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컬랙션

뉴욕 미술 여행(7)

by GOYA

- 개인 소장 컬랙션/ The Morgan library & Gallery, Neue Gallery, Frick Collection


미술 작품들은 미술관에 전시되는 게 우리에겐 일반적이지만, 미술관에 소장되는 작품들은 한정적이다, 첼시 갤러리에서 한 해에도 몇 천 점의 작품이 쏟아지고 경매장에서도 매주 몇 백 건의 작품들이 거래된다. 그중 미술사적으로 의미가 있거나, 대가들의 작품 중 가치를 인정받는 몇몇 작품들만 박물관, 미술관에 소장되고 우리가 만나볼 수 있다. 미술관의 선택을 받지 못한 나머지는 미술시장을 떠돈다. 그것들은 개인의 소장품이 된다.

미술품은 문화재로 기능을 하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더 많은 기능을 한다. 세금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 재테크를 위한 수단, 개인의 감상을 위한 목적 등 다양한 방식으로 미술품은 평가를 받는다. 첼시 갤러리부터 시작해 뉴욕에 소재한 다양한 미술관까지 살펴봤는데, 마지막은 ‘개인 소장 컬랙션’이다.

당연히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컬랙션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부자들은 없다. 컬랙션을 공개하려면 자기 집을 공개해야 할테니. 자기만 프라이빗하게 즐길 것이다. 하지만 부자들이 죽은 다음, 자신의 소장품들을 모아 대중들에게 공개하는 경우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미술관은 피렌체를 대표하는 ‘우피치 미술관’이다.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들은 대부분 르네상스를 부흥시킨 메디치 가문이 소유했던 작품들이다. 메디치 가의 마지막 후계자인 안나 마리아 루이사는 ‘피렌체 밖으로 반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그 모든 것을 피렌체에 기부했고 그것들이 우피치 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거대한 우피치 미술관

이와 같은 생각을 한 부자들이 뉴욕에도 많이 있었는지, 자신의 개인 컬랙션을 대중들에게 공개한 갤러리가 몇몇 있다. 계획으로는 프릭 컬랙션, 노이에 갤러리, 더 모건 라이브러리, 이렇게 세 곳을 방문하려고 했으나, 프릭 컬랙션을 일정상 방문하지 못했다.


- 노이에 갤러리(Neue Gallery)

‘노이에 갤러리(Neue Gallery)’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독일과 오스트리아 작품들을 주로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이다. 우리에게도 갈색병으로 유명한 ‘에스티 로더’의 아들, 로날드 S. 로더가 아트 딜러인 서지 사바스 키와 함께 세운 미술관이다.

노이에 갤러리는 메트로폴리탄과 구겐하임 사이에 있기 때문에 접근하기 쉬우나, 반대로 말하면 두 거대 미술관 때문에 인지도가 바닥을 기고 있다. 아는 사람만 오는 미술관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미술관은 인지도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노이에 갤러리는 미국에서 가장 우수한 오스트리아 컬랙션을 가지고 있다.* 미술관은 오스카 코코슈카,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쉴레 등 오스트리아 빈 분리파(제체시온) 작품들을 여럿 소장하고 있다.

