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미술 명예의 전당, 미술관

뉴욕 미술 여행(5)

by GOYA

- 현대, 동시대 작품/MoMA, Whitney, Solomon R Guggenheim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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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omon R. Guggenheim museum, MoMA,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뉴욕에는 굵직한 현대미술관이 3개나 있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로 유명한 MoMA, 미술관 자체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작품인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그리고 미국 동시대 미술을 주로 소장하고 있는 Whitney 미술관이다.

이번 여행 모든 일정이 소중했지만, 이 멋진 미술관들을 방문하는 것이 하이라이트였다. MoMA는 규모가 크기 때문에 하루 일정을 온전히 MoMA에 할애했고 구겐하임과 휘트니는 각각 3시간 정도 일정으로 전시를 감상했다.


20200304_114422.jpg 앤디 워홀의, Before& After

-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휘트니 미술관은 다른 두 미술관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진다. 동시대 작품을 전시하는 것도 그렇고 앞서 언급한 미술관들이 미술과 건축 분야에서 꼭 언급되는 미술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지도가 떨어진다고 휘트니 미술관의 저력을 폄하할 필요는 없다. 보스턴 미술관에서 발견한 20세기 미국 미술의 대모 조지아 오키프가 1970년 회고전을 개최한 곳이 휘트니 미술관이다. 뿐만 아니라 2년마다 개최되는 휘트니 비엔날레는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이런 배경이 있다 보니, 동시대 작품의 질도 상당한데, 잭슨 폴록의 넘버링 작품들은 발에 치이고 조지아 오키프, 프리다 칼로 등의 작품들도 꽤 많이 소장하고 있다. MoMA는 슈퍼스타가 소속된 대형 기획사라면, 휘트니는 실력파 가수들을 연습생부터 키워가며 그 규모를 확장한 안테나 뮤직 같은 느낌이다.

인상적이었던 전시는 멕시코 화가 기획 전시였다. 이 전시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프리다 칼로와 그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 시퀘리오(발음이 정확한지 모르겠다.)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 작품은 다른 층에 있었던 잭슨 폴록, 오키프처럼 20세기 작품들이다. 그런데 달랐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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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조지아 오키프 작품, (우) 멕시칸 화가 작품


현대미술이 어려운 이유는 아무래도 구상보다 추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의 일생이나 어떤 사건에 대한 배경 지식 없이, 그 작품을 이해하는 건 상당히 까다롭다. 아니,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예술을 즐기기 위해서 약간의 공부가 필요하다. 그런데 멕시칸 화가들의 작품은 직관적이었다. 무엇을 말하는지 뚜렷했다. 디에고 리베라의 Mural은 이 작품을 보고 있는 멕시칸들을 계몽하고자 했으며, 시퀘리오 작품들은 시대의 모습을 뚜렷이 기록, 보존하고 있었다. 현대 미술에 속하지만, 그 작품 속 모습은 낭만주의(들라크루아), 사실주의(쿠르베)의 19세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시대가 변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 사회는 어느 정도 정치적으로 안정을 이뤄냈고 저항조차 이제 역사책에나 기록된 과거의 것으로 치부한다. 그래서 서방의 현대/동시대 화가들은 세계대전 이후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고 있는 반면에, 멕시칸 화가들은 여전히 자신의 사회를 기름으로 고발하고 있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감에도, 다른 그림이 나온 것이다. 생각해보면,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다를 텐데 스페인에서나 프랑스에서나 비슷하게 낭만주의 화풍을 따르던 유럽의 고전회화가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한국이 아무리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해도, 한국의 문화와 일본의 문화는 확연히 다르고 정치 성숙도도 각자 다른데 말이다. 20세기 이전 유럽 사회가 각자 간 교류가 상당했고 영향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에겐 어색한 유럽 연합이라는 공동체를 만든 것도 이런 과거의 교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반대로 우리가 얼마나 서로에게 무심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미국과 멕시코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웃국가다. 그런데 화풍이 판이하게 다르다. 교류의 흔적이라곤 찾아보기 어렵다. 아무리 뉴욕과 멕시코시티가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도 이렇게 다른 모습을 보이는 건 거리로 설명할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첼시 갤러리에서 만난 윤형근의 경우도 저항을 한 획에 담았다. 윤형근의 작품을 보고 로스코가 떠오른다고 말하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내면적인 울분은 멕시칸과 더 맞닿아있다.

