 맞는 연구실에서 원하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물론 ‘영어’와 '실력'이 충족되어야 한다. 다행히도 내게는 영어실력을 늘릴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앞에 놓여 있었다. 바로 WEST. 게다가 실무경험이나 대학원 랩실 경험도 얻을 수 있으니 최적의 기회였다.

아직은 어느 것도 이루지 못했다. 웨스트라는 기회만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다. 영어도, 실무경험도, 연구경험도 완성되지 않았다. 가능성만 놓여있다. 이 기회를 얻고자, 나는 적지 않은 돈과 시간을 투자했다. 그 성과는 온전히 나의 몫. 이 기회를 꼭 내 성장의 계기로 삼아 한 단계 도약해야지.


*글을 쓰는 이유

나는 이미 3년 전부터 꾸준히 일주일에 2~3편의 글을 써왔다. 주제는 서평, 여행후기, 생각들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것들 대부분은 공유하지 않았다. 그저 내 컴퓨터 하드웨어 속에서 고이 잠들어있다. 글은 사람들과 공유해서 서로 피드백을 받아야 성장하는 것에 백 번 동의한다. 하지만 어째선지 내 생각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싫었다. 나는 그 사람의 생각을 모르는데 그 사람은 내 생각을 아는 것은 뭔가 이상하달까.


그래도 브런치를 통해 글을 써볼까 한다.

첫 번째는 내게 하나의 루틴을 주며 꾸준히 내 생활을 기록하기 위함이다. 이 글을 시작으로 인턴 생활, 미국 문화, 내 생각을 발행할 예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구독이나 어떤 액티브한 반응을 보일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나를 기록하고 그것이 도움되는 사람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랄 뿐이다. (액티브한 커뮤니케이션은 언제나 환영이다.)

두 번째는 내가 미국 인턴을 결심한 계기였던 열하일기와 같은 포맷의 글을 남기고 싶었다. 개인적인 욕심이랄까. 조선시대와는 달리, 글보다는 사진으로, 사진보다는 영상으로 원하는 메시지를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사회다. 글이 주가 되는 페이스북에서, 사진이 주가 되는 인스타그램으로, 영상이 주가 되는 유튜브로 Social Media의 지형이 변화하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글처럼 생각을 정리하고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매체 플랫폼은 없다. 우리는 사진을 보고 촬영자는 어떻게 생긴 사람일까 궁금해하지 않지만, 소설 속 주인공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면서 이야기를 꾸며나가지 않는가. 정확한 정보는 더 정형화된 글이나 매체에서 얻으시라! 대신 당신이 직접 겪었던 것 마냥, 생생한 나성 일기를 선물하겠다.


2019.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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