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가 주는 질문들.(2)
야구에는 WAR지표라는 게 있다. Wins Above Replacement의 준말로, 쉽게 설명하면 대체 선수가 출전하는 것에 대비해서 어떤 선수가 출전하는 것이 주는 승리가 얼마나 되는지를 평가하는 요소다. 포지션마다 가중치를 주면서 각 포지션 간 평가를 가능하게 만든 세이버매트릭스 지표다.
WAR지표를 보면 타자들과 투수들이 섞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난 24년 간 가장 높은 WAR를 기록한 선수를 추려 보면 타자는 16명, 투수는 8명이다. 약물을 복용해 성적을 끌어올린 배리 본즈와 로저 클레멘스 그리고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제외하면 10:7로 그 숫자가 메이저리그에 선발 출장하는 타자(9명)와 선발 투수(6명)의 비율과 엇비슷하다. 투수와 타자 모두 경기를 뛰는 것이니 비슷한 비율로 WAR를 기록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다. 왜냐하면 선발투수는 1주일에 한 번 경기에 출전하지만 상위권에 포진된 타자는 거의 매경기 출전하기 때문이다. 보통 선발투수는 부상 없이 한 시즌을 완주할 경우 30경기 남짓, 타자는 150경기를 넘게 출장한다.
WAR지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30경기를 뛰는 투수가 5배가량을 더 출전하는 타자와 비슷한 기여를 한다. 즉, 한 경기에서 선발투수가 미치는 영향력이 5배가량인 것이다. 야구는 ‘투수놀음’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경기는 30경기뿐이다. 메이저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90승이 필요하니, 선발투수로만 지구에서 우승을 하기 위해서는 1 선발투수부터 3 선발투수까지 부상 없이 잘 시즌을 마무리하고 그들이 외계인 같은 실력을 한 시즌 내내 보여줘야만 한다. 보통 메이저리그에서 수준급 선발 투수는 각 팀의 1 선발과 2 선발투수로 한정하는데 그만큼 뛰어난 투수 한 명을 더 보유해야만 다른 타자나 불벤 투수의 힘이 부족해도 선발투수로만 경기 운용을 할 수 있다.(보통 3 선발 투수까지 좋은 투수로 채운 경우 선발 투수가 강한 팀으로 분류한다. 2019 시즌의 LA 다저스,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그 예다.)
투수 한 명이 ‘승리’에 끼치는 영향력은 상당하지만, 우승을 시킬 수는 없다. 한계가 명확하다. 결국은 모든 선수가 열심히 시즌을 만들어야 한다. 테이블세터와 클린업 트리오는 공격 시에 점수를 내야 하고 키스톤 콤비는 맡은 수비 임무를 최선을 다해 완수해야 한다. 배터리도 마찬가지다.
- 테이블세터는 1번 타자와 2번 타자를 일컫는다.
- 클린업 트리오는 3,4,5번 타자를 일컫는다.
- 키스톤 콤비는 유격수와 2루수를 말하며, 수비에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 중 하나다.
- 배터리는 포수와 투수를 일컫는다.
참 신기한 종목이다. 사실 투수만큼, 투수보다 영향력을 끼치는 포지션은 다른 스포츠에도 많다. 예컨대, 미식축구에선 쿼터백이, 축구에선 크랙이라 불리는 공격수들이 한순간에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마법을 부리는 포지션이다. 게다가 이들은 부상만 없다면, 시즌 전 경기를 출전하는 것도 가능하다. 결국 한 선수가 한 시즌의 향방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그런데 야구라는 종목은 어떤가. 야구는 ‘팀’으로 하는 스포츠지만, 팀으로서 케미를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은 오로지 점수를 지키기 위한 ‘수비’ 이닝뿐이다. 우리가 멋진 수비 플레이를 보면 감탄하지만, 통쾌한 홈런을 보면 열광한다. 결국 우리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건 공격 플레이들이다. 그 공격 플레이에서 오히려 따로 노는 야구가 오히려 ‘팀’으로서 시즌을 가져가야지만 우승을 차지할 수 있다는 사실은 내겐 조금 독특했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다른 스포츠들 대부분 혼자 득점이 가능하다. 어시스트, 리바운드, 키 패스 등 점수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플레이어를 위한 지표도 존재하지만, 결과적으로 점수를 내는데 개인 역량만으로 득점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 빈도도 빈번하다. 하지만 야구는 어떤가. 내가 안타를 치는 것은 오로지 나의 실력이다. 나의 선구안과 배트 스피드, 발사각도 등 여러 가지 내가 가진 요소들이 결합해서 안타를 생산한다. 하지만 안타는 ‘득점’이 아니다. 안타로 득점에 성공하려면 극단적으로 3개의 안타가 필요하다.(단타의 경우) 안타 중 하나가 2루타인 경우라도, 2개의 안타는 나와줘야 점수를 낼 수 있다. 자기 자신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경우는 홈런에 불과하다. 홈런이 모든 타자들이 지녀야 할 덕목도 아니고 한 경기에 많은 점수가 나오는 야구라는 게임에서 홈런이 차지하는 비율은 이벤트에 가까우므로 일반적으로 득점하는데 연속적인 안타를 만들어야 한다.
재미있는 종목이다. 팀의 유기적인 플레이로 점수를 내거나 수비를 하는 스포츠는 아니다. 하지만 각자가 따로 놀아서는 점수를 낼 수 없다. 같은 안타 3개라도 같은 이닝에 터져야 점수로 만들 수 있다. 같은 숫자의 안타와 홈런이라도 안타와 홈런의 순서가 바뀌면 1점만 내는데 그칠 수도 있다. 투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투수가 한 경기를 승리로 이끄는데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그것은 비단 몇 경기에 불과하다. 그리고 리그에서 최고의 선발투수라고 불리는 투수들 조차 모든 경기를 승리로 이끌 수는 없다. 리그 최고 수준의 선발투수가 보통 가져가는 승리는 20승이다. 결국 한 시즌의 1/3은 지거나 No Decision으로 경기를 마무리한다. 그의 한 경기도 결국은 타자들의 5경기와 같은 가치를 가질 뿐이다.
각자가 잘하면 되지만, 각자가 잘해서는 승리를 할 수 없다. 한 선수가 승리를 만들 수 있지만, 우승을 할 수는 없다. 이렇게 앞뒤가 안 맞는 사실이 참인 명제가 되는 스포츠가 바로 야구다.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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