글로벌을 외친다. 90년생인 나는 어렸을 때 부터 '글로벌 인재'가 되어야 된다는 소리를 귀에 달고 살았다. 작은 내수시장과 수출 경쟁력으로 먹고 사는 한국에서 이렇게 가르치는 건 크게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나는 멕시코는 물론이고,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르완다 내전, 레오폴드의 콩고 학살 사건 등을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다. 글로벌 감각을 기르라면서 내게 건낸 지식은 서방이 일으킨 두 번의 세계대전, 영어, 서방의 경제 시스템이었다. 어떤 것도 서방의 것이 아닌 것이 없었다. 과연 글로벌은 무엇일까. 우리가 말하는 글로벌이 서방을 향한 글로벌인지, 지구촌 모두를 위한 글로벌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20200301_153431.jpg 바실리 칸딘스키 작품


- Solomon R Guggenheim museum


미술관이 소장품보다 그 자체로 유명한 미술관은 많지 않다. 그런 미술관으로는 빌바오에 위치한 미술관과 뉴욕에 소재한 미술관이 있다. 우연히도, 그 둘의 이름은 똑같다. 둘의 이름은 Solomon R Guggenheim Museum.

우연이라고 말했지만, 당연히 우연은 아니다. 둘 다 구겐하임 재단에서 소유/관리하고 있는 미술관이다. 빌바오의 미술관은 프랭크 게리가, 뉴욕의 미술관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내게 익숙한 인물인데, 시카고 여행을 가기 전에 그의 예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여러 책을 읽었다. 그의 대표작인 Robie House는 내게 처음으로 감동을 준 건축물이다. 세세한 디테일을 보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로비 하우스와 같은 프레리 하우스 형식을 뒤로하고 말년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마지막 작업을 시작한다. 그 작품이 바로 구겐하임 미술관이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구조가 상당히 특이하다. 동그랗게 말린 것이 꼭 달팽이 껍데기 같다. 건물 내부에는 그 곡선을 따라 나선형으로 길이 나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감상하거나,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전시를 감상하는 구조다.

20200301_135000.jpg 각 층을 지나는 사람들. 계단이나 앨리베이터가 필요없다.


벽이 평평하지 않고 곡선이다 보니, 미술관이 지어졌을 때 작가들은 구겐하임 미술관을 위한 프레임을 만들어야겠다며 비아냥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미술관들은 평면으로 벽면을 구성하고 작품 관리가 용이하도록 미술관을 설계한다. 미술관은 ‘작품’이 중심이 되는 공간이다. 그런데 구겐하임은 아니다. 나는 구겐하임에 설치된 작품들을 볼 때, 지도를 볼 필요가 없었다. 작품을 감상하는 입장에선 벽을 따라 내려오면서(혹은 올라가면서) 작품을 감상하면 된다. 다른 미술관에서 흔히 하는 미로 찾기를 구겐하임에선 할 필요 없다. 심플한 동선 덕분에, 작품을 놓칠 일도 없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다른 작품들을 설계할 때도 집주인의 신체 치수를 고려하고 옷차림까지 코칭을 했다고 하니, 미술관도 작가들의 ‘작품’이 아닌 작품을 감상하는 손님을 고려한 설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작품 중심이 아니라 ‘감상자’가 중심이 되는 미술관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미술에 혁신적인 이니셔티브를 던진 미술관이 아닐까 한다. 이런 미술관, 본 적이 없다.


20200302_124809.jpg 피카소의 작품

- Modern Art의 Master, MoMA


MoMA는 사실상 뉴욕의 아이돌 스타다. 뉴욕에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관람하지 않는 여행객, 카네기 홀에서 클래식을 감상하지 않는 여행객은 있겠지만, MoMA를 들러 ‘별이 빛나는 밤에’, ‘시간의 지속(영속)’, ‘No. 31’, '아비뇽의 여인들'을 보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카네기, 브로드웨이 모두 각자 예술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를 지닌 공간이지만, 그중에서도 독보적인 사랑을 받는 곳이 바로 MoMA다.

