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화가의 사회, The MET

뉴욕 미술 여행(6)

by GOYA

- 고전 회화/The MET

20191130_121049.jpg 이름부 위풍당당한 The Metropolitan museum


박물관은 다양하다. 어떤 상징적인 사건을 가지고 전시할 수도 있고 한 국가의 문화, 역사, 예술, 과학 등 많은 것들을 박물관 안에 담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The MET는 가장 포괄적인 의미의 박물관이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는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이 있다. 중세 기사들의 갑옷, 무기, 아프리카 부족들의 전통 샤먼, 아시아의 도자기, 이집트의 신전, 유럽 고전 회화 등 없는 것이 없다. 이 모든 것을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유럽의 ‘어떤’ 박물관과는 달리, 합법적으로 문화재들을 소장하고 있다. 거대한 이집트의 덴두르 신전도 이집트 정부의 선물이다.

20191130_150806.jpg 귀엽고 거대한 이 물건..

이런 사실과는 별개로, 이런 전인류적 박물관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이집트의 작품은 모래바람을 맞으면서 봐야 제 맛이고, 수블라키 한 꼬챙이 하지 않고 그리스 유적을 보는 건 내게 많이 어색하다.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신 많은 것들을 보기 위해서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그 공부가 책이 되었건, 강의가 되었건, 어떻게든 그 배경지식을 쌓아야 문화재들이 갖고 있는 진정한 의미, 가치를 헤아릴 수 있는데 어느 누구도 뉴욕 여행을 계획하면서 이집트의 역사, 고대 그리스 문화에 관한 책을 펴지 않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한 손에 쥔 브로셔는 간단한 설명과 대표적인 작품, 지도만 덩그러니 쓰여 있다. 가이드를 들어도 마찬가지다. 미적분도 할 수 없는 이에게 나비에 스토크스 방정식을 가르친다고 한들, 무슨 소용일까. 전공자나 뉴요커들은 메트로폴리탄을 마치 모든 것이 모여 있는 ‘테마파크’라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게 메트로폴리탄, 대영 박물관과 같은 거대한 박물관은 뭔가 꺼려지는 장소였다.

그럼에도 방문했다. The MET은 내 필명이기도 한 고야의 ‘발코니와 여인들’을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이다. 그리고 The MET은 다비드의 ‘소크라테스의 죽음’ 등 미국에서도 고전 회화 컬랙션이 좋은 박물관으로 유명하다.

20191130_133150.jpg 소크라테스를 묘사한 대표적인 작품, 소크라테스의 죽음

그러나 방문해보니, 애석하게도 박물관의 유럽회화 전시관 대부분이 리뉴얼 공사 중이었다. 듣기로는 자연체광으로 경험의 질을 높이는 공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고야의 ‘발코니와 여인들’도 보지 못했다. 자연체관을 받으면 더 멋들어지는 작품이 될 것도 같지만 못보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규모가 상당하다 보니, 다른 미술관들이 가지지 못한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조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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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조각 작품은 그리스 현지가 아닌 이상 대규모로 보기 어렵다. 보통 로댕의 청동작품으로 조각 컬랙션을 때우고 대리석 작품은 대표적인 몇 점 정도만 들여놓는 수준이다.(청동 작품은 거푸집만 있으면 무한정 생산이 가능하다. 생각하는 사람이 그리 많은 이유도 이 때문.) 그런데 메트로폴리탄은 규모가 꽤 크다. 한 방을 조각 작품으로 꽉 채운 것이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박물관과 규모가 비슷했다. 다른 곳과는 달리 층고를 터서 조금 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조각 작품들을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었다.

The MET은 박물관이지만 회화 컬랙션도 상당하기 때문에 다른 MoMA, Whitney 미술관과 같은 카테고리로 구분해도 된다. 그럼에도 그들과는 별개로 분류했다. 그 이유는 ‘죽은 미술’이기 때문이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도 Modern 섹션이 있고 Breuer라는 조금 더 현대적인 작품들을 소개하는 장소가 있다. 하지만 메트로폴리탄의 주된 컬렉션은 죽은 화가들의 작품들이다.


“죽고 나서 위대한 예술가로 평가받는 화가가 아직도 있나요?” 첼시 가이드 투어를 마칠 무렵, 내가 가이드에게 건낸 질문이다. 가이드님은 고민도 하지 않고 ‘No’라고 답했다. 이제 죽어서 위대한 예술가로 평가받는 화가는 없다. 후기 인상주의를 기점으로 이렇게 분위기가 반전된 것이 아닌가 한다. 고흐, 고갱, 세잔은 피카소, 마티스, 로스코 등 후대 화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지만, 후기 인상파의 거두 3명 모두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과거 궁중 화가들이나, 정치적인 작품들을 그린 화가들이야 어쩔 수 없다손 치지만, 지금은 그런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 밀렌 드 쿤닝, 마크 로스코, 앤디 워홀의 작품 속에는 화가의 내면, 생각이 담겨있을 뿐 정치적인 해석과는 거리가 멀다.

가끔 미술사를 멀리서 조망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위대해지기 위해 유명해진다.’ 과거에는 그러지 않았다. 궁중 화가로 성공했지만, 궁중의 질서에 반하는 계몽적인 작품들을 그린 프란시스코 고야, ‘마라의 죽음’으로 프랑스혁명의 선봉에 선 자크 루이 다비드, ‘6월 혁명’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외젠 들라크루아 같은 화가들이 과거에는 있었다. 정치를 희화화하지 않고 작품 자체로 매력적으로, 강직한 그들의 철학을 화폭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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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19세기,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대립


그런데 지금은? 추상표현주의, 기하학적 추상, 미니멀리즘, 팝아트... 모두 존중한다. 나도 이런 작품들을 보면서 많은 영감을 받고 좋은 작품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긍정적인 평가와는 별개로, 미술이 과연 시대를 대변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미술은 언제나 시대를 앞서 갔다. 미술이 시대를 선도하면, 운동이 뒤따르고 철학이 그 시대를 해석한다. 이것이 인류가 지금까지 발전해 온 메커니즘이다. 그런데 지금 미술은 현시대를 온전히 반영하지 않는다. 오로지 작가들의 세계만을 반영하고 있다. 이것이 ‘개성’을 강조하는 동시대를 반영한다는 논리가 일리 있을지도 모르지만, 결국 그 개성을 담아내는데 집중하다 보니, 사회를 비추는 미술의 ‘오랜’ 기능을 상실한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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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트니에 소장된 작품들은 달랐다. 휘트니에서 열리던 멕시칸 예술인 특별전에서는 리베라의 계몽적인 회화, 시케리오의 저항적인 회화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들이 멕시코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생각해보면, 이 파급력은 엄청났을 것이다. 그런데 휘트니의 다른 전시와 모마에선 그것들을 느끼기 어려웠다. 사진의 발전, 저널리즘의 출현, 새로운 시대상... 모두 맞다. 아트 바젤 같은 곳에선 시대를 풍자하는 작품들이 종종 출품된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닐 것이다. 그저 그런 작가들이 나 같은 일반인에게 전달되지 않는 시대에 있는 것 같아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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