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기묘한' 프란시스코

샌프란시스코 여행기

by GOYA


IMG_9879.jpg 안개에 그 모습을 감춘 금문교


미국에 오기 전, 꼭 하고 오겠다는 3가지 경험이 있었다. 네브레스카주 오마하에서 매년 5월에 열리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주총회, 1월 초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 박람회 CES, 그리고 세계 기술의 요람 실리콘 밸리 방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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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2020을 갈 용기를 제게 주세요!


내 마음대로 모든 일이 진행되지는 않았다. 막연히 1년을 머무를 것이라 생각했던 미국 생활은 생각보다 기간이 짧았고 인턴은 필라델피아로 배정받으면서 라스베이거스에서 1월을 보내기는 어려워졌다. 내가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실리콘 밸리’였다.

실리콘 밸리에 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산호세로 향하는 버스 티켓을 사면 그만이다. 그러면 인텔, 애플, 페이스북 같은 테크 기업들이 줄지어 서 있다. 많은 실리콘밸리의 회사들이 사내 견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방문객들에게 혁신이 태어나는 공간을 보여준다. 자기들의 서비스에 기반한 체험도 해볼 수 있고 엔지니어들이 바삐 움직이는 모습 그 자체로 큰 볼거리다. 문제는 입장이다. 지인의 허가를 받아야만, 이런 모든 투어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이는 실리콘밸리에 지인이 ‘사실상’ 없는 한국인 대부분과 나에게는 큰 장벽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별거 없는 인연도 다시 잡아 메시지를 보냈지만 모두 아쉽게도 성사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실리콘 밸리의 겉만 보고 오는 것은 내게 하등의 도움도 될 것 같지 않았다. 일단 실리콘밸리를 제외하더라도, 동부로 넘어가기 전에 한 번은 샌프란시스코에 갈 계획이었다. 실리콘 밸리와 여타 테크 기업들이 내게는 샌프란을 가고 싶은 가장 큰 이유였음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제외하더라도 금문교, SFMOMA 등 매력적인 도시임에는 틀림없기 때문이다. 무작정 버스 티켓을 샀다. 그 사이에 기회를 잡으면 좋은 일이겠지만,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IMG_9990.jpg 현대미술 중 가장 내 마음에 드는 로이 리히텐슈타인


샌프란시스코에 처음 당도했을 때, 내가 느낀 점은 ‘기묘함’이었다. 한쪽은 쉽게 올라갈 수 없을 것 같은 언덕이 솟아있고 반대편에는 끝이 보이는 바다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또한 언덕을 넘어온 안개가 금문교를 계속 가렸다. 시시각각 변하는 안개의 모습이 기묘했다.

내가 지금 거주하고 있는 도시가 로스앤젤레스라 크게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샌프란시스코는 동양인이 정말 많은 도시다. 뿐만 아니라 흑인과 백인도 누가 많다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수가 비슷했다. 오디오 가이드에 의하면 샌프란시스코는 중국계가 금문교를 건설하는 등 서부 개척을 시작할 때 노동자로 많이 유입이 되었다고 한다. 태평양을 끼고 있어 지리적으로 동아시아와 멀지 않은 점도 그들의 정착에 큰 영향을 끼쳤다. 흑인들이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게 된 이유는 항구이기 때문이다. 고된 일이 많은 항구의 특성상 흑인 노예들의 왕래가 잦았는데 노예 해방이 되면서 샌프란시스코에 정착을 했다고 한다.

샌프란시스코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LGBTQ’다. 샌프란시스코는 미국에서도 가장 개방적인 사회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성소수자를 통칭하는 LGBTQ들에게는 콜로라도의 덴버와 함께 마음의 고향 정도의 위치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여행 중에 다녀온 ‘카스트로 거리’는 무지갯빛 Pride Flag와 다양한 성소수자들을 상징하는 것들을 볼 수 있었다. 설명에 따르면, 동성애 군인들이 이 곳에서 전역 명령을 받으면서 정착하게 되면서 지금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나저러나 많은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던 샌프란시스코는 많은 문화를 수용하려는 관용적인 모습을 보여준 사회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동양인 이민자, 흑인 노예, 아직도 적지 않은 사회에서 괄시받는 LGBT까지 모두 포용하는 굉장히 멋진 도시였다.

이것이?
IMG_9964.jpg 카스트로도 나름 '혁명'의 아이콘인가?


누가 컴퓨터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겠다는 이야기를 하면 무슨 생각이 들까? 아무래도 이 질문은 식상한 것 같으니, 조금 새로운 버전으로 이야기를 해보자. 내가 음식점을 가는 게 아니라 음식점이 내게로 온다면? 어느 것도 사지 않아도 생활에 지장이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샌프란시스코를 이야기할 때, 테크 기업들을 뺼래야 뺄 수 없다. 샌프란시스코, 산호세, 산타클라라는 누가 뭐래도 21세기를 주름잡고 있는 기업들의 요람이다. Apple, Google, Facebook, Twitter, Uber 등 이제 우리 삶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기업들이 모두 여기서 자랐다. 다른 곳도 아니고 바로 여기서 그 많은 기업들이 우후죽순 상장을 하고 세계로 뻗어 나갔다.

같은 창업자가 있더라도, 샌프란이 아니었다면 쉽게 이런 비즈니스의 성장을 이뤄내지 못했을 것이다. 앞선 질문에 ‘가능하다’고 관대한 태도를 취할 사회는 많지 않다. 대부분은 이런 공상을 폐기 해버 리거나, 공부를 하라며 다독였을 것이다. 저런 공상을 쫓아 보이지도 않는 미래를 꿈꾸는 것보다 의사, 변호사, 금융인이 되면 창창한 미래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같은 노력을 해야 한다면, 포텐셜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어느 정도 계산이 가능한 전문직을 바라는 것은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니 말이다.

샌프란시스코는 다르다. 가히 작은 세계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문화, 나라, 지역,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다. 태생적으로 이런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자라는 사람이 갖는 관용은 우리와 같은 비슷한 사회에서 태어난 범인과는 범접할 수 없을 것이다. 나름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려고 노력하는 나조차도 아직은 다른 인종의 사람들을 동양인들과 똑같이 친구로 대하기 어려운 감이 없지 않다. 내가 느끼는 나의 한계는 지금까지 그런 사람과 교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나오는 경험 부족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샌프란은 아니지 않나.


- 다음 편에 계속 -


- 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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