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턴 101

필라델피아 적응기

by GOYA

내게는 항상 두 번의 티핑 포인트가 있었다. 어떤 일의 시작과 끝이다. 그러나 시작은 요란했던 준비 기간과는 달리, 조금 텅 빈 수레처럼 고요하게 지나간다. 오히려 어떤 일이 끝날 때 즈음부터 내가 그 일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 반추해 볼 시간을 갖는다. 타임라인 끝에 서서 자신의 흔적을 돌아보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지만, 인간이라는 게 '망각'과 '적응'때문에 그 처음의 것들을 놓치고는 한다. 가령 준비 기간 동안 세웠던 계획이나 포부 같은 것들 말이다. 이것들을 우리는 '초심'이라고 표현한다. 높은 의욕과 당찬 포부를 잔뜩 버무린 '초심'은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는 많이 사라져 있다. 그 순간들을 내 시간으로 만들었다면 초심은 내게 익숙해 있고, 그렇지 않다면 우주 저편으로 떠나가 있다.

10월 말에 LA에서 필라델피아로 넘어왔으니, 대략 1개월 반 정도가 지났다. 적응도 어느 정도 됐고 연구실 돌아가는 메커니즘도 파악한 지금이 나 자신을 한 번 반추해 볼 적기다. 이제 내 시작 포인트와 초심을 조심스레 찍어볼까 한다.

KakaoTalk_20191211_153746693.jpg 교수님 같군요.

Self-Study는 어떻게 하나요?

초반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문화는 자유방임이다. 교수님은 지도 교수지만, 내게 어느 것을 하라는 등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나 스스로 해야 한다. 심지어 일을 찾는 것조차 나의 일이었다. 내가 찾아서 하지 않으면 내 업무는 없다. 업무도 없고 경험도 없다. 미국 대학원, 연구소가 Self-study 하는 문화라는 것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진짜 말 그대로였다. Self로 논문을 찾고 스스로 공부하며 연구를 했다.

교수님에게 이메일을 보내기도 하고 연구실에서 Postdoc을 하고 있는 박사 연구원, 박사과정 학생들에게 물어물어 나의 일을 조금씩 만들었다. 첫 번째 일은 SolidWorks 프로그램에 익숙해지기였다. SolidWorks는 설계 프로그램으로 우리 연구실에서 진행하는 연구에 꼭 필요한 프로그램이다. 전에 왔던 인턴도 SolidWorks를 통해서 배터리를 디자인하고 실험을 계획하는 업무를 맡았다. 즉, 연구실에서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서 친숙해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툴이었다. 하지만 내겐 익숙지 않은 툴이라서 유튜브, 블로그 등을 찾아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공부를 했다. SoildWorks에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하자, 교수님이 두 번째 과제를 내주셨다.


신영준 박사는 저서에서 ‘대한민국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홀로 가뭄을 느끼고 있다’고 표현한다. 대부분의 정보는 영어로 기술되어 있고 영어로 전달되는데, 한국인들은 고질적으로 영어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나도 그 예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대학에서 원서로 전공을 공부했고 어찌어찌 미국에서 은행 계좌도 만들고 부동산 계약도 순조롭게 했지만, 영어로 된 아티클을 읽는 게 내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런 내게 ‘영어 논문’은 기피대상 1호였다. 영어로 서술된 것은 물론이고, 그 단어도 일상이나 TOEIC, TOEFL에서 쓰는 단어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학원을 진학할 계획이 있기 때문에 영어 논문을 언젠가는 만나게 될 강적이었지만, 그 시기를 최대한, 최대한 미루고 싶었다. 그런데 그 기간이 꽤 앞당겨졌다. 2년이나.

