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승수효과

'기묘한' 또 다른 프란시스코

by GOYA

인종이나 배경, 문화의 다양성이 ‘혁신’을 야기한다는 말은 겉만 번지르르할 뿐이다. 샌프란을 설명하는 데는 적절할지도 모르지만, 아닌 경우도 정말 많다. 중국이나 이스라엘처럼 다른 문화에 배타적이기까지 한 나라에서도 걸출한 테크 기업들이 유니콘이 된다. 이스라엘은 작은 시장을 극복하고자 전략적으로 ‘중소’ 규모에서 애플이나 구글에 자신들의 지분과 기술을 넘겨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지만 17조 원에 인텔에 인수된 모빌아이(현대자동차의 시가총액은 27조 원이다.) 등 많은 기술들이 이스라엘에서 나왔다. 중국은 그 땅이 넓어 하나의 국가보다는 하나의 ‘문화’인 중화로 이해할 여지가 있어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모일 수 있다 치지만, 이스라엘은 세계적으로 봐도 작은 규모의 국가고 단일 민족을 정체성으로 갖는 사회다.

묘한 매력의 샌프란시스코

분명히 현재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혁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이는 결과론적인 이야기다. 혁신 일선에 있는 기업의 일원이 ‘혁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결국 혁신이 그들을 불러왔으니까, 만약 샌프란시스코에 양질의 기업이 없었다면 그들은 저절로 샌프란시스코에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스탠퍼드가 그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스탠퍼드는 전 세계에서 알아주는 명문대학이다. 미국 대학은 보통 강점을 살리면서 상대적으로 명성이 떨어지는 분야가 있기 마련인데, 스탠퍼드는 공학, 법학, 의학, 문학, 경영 등 모든 분야에서 전미 최고를 다툰다. 명문의 대명사인 하버드 대학교가 공학 분야에선 상대적으로 그 명성에 못 미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 대조적으로 정말 모든 면에서 최고 대학교라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공학 분야에서 역시 알아주는 UC버클리까지 모두 샌프란시스코를 두고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 아닌 게 아니라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과 하버드가 있는 보스턴도 미국에서 샌프란시스코 다음 가는 창업의 요람이다. 새로운 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학생들이 소비자 혹은 피고용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 하나만으로도 그 도시는 가치를 갖는다.

학문의 상아탑..?

이들 중 몇몇이 실리콘밸리에 자리를 잡고 혁신을 이뤄냈다. 이들이 댄 마중물이 혁신을 꿈꾸는 인재들에게 ‘샌프란시스코’라는 이정표를 세웠다. 이제 샌프란시스코는 혁신을 꿈꾸는 인재들이 넘쳐나는 도시가 됐다. Uber, Twitter, Facebook, yelp, Apple, Google 등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잡는 곳이 바로 샌프란시스코와 그 주변(산호세, 산타클라라, 팔로알토 등)이다. 인재들이 모여들면서 샌프란시스코는 다른 역할을 부여받았다. 바로 '테스트 배드'다.

Silicon Valley에 모여있는 회사만 해도...

‘혁신’은 쉽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엄청난 발명이라도 그것에 호응해주지 않는 소비자가 없다면 그 기술은 사장된다. 혁신 기업은 한 개인의 생각에서 발원하는 것이 아니다. 창업자와 그 기업이 공유하는 철학을 이해할 수 있는 소비자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언제 사용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소비자가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없었던 방법으로 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 도구를 능히 다룰 수 있는 소비자가 있어야 한다.

그들이 샌프란시스코에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실리콘밸리의 인재들은 혁신에 일선에서 일을 함과 동시에, 소비자가 된다. 혁신을 아는 스마트한 소비자가 샌프란시스코에 몰려 있다. 이런 인재들을 샌프란시스코는 적극 이용해 본격적으로 시장에 진입하기 전에 혁신적인 제품들을 실리콘밸리의 인재들에게 소개하는 테스트 배드가 되었다. Amazongo나 CafeX와 같은 점포 말이다.

