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가 주는 질문들.(외전)
야구는 내게 친숙한 스포츠 중 하나다. 중학생 때부터 야구를 좋아하기도 했고 비록 캐치볼 정도였지만 야구를 즐겨했다. 그러다가 내가 좋아하던 팀의 부진, 우상이던 선수의 일탈, 대입 입시 등의 이유가 겹치면서 관심을 끊게 됐다. 시간이 조금 지나 미국에 오게 되면서 다시 야구에 관심을 가지기 되었는데 시속 160km를 빵빵 던지는 투수들의 현란한 실력에 감탄한 것도 있다. 한국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구속이니까. 하지만 LA 다저스의 류현진 선발 경기를 어렸을 때부터 봐오면서 막연히 메이저리그를 직접 보는 게 꿈이었다. 그래서 메이저리그를 꼭 보겠다고 다짐했고 미국에 와서 자금 문제 때문에 많은 경기를 보지는 못했지만 계속 챙겨서 경기 결과를 팔로우했다. 머리가 커서 다시 야구를 보니 미국의 야구는 달랐다. 그냥 스포츠가 아니었다. 그 안에는 미국이 있었다.
‘항상 못하는 팀’이 없는 야구는 겉으로는 ‘평등’을 지향하는 모습이다. 캔자스시티나 클리블랜드 같은 작은 팀들도 양키스처럼 밥 먹듯이 우승을 할 수는 없지만 약간의 운이 따라준다면, 챔피언이 될 수 있는 스포츠가 야구다. 야구가 균등한 실력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그중 대표적인 이유는 드래프트였다. 드래프트는 단지 ‘야구’만의 것은 아니다. 농구도, 미식축구도 드래프트로 선수를 선발한다. 하지만 그 드래프트가 언더독에게 주는 기회는 야구가 농구와 미식축구보다 많았다. 야구의 위너팀과 루저팀의 승률은 단지 3할 차이다. 그 3할 안에 5팀이 있으니, 몇몇 즉시 전력감을 드래프트로 선발하면 디비전시리즈 우승, 그리고 월드 시리즈 우승까지 바라볼 수 있다. 게다가 수비 플레이를 제외하곤 선수 간 상호작용도 적으니, 필요한 포지션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유망주를 뽑으면 그 자체가 플러스알파다.
문제는 이 아름다운 경쟁이 ‘프로’라는 틀에서 진행된다는 점에 있다. 결국은 그들의 치열한 경쟁이 메이저리그를 보고 싶게 만든다. 결국 상품으로써 가치를 갖는 것이다. 모든 팀에게 다른 확률이지만, 낮지 않은 확률을 부여한다. 뉴욕 양키스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같은 대표적인 강팀에겐 그 기회가 많겠지만, 그렇다고 신시내티나 템파베이가 우승할 가능성이 0은 아닌 스포츠가 야구다. 결국 그 혹시 모를 기대가 미국 전역 사람들로 하여금 야구를 소비하도록 유도한다. 미국의 ‘자본주의’ 논리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승리를 위해 필요한’ 투수는 미국의 ‘엘리트’를 이야기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미국인들 말이다. 보스턴에서 공부하고 실리콘밸리에서 창업을 하며, 맨해튼에서 ‘금융업’에 종사하는 그들 말이다. 그들은 한 텀을 성공시켰다. 그들의 인생이 성공일 수도 있고 그들이 발견한, 공헌한 무언가 혹은 그들의 통장잔고가 그들을 ‘성공’했음을 보증하는 수표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과연 그것이 그 사람이 가진 능력을 온전히 반영하는 것일까? 언젠가 재미있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박찬호의 실력은 어디서나 같지만, KBO에서는 연봉 1억을, MLB에서는 100억을 우습게 받는다고. 결국 연봉은 실력을 말하지 않는다. 그들이 뛰고 있는 시장의 차이다. 박찬호가 가진 능력은 동일하지만, KBO의 시장은 MLB보다 작으니 그에게 줄 수 있는 보상이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 그 시장의 차이를 누가 만들었나? 소수의 엘리트들이 만들었다면, 그들에게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나무랄 수 없겠지만 그들도 결국은 핸드폰과 인터넷 계정을 각각 한 개씩 소유하지 않나. 결국 그들의 영향력은 미국인이 만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엘리트들보다 그 수가 많은 중산층이 만들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우연히 태어났는데 마침 다른 나라보다 자신이 내놓은 상품(금융상품, IT제품, Service) 등을 소비할 여력이 되는 소비자가 많이 있었을 뿐. 게다가 미국의 모든 것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통용되니 엘리트들의 상품들은 잠재적인 소비자가 미국이 아닌 전 세계가 되는 참 축복받은 기회를 부여받았다.
야구에서도 마찬가지다. 투수의 영향력은 9명의 타자가 있기에 나온다. 분명 한 경기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포지션은 투수다. 하지만 9명의 타자가 없다면 투수의 공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누가 치며, 누가 수비를 하나. 그들과 함께 경기를 이겨야만 승리가 아닌 우승을 할 수 있다.
나는 투수만 바라보며 경기를 본 것이 아닌가?
‘다양한 성공방정식‘은 말미에는 내 생각을 조금 담았다. 바로 ’ 세계‘적인 미국이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이민을 오는 나라다. 동남아, 남미의 개발도상국부터 서유럽, 동아시아의 선진국까지 그 스펙트럼도 굉장히 다양하다. 결국 그 모두가 미국이란 사회에 녹아들어 자신의 역할을 한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본 미국의 모습도 비슷했다. 오히려 내가 가진 색안경을 벗겨야 할 정도였다. 유색인종은 좋은 잡을 가지지 못할 것이란 내 편견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화이트 컬러에서 일하고 있었고 반대로 백인 홈리스도 정말 적지 않았다.
