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 Angeles를 보낸다

by GOYA

지금까지는 고등학생 때 꿈꿔왔던 일들을 했다. 여행을 다녀온다거나, 봉사를 간다거나, 무엇을 한다거나 등 모든 고등학생들이 꿈꿔 봄직한 그런 소박한 꿈이었다. 그 마지막은 19년 2월에 다녀온 터키 여행이었다. 이 여행을 마지막으로 그 과거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면서 다짐했다.


이제는 앞을 봐야 한다고.


WEST 프로그램은 새로운 국면의 도래를 의미했다. 지금까지는 과거에 정해준 계획을 따라가며 견문을 넓히는데 시간을 할애했다면, 이제는 내가 걸어갈 길의 초석을 다지는 경험에 시간을 투자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다.

Los Angeles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 많은 것을 꿈꿨다. 한 폭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미국에서 많은 것을 담아가길 바랐다. 지금 이 브런치를 쓰는 것도 그 과정 중 일부다. LA의 햇살은 따사로웠고 하늘은 청명했다. 날씨는 나를 응원하는 것 마냥 축복이었고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사람들도 흥이 넘쳤다. 춤을 추는데도 거침이 없었고 갑자기 길거리에서 멋진 노랫가락을 듣기도 했다. 다른 곳이 아닌 LA니까 가능했다.

KakaoTalk_20191112_195227597_04.jpg 내게 황금빛 하늘만 내어주는 Gold State, California

모습을 감출 것 같던 햇빛은 끝내 그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내가 떠나는 날까지 그 햇빛은 따뜻했고 날카로웠다. 모두가 축복 같은 날씨에 탐복을 금치 못하는데 나는 그 결과 어딘가 맞지 않았다. 조금씩 겉돌았다. 어떤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언제나 축제 같은 이 도시, 로스앤젤레스의 그 분위기가 맞지 않았다. 한 번쯤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하루를 보내야 하는 내게 이 테마파크 같은 도시는 맞지 않는 옷이었다. 날카로운 햇빛은 나로 하여금 지치게 만들었고 활기찬 LA의 사람들 곁에서 나는 무료한 감정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하품은 그치지 않았고 어느 때보다 기력이 쇠했다. 그 날만을 그렸다. 10월 24일, 내가 Los Angeles를 떠나 Philadelphia로 떠나는 그 날만을 기다렸다.


KakaoTalk_20191112_195227597_02.jpg 안개는 예사

2주 정도 남았을 땐가. 나는 LA를 떠날 생각에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드디어 이 천공의 섬 같은 로스앤젤레스를 벗어나는구나!’라며 그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필라델피아는 적어도 로스앤젤레스보다 차분할 것만 같았다. 비도 올 것 같고 날씨도 변화무쌍할 것 같았다. 추위를 싫어하지만 축 처지는 로스앤젤레스보단 차라리 추운 게 나았다. 내가 머무를 집도 조금씩 찾아보고 필라델피아에 유명한 것들을 조금씩 체크해가면서 ‘독립’할 날을 기다렸다. 그때부턴가. LA의 날씨가 조금씩 우중충해졌다. 항상 맑던 하늘에 회색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떠날 때야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구나.'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주변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3개월이란 시간 동안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던 동료들을 이제 잠시 동안(어쩌면 평생) 떠나보낸다는 안타까움이 그들의 표정에 잘 드러나 있었다.

언제나 모임의 마지막 인사는 ‘언젠가 다시 보자.’였지만, 그 인사가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가 되어버린 인연이 적지 않다. 어렸을 때는 왜 나오지 않을까 궁금해하기도, 내게 문제가 있는지 되돌아보며 자책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내게도 이런저런 경험들이 쌓였다. 다시 보자고 말하면서 연락처 하나 남기지 않던 여행객, 자기 나라에 여행을 오겠다는 미지의 한국인의 여행에 누구보다 좋아하던 터키인, 수줍게 먼저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 친구, 이런 인연들이 내 인생에 오고 가면서 단단해지고 무뎌졌다. 그렇게 내 사회를 구축했다. 내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간단하면서 확실한 규칙이 생겼다고나 할까.

