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담은 미술관, PMoA

미술관에서 미국을 보다.

by GOYA

미술을 근처에 둘 수 있다는 사실은 미국에서 갖는 삶이 주는 소소한 행복이다. 각박하고 고달픈 하루를 살아가다가도 미술관에 들어가면 그런 일상의 것들이 사라진다. 한 장면을 보면서 그 그림 속 풍경과 인물들의 행동을 상상해보거나, 수수께끼 같은 화가의 의도를 추리하는데 시간을 보낸다.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미술관 밖의 것들과 단절시킬 수 있다. 밀린 업무, 많은 과제, 인간관계 등등... 몇 시간을 서서 미술작품을 봐야 하는 사실이 미술관에서 느낄 수 있는 고통의 극한이다.


미술은 기쁨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영화나 드라마와는 다르다. ‘사필귀정’이란 구태의연한 서사를 거부한다. 폭군의 화려하기 그지없는 삶을 보면서 우리는 감탄하면서도, 악당의 승리에 씁쓸한 기분으로 돌아선다. 미술은 시대를 담는 그릇이라던가. 오랜 역사의 평가 속에 살아남은 작품들은 결국 그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구도, 인물의 신분, 표정, 눈동자가 응시하는 방향, 오브제, 풍경... 이 모든 것이 작품의 미장센이 된다.

미술이 좋은 이유야 많겠지만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는 ‘그냥’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듯하다. 미술은 흔하디 흔하다. 건축, 패션도 미술의 일부라고 볼 수 있고 아르누보(혹은 제체시온)이라는 미술사조가 있을 만큼 상업적인 부분에서도 미술이 가미된다.(공학에서도 물론이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즐기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이 서양 회화인 것도 있거니와, 한국에서는 정말 많은 일이 있다. 학교도 다녀야 하고 친구들도 만나야 하며, 가족들과도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꺼려했다. 혼자 가볼까도 했지만, 거리도 가깝지는 않았고 무엇보다 공부, 복습, 과제에 치여 쪼갤 시간도 없었다.

미술 전시를 가는 게 뭐 대수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전문가가 아닌 내가 미술을 온전히 음미하기 위해서는 관련 서적을 읽거나 매체의 도움을 받는 등 사전작업이 필수적으로 선행된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내겐 미술 감상은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한 취미생활이다.


내가 일상을 살아가는 한국에서는 미술을 즐기기 어려웠다.



동부로 가게 됐다는 메일을 받고 가장 기뻤던 이유 중 하나는 미술이다. 서부에도 양질의 작품들을 소장한 미술관이 많지만, 대부분 현대 미술이었다. 현대 미술도 정말 재미있지만 피카소, 마티스 다음 세대의 작품들은 내게 막 매력적이진 않다. 동시대 화가 중 로이 리히텐슈타인과 야요이 쿠사마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정말 보기 심미적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이기에 좋아하는 것이지 다른 시대의 것 정도는 아니었다.

동부에는 미국의 3대 미술관으로 꼽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보스턴 미술관, 시카고 미술관이 위치해있다. 그리고 내가 인턴을 하게 될 필라델피아에도 양질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필라델피아 미술관이 있었다. 그리고 미국의 역사가 시작된 지역인 만큼, 나름 유럽 근대 작품들도 많이 전시가 되어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아, 고야 등의 작품들도 볼 수 있었다.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인상파 작품들도 다채롭게 만나볼 수 있는데 고흐, 고갱, 세잔, 마네, 모네 등 스테디셀러뿐만 아니라 로트렉, 로댕 등 유명하나 스포트라이트를 덜 받는 작품들도 이 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글의 큰 흐름을 의도적으로 정하지는 않았지만, 서부에서는 스포츠에 주안점을 두었다. LA가 좋은 날씨와 좋은 팀들을 보유한 덕분이다. 이제 동부에서 연재될 글들은 '예술'에 방점을 찍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필라델피아 미술관, 시카고 미술관, 보스턴 미술관, 메트로폴리탄을 모두 방문할 예정이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로댕 미술관, MoMA는 물론이고, 시카고에서 건축물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 볼 생각이다.

내가 동부에서 첫 번째로 선택한 미술관은 ‘필라델피아 미술관’이다. 먼저 가깝다. 집에서 30분 정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쉽게 박물관에 닿을 수 있었다. 게다가 거주민이기 때문에 일정을 조정할 수 있었는데 나는 기부 입장 날에 맞춰 방문했다. 모두들 1달러를 냈지만, 나는 눈치를 보느라 5달러를 내버렸지만.

필라델피아 미술관을 들어가면서 느꼈던 감정은 ‘열등감’이다. 필라델피아는 미국의 독립선언서가 낭독되었고 미합중국의 옛 수도를 지낸 역사적인 도시다. 그래서 서부의 도시들과는 다르게 건물들이 조금은 올드하다. 시청사의 크기는 우람한데, 그 모습이 마치 프랑스에서 본 것만 같은 모습을 가졌다. 다른 주위 건물들도 마찬가지다. 분명 마천루의 모습은 로스앤젤레스의 그것들보다 멋들어지지만, 그 멋을 입힌 건 시간이라는 얼룩이었다.