처음에 교수님이 주신 페이퍼를 보면서 읽으려고 애썼지만, 과장을 하나도 안 보태고 정말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단어들이 익숙지 않았다. Isotropic(등방성), Calibrate(계산하다, 치수를 재다), Indentation(상처) 등의 단어들은 일상생활에서는 물론 수험영어에서도 쉽게 보기 어려운 단어들이다. 한국어로도 등방성을 논할 기회가 많지는 않으니까. 그런데 그 단어들을 영어로 보고 있으니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은 당연한 처사였다. 그래도 며칠째 논문을 붙들고 있으니, 나오는 단어들만 나오면서 익숙해졌다. 그렇게 단어들을 숙지했더니 두 번째 문제가 발생했다. 단어들도 해석이 되고 문장도 읽히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연구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무하니까 이런 과정이 왜 필요한 것인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비교를 어떤 섹터와 하고 있는 것인지 파악조차 불가능했다. 가령, 우리 연구실의 연구는 배터리에 다양한 종류의 Punch(펀치)에 의해 발생된 Indentation(상처)이 배터리에 Short Circuit(단선)을 일으킨다. 이것을 Analytical Method(수식을 이용한 방법)와 Finite Element Model(유한 요소 모델)을 통해서 Prediction Value(예측값)을 Compare(비교)하고 그 Simulation(모델)이 잘 정의되었는지 Verification(검증)하는 과정을 논문으로 길게 나열했다. 이것을 15장 분량으로 서술하고 있으니, 이해가 안 될 수밖에 없었다.

이 상태에서 오랜 기간 동안 벗어나지 못했는데, 무엇보다도 동기부여가 부족했다. 이걸 공부한다고 해도 성적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내가 이걸 왜 공부하나 싶은 마음이었다. 그 상태에서 갑자기 교수님이 Assignment를 내주셨는데 나보고 덜컥 발표를 하라고 했다. 그것도 대학원생들과 교수님들을 상대로 말이다. 주어진 시간을 대략 2주일 남짓.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 순간부터 나는 정말 부리나케 논문을 읽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도 읽고 또 읽었다. 그렇게 한 2주 동안 읽기를 반복하니 큰 맥락이 잡혔다. 맥락이 잡히면서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 눈에 들어왔고 그것들을 토대로 PPT를 작성했다. 분명 완벽한 PPT는 아니었다. 계속 수정 작업을 거치면서 PPT에 담지 못한 중요한 개념들이 눈에 많이 밟혔지만, 프레젠테이션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학생 신분도 아니고 단지 연구를 보조하기 위해 온 ‘인턴’이기 때문에 이 발표를 정중하게 라도 거절할 수 있었다. 그건 내 업무영역이 아니다. 영어가 익숙지 않은데, 영어로 대학원생들을 상대로 논문에 대해 발표를 한다는 것은 내게 꽤 큰 부담이기도 했다. 그런데 물러서고 싶지는 않았다. 내 업무영역은 아닐지라도, 나는 이 연구실의 일원이다. 연구실의 일원인 내가 이 연구실의 연구 분야에 무지하다는 것은 모두에게 해가 되는 상황이다. 내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실험을 구성하고 modeling 한다면, 알고 하는 것보다 그 방향성이 잘못됐을 가능성이 높다. 언젠가는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할 언덕이었다.

그리고 좋은 기회기도 했다. 언제 내가 대학원생들을 상대로 발표를 해볼 기회를 갖겠는가. 내가 대학원생이 돼서야 비로소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더 빨리 받은 것이다. 어쩌면 영어로 발표를 하는 기회는 조금 더 나중에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실패를 하더라도, 욕을 보더라도 해야 했다. 그게 내가 미국에 온 이유니까.

집에 조금 더 늦게 가기도 했고 주말에도 연구실에 출근하기도 했지만, 어찌 됐든 그 순간이 씁쓸하지만은 않았다. 어쨌든 이 연구실에서 무언가를 해낸 첫 번째 순간이 될 기회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준비했다. 욕을 먹어도 순간을 계기로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고 칭찬을 받으면 그것도 그 나름대로 내게 의미가 있을 테니, 유쾌하게 그 순간들을 즐겼다. 게다가 아직 내가 좋아하는 철학적 담론이나 정치적 논쟁을 미국인들과 나눌 레벨은 안 되지만, 그래도 한 분야에서 전문적인 지식을 영어로 습득했다는 것도 내게 큰 수확이었다. 이런 경험을 얻고자 미국에 왔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 프리드리히 니체