내 편견은 한국이라는 폐쇄적인 환경 속에서 미국이 제작한 ‘미디어’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미국인들이 제작한 영화에서 항상 동양인은 빨래방을, 흑인은 래퍼 아니면 길거리를 전전하는 홈리스, 백인은 언제나 영웅 혹은 매력적인 악당이었다. 지금은 줄었다 하더라도 아직 미디어 기업들은 이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나도 재미있게 봤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를 보면, 티베트에 산다는 '에이션트 원'이 백인이다. 티베트에 백인이 살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그렇다면 굳이 '티베트'라는 설정을 부여할 필요도 없었다. 결국의 돈의 원리로 굴러가는 게 시장의 논리라고는 하지만, 결국 그것들을 소비한 사람들은 쉽게 바꾸지 못하는 편견이 생겼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히스패닉, 동양인, 흑인 가릴 것 없이 영웅이 되는 공간은 야구장뿐이었다. 야구만이 다양한 미국인들을 담고 있었다. 신체조건에서 불리하다고 알려진 동양인들 중에도 추신수, 류현진, 다나카 등 각자의 팀에서 인정을 받고 올스타에 선정될 정도로 기량이 출중하다. 다른 인종도 마찬가지다. 모든 메이저리그 야구팀이 사용할 수 없는 번호 ‘42’ 번의 주인공인 재키 로빈슨을 비롯하여 야구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다양한 인종에게 관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의도적이지는 않았을지라도 다른 북미 스포츠는 불리한 신체조건, 부모의 배경 등이 만든 허들이 존재했다.
야구만이 가능한 이유는 ‘다양한 성공 방정식’이 있기 때문이다. 신체가 조금 왜소해도, 달리기가 빠르지 않아도, 어깨가 좋지 않아도 나름의 장점으로 성공할 수 있는 무대가 바로 메이저리그다. 결국 그 방정식들이 미국의 다양성을 잘 버무렸다.
모두가 성공할 수 있는 사회, 메이저리그는 그 가치를 담았다.
‘턴제’는 다양한 장담점이 있다. 먼저 지략을 더한다. 모든 턴마다 감독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패를 낸다. 예를 들면, 좌완에 약한 팀과 중요한 경기를 하는 경우에는 선발 로테이션을 조금 조정해서라도 감독은 좌완투수를 내보낼 것이다. 반대로, 좌완 선발투수만 일색인 팀과 상대를 한다면 당연히 좌완에 강한 타자들로 타순을 정할 것이다. 분명 이런 것들이 야구에 재미를 더하는 요인이지만, 스포츠에게 항상 득이 되는 건 아니다. 정해진 공격과 수비 횟수 때문에 그 박진감이 조금 저하되는 것도 사실이다. 관중들이 보기엔 다소 지루할 수 있다. 수비를 아무리 열심히 하더라도 그들이 가져갈 수 있는 건 아웃카운트 3개뿐, 득점을 할 수는 없다.
‘턴제’는 이처럼 야구에서 정말 다양한 역할을 한다. 그중 ‘실수’를 용인해주는 특징은 미국 사회와 똑 닮았다. 미국의 45대 대통령 도날드 트럼프는 자산이 2조 원에 육박하는 거부다. 많은 사람들이 트럼프가 부모의 후광을 업고 자산을 축적했다고 하지만, 그는 이미 4번의 파산 전적이 있다. 모두 그가 해왔던 부동산 산업이었다. 그럼에도 당당히 45대 대통령으로, 자산가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다. 만약 트럼프가 한국에서 사업을 4번 말아먹었다면 절대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대통령이 되기는커녕, 파산 전적 때문에 다시 일어서기 어려웠을 것이다. 미국과 이스라엘, 싱가포르 등 조그마한 나라를 제외하곤 대부분 이런 실책을 한 인물에게 ‘국가 원수’와 같은 중요한 직책을 맡기지 않는다.
나는 야구 전문가도 아니고 매일 야구와 함께 사는 헤비 팬이라기보다는 라이트 하게 응원하는 팀, 선수들의 결과만 간략히 확인하는 정도의 팬이다. 그래서 많은 야구 정보를 취합해서 어떤 결론을 내는 게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다. 찾다 보니, 내가 알고 있던 정보가 틀린 경우도 부지기수였고 글을 다시 갈아엎었던 경우도 있었다. 더 적절한 예시를 찾아내지 못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 글을 써보고자 한 이유는 메이저리그의 정보를 전달하기보다는 메이저리그를 통해 미국을 보는 시야를 전달하고 싶었다. 팀들의 이해관계, 선발투수가 갖는 역할, 주기를 가지고 돌아가는 야구의 룰을 미국 사회에 대입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싶었는데 매끄럽게 서술하지 못해 참 아쉽다. 그래서 이렇게 외전 형식으로 내가 무엇을 전달하고 싶었는지 설명하는 글을 덧붙였다. 아직 다뤄보지 않은 소재로 긴 텀의 글을 쓰는 건 아직 내 능력이 커버할 수 없는 범위라는 것을 분명히 느낀 첫 시리즈 편이었다. 다음 편도 시리즈인데, 그때는 내가 관심 있는 분야만 담았으니 더 재미있게 읽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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