최근 들어, 오스트리아 화가 작품들에게 큰 매력을 느껴 한국으로 돌아갈 때, 빈을 방문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등으로 계획은 취소되었지만, 노이에 갤러리를 방문하면서 그 아쉬움을 어느 정도 달랠 수 있었다. 제체시온 작가들의 작품들은 사실 MoMA, Guggenheim에서도 쉽게 만날 수는 없다. 아니, 미국 전체에서 오스트리아 작품들을 만나기는 어렵다. 거대한 규모의 미술관에서나 한, 두 점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을 뿐이다. 인상파 이후 컬랙션은 유럽 미술관에 뒤지지 않는 미국도 유독 제체시온 미술만 부족한 감이 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제체시온 작품들이 탄생하던 19세기 말, 20세기 초 오스트리아는 세계 최고의 국가 중 하나였다. 아돌프 히틀러, 비트겐슈타인, 쇤베르크, 프로이트 등 근대를 끝내러 온 사람들은 다 오스트리아 ‘빈’에 있었다. 실제로 클림트가 비트겐슈타인의 누나 초상화도 그려줬다고 하니, 오스트리아(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는 지금의 위상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국력이나 영향력이 거대한 나라였다. 그러다 보니,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 자신들의 보물들을 뺏기지 않고 자국 내에서 충분히 예술 작품들을 소화할 수 있던 것이다. 그리고 전쟁의 참화 속에서 클림트의 역작인 ‘철학, 의학, 법학’등이 소실된 점을 미루어 볼 때, 빈에 소장되었던 여러 클림트 작품들이 파괴되었을 것이다.


Margaret Stonborough-Wittgenstein by Gustav Klimt

* '철학을 끝내러 온' 비트겐슈타인의 집안은 오스트리아 철강 재벌이었다. 강대국에서 귀족같은 생활을 누린 셈. (너무 잘난 사람들 곁에 있던 탓에 자살하려고 한 건 덤이다..)

노이에 갤러리는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을 만날 수 있는데, 당시 가장 비싼 거래가를 기록한 작품보다 비쌌다. 우리에게 익숙한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궁전에 전시 중인 클림트의 ‘The Kiss’처럼 황금 금박으로 그림을 완성했다. 황금 색채를 덧입힌 클림트의 작품을 처음 봐서 그런지, 귀 주변에서 장엄한 오르간 소리가 울려 퍼졌다. Goegeous, Pitapatting 했다. 수수한 소녀도, 아름다운 여인도 아닌 우아한 숙녀를 보는듯한 기분이었다. 퇴폐적인 표정과 관능적인 선 표현이 감탄이 절로 나왔다. 왜 클림트가 ‘대단한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보통 책에 프린팅 된 사진과 그림의 차이는 크지 않은 편인데, 금박을 덧입혀서 그런지 더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종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진품’이었다.


* 독일 작품으론 바실리 칸딘스키(러시아 태생), 파울 클레 등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고 이 또한 우수하다고 평가받고 있으나, 내가 방문했을 때는 독일 작품들은 전시하지 않았다.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 더 모건 라이브러리 & 뮤지엄(The Morgan Library & Museum)

이름부터 아름답다. J.P Morgan, 이제는 투자은행으로 더 익숙한 이름이다. 앞선 미술 갤러리나 미술관들도 대부분 거인들이 입김을 넣어 만들어진 기관들이다. Solomon R. Guggenheim미술관은 구겐하임 일가,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는 벤더빌트 가문, MoMA는 록펠러 가문의 영향을 받아 지어졌다. 그리고 모건은 자신의 소장품으로 구성된 이 도서관을 뉴욕에 남겼다.

Library이기 때문에 반 이상이 책이다. 모건이 생전에 읽었던 것들로 추정되는 책들을 양장본으로 보관하고 있다. 나도 독서를 좋아하기 때문에 모건의 서재에서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책들을 찾아보는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책만 전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비잔티움 양식을 띠고 있는 기독교 미술과 Ubu roi라는 풍자극을 묘사한 작품들을 여럿 볼 수 있다.(내가 좋아하는 로트렉도 관련 작품을 남겼다. MoMA에서 만난 Dora Maar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방문했을 때는 전시하지 않았지만 인상파, 제체시온 작가들의 작품도 여럿 소장하고 있었다. 나중에 다시 온다면 이런 작품들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규모가 큰 박물관은 아니고 전시하고 있는 작품들도 수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여유롭게 공간을 느낄 수 있었다. 해밀턴으로 시작해 미국이 이끌고 있는 세계 경제의 기틀을 닦을 사람으로 평가를 받고 있는 J.P 모건이 즐겼던 공간을 천천히 음미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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