편견을 대하는 방법

우리 연구실의 연구분야는 전기 자동차에 들어가는 배터리가 충격을 받았을 때 그 변화를 Prediction 하는 Model을 만드는 것이다. 크게 세 가지 분야로 나눠지는데, Anaytical method, Experiment, Finite element method로 연구가 진행된다.* 보통 Finite Element method(유한요소법/ 특성 값을 갖는 자그마한 입자 단위로 한 모델을 설계하는 모델링 방법)를 이용하는데 coefficient of friction(마찰계수), Isotrapic/anisotrpic(등방성/비등방성) 등의 조건을 바꿔 적절한 모델을 찾는다.

불가피하게 어려운 전문용어들이 들어가 있음을 헤아려주길 바란다. 아무튼 다른 연구 경험이 없는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굉장히 연구가 지엽적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논문은 교수님이 MIT에서 Postdoc기간 중에 연구하셨던 내용이다. 즉, 세계 최고의 공과대학인 MIT에서 동료 연구자들과 연구해서 결과를 도출하고 제출한 논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MIT는 굉장히 Fancy 한 연구만 하는 대학이고 그런 연구만 하는 연구자들만 있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분명히 이런 연구도 필요하다. 내가 개인적으로 가졌던 편견이 그랬다는 것이지, 교수님이 연구하고 있는 분야와 연구 성과를 폄하할 의도는 없다. 모델을 구축하는 것도, 모델을 통해 배터리의 상태를 예측하고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 예방하는 과정도 모두 필요하고 중요한 과정이다.

단지 내가 걷고자 하는 길과 결이 다를 뿐이다. 지금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연구 분야가 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내가 가진 정보들이 완벽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분명히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좋은 길, 적합한 길, 쉬운 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길을 조금 많이 파두는 편인데, 내게 좋은 제안이 온다면 나는 제어가 아니라 구조, 물성 분야에 대해서도 경청할 자세가 되어 있었다. 같은 생각으로 이 연구실에 왔다. 배터리에 별로 관심은 없지만, 모빌리티 산업에는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까 무엇이라도 어깨너머 배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내 태도는 좋게 말하면 ‘관용’적이지만, 나쁘게 보면 ‘오만’이다. 무엇이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은 어느 것도 최선을 다해 준비하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최고가 되기 위해서 한 곳만 파는 천재들이 부지기순데, 내가 뭐라고. 내게 그럴 여유를 부릴 사치는 없었다.

만약 이 순간이 없었다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분야가 아니라 장학금을 많이 주고 대학원 랭킹이 높은 곳에 진학했을 것이다. 연구는 중요한 고려사항이지만, 우선순위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다. 일단 배터리와 충돌, Solid는 선택지에서 삭. 제. 다.


인생은 넓게 가져가되, 분야는 간결하게.


한국에서 대학원 진학을 고려하는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학부를 불문하고 서울대 대학원을 한 번쯤은 생각해보게 된다. 이름값도 있겠지만, 한국에서 알아주는 교수진, 양질의 프로그램, 동료들이 모이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만 가지는 특징이 아니다. 중국에서는 칭화대와 베이징대가, 영국에서는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가 그런 역할을 한다. 이들은 하나의 문화권에서 최고의 인재들이 모이는 상아탑이다.

이런 범위는 단순히 국가에 국한하지 않고 대륙으로 그 범위를 확장할 수도 있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의 NUS, NTU 혹은 홍콩의 대학교들이 뽑히고 유럽에서는 스위스의 ETH Zurich를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그 대륙의 인재들이 모이는 허브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그 범위를 인류 전체로 확장한다면 어디일까. 영국에도, 한국에도, 싱가포르에도, 중국, 일본에도 Fancy 한 연구주제를 가진 멋진 대학들이 많지만, 세계적인 인재들이 모이는 곳은 ‘미국’이다. 다른 국가의 대학들은 질적으로는 동등할 지라도, 양적으로는 미국의 상대가 되지는 못한다. 우스갯소리로라도 미국의 교육이야말로 미국의 두 번째 수출품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니다.**

