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가 주는 질문들.(1)
강팀과 약팀이 같은 리그에서 게임을 치르는 게 스포츠다. 야구뿐만 아니라 축구, 농구, 하키 등 모든 스포츠 리그가 이런 식으로 운영된다. 유럽 축구처럼 각 리그에 강호들이 모여 하나의 다른 리그(챔피언스리그)를 만들어 운영하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그 안에서도 강팀과 약팀이 나뉘게 된다.
‘공은 둥글다.’
축구가 갖는 의외성이 승부를 쉽게 예측할 수 없게 만듦을 의미하는 관용어다. 말 그대로 축구의 세계에서 약팀이라고 여겨지는 언더독의 반란도 종종 일어나며, 언젠가는 정말 세간의 예상을 뒤엎고 우승을 차지하기도 한다. 이는 다른 구기 종목인 야구, 배구, 농구 등에 비해 점수 1점을 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승리를 위한 경기를 한다면, 1점만 득점한 다음 수비적인 전술로 돌리면 되니까.
하지만 어떤 전술을 택하더라도, 발생빈도는 예측 가능한 수준이다. 유럽 축구리그에서 무난히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28승 이상의 승리가 필요하다. 이를 승률로 따지면 73.7%이고 빅 6이라는 여섯 개의 팀이 우승 각축전을 벌이는, 우승 경쟁이 가장 치열하다고 알려진 England Premier League에 국한된 이야기다. 즉, 가장 우승을 하기 어렵다는 리그의 우승팀조차 70%를 상회하는 승률을 매년 기록한다. 우승 경쟁이 그리 심하지 않은 스페인, 독일, 프랑스 리그의 우승팀의 경우는 패배 횟수가 1년에 3~4회일 정도로 다른 결과보다 패배를 보기 어렵다. 공은 둥글지만, 그 공이 가르는 골대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스포츠가 축구다.
야구는 조금 다르다. 메이저리그는 2개의 리그와 3개의 디비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30개 팀 중에서 총 6개의 우승팀이 한 시즌에 결정된다. 각 시즌마다 리그 수준의 굴곡은 있겠지만, 한 디비전에서 우승팀이 가져야 하는 승리는 95승 남짓이다. 2019 시즌은 100승 이상을 거둔 팀이 총 4팀(휴스턴 애스트로스, LA 다저스, 뉴욕 양키스, 미네소타 트윈스)이나 되는 부익부 빈익빈이 심했던 시즌이지만, 어찌 되었든 6할 언저리의 승률만 가져가도 무난히 우승을 차지할 수 있는 스포츠가 야구다.
야구에는 법칙이 있다. 아무리 리그에서 알아주는 약팀 일지라도 시즌의 3할은 승리로 가져간다는 법칙인데, 반대로 강팀이라도 승률 7할 이상을 가져가는 건 어렵다. 올해처럼 100승 팀이 4팀이나 나온 부익부 빈익빈 시즌조차도 결국 시즌 최고 승률을 기록한 휴스턴조차 7할과는 거리가 있는 6할 6푼의 승률로 최고 승률을 기록했다. 야구에서 7할 승률을 기록하면 그 순간부터 시즌 최고의 팀이 아니라 ‘역대’ 리그에서 최고 반열에 든 팀이 되는 것이다.
※ 2001년의 시애틀 매리너스는 메이저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116승을 기록한 팀이다. 116승은 100년이 넘는 메이저리그에서 최다승 타이기록이며, 0.716이라는 역대급 승률을 기록한 시즌이다. 게다가 일본의 스즈키 이치로의 충격적인 데뷔까지.(신인왕, 골든글러브, 실버슬러거와 MVP를 동시에 수상했다.) 하지만 월드시리즈 우승은 김병현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역대급 팀조차 우승을 하지 못하는 스포츠가 야구다.
이런 야구의 특징을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이론들이 있다. 162경기라는 많은 경기를 치르면서 다른 스포츠에 비해 평균으로 회귀하려는 성질이 강해진다거나, 단순히 팀의 실력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선발투수의 컨디션, 홈구장 조건 등 다양한 변수들이 경기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들도 야구의 ‘평균’에 회귀하려는 성질을 잘 설명한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차이점은 선수 선발 방식에 있다.
야구는 기본적으로 ‘드래프트’ 선발 방식이다. 드래프트는 쉽게 말하자면, 꼴찌에게 그 해 최고 유망주를 선발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조금은 사회주의적인 면모를 갖는 선발방식이지만, 리그를 건강하게 유지하면서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사용되는 신인 선발 방식이다.
매년 미국에서는 고졸, 대졸 선수들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온다. 천조국의 기상에 걸맞는 규모로 인해 메이저리그 30개 팀이 40라운드까지 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1라운드 당 팀들은 한 명씩 선수들을 선발한다.) 그 많은 유망주들에서도 순위는 대략적으로 정해져 있다. 다양한 성공방정식이 있는 야구 특성상 모든 1라운드 선발 유망주가 메이저리그에서 데뷔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위 라운드 지명자일수록 높은 확률로 메이저리그를 데뷔하고 리그를 호령하는 스타가 된다. 가끔은 데뷔를 하기도 전에 스타가 출현하는 경우도 있는데, 브레이스 하퍼와 스트라스버그가 그 대표적인 예다. 이처럼 즉시전력감으로 분류되는 유망주들이 드래프트에 나올 경우 이런 유망주를 얻고자 꼴찌를 자처하는 팀도 있다.(워싱턴 내셔널스가 두 선수를 Pick했다. 다른 MLB팀 팬들이 워싱턴 내셔널스의 행태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할지 어렵지 않게 추론해 볼 수 있다.)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최근 들어 저스틴 벌랜더와 게릿 콜 등 사이영* 위너와 피츠버그 에이스를 영입하면서 리그 최고의 팀으로 발돋움했지만,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강팀이 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2011-2012-2013 시즌 모두 지구 최하위를 기록했고 100패 이상을 기록한 기록적인 약팀이었다. 그러면서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페이롤을 축소시키고 드래프트 상위픽을 가져갔다. 이를 탱킹이라고 표현한다. 현재는 그때 뽑힌 조지 스프링어(2017WS MVP, 실버슬러거), 코레아(2015년 신인왕), 브레그먼(2019년 MVP 유력 후보)이 팀에 녹아들면서 메이저리그 최고 강팀이 됐다.
