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의 화수분

미국 대학 풋볼 견문록

by GOYA

솔직히 말하면, 별 관심이 없었다. 나는 스포츠를 좋아한다. 축구나 야구하는 것도, 보는 것도 좋아한다. 딱 어떤 팀의 팬은 아니다. 과거에는 KBO에서는 친구를 따라 삼성 라이온즈를, EPL에서는 모든 한국인을 따라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좋아했다. 하지만 그 팬심도 그다지 깊지는 않아서 그저 관심을 기울일 뿐, 뉴스 기사를 찾아본다거나 한국 혹은 고향에 온다고 하더라도 막 찾아다니지는 않았다. 오히려 한 팀의 팬이라기보다는 축구나 야구 같은 종목에 팬심이 있다고 보는 편이 옳았다. 그래서 축구가 유명한 유럽이나, 야구가 유명한 미국에 방문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수준 높은 경기를 보고자 경기장에 방문했다. 팀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고 내가 들어본 팀에 한국 선수가 있는 정도면 충분했다.

그런 내게 미식축구는 정말 생소한 스포츠다. 축구라길래 예전에 한 번 봤더니, 내가 아는 축구와 접점이라곤 하나 없는 정말 기묘한 스포츠였다. 발을 사용하지도 않았고 축구처럼 박진감도 넘치지 않았다. 쓰는 보호구는 또 얼마나 많은지, 선수들을 번호표 없이는 분간할 수조차 없었다. 마치 숫자로 개체를 헤아리는 경주마 같달까.

미국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미식축구리그, NFL


그런 스포츠가 미국의 4대 스포츠라고 하는 NFL, MLB, NHL, NBA 중에서도 단연 최고의 인기를 자랑한다니...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풋볼의 인기는 내 상상 이상이었다. 미국 모든 스포츠팀을 통틀어서 같은 연고지 내에서 풋볼 팀보다 많은 인기를 갖는 팀은 뉴욕 양키스(2위, 뉴욕 닉스 5위), LA 다저스(10위, LA 램스 12위), LA 레이커스(8위, LA 램스 12위) 정도뿐이었다. 이 팀들은 어중이떠중이 팀이 아니라 각자가 미국 스포츠를 대표하는 팀들이다. LA 다저스, 뉴욕 양키스는 MLB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제일 야구를 잘하는 선수들이 모인 팀이고 LA 레이커스도 이름만으로 스타들을 영입할 수 있는 명실상부 NBA 최고 명문팀이다. 이렇게 각 리그를 호령하는 팀들 정도만 같은 연고 내 미식축구팀을 앞지를 수 있을 뿐, 다른 팀들은 대부분 같은 연고 내에 있는 풋볼 팀보다 인기가 떨어졌다.*


MLB를 대표하는 두 팀, LA Dodgers와 NY Yankees

광역권으로 따지면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도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보다 순위가 높다.


호기심이 많은 내가 이렇게 압도적인 인기와 지지를 받고 있는 NFL, 미식축구에 관심이 안 가질래야 안 가질 수 없었다. 재미가 없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인터넷을 통해 미식축구에 관한 정보를 찾았다. NFL부터 미식축구 규칙, 명문팀, 문화 등을 뒤져보는 중 조금 특이한 문화를 찾았다. 바로 대학 미식축구다.

NCAA라는 리그가 있다. 미식축구뿐만 아니라 농구, 야구, 다른 소규모 스포츠들도 이 NCAA라는 리그를 통해 관리되고 경기가 진행된다. NCAA 미식축구가 놀라운 이유는 인기다. 한국에서 대학 스포츠를 즐기는 대학생은 많지 않다. 예전에는 전국대회에 올라가면 재학생부터 졸업생까지 모여 응원을 하곤 했다지만 취준 등으로 경직된 캠퍼스 분위기 때문에 그 열기가 많이 사라졌다. 전국대회 정도에서 4강 혹은 생각보다 높은 성과를 거둘 때 즈음에야 캠퍼스에서 같이 가보자는 목소리가 조금씩 나올 정도지, 일반적인 리그 경기에서 악을 쓰고 응원을 하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야구 명문은 아니었지만 재학 시절인 12-14년에 전국대회 준우승을 2번 했을 정도로 유난히 실력이 좋았다. 특히 이 시기가 프로야구도 인기가 점점 올라가고 있는 터라, 전교생을 이끌고 응원을 가기도 했다.(에이스는 특별지명을 받아 프로에 입단했다.) 15년에 진학한 대학은 전국에서 알아주는 배구 명문이다. 재학 중에도 전국대회에서 몇 번을 우승했다. 그렇게 실력이 좋음에도, 주위에 대학 배구를 쫓아다니는 친구들은 적었고 내가 배구를 보러 간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스포츠가 아닌 하나의 축제!

