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학교.

평생교육의 공간, 도서관

by GOYA

국제 뉴스를 읽다 보면, 내게는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국민의 대표가 선출되는 경우가 정말 많다.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해 두 번의 선거를 거치기도 하고 대통령이 아니라 총리나 우리에게는 전근대적이라 여겨지는 왕이 나라를 지배하는 국가도 있다. 사회 공부를 게을리했던 내게는 굉장히 생소했고 언젠가는 ‘부정’적인 이미지의 체제들을 옹호하는 뉴스를 보면서 혼란이 오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의 생각보다 사회 시스템은 복잡하다. 우리에겐 투표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이 익숙하지만 세계적으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나라는 드물다. 특히 선진국이라 불리는 국가 중에서 대통령은 더더욱 드물다. 한국, 미국, 그리고 이원집정부제를 시행하는 프랑스 정도뿐. 즉, 누군가에겐 우리의 선거제도가 사우디아라비아의 계승되는 전제 군주정처럼 어색할 것이다. 왜 우리는 우리의 선거제도 혹은 사회에 큰 물음을 가져보지 못했을까?

38.jpg 세계와 지역을 대표하는 정상들이 모인 자리, G20 OSAKA SUMMIT

대한민국 사회로 진입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국’의 학교에서 교육을 받기 때문이다. 6년에서 12년까지 우리는 의무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많은 것들을 공부한다. 우리는 짧지 않은 시간을 꼭 필요한 지식을 배우기도 하며, 섹시하지만 내 인생에 더 이상 등장할 것 같지 않은 복잡한 수학공식을 이해하는 데 사용한다. 각자의 성적은 달랐지만 사회를 이해하는 비슷한 틀을 가지고 교육과정을 마친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한 '사회'를 구성한다.

그렇다면 그것이 끝일까? 공부는 절대 끝이란 없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상식들도 대학이나 상위 과정에 들어오게 되면 특수한 조건에서만 성립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는 교육과정의 문제라기보다는 어떤 지식을 습득하는데 보다 많은 배경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특징은 수학과 공학의 응용에서 주로 나타난다. 복소 해석 분야의 C-R Eq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유동을 복소함수로 변환할 수 없다. 이처럼 교육에는 순서와 단계가 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은 사회에서 직접적으로 쓸모가 있지는 않더라도, 이런 다음 단계의 학습을 위한 배경 지식을 혹은 사고를 위한 훈련과정이다.


파일_001 (3).png Cauchy-Riemann Equations을 이용한 유동해석


많은 사람들이 의무교육과정을 마치고 다음 과정으로 ‘대학 진학’을 선택한다. 우리에게는 익숙한 단계지만,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미국은 많은 사람들이 지낸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도 분명 많지만, 다양한 이유로 자신의 나라를 떠나 미국으로 입국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큰 혼란을 야기한다. 미국에서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선 정치 시스템으로 예를 들어보자. 우리에게 투표권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 투표권을 정당하게 행세해 국민의 대표를 뽑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내가 이민 온 새로운 나라는 투표권을 주지 않고 당원들에게만 국가의 대표를 선출할 권리를 준다고 생각해보자. 우리의 국적은 바뀔 지라도, 어렸을 때부터 배웠던 것들은 남아있다. 우리는 교과서에서 국민의 대표를 뽑을 권리는 국민 모두에게 있다고 배웠다. 그런데 그 가치를 부정당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사회가 진리는 아니지만, 적어도 그렇게 배워 온 사람들에게 그것을 부정하라고 강요하고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라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다.

국가가 어린아이처럼 의무교육이라는 서비스를 모든 이민자들에게 제공할 수는 없다. 불법적으로 입국하는 사람들도 정말 많고 돈도 없다. 어느 유권자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가난한 이민자에게 정을 베풀겠다는 후보자를 뽑을까? 아무도 없다. 하지만 미국 사회는 미국 사회에 정착하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그 기회를 주고 있다. 바로 도서관에서.

20190803_121109.jpg 로스앤젤레스 중앙 도서관

우리의 도서관은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먹고 살기의 문제는 이미 '학교'에서 끝마쳤다. 기하와 벡터, 미적분은 못할 지라도 간단한 산수는 누구나 배웠고 시의 정서를 파악하지는 못해도 글을 못 읽는 사람은 없다... 고 가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열리는 강의들은 기초적인 산수, 글 읽기가 아니다. 대부분 꽃꽂이, 독서, 운동 등 더 나은 삶을 위한 교양을 위한 수업들이다.

미국은 다르다. 미국은 앞서 말했듯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민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나라다. 가까운 남아메리카부터 바다 건너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유럽, 동아시아까지 선진국, 개발도상국 가릴 것 없이 모두가 기회를 찾아 미국으로 온다. 이런 이민자들을 위한 '학교'를 짓기에는 많은 돈이 든다. 그렇기에 도서관에서 그 역할을 조금 넘겨받아 여러 사업을 하고 있다.


제목 없음.png 로스앤젤레스 퍼블릭 도서관(LOS ANGELES PUBLIC LIBRARY)


도서관에서 매일 다양한 강좌가 열린다. 가장 먼저 영어를 가르친다. 내가 사는 Los Angeles는 각 나라의 지구들이 한데 모여 있다. 멕시칸, 코리안, 재패니즈, 차이니즈가 각 지구에서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영어를 배우지 않아도 각 지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사는데 큰 무리는 없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다. 미국에 있음에도, 그 이상을 나갈 수 없다. 미국에 있지만 주류 사회로 들어가지 못하고 외딴섬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다.

섬을 떠나 새로운 대륙을 향하는 배가 바로 '영어'다. 미국은 당연하게도 영어를 쓰는 나라. 영어를 쓰거나 읽지 못하면, 미국 사회로 진입할 수 없다. 국가적 입장에서도 기왕 온 이민자고 그 이민자가 의지가 있다면, 홈리스로 놔두는 것보단 조그마한 일이라도 시켜 스스로 돈을 벌고 자립하는 편이 낫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 수업이 도서관에서 열리는 주된 클래스다. *

* 영어의 경우에는 도서관뿐만 아니라 각 어학원에서도 그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ESL(English as Second Language) 클래스는 저렴한 가격에 좋은 퀄리티의 수업을 받을 수 있다.

20190803_125955.jpg 하와이 하면 생각나는 우쿨렐레!


수업으로 배우는 영어는 따분하다. 직접 써야 는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도서관은 다양한 수업을 제공한다. 악기를 가르치거나, 미국 문화를 이해하는 클래스를 진행하기도 한다. 그 수준이 높지 않아서 이민자들이 듣기 안성맞춤이다. 그렇게 관심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그룹을 형성한다. 그곳에서 오가는 언어는 당연히 '영어'. 문화는 다르지만, 배경도 다르지만 그들은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쉴 새 없이 떠든다. 친구가 생기면 그 사회에 적응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미국 문화는 새침하다. 겉으로는 싫은 척하지만, 잘만 찾아보면 챙겨준다. 어떻게든 이 미국 바닥에 붙어 그들을 이해해보려는 사람들에게 면박을 주지 않는다. 적어도 도서관의 역할을 그렇다. 이런 문화가 꾸준한 이방인의 유입에도 미국이 정상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원동력이 아닐까.




사진 출처 - http://imnews.imbc.com/news/2019/politic/article/5382733_24691.html

내 유체역학 강의노트(A+, 자랑하고 싶었다.)

로스앤젤레스 도서관 - https://www.lapl.org/branches/central-library

로스앤젤레스 도서관 - https://www.lapl.org/branches/central-library

직접 찍은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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