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주는 힘

두유의 마법

by GOYA


"Where are you from?" 나의 피부색과 어눌한 영어 실력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어디서 왔냐고. 그럴 때마다 “I'm from Korea, South”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South'를 의도적으로 뒤에 말하는 것은 약간의 센스랄까.

1*Sjlpy9jzvn4vT8RLpvdq0Q.jpeg Do you know parasite?

한국에서 내가 들은 한국은 대단했다. 일제강점기, 6.25 전쟁 등의 역경을 딛고 일어서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으며, 21세기에 들어서서는 삼성 스마트폰, 현대 자동차, LG 가전 등 국가대표 기업들을 전 세계 어디서나 만나볼 수 있다. 동방신기, 빅뱅, 소녀시대부터 BTS, Twice 등으로 이어지는 한류 계보는 덤이다.

이를 증명하듯, 내가 많이 방문했던 아시아 국가들은 한국에서 온 이방인에게 굉장히 호의적이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K-pop, 한국어로 호객하는 상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고 중국, 일본인 친구들 중에도 Twice, BTS 팬들이 정말로 많았다. 정말 한국이 전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고 있으리란 ‘착각’을 할 만했다.


그 자부심은 미국에서 초라해졌다. 미국은 한국에 관심이 없었다. 한인 사회가 크게 형성되어 있는 캘리포니아를 벗어나니, 한국을 아는 사람조차 많지 않았다. 내가 한국에서 듣고 보았던 것들이 미국에선 자랑거리가 되지 않았다. 그들에겐 할리우드 영화, 세계 최고 기술 기업, 미국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MV5BYWZjMjk3ZTItODQ2ZC00NTY5LWE0ZDYtZTI3MjcwN2Q5NTVkXkEyXkFqcGdeQXVyODk4OTc3MTY@._V1_UY1200_CR90,0,630,1200_AL_.jpg 내가 물어볼 필요가 없다! 그들이 먼저 물어볼 테니

눈치챘을지도 모르지만, 전 문단을 모두 과거형으로 서술했다. 과거에는 그랬고 지금은 아니다. 바로 ‘기생충(Parasite)’덕분이다.

나는 영화와 그다지 친한 편이 아니다. 1년에 영화관을 방문하는 것도 손에 꼽는다. 그래서 사실 칸 영화제 수상작이라는 소식을 듣고도 ‘기생충’을 보지 않았다. 여러 이유가 있다. 개봉 시기가 시험 기간이었고 영화는 즐거운 취미도 아니었다.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을 했다고 해도 그의 영상 한 번 찾아보지 않는 일반인들과 비슷하다. 축하할 일이지만, 나와는 크게 관련 없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오스카상은 조금 다르다. 내가 한국에서 이 소식을 접했다면, 나는 칸 영화제처럼 가볍게 넘어갔을 것이다. 아니면 이번을 기회삼아, N스토어에서 하는 이벤트를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있는 곳은 미국이었고 오스카상은 미국의 가장 큰 ‘로컬 시상식’이다. 미국에서 개봉한 모든 영화 중에서 가장 으뜸인 ‘작품상’을 한국 작품이 수상했다는 건, 장르를 막론하고 극장에서 관람을 해야 할 명분이 되기 충분했다. 류현진이 월드 시리즈에서 선발투수로 나선다면 , 손흥민이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선발로 나선다면 으레 TV를 켜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즐긴 영화는 재미있었다. 볼거리도 넘쳤고 알레고리를 많이 던졌다. 봉준호 감독이 심어 놓은 여러 디테일을 탐정처럼 해석하는 것도 소소한 재미였다. 무엇보다 한국어 영화를 영어 자막으로 보는 것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한국어 화자들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에서 혼자 킥킥댈 수 있는 것이 마치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흥행 이후로 미국 사람들이 조금 달라졌다. 내가 먼저 ‘Do you know’를 꺼내지 않아도, 'parasite'에 관한 질문이 먼저 튀어나왔다. 보통 ‘한국 사람들은 진짜 저런 삶을 사느냐.’, ‘봉준호는 원래 유명한 감독이냐.’, ‘한국인은 이 영화를 어떻게 생각하냐.’ 등 다양한 질문을 했다. 항상 축구를 좋아하는 친구한테는 ‘손흥민’을, 야구를 좋아하는 친구한테는 ‘류현진’을 물어보느라 애썼던 내겐 감회가 새로웠다.* 말문이 쉽게 트이니, 분위기는 몽글몽글해졌고 해졌다.


처음으로 문화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된 순간이다. 나는 한국에 대해서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문화가 주는 힘을 간과했다. 나는 삼성과 현대의 기술력, 국민들이 만들어내는 역동성 등에 초점을 맞춰 한국을 바라봤다. 내가 한류를 좋아하는 팬임에도, 한류로 대표되는 문화가 주는 영향력을 상대적으로 평가절하했다.

그런데 외국에 나와 보니 그게 아니었다. 삼성 핸드폰 좋고 현대 자동차가 저렴하면서도 좋은 성능을 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이것들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삼성전자의 주가에 대해 이야기를 할까? 현대자동차의 지배구조로 그들과 토론을 할까? 아쉽게도 외국인들은 이런 것에 큰 관심이 없다. 우리가 J.P 모건은 알지만 베조스가 존경하는 경영인 '제이미 다이먼'을 모르는 것과 비슷하다.

1000x-1.jpg 이 사람을 아시나요?

문화는 다르다. 낯선 곳에 나와보니, 문화는 가장 쉽게 이방인과 교류할 수 있는 무기였다. 아시아 사람들과는 한류 아이돌 이야기를, 서양인들과는 축구, 야구 등을 가지고 대화를 텄다. 반면, 지금까지 만났던 일본 친구들은 내게 그런 걸 물었던 기억이 없다. 오히려 내가 일본의 밴드 SEKAI NO OWARI를 좋아해 콘서트까지 갔다고 하면, 그 사실에 좋아하고 신기해했다. 중국인들이, 일본인들이, 동남아인들이 가지지 못한 이야깃거리를 우리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레퍼토리가 하나 늘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두유를 찾았다면, 이제 그들이 한국인을 찾을 차례다.


* 야구, 축구를 좋아하는 미국인들이라면, 대부분 류현진, 손흥민을 알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동양인’이라고 생각하지, ‘한국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남미 출신 야구 선수들을 보고 쿠바계, 도미니카계를 구분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BTS는 남자들의 세계에선 생각보다 유명하지 않다. 'Do you know BTS?'를 먼저 물어봐도 모르는 친구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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