나도 당연히 달리의 ‘시간의 지속’을 보면서 달리가 표현한 초현실적인 세상에 나를 내던지기도 하고 ‘아비뇽의 여인들’을 보면서 피카소의 큐비즘이 구현되는 과정을 엿보곤 했다. ‘도라 마르’라는 익숙한 여인의 사진 작품과 앙리 마티스의 ‘춤’도 모두 멋진 작품들이었다. 하지만 ‘별이 빛나는 밤에’만큼은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


‘별이 빛나는 밤에’로 가기 다섯 걸음 전 정도에 뭉크의 작품이 있었다. 뭉크 작품을 특출 나게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언제나 그의 작품은 내 이목을 집중시킨다. 무엇보다 외롭고 애처롭고 스산한 그의 화풍이 포인트다. 이번에 만난 작품의 이름은 Angst(독일어/ 두려움, 불안). 목판으로 찍어낸 이 판화는 음산한 풍경 속에 오싹한 표정을 한 사람들이 줄을 지어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

최근에는 작품을 감상할 때 예술가가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을 상상해보곤 한다. 어떤 굵기로 어떻게 붓칠을 했는지 가까이서 지켜보면, 예술가의 심정을 엿볼 수 있다. 뭉크는 이 작품을 만들 때, 어떻게 했을까? 목판화니까 평평한 나무에 살을 깎아 사람을 표현하고 그림을 구성했을 것이다. 이 간단한 제작 과정이 내 눈시울을 붉혔다.

그의 작품 속 사람들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하다. 주름은 깎을 필요가 없다. 검게 칠해진 검댕이 주름은 뽀얀 살과는 달리, 그대로 있어야 한다. 고되 일과를 마치고 생긴 주름 한 자국, 팍팍한 삶에 지친 주름 한 자국, 자식의 ‘꼬르륵’ 소리에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 주름 한 자국, 이 모든 주름은 살을 깎을 필요가 없다. 원래 그들에게 있는 것처럼.

20200302_114628.jpg 뭉크의 Angst

이 작품을 멍하니 바라보고 나서야, '별이 빛나는 밤에'를 감상했다. 너무 뭉크가 주는 절절한 감정에 몰입했다 보니, 별이 빛나는 밤이 보여주는 환상적인 빛의 향연을 온전히 감상할 수 없었다. 분명 최고의 표현, 최고의 작품이었지만, 내가 그 작품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간단히 사진 한 장을 찍고 자리를 어서 옮겼다. 눈물이 눈가를 촉촉하게 적시고 있었기 때문에 또르르 떨어지기 전에 고개를 들고 다음 섹션으로 옮겨야 했다.

MoMA의 컬랙션은 세계 최고다. 현대미술에서 MoMA가 갖는 위치는 루브르, 바티칸 미술관을 합한 것보다 클 것이다.* 이런 위대한 작품들을 한 곳에서 만나는 건 미술을 사랑하는 내겐 둘도 없을 황홀한 경험이지만, 반대로 그 경험의 연속되다 보니 그 감동이 반감되는 면도 없지 않아 있다. 가령 마티스의 ‘춤’을 LA나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났다면, 나는 분명히 더 절절하게 감동했고 많은 시간을 춤에 할애했을 것이다. 하지만 MoMA에는 마티스의 ‘춤’만큼이나 걸작들이 많아 하루라는 시간적 한계가 있는 내겐 한 작품에 많은 시간을 쏟아부을 여유는 없었다. ‘별이 빛나는 밤에’도 마찬가지다.

MoMA의 문제가 아니다. MoMA는 여행객에게 친숙한 미술관이지만, 사실상 주인은 뉴요커들이다. 뉴요커들이 저렴하지 않은 Housing fee를 물고도 뉴욕에 거주하려는 이유, MoMA면 충분하지 않을까? 난 가치 있다고 본다.


* 다른 3대 미술관으론 러시아의 예르미타시, 스페인의 프라도 미술관이 거론된다. 개인적으로 프라도 미술관을 사랑하기 때문에 감히 프라도 미술관을 다른 미술관과 비교하는 행동은 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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