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뷔통 전시, 베버리 힐스
내게 루이뷔통은 흔한 이름이다. 옷장에 루이뷔통 제품 하나 없지만, 그럼에도 익숙하다. 명품의 대명사격인 그들의 네이밍 파워 때문이다.
내가 간접적으로나마 루이뷔통과 연을 맺은 건 2년 전 즈음이다. 루이뷔통 제품으로 그 연을 시작했으면 좋았겠지만, 학생인 내게 그 정도의 돈은 없었다. 내가 루이뷔통을 만난 건 ‘전시회’였다. 그 전시회가 내게 남긴 잔상은 딱 하나, ‘여행’과 ‘럭셔리’의 관계였다. 전시회는 두 가지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짜 맞췄다. 여행이 보편화된 지금과는 조금 괴리가 있는 이야기지만, 과거 Strict 한 사회에서 며칠 시간을 내서 멀리 ‘여행’을 가는 일 자체가 서민들에게 허락되고 말고의 일이 아니었다. 그때 여행은 부와 여유의 상징인 것이다. 재력과 여유를 갖춘 사람들이 찾는 ‘가방’이 캐리어였고 루이뷔통도 여행가방으로 그 역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루이뷔통과 두 번째 연을 맺었다. 이번에도 전시회였다. 큰 줄기에서는 비슷한 플롯이었다. 앞서 말한 캐리어들이 전시회의 반을 차지했고 루이뷔통의 정체성을 알리는데 많은 공간을 활용했다. 달라진 점이라면, 전시가 ‘나 대단한 브랜드다’보다는 좀 더 ‘브랜드’의 본질, 지향하는 바에 주안점을 두었다는 점이다.
왜 이들은 전시회를 열까?
아직 경제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내게 ‘루이뷔통’은 먼 이야기다. 그렇다고 내가 직장을 잡고 남부럽지 않게 경제 활동을 해도 루이뷔통의 고객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명품시장에 들어 가보지 않은 내게 그 벽이 너무 높아 보였다. 백화점 명품관을 들어가는 것조차도 눈치를 보는 나다. 그런 내가 명품을 부러워할지 언정, 고객이 될 리는 만무하다. 루이뷔통, 샤넬, 에르메스, 구찌 등이 갖는 그 브랜드 파워는 그들이 여타 다른 브랜드들과는 확연히 다른 이미지를 갖게 만들지만, 반대로 신규 고객들을 모집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요인 중 하나다. 여자들에게 명품백은 가장 가지고 싶어 하는 하나의 아이템이지만, 남자들에게 명품 정장은 구미 당기는 선택지는 아니다. 정말 품질이나 제품에는 더할 나위가 없지만 하루 종일 입어야 하는 정장의 특성상, 하나의 명품보다는 몇 개의 괜찮은 브랜드가 낫다. 그리고 남자들에게 자신의 재력을 뽐내기 위한 아이템은 명품의 그것이 아니라 자동차니까. 이것을 아는지 ‘옴므’ 컬렉션을 꾸준히 내놓는 명품 브랜드도 프라다, 디올, 아르마니 정도뿐이다.
루이뷔통은 홍보를 할 필요가 없는 인지도를 자랑한다.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루이뷔통을 안 써본 사람은 있어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들에게 관심을 갖는 이들도 드물다. 특히 남성들에겐 BMW, Benz, Porsche가 중요하지, 루이뷔통, 샤넬, 에르메스는 그다음 순서다.(내 기준에서는 IWC, Rolex, Hublot 다음이다.)
전시회는 이들에게 홍보할 수 있는 기회다. 그들의 이름을? 아니다. 그들의 역사를. 찬란한 순간을 함께 했던 역사를 잠재적 소비자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다. 다양한 예술가들과 컬래버레이션을 한 제품들을 내놓으며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를 알리고 마지막엔 ‘백화점’ 명품관과는 달리, 문턱이라곤 없는 팝업스토어를 통해서 더욱 쉽게 루이뷔통 굿즈와 제품들을 구매할 수 있다. 그 분위기는 절대 엄숙하고 고상하지 않았다. 팡팡 튀는 네온 컬러로 뒤덮인 샵은 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에 익숙한 우리에게 친숙한 모습이었다.