KakaoTalk_20191112_195227597.jpg 필라델피아도 가끔은 이런 멋진 구름을 보여준다.

적지 않은 사회에 몸담았고 정말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이런 상황은 처음이다. 오랫동안 활동을 같이 한 동아리도 있었고 같이 해외에서 추억을 쌓은 인연도 있다. 그럼에도 웃으며 헤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내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같은 한국, 서울에 사는 친구들과의 헤어짐은 정말 '찰나'에 불과하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지 않은가. 오만 정이 다 들었던 친구들과 떨어져 미국이라는 오지에서 홀로 살아가야 했다.

게다가 누군가를 잠깐 떠나보낸다는 사실에 눈물을 보이는 친구, 못내 하지 못한 말을 작은 편지에 꾹꾹 담아 가는 길에 주는 친구, 마지막 날이라고 없는 시간을 쪼개 얼굴이라도 한 번 보려는 친구들까지 전부 처음이었다. 평생 못 볼 캄보디아 삐음 초등학교의 학생들을 떠나보낼 때도 울지 않았다. 울어본 지가 언젠지 기억도 안 난다. 당연하게도 헤어짐이 아쉬웠던 적도 많이 없다. 그냥 담담했다. '볼 사람은 언젠가 다시 보겠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정이 없다면 없겠지만, 사실 인천공항에서 실실 웃으면서 사진이나 찍으며 인사한 우리 가족력도 한 몫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나도 편지를 쓸까 싶다가도 물리적인 시간이 없었고 정말 무언가를 준비한다고 하기엔 아무것도 준비된 바가 없었다. 그렇게 흘려보낼까 싶다가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이렇게 글을 쓴다. 담담하게 표현하지만, 작은 행동에 큰 감명을 받았다. 역시나 울음은 나오지 않았지만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고 하면 맞으려나. 내 입꼬리를 올리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WEST를 통해 많은 것을 얻고자 다짐했다. 모두 세속적인 것들이다. 영어실력을 높여 외국 투자자들에게 Funding을 받고 싶었고, 미국 문화를 이해해 어떻게 이들이 세계 최고의 국가가 되었는지 이해하고 싶었다. 많은 계획을 안고 아메리고의 땅에 내렸지만 그 계획들 속에 ‘사람’은 없었다. 의도적이라기 보단 자체가 원래 남는 사람 안 말리고 지나가는 사람 안 붙잡는 조금은 무심한 성격이다. 좁아지는 인간관계를 우려했지만 그렇다고 바꿀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내게도 3개월 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누군가의 입장을 생각해 볼 여유도 있었고 어떻게 말을 해야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을까 고민하며 한 수, 한 수 차근히 돌을 던졌다. 뿐만 아니라 내가 맞다고 생각한 정의가 생각보다 오점 투성이라는 점도,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말이라는 것이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음도 느꼈다. 책상에 앉아 유체역학 문제를 푸느라 끙끙 앓고 있을 때는 미처 생각하지도 못한 문제다.

눈으로 세상을 느끼는 것이 가장 정확할 테지만, 가장 무딘 감각도 시각이다. 시각은 내가 볼 수 있는 것만 감지한다. 같은 사진을 보더라도 자기가 알고 있는 것만 내뱉는다. 같은 그림을 보더라도,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다른 것들을 본다. 누군가에게 중요한 것이라도 나머지는 배경에 불과하다. 이 차이는 능력의 우열 때문이 아니다. 무딘 시각으로 그림을 보니, 각자 생각하는 바가 다른 것일 뿐이다. 이처럼 모르는 것을 자각하는 것은 어렵다. 배경의 일부에 관심을 기울일 만큼 사람들은 한가하지 않다. 그렇기에 내가 미처 보지 못하는 내 문제점, 부족함 등과 대면할 기회는 인생에 흔치 않다. 굉장히 소중하다. 하마터면, 그 소중한 기회를 그냥 흘려보낼 뻔했다. 마지막에나마 그 꼬리를 잡아 다행이다. 그리고 그런 기회를 준 분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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