간단히 이들 서비스를 소개하자면, Amazongo는 국내서도 많이 소개되었는데 무인점포다. 핸드폰으로 바코드만 스캔하면, 내가 무엇을 선택했는지 등을 분석해서 결제의 과정 없이 물건의 구매가 가능하다. 복잡한 기술은 차치하더라도, 지금까지 없었던 소비과정에 막연히 두려움을 느끼는 소비자가 많다. 젊고 테크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나조차도 아마존 고의 특이한 결제 과정에 어려움을 겪었다. 내가 집고 있는 물건이 혹여나 결제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CafeX는 로봇이 바리스타처럼 소비자가 바라는 커피를 타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소비자가 요구한 대로 캐러멜 시럽을 넣고 샷을 추가한다. 라테를 마시고 싶다면 커피에 넣을 우유의 종류도 선택할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성공적으로 서비스를 안착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내게 CafeX의 서비스는 과다했다. 서비스를 받으면서 굳이 필요한 과정인가 싶을 정도로 로봇 팔은 기술력을 과시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로봇 팔이 현란하게 커피를 따르고 맛을 조절하지만, 결국 Vending Machine에서 보이지 않는 과정을 요란하게 보여줄 뿐이었다. 눈요깃거리로는 충분했지만, 로봇이 만들기 때문에 갖는 더 이상의 매력은 없었다.

amazongo 와 CafeX

혁신이 혁신을 번다.

경제학에 ‘승수효과’라는 개념이 있다. 변화가 또 다른 변화를 일으켜 그 변화의 크기가 최초의 변화량의 몇 배에 이르는 효과를 일컫는다. 예를 들면, 정부가 기업에게 10억 원을 보조금으로 지급하면 기업은 이 돈을 가지고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부품을 구입하고 인력을 고용한다. 그렇게 정부가 준 돈이 부품사와 노동자에게 흘러 들어간다. 경제력이 생긴 노동자는 일을 끝내고 삼겹살을 사 먹는 등 경제 활동을 하고 부품사는 원자재 업체에게 원자재 주문량을 늘린다. 결과적으로 그 한 산업 생태계 전반에 변화가 발생해 보조금 ‘10억’보다 몇 배 높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논리다. 샌프란시스코는 이 개념이 딱 들어맞는 도시였다. 스탠퍼드, UC 버클리 학생들이 근처인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 밸리에 터를 잡았다. 이 곳에는 다른 문화에 개방적인 시민들과 새로운 문물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젊은 학생들이 있었다. 이 소비자 생태계를 바탕으로 혁신가들은 새로운 것들을 선보였고 우연히 연달아 성공하자, ‘혁신’을 원하는 사람들, 그들을 후원할 엔젤 투자자, Venture Capital, Accelerator들이 모여 하나의 ‘창업 생태계’를 구축했다.

짧은 여정이었지만, 샌프란시스코는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같은 미국 West Coast의 도시지만, 날씨부터 분위기까지 Los Angeles와 많이 달랐다. 차가운 공기 탓일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이 조금 더 활기가 넘치고 도시 전체가 흥이 넘쳤다. LA의 홈리스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길거리에서 잠이나 자는 반면, SF의 홈리스들은 노래도 틀면서 흥얼거렸다. 샌프란시스코를 마지막으로 서부 여정을 마무리한다. LA에서 지낼 2주가량이 남았지만 무언가를 하기 위한 시간이라기 보단 동부의 도시, Philadelphia에서 지낼 남은 6개월을 준비할 시간 이기

까. 좋은 기억을 가지고 가는 샌프란시스코인 만큼 나중에도 또 방문하더라도 이 매력을 꼭 다시 음미하고 싶다.

샌프란시스코의 성공신화는 ‘혁신’이 끝나기 전까지 끝나지 않는다.


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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