전시회에서 내가 볼 수 있는 역사라고는 할리우드 배우와 함께 한 역사뿐이다. 여행과 함께 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구시대적인 유물에 불과하니까. 나는 루이뷔통의 가치는 우리의 시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즈음에, 그 빛을 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우리가 쫓아왔던 가치관, 세계, 이념 등도 언젠가는 사라진다. 그리고 후대의 사람들은 우리의 시대를 역사로 만들고자 몇 가지 갈래를 가지고 하나의 옷을 짠다. 그 갈래는 가치관, 환경, 세계관 등이다. 그리고 우리는 아이콘을 세워 그 갈래를 좀 더 쉽게 이해하곤 한다. 예를 들면, 근대의 세계관을 이해하는데 ‘뉴턴의 고전역학’을 빼놓고는 어떤 것도 이야기할 수 없다. 고전역학은 단순히 물체 간 상호작용을 설명하기에, 근대의 아이콘이 된 것은 아니다. ‘인간’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음을 뜻한다. 즉, 르네상스 이전 ‘신 중심적 사고’에서 ‘인간 중심적’ 세계로 끌어들인 하나의 Tipping Point가 되는 것이다.
루이뷔통도 그 자질을 지녔다. 바로 ‘자본주의’에서 말이다. 명품이 정말 품질이 뛰어나고 장인의 손길, 철학이 들어간 것은 사실이다. 나도 명품이 갖는 가치를 인정하고 기회가 된다면 제품을 구매할 의향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 갖는 가치와는 별개로, 실용성은 ‘낙제점’에 가깝다. 옷장에 명품이 넘쳐나는 사람이 아닌 이상에야, 명품을 입고 나가는 날이면 유독 신경을 써야 하고 옷에 뭐라도 묻을까 걱정하기 일쑤다. 게다가 세탁은 또 뭐 이리 까다로운지 일반 세탁기로는 돌리지도 못한다. 일반인들에게는 많은 불편함이 있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명품의 오너가 되고 싶어 한다.
훗날 많은 역사학자들은 ‘명품’의 존재를 특이하게 여길 것이다. 과거에도 명품에 준하는 것들이 있었다. 바로크 시대의 왕실, 로코코 시대의 귀족 문화를 담은 그림을 보면 그것들이 모두 담겨 있다. 하지만 이들은 결국은 왕족, 귀족이라는 ‘계급’을 가졌으니, 일반 서민들과는 다른 사람들이다. 그런데 ‘평등’ 사회를 지향하는 현대(훗날엔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에도 명품이라는 조금 특이한 요소가 있으니 말이다. 실용적이지 않음은 물론이고 오히려 불편하며, 조금은 다른 디자인을 가진 물건, 명품.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명품을 바란다. ‘자본’에 의해 나누어진 보이지 않는 ‘계급사회’를 설명하기 가장 좋은 오브제가 아닐까.
다행스럽게도(?) 루이뷔통도 오브제를 향해 나아가는 것 같다. 그들의 전시회에서 그 방향성을 엿볼 수 있었는데, 루이뷔통 전시회라곤 했지만 루이뷔통 작품만큼이나 ‘예술’ 작품들도 눈에 띄었다. 작품들은 벽에 걸려 있기도 했고 그들의 제품 속에 녹아들어 가기도 했다. 현재 살아계신 일본의 거장 쿠사마 야요이부터 몬드리안, 루벤스, 다빈치까지 시대상도 굉장히 다양했다.
명화에서 모티브를 차용한 것들은 일상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내 과거 핸드폰 케이스도 얀 반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이었고 미술관에 가면 전시 중인 작품을 토대로 굿즈를 만들어 파니까. 그런데 지금 그것들이 전시되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루이뷔통’ 전시회다. 그들의 역사를 담고 비전을 제시하는 그런 자리에 명화가 들어간 제품들이 많다는 건, 그들의 방향성이 그것과 같음을 의미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만든 제품은 상품이다. 만들어졌고 누군가에게 팔린다. 그러면서 가치가 발현된다. 하지만 그 명화들은 다르다. 과거에는 ‘미적’ 기능을 통해 거래되었지만 그들이 위치한 곳은 이제 누군가의 방이나 창고가 아니다. 공공의 ‘박물관’이다. 상업적 가치보다 더 많은 의미를 부여받았기 때문에 공공의 것으로 취급되어 많은 이들에게 전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 추측에 확신이 생긴 때는 마지막 디지털 미디어관을 지날 때였다. 벽에는 런웨이를 중심으로 한 많은 영상들이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박스’의 형상을 한 디스플레이가 루이뷔통의 시그니처를 구현하고 있었다.
메카
이슬람교도라면 모두가 일생에 한 번은 순례를 해야 한다는 메카의 카바신전이 떠오르는 구성이었다. 루이뷔통이 지향하는 마침점,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완벽한 피날레다.
우리가 매일 식사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과 양조장 주인, 그리고 빵집 주인의 자비심(慈悲心)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한 그들의 고려 때문이다. - 애덤 스미스, 국부론
사진 출처
메카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