필라델피아 미술관도 비슷하다. 다운타운은 프랑스의 무언가를 닮았다면, 이 미술관은 그냥 대영 박물관이다. 건물이 늘어선 모습도 비슷하고 두 박물관 모두 그리스 양식에 기원을 두고 있다. 굳이 차이점을 찾자면, 대영 박물관은 이오니아 양식의 기둥을 하고 있다면, 필라델피아 미술관은 코린트 양식의 기둥을 가지고 있다는 점 정도다. 이들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는 없겠다마는, 그리스 세계(이오니아)에 한정한 대영제국보다 더 높은 기상을 가지고 알렌산더 대왕의 헬레니즘 정신(코린트)을 받겠다는 의지로 나는 이해했다.

KakaoTalk_20191116_171539631.jpg Philadelphia Museum of Art의 전경
1024px-British_Museum_-_Joy_of_Museums_2.jpg?resize=616%2C348&ssl=1 이름만 'British' Museum


작품들의 구성은 조금 다르다. 대영 박물관은 이름만 British일 뿐이다. 우리가 대영박물관에서 찾는 보물들은 이집트의 로제타석, 미라, 파르테논 신전의 'Greek'* 마블이지, 영국적인 것들을 찾지는 않는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은 그래도 많은 전시장을 American에게 할애하고 있다. 미국 화가들이 미술 사조 일선에 뛰어든 건 20세기가 들어서면서부터인데,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는 그 이전 유럽 시대로 따지면 낭만주의, 신고전주의 시대의 ‘미국’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다. 시대가 시대니만큼, 그림 속에 들어간 재료들도 조금은 계몽적이다.

사실 미국의 이 시대 작품들을 쉽게 보지는 못했다. 미국 하면 앤디 워홀, 잭슨 폴록이 떠오르지, 미국은 그 이전 예술 지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변방 국가였다. 그래서 신선했다. 가장 재밌었던 부분은 ‘건국의 아버지’들이다. 이 곳이 필라델피아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건국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조지 워싱턴, 알렉산더 해밀턴과 같은 사람들을 그린 초상화가 상당히 많았다. 당시 유럽에서는 바로크/로코코에 대한 안티테제로 계몽주의 성격의 작품들이 속속 등장하던 때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이들의 ‘건국의 아버지’ 찬미는 조금 핀트가 엇나간 감이 있다.**

미국에 오기 전에 미국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책 한 권을 읽었는데, 그 책에서 미국을 이해하는 코드로 ‘열등감’을 제시했다. 요약하자면, 역사가 없다는 열등감이 미국인에게서 ‘영웅’을 만들어내려는 항구적인 노력을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미국의 ‘적’인 아메리카 원주민 ‘제로니모’ 전사는 영웅이어야 했고 텍사스의 ‘카우보이’를 서부개척의 주역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미국이라는 나라가 나폴레옹의 프랑스, 리처드의 영국과 겨룰 수 있을 테니까. 이건 세계를 호령하는 초강대국의 지위에 올라선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라는 캐릭터에 미국의 속성을 부여하고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우리는 그것에 열광하니까 말이다.

KakaoTalk_20191116_171539631_04.jpg 벤자민 프랭클린

아무튼 그들의 열등감을 볼 수 있었던 대목은 바로 벤자민 프랭클린의 흉상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흉상이 있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철학자, 과학자, 발명가로서 다재다능한 사람이 건국에도 지대한 공헌을 했으니 그의 모습을 본떠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은 후손으로써 해야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그 장소가 문제다. 같은 박물관 안이었지만, 공간의 구성이 조금 달랐다. 고대 로마의 무언가를 상징했다. 바로 판테온.

판테온은 한국어로 번역하면 '만신전'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알 수 있듯이, 로마는 다양한 종류의 신을 섬겼는데 그들을 위한 공간이 판테온이다. 판테온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과 함께 유럽 건축에도 큰 영향을 미친 건축물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 등 대부분의 돔 지붕을 가진 건물들은 판테온을 이상향으로 건물을 설계했다. 판테온은 모든 신을 위한 공간이자, 로마의 상징이며, 유럽 세계의 이상향이다. 그런데 판테온의 공간을 모사한 공간에서 햇빛을 모사한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하고 있는 신은 제우스도, 예수도 아닌 벤자민 프랭클린이었다.