학부생 중에는 확실히 미국인들이 많다. 학부로 유학을 오는 외국인들이 많이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본토에서 학교를 다니는 미국인들에 비해서 그 수가 압도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런데 대학원부터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모든 학교와 연구실을 다녀 본 것은 아니지만, 외국인들이 놀랄 정도로 굉장히 많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연구실의 반 이상이 중동계(이란)며 중국인과 한국인(나)도 있다. 교수님들의 국적도 꽤 다양한데, 내가 속한 College of Engineering의 교수님들을 살펴보면 이란, 한국, 일본, 인도, 중국 등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다. 미국의 대학은 미국인들의 것일지 몰라도, 미국의 대학원은 미국인들만의 것은 아니다. 전 세계 인재들이 모여들어 같은 주제로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한다.

이렇게 많은 국가의 학생들이 몰리기 때문에 미국에서 50위 정도 하는 시골 학교들조차 명문대학이라고 일컬어지는 게 아닐까.(물론 미국은 시골에 좋은 학교가 왕왕 있다. UIUC, UM...)


나는 외국에서 공부를 해 본 경험이 없어 유학은 무언가 다를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이 있었다. 전 세계에서 온 친구들과 영어로 소통하며, 문화를 교류하고, 노벨상 수상자의 수업을 듣는 것들 말이다. 하지만 실행으로 옮기지 못한 이유도 있었는데 바로 두려움이다. 한국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인종차별, 치안문제, 언어장벽 등은 내 논리 회로를 망치는 큰 장애물이었다.

LA는 워낙 다문화 도시다 보니 이 문제들이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았지만, 필라델피아에서는 그 짧은 기간 동안 인종차별, 치안문제, 언어장벽 모두 겪었다. 차에서 X 친 놈들이 자갈을 던지기도 했고 내 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길가에서 총기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언어장벽도 있었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크게 문제는 없지만, 정치, 가치관, 사회 문제 등이 테이블 위에 올려질 때 나는 어떤 말이 좋을지 몰라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한국어였다면, 절대 놓치지 않았을 기회일 텐데 말이다.

그런데 막상 겪고 나니, 크게 걱정할 문제도 아니었다. 인종차별이라고 해봐야 그들의 안타까운 인생을 측은하게 생각하면 그만이고**, 치안 문제는 미국 사회가 안고 가는 사회적 문제다. 오로지 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언어장벽은 조금 답답함을 느끼는 부분이었지만, 유학생들이라고 이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아니, 문제랄 것도 아니었다. 분명 영어는 뛰어나지만, 유학생들도 미국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다. 경험적인 면에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을 예시로 들면, 우리에게 북한은 ‘주적’이지만 한편으로는 같은 ‘동포’로 다독여야 할 존재이기도 하다. 이는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는 모순적인 정서지만, 북한을 오로지 ‘악의 축(Axis of Evil)’로 단정 짓는 미국 매체의 정보에 익숙한 외국인들은 이 정서를 쉽게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유학생들도 민감한 대화 주제를 피하는 것이다. 내가 문제라며 되레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을 뿐이다.

간접적인 유학생활을 통해 내가 가진 환상을 엿볼 수 있는데 아직 기대를 놓을 때는 아닌 것 같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내가 조금만 노력한다면, 상기한 모든 경험들을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두려움이라는 장애물은 사라졌으니, 이제 앞으로 나갈 추진력만 남았다. 가자, 토플학원으로. 아니, 아이엘츠가 더 좋으려나.


*어떻게 보면 명목상이라도 중립국의 위치에 있는 싱가포르와 스위스에 대륙을 대표하는 대학이 있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 첫 번째는 달러다. 그리고 단순히 그들이 내는 ‘등록금’이 문제가 아니다. 미국에서 학위를 따고 돌아가는 학생들이 고국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보면 답은 명료하다.

(*) 공과 대학은 국가마다 다른 잣대로 평가하는 연구를 하지 않지만, 정치외교 분야에서는 각 나라의 인재들이 어떤 토론이 오갈지 궁금하다.

**지금까지 겪은 모든 인종차별은 아프리카계의 짓이었다. 복잡 미묘하고 불순한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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