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강연을 들었다. 그 강연의 주제는 ‘모빌리티’였다. 자동차산업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이제 운전자의 운전을 보조해주는 레벨 2 수준의 자율주행 자동차는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고 아직 한국에서는 볼 수 없지만 ‘공유’ 개념이 도입된 우버나 리프트 같은 기업들이 올해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됐다. 강연의 주제는 '이런 변화들이 불러올 미래'였다. 자율주행이나 공유 경제 같은 것들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고 내 삶에 영향을 끼칠지를 듣고 나니 정말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기계공학 전공이면서 나름 한국 산업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자부했던 나는 사실 아무것도 몰랐었다. 정말 무지와 자만의 소산이자, 우물 안 개구리였다.
앞선 샌프란시스코 여행기 '또 다른 기묘한 프란시스코'에서 나는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음식점이 내게 온다면?', '어느 것을 사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온다면?'이 그 두 가지 물음이다. 이 물음의 답은 자율주행과 공유 경제다. 나는 이들이 불러일으킬 나비효과를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 Grab이 동남아 시장에서 Pay기능을 탑재해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거나, 알리바바가 상하이 기반 신선 업체 허마셴셩(盒马鲜生)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도 모두 유통, 교통, 금융, 물류 등 인간의 생활에 걸친 전반적인 시스템을 아우르겠다는 포부임을 나는 그때 깨달았다.
그 강연을 듣고 꿈이 생겼다. 전부터 막연히 ‘창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재료가 없었는데 그 재료가 생긴 것이다. 그랬던 내게 그 강연은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동경을 줬다.
모빌리티는 많은 변화를 겪고 있었다. 크게 4가지의 변화가 지금 일어나고 있다. 바로 Connectivity, Automotive, Sharing, Eco-friendly다. 알기 쉽게 기업으로 대입하면
Connectivity(통신) - Sprint*
Automotive(자율주행) - Google,
Sharing(차량 공유) - Uber
Eco-Friendly(환경 친화) - Tesla 가 있다.
이 멋진 기업들의 꿈을 보라!
* 미국 내 4위 통신사업자를 대표적인 기업으로 선정한 이유는 두 가지다. Sprint는 우버, 알리바바 등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비전 펀드의 소프트뱅크가 소유하고 있는 미국 통신사업자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는 누가 뭐래도 모빌리티 분야에서 가장 높은 이해도와 청사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5G를 상용화시킨 통신사 기도 하다. Verizon이 시카고 지역에서 미국 최초로 5G를 상용화했지만, 그 지역이 너무 협소하다. 참고로, 5G는 모빌리티 혁신을 완성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Infrastructure다.
미국에 오면서 이 기업들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기업이라도 좋았지만, Sharing 뿐만 아니라 Automotive에서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줄 Uber는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바라는 꿈을 가장 먼저 실현시킬 것 같은 기업이었다. Uber는 내게 금융업의 J.P. Morgan, 천문학의 NASA, 영화계의 Disney 같은 존재였다. 게다가 어딘가 말괄량이, 돌아온 탕아 같은 Uber의 이미지도 내게 다른 여타의 기업 GM이나 Google보다 Uber가 매력적으로 다가 온 하나의 요소였다.
문제가 있었다. 실리콘밸리 어느 회사든 기업에 들어가 투어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Uber, Facebook, Google 등 모두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인’이 있어야 그 투어에 참여할 수 있다. 지인이 초대 형식으로 사람들을 견학시키는 것이다. 한국인인 내게 실리콘 밸리의 기업에 지인이라곤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고등학생 때 원어민 선생님이었던 Andrea가 입사한 Facebook, 친한 형의 지인이 Google에 다니고 있다는 것 정도였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곤 저 두 사람에게 연락을 취하는 것과 모르는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뿐이었다. 전자는 실패했다. 원어민 선생님은 전에 연락을 한 적이 없어 페이스북 메시지를 조심스레 보냈건만, 모든 이가 그렇듯이 페이스북 직원조차 자기 회사는 싫은가 보다. 연락이 오지 않았다. 형의 지인에게 부탁하는 것도 정말 복잡한 일이었다. 어떻게 부탁하면 해줄 수야 있겠지만, 그 과정이 내겐 조금은 어려운 일이었다. 남은 하나는 모르는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뿐이었다.