왜 워싱턴이나 다른 대통령이 아니고 벤자민 프랭클린이냐고 되물을지도 모른다. 물론 모두가 위대한 사람이고 미국인들의 존경을 받는 건국의 아버지겠지만, 역사를 잘 알지 못하는 내 눈에는 대통령은 앞에 앉아 있는 사람에 불과하며 ‘자수성가’를 이뤄낸 벤자민이야말로 미국의 정신에 부합한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미국의 자부심이 아닐까 한다. 물론, 미국인의 입장에서 건국의 아버지들을 모두 존경으로 대할 테니 한국식 순위 매기기는 별 의미가 없겠지만 말이다.***

KakaoTalk_20191116_171539631_03.jpg 주위에도 건국의 아버지들이 그 자리를 위엄 있게 지키고 있다.

첫 동부 미술관 투어였지만 필라델피아 미술관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미국인의 정서를 처음으로 느낀 미국 미술관이기 때문이다. 미국에는 값비싼 작품들도 많지만, 결국 작가가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라면 그 작품은 인간 내면 고찰 등을 담을 수는 있을 지라도, 미국의 정서를 담지 못한다. 그래서 한 사회의 단면을 담기보다는 내면의 것에 집중한 인상파 이후의 작품들이 미국에 많이 전시되어 있는 것이다. 아무리 값어치가 있어도 그들의 작품은 본고장에 있어야 더 아름답다. 내가 미국이라는 사회에 몸담고 있는데 여기서 같은 서양 문화라고 하더라도, 작품 속에 비친 프랑스의 모습을 보면서 큰 영감을 얻기는 어려웠다. 그렇기에, 전에 방문했던 미술관에서는 내가 관심 있는 화가가 아니라면 휙휙 넘기고는 했다. 하지만 필라델피아는 미국의 열등감과 동시에, 자기 문화에 대한 자부심도 많이 보여줬다. 굳이 표현하자면, 작품들의 서사나 인물을 통해 서구의 어깨인 프랑스, 영국이라는 형님들한테 '저 이 정도 따라왔습니다.'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이와는 별개로, 개인적으로 볼거리는 많았다. 요즘 들어 부쩍 관심을 늘고 있는 로트레크의 '물랑 루주에서의 춤을'이라는 역작을 볼 수도 있었고 미국의 어느 미술관처럼 인상파 전시작품들은 훌륭했다. 뒤샹 작품들도 정말 많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다음을 기약하며 모두 살피지는 못했다.

내가 가장 기대를 품었던 작품은 내 필명이기도 한 고야의 '판화집'이었다. 궁중화가 신분인 고야가 당시 왕가를 당나귀들로 풍자하는 참으로 재미있는 작품이라서 꼭 보고 싶었는데, 당시에 전시를 하고 있지 않아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그래도 아쉽지 않은 이유는 다음이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으니까 또다시 1월, 2월, 3월에 갈 수 있다. 이런 게 미국의 비싼 하우징 피에 대한 보상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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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106254.jpg?type=w773 내가 보고 싶었던 고야의 판화


* ‘엘긴 마블’이라는 기묘한 이름을 가진 보물을 표현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그릭 마블이라고 표현했다. 도대체 어느 누가 훔쳐간 물건에다 자기 이름을 붙인단 말인가?


** 생각해보면 이들이 미국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그 이상일 테다. 아직은 그 시간이 250년이 채 안됐지만, 로마의 ‘로물루스 형제’나 중국의 하나라를 건국한 이 정도의 위치가 아닐까? 현대에 미국이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해보면 큰 비약도 아니다. 단지 그들이 전설이 되기엔 너무 가까이에 살았다는 점이 그들의 위상을 미국인이 아닌 이방인이 느끼기엔 아직 부족한 요인이 아닐까 한다. 그런 이들의 초상화 몇 점은 분명 어느 이름 모를 황제, 교황보다 가치가 있을 텐데 그들의 초상화가 널리 퍼지지 않은 점도 의아한 면이다. 카메라의 발명 때문인가? 아무리 카메라가 발전했다지만, 어느 누가 위대한 화가의 손을 거치고 싶지 않을까? 그렇다면 인상파의 출현 때문인가? 분명 인상파, 분리파, 야수주의, 입체주의 등 연달아 나오는 미술사조가 사실 ‘절대자’의 형상을 담기엔 부적절하다. 아니, 그들은 이 사조들의 오브제가 될 수 없다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앤디 워홀의 마오쩌둥, 닉슨 아트는? 이제 지도자는 조롱의 재료로만 예술에 등장하는 걸까? 글을 쓰다 보니, 많은 물음표가 생기는 질문이다.


*** 벤자민 프랭클린은 필라델피아를 거점으로 활동한 정치인이기도 하다. 이 점도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그를 중앙에 위치하는데 한몫했을 것이다.


Ref) 모방의 또 다른 증거

KakaoTalk_20191116_202524390.jpg 필라델피아 미술관 앞에서
london-buckingham-palace-overview.jpg 버킹엄 궁전 앞

전사와 천사 점 하나만 차이가 있을 뿐. 탑위에는 그들 사회의 논리 기반을 올려놓았다.


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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