미국 대학 스포츠는 다르다. 한국의 프로 스포츠와도 결이 다르다. 그 인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그 인기가 내 상식으로는 정말 이해할 수 없어 언젠가는 대학 미식축구 경기를 꼭 보겠다고 다짐하던 찰나에, 언어교환에서 만난 Willie라는 친구가 내게 풋볼 경기를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Willie는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재학생으로 USC의 풋볼팀인 USC Trojans는 NFL 스타 등용문이라고 불릴 정도로 전미에서 알아주는 강팀이었다. 그 제안을 당연히 승낙했다.

경기장에 들어간 순간, 그 규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대학생들이 사용하는 아기자기한 운동장이 아니었다. 좌석은 족히 8만 석은 되는 것 같았고 프로 경기처럼 많은 시큐리티가 경기장을 관리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찾아보니 USC Trojans가 사용하는 LA 메모리얼 콜로시움은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세계 최고 축구팀들이 A매치로 사용하는 구장이었다. 그런 팀들이나 사용하는 그 경기장을 빼곡히 채웠다. 이 팀의 선수들은 단지 대학에서 장학금만을 제공받는 학생들로만 이뤄져 있었다.

그 규모와 인기에 조금 익숙해지고 나니, 내 눈엔 다른 사람들이 들어왔다. 동아리로 보이는 Marching Band. 그들을 위한 무대는 아니다. 밴드를 위한 무대도 아니고 잔디밭이다. 관객들도 대부분 풋볼을 보기 위해 경기장에 방문했다. 하지만 그 수가 자그마치 8만 명이다. 그리고 턴제 스포츠인 풋볼 특성상, 많은 쉬는 시간을 갖는다. 쿼터가 끝날 때면 대략 20분 정도의 시간이 주어지는데 이 시간은 어차피 풋볼 경기장이 비는 시간이다. 선수들도 작전회의를 하거나, 회복에 집중하지 휑한 경기장을 바라보는 팬들 걱정을 하지는 않는다. 마칭 밴드는 그 시간과 공간을 활용했다. 그들의 규모는 가히 환상적이어서 한국에서는 올림픽과 같은 큰 행사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수 백명의 학생들이 자기 몸만 한 악기를 들고 대열을 흩뜨리지 않고 연주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경기에서도 볼 수 없는 규모였다.

분명 그들의 실력이 돈을 주고 보는 연주회보단 뛰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어떠한가. 나는 그 순간, 열정을 봤다. 내가 보는 모습은 단순히 겉에 드러난 모습일 뿐, 그 많은 학생들이 귀중한 방학을 쪼개가면서 연습을 했다는 사실이 참 멋졌다. 그 결과까지 좋았으니, 나에겐 충분했다.

아직 학생의 신분을 벗어나지 못한 나는 그들의 빠릿빠릿한 군무를 보면서 그들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 사실 한국에서는 있기 어려운 일이다. 어느 대학을 가더라도 동아리가 주는 낭만은 이미 캠퍼스에서 사라졌다. 삭막하고 투박한 취업, 점수, 자격증 등이 대학생활을 채우고 있다. 고학년에게 방학이란 재충전의 시간이 아니라 남들과는 새로운 경험, 스펙을 쌓는 시간이 됐다. 그런 우리 한국 대학생들에게 저런 동아리 활동은 참 부러운 일이지만 우리와는 ‘다른’ 인생을 사는 사람들인 것이다.

지금 8만 명의 관중 앞에서 ‘퍼포먼스’의 일부로 참여한다는 것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그런 감정일 것이다. 느껴보지도 않은 것을 글로 쓴다는 게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것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은 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몇십 명 앞에서 춤을 추는 것도 어려운 마당에, 8만 명의 군중 앞에서 밴드라니. 얼마나 짜릿할까. 그 경험은 비단 자격증을 따거나, 시험 성적을 높게 받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경험이다. 아무나 가질 수 없고 쉽게 얻을 수 없는 그런 경험이다.