* 사이영상은 메이저리그 최고 투수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매년 내셔널리그와 아메리칸리그에서 각각 한 명씩 선정한다. 올해(2019) 류현진 선수가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레이스에서 앞선 모습을 보였으나, 뒷심부족으로 수상은 요원한 상황이다. 휴스턴의 게릿 콜과 저스틴 벌랜더는 올해 사이영상 수상이 점쳐지는 아메리칸리그 최고의 투수들이다.
결국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갖가지 굴욕을 겪어야 했지만, 탱킹이라는 극단적인 전술로 2017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해냈다. 즉 뉴욕 양키스나 LA 다저스처럼 돈싸움이 가능한 팀이 아니어도 팀 우승을 위한 또 다른 방법이 있는 셈이다.
다른 스포츠도 ‘드래프트’라는 방식으로 유망주를 선발한다. 하지만 야구에서 주는 영향력과는 상당히 다르다. 야구는 동료와의 상호 작용이 그리 크지 않은 게임이다. 농구, 미식축구, 축구 등 우리가 즐기는 대부분의 게임에서 ‘패스’는 게임을 결정짓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패스를 뿌려주는 포지션의 선수들에게 야전사령관 혹은 지휘자, 마에스트로라는 명칭이 같이 붙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야구에서 같은 팀 선수에게 공을 건네는 경우는 투수가 포수에게 공을 던질 때와 수비할 때뿐이다. 즉, 점수를 내는 데 있어서 야구는 같은 팀 선수들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다고 보는 편이 옳다.
이 상호작용이 적은 야구의 특성상, 잘하는 선수는 어떤 팀에 갖다 놔도 곧잘 한다. 축구의 경우를 보면, 각 리그마다 특징이 있다. 이탈리아의 세리에 A는 수비 전술이 강하고 라리가는 패스 축구를 능히 구사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리그에 속한 팀들마다 특징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리그마다, 팀마다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이 축구가 가진 특징이다. 이 묘미는 불확실성을 높이는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바로 적응 문제다. 아무리 세계적인 기량을 가진 선수라도 팀 궁합이 안 맞으면 성적이 급전직하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같은 선수가 다른 팀에서 확연한 퍼포먼스의 차이를 보여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면, 리버풀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FC바르셀로나로 이적한 쿠티뉴, 아스날과 바르셀로나에서 활약한 산체스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의 부진한 활약 등을 보면 그렇다. 코치와 보드진 모두 팀과 궁합을 보고 영입을 결정한다지만, 그 결정이 항상 옳지는 않다. 반면, 야구는 공격 시에 합을 맞추지 않는다. 분명히 타자가 출루를 해도 그것이 ‘점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득점을 위해서는 뒤에 타자가 안타(혹은 만루에서의 볼넷)를 얻어야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 있어서 주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도루 시도로 상대 배터리를 흔드는 정도가 고작이다.
결국 야구가 팀 스포츠로는 이례적으로 갖는 특징(선수간 유기적 플레이의 부재)이 드래프트라는 선수 선발 방식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스포츠로 만들었다. 드래프트로 수준급의 선수들을 저렴한 가격으로 운용할 수 있게 됐고 이 영향이 결과적으로 리그의 수준을 평준화시켰다. 그렇다고 뉴욕 양키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LA 다저스가 약팀이 되지는 않는다. 강팀은 항상 강팀이다. 하지만 약팀들도 우승의 기회가 열려 있다. 대표적으로 2015년의 캔자스시티, 2016년의 클리블랜드 등 역사적으로 항상 약팀으로 분류되던 팀들도 최고의 무대 ‘월드시리즈’에 종종 얼굴을 비춘다.(2016의 시카고 컵스는 100년 가량 우승을 하지 못해 '염소의 저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시카고라는 배후도시에서 알 수 있듯이 약팀이 아니다.) 반대로 선술 한 시애틀처럼 역대급팀이 월드시리즈를 우승하지 못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막간 상식 - 메이저리그 야구팀 중 잘 알려진 팀으로는 뉴욕 양키스, LA다저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정도가 있다. 그리고 나머지 팀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인데, 저 세 팀도 충분히 강팀이지만 메이저리그에는 강팀으로 분류되는 팀들이 몇몇 있다. 가장 쉽게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도시'이름이다. 이를 미국 스포츠시장에서는 빅마켓과 스몰마켓으로 분류한다. 미국의 4대 도시인 뉴욕, LA, 시카고, 휴스턴은 배후 인구가 많아 빅마켓으로 분류한다. 반면에, 탬바, 신시내티, 밀워키 등 우리가 많이 들어보지 못한 도시는 스몰마켓으로 분류한다. 완전 정확히 들어맞지는 않지만, 들어본 도시를 연고로 한 팀들은 강팀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주의할 점은 한 도시에 두 개의 팀이 있는 경우다. 뉴욕과 LA, 시카고가 그런 경우인데, 각자 양키스와 다저스, 컵스가 인지도가 높다. 뉴욕 메츠, LA 에인절스,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빅마켓이지만 앞선 팀들이 스포츠 수요를 가져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약한 전력을 갖는다.
- 다음 편에 계속 -
사진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