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가 주는 질문들.(4)
야구는 ‘실수’를 용납하는 스포츠다. 앞서 말했듯이, 야구에서 한 번에 득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 말은 돌려 말하면, 1번 정도의 실수는 묻어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볼 하나를 잘못 던져 주자가 출루를 할지라도, 그 주자는 기껏해야 득점권 주자일 뿐이다. 만약 후속 타자들을 실수 없이 잘 처리한다면, 그 실수를 만회할 수 있다. 이렇게 실수가 용납되는 가장 큰 이유는 ‘턴제’라는 야구의 독특한 경기방식 때문이다.
턴제 게임은 한 번씩 공격을 주고받는 게임 형식이다. 예를 들면, 고스톱, 체스, 장기 등이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보드 게임이 이에 해당한다. 턴제 게임의 특징이라면 아무래도 '지략 싸움'이다. 바둑처럼 시간이 정해진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한 번의 공격에 써야 하는 시간이 다른 게임에 비해 많다. 야구와 축구를 비교하면 쉽다. 축구는 45분 동안 순서 없이 그 순서를 가리지 않고 공을 잡은 팀에게 계속적으로 공격 기회를 부여한다. 실력으로 상대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극단적인 점유율을 보였던 전성기의 바르셀로나를 생각하면 쉽다. 하지만 야구는 어떻게든 이닝을 끝내면 공평하게 공격 기회를 부여받는다. 아무리 약팀이라도 공격 기회를 뜻하는 아웃 카운트 3개를 갖는다.
야구에는 공격/수비뿐만 아니라 많은 턴들이 유기적으로 돌아간다. 이를 톱니바퀴에 빗대면, 작은 톱니바퀴들이 큰 톱니바퀴를 돌리는 형식으로 게임이 진행된다. 가장 작은 톱니바퀴인 3 스트라이크인 3 아웃, 9이닝으로 한 경기를 구성한다. 3 스트라이크가 1 아웃을 만들며, 3 아웃을 완성해야 1이닝이 끝난다. 그리고 그 이닝이 9번 진행되어야만 1게임이 끝난다. 3 스트라이크 중 하나를 실수하면 주자가 나가지만, 1이닝을 잘 막으면 그 주자를 '0'으로 처리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야구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 만으론 야구를 이해하기 어렵다. 뭔가 다른 스포츠와 다른 제도가 있기 때문. 바로 6 선발투수다.* 이 점이 다른 스포츠와 궤를 달리하는 야구의 묘미다.
모든 스포츠는 같은 조건에서 경기를 한다. 경조사, 부상과 같은 어쩔 수 없는 변수를 제외하고 선수가 출전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메시가 약팀과 국왕컵 경기에 출전하지 않는 이유는 체력 안배를 위해 ‘의도’적으로 배제된 경우지, 신체적으로 출전이 불가능하기 때문은 아니다. 그런데 야구는 그렇지 않다. 야구는 모든 경기를 같은 조건으로 할 수 없다. 그 차이를 만드는 건 선발투수의 존재다.
선발투수는 야구 경기에서 중요도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영향력이 대단하다. 외계인 같은 선발투수가 등판하는 날이면 타자가 3점 정도만 뽑아줘도 쉽게 승리를 가져갈 수 있다. 그런데 그 선발투수를 매일 등판시킬 수는 없다. 기술적으로는 가능할 지라도, 구속이나 무브먼트에서 확연한 하락을 보인다.(포스트시즌에 무리하게 출전하는 에이스들을 보면 구속이 3-4마일 정도 적게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체력 보충을 위해서 선발투수에게 4~5일 정도의 휴식을 팀들은 의무적으로 부여한다. 이를 선발투수 로테이션이라고 부른다.
이 선발투수 로테이션은 야구에 예외성을 부여한다. 모든 팀이 갖는 선발 로테이션 주기는 다르다. 대부분 시즌 초에는 5~6명의 선발투수를 지정해놓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부상, 휴식, 개인적인 사정 등을 이유로 로테이션이 계속적으로 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20경기 남짓 경기를 갖는 같은 지구 팀과의 경기에서도 같은 선발투수 매치업을 보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다. 결과적으로, 이 로테이션은 야구에서 항상 새로운 매치업을 성사시킨다. 같은 지구의 경쟁팀과 홈에서 갖는 경기는 한 시즌에 9경기 정도다. 그런데 선발투수가 6명이라고 가정하면, 같은 팀과 같은 선발투수로 홈에서 경기를 갖는 일은 평균 1.5번으로 기껏해야 확률적으로 2번 정도 같은 선발 매치업으로 경기를 치를 수 있다.
야구는 다양한 환경 속에 놓인다. 4월의 날씨와 10월의 날씨가 다르고 캘리포니아와 매사추세츠의 환경은 다르다. 게다가 경기장은 또 생김새와 특징이 다르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오라클 파크는 경기장 옆에 있는 바다 때문에 밤이 되면 습기를 머금은 공기 때문에 타구가 멀리 나가지 않는다. 반면에, 콜로라도 로키스의 쿠어스필드는 ‘탁구장’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타구가 멀리 나가는 경기장으로 악명 높다. 이렇게 야구는 많은 환경 속에서 게임을 한다. 그리고 그중 가장 영향을 끼치는 환경적인 요소는 바로 투수다. 타자는 전사라면, 투수는 환경에 가깝다. 전사는 항상 자신만의 전략으로 상대와 대결할 준비를 하지만, 같은 팀의 투수라도 전략은 항상 다르다. 단조로운 구종이지만 구속으로 상대를 윽박지르는 파이어볼러도 있지만, 화려한 구종과 날카로운 제구력으로 승부하는 기교파 투수들도 있다. 예를 들자면, 전자는 '박찬호'고 후자는 '류현진'이다. 투수는 항상 비슷한 타자들을 상대로 경기의 판을 까는 포지션인 것이다.
실수를 덮는 톱니바퀴는 계속 다른 톱니바퀴와 맞물리면서 야구에 의외성을 부여한다. 그 의외성의 정점은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투수’다.
* 선발투수의 숫자는 정해지지 않았다. 투수 운용을 조금 더 여유롭게 가져갈 수 있는 팀들은 6명의 선발투수로 시즌을 운영하는 반면에, 선발투수 자원이 부족한 경우에는 한시적으로 불펜 데이로 돌리고 4명의 선발투수로 시즌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필자는 숫자의 연관성을 위해 6명의 선발투수로 서술했지만, 그 숫자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숫자보다는 계속 순서대로 경기를 맡는 그 메커니즘에 주안점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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