뿐만 아니다. 그 무대는 그들이 오랫동안 흘렸을 땀의 결실이다. 그것은 결과일 뿐 성장에 있어서 더 중요한 건 과정이다. 그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동안 팀원들과 갈등도 겪고 성취를 맛보기도 하고 팀워크를 위해 약간의 희생을 감수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것들은 그들도 모르게 그들이 성장하는데 도움이 됐을 것이란 사실엔 의심할 여지가 없다.

8만 명의 관중들 앞에서 공연하는 Marching Band


그들이 열심히 동아리 활동을 하고 연습을 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것이 재밌어서는 아닐 것이다. 그 많은 인원이 중간에 이탈하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한다는 것은 어떤 '동인'없이는 불가능하다. 그 동인을 주는 이들이 바로 풋볼 선수들이다. 풋볼은 흥행을 보증하는 수표다. 언제나 그 경기장을 꽉 채울 수 있는 티켓 파워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대회 우승을 바라보는 시즌이라면 그 인기는 천정부지로 솟는다. 그러면 동아리들에게는 항상 8만 명 앞에서 자신의 퍼포먼스를 뽐낼 수 있는 무대를 보장받는다. 몇십 명도 아니다. 경기 중간에 끼어 있으니, 중간에 나갈 수도 없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밴드를 예시로 들었지만, 밴드뿐만이 아니다. 미국 캠퍼스 드라마의 단골손님인 치어리더, 체조 선수, 각종 대회에서 메달을 건 선수들이 8만 명 앞에서 자신의 능력을 뽐낼 기회를 보장받는다. 풋볼팀을 위시한 대학 스포츠가 그 인기를 유지하는 비결이다. 미국은 한국과는 다르다. 영토가 넓어 프로스포츠가 들어가지 못하는 지역이 많다. 특히 중부 지역이 심하다. 우리에게도 익숙지 않은 중서부의 오클라호마주의 프로스포츠는 시애틀에서 오클라호마로 연고지를 변경한 '오클라호마 썬더즈'뿐이다. 그 연고지 변경도 비교적 최근(2008)에 일어난 일이라, 오랫동안 메이저 스포츠와 연을 맺지 못했다. 그래서 이 지역은 대학 스포츠가 인기가 많은데, '오클라호마 대학교'는 NCAA 풋볼에서 전미가 알아주는 명문이다. 이런 지역에 거주하는 이들에겐 주립대학의 스포츠팀이 프로 스포츠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것이다. 비록 졸업생은 아니지만 같은 지역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을 묶고 경기장으로 나오게 만든다.

재학생, 졸업생, 주민들은 미식축구 경기를 보기 위해 경기장에 나오지만, 그 경기장을 채우는 건 선수들만이 아니다. 대학 구성원들이 그 경기장을 채운다. 밴드는 그 무대를 위해서 연습을 하고 다양한 대회에서 메달은 건 선수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는 자리가 된다. 게다가 과거에 우승을 했던 팀의 선수들을 모아 Celebrating의 시간도 주어지니 대학교에 대한 애교심이 생기지 않으래야 않을 수 없다.

공연 일부

참 신기한 광경이었다. 세계적인 명문인 스탠퍼드에게 엿을 날리는 모습도, 애교심을 갖고 풋볼팀을 다 같이 응원하는 모습도, 그리고 그 무대를 위해 열심히 연습했을 밴드의 모습도 모두 새로웠다. 이 모습이 비단 USC의 모습만은 아닐 터. 미국에 있는 많은 학교에 이런 문화가 있을 텐데, 이 문화 속에서 배우고 자란 사람들이 참 기묘했다. 그 문화가 질투가 났다. 시기심이 더 정확한 표현일까. 어떻게 이런 문화를 가졌을까 싶기도 하고 그것을 또 학생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문화도 신기했다. 그래도 새로운 문화를 보고 아직은 ‘사고’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한달까.



* 포브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가치를 갖는 스포츠팀 기준.(아래 링크)

** 사실 내 주위를 보고 일반화하는 것은 큰 어폐가 있다. 특정 학교는 정말 인기가 많고 많은 학생들이 경기장을 찾아 응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시야가 갖는 차이는 인정하지만 그 규모가 어떻든 미국의 대학 스포츠 문화와 비할 바는 못 된다. 여기 대학 스포츠는 대한민국 프로 스포츠 중 가장 인기가 많다는 프로야구 그 이상이다. 아니, 비교하는 것 자체가 실례가 될 정도다. NCAA 풋볼 디비전은 NFL 다음으로 인기가 많은 프로 스포츠 리그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


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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