실리콘밸리 사람들이 많이 가입했을 것 같은 커뮤니티에 들어가 다짜고짜 글을 올렸다. 그 글은 모빌리티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니 연락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역시나 연락이 오지는 않았다. 오랫동안 오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샌프란시스코 여행 계획을 짰다. 그렇게 일주일쯤 지났나. 페이스북 메시지에 메시지가 두 통 와있었다. 모두 ‘Uber’에 근무하는 현직자였다. 그렇게 우버 탐방이 시작됐다.
값진 경험을 위한 비용, Receipt
Uber HQ에 들어가서 본모습은 내가 상상한 그 모습 자체였다. 우버에 근무하는 엔지니어들이 장소나 공간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회의를 하고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을 소개하는 영상이 내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음료를 마실 수 있는 공간에는 맥주도 있었고(6시부터 이용 가능했다.) 카페테리아에는 먹을 것이 가득했다. 뿐만 아니라 낮잠을 잘 수 있는 공간, 강의를 받는 공간 등 작지 않은 공간에 이것저것 놀이공원처럼 많은 어트랙션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간단히 우버 탐방을 끝내고 카페테리아에 앉아 우버 현직자 분과 이야기를 나눴다. 가장 기대된 순간이었다. 모빌리티의 탕아 ‘우버’에 근무하는 현직자는 무슨 포부를 가지고 우버에 입사했으며, 어떤 철학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했다. 나는 어떻게 우버에 입사했고 어떤 업무를 맡고 계신지부터 연봉이나 스톡옵션 같은 개인적인 질문들을 여럿 나눴다. 결과적으로, 환상이 깨진 순간이었다.
회사 내부는 촬영 금지다.
개인적으로 우버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돈보다는 ‘꿈’을 좇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혁신에 앞장서서 세계를 바꿔보겠다는 포부를 가진 사람들만 우버에 입사하는 줄 알았다.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아무 꿈도 없이 NASA에서 우주를 연구하는 연구원을 상상하기 힘든 것과 같은 맥락이다. 돈을 좇아 Chanel에서 일하는 디자이너, Disney에서 어떻게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영화를 제작하는 감독을 상상할 수 있을까? 내게 Uber는 그런 존재였다. 다 내 착각이었다. 이는 우버 현직자의 잘못이 아니라, 온전히 나의 잘못이다. 현직자의 말을 빌리면, 우버에서 평균 근무하는 기간은 2년 남짓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연봉 외에 받는 스톡옵션 때문이다. 스톡옵션은 쉽게 말하면, 회사 구성원들에게 Ownership을 가지고 회사에 헌신하라는 의미로 주식을 주는 것을 말한다. 우버에서 스톡옵션으로 주식을 받아가는 기간이 총 4년이라고 한다. 4년이 지나면 스톡옵션을 받지 못하면서, 실질적 임금이 확연히 줄게 되는 것이다. 그때쯤엔 이미 경력도 쌓았겠다 직장은 다니는 사람 입장에선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 것이 이득이다.
우버도 결국은 직장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실망한 나 자신이 잘못된 것이다. ‘열정’만 가지고 일할 것이라 생각한 내 생각이 잘못됐다. 돈이 있어야 꿈을 꾸고 미래를 보는데, 인과관계를 오해하고 있었다. 같은 시간을 일하면서, 비슷한 일을 하면서 많은 돈을 받는 곳으로 직장을 옮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창업자와 그 아래 몇몇은 큰 꿈을 갖고 회사를 이끌어갈지도 모르지만, 돈은 현실적인 문제다. 2년 정도를 머무르고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 것, 돈을 따라 직장을 정하는 것은 미국에서 정말 흔한 일이었다.
이게 실망으로 점철될 만한 일인지는 모르겠다. 아직은 내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에 분한 마음이 앞서지만, 어떻게 보면 그 실망조차 회사의 종사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며 회사를 근무하는지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내가 생각한 대로 세상이 굴러갈 것을 예상했다면, 나는 미국에 오지도 않았다. 오히려 내가 가진 생각들을 깨려고 온 것이 아닌가! 미국의 사내 분위기를 이해하고 먼 미래를 기약할 소중한 경험을 얻었다. 아마도 이 고리타분한 문제는 머릿속에서 쉽게 지워질 것 같지는 않다. 아직은 젊은 만큼, 답란을 공란으로 해놓으려고 한다. 아직은 이런 문제가 있을 것이란 지레짐작만 가지고 있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이런 문제들을 되짚으면서 한 걸음씩 나아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