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만든 세계

미국의 위대한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by GOYA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책에서 건축을 이렇게 표현했다. 건축은 인간이 ‘자연’의 지배에서 벗어나 밤에도 빛을 들고 겨울에도 따뜻하며 밤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공간이라고. 내가 투박하다고만 여겼던 건축에 처음으로 매료된 순간이다.

IMG_0424.JPG William E. Martin House - Frank Lloyd Wright

건축가를 뜻하는 ‘Architect’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의 ‘arkhi- + tekton'에서 왔다. 'arkhi'는 'chief'을, 'tekton'은 'builder'를 의미한다. 당시 시대상을 보면, build가 곧 tech를 상징했기 때문에 '최고 기술자' 정도가 적절한 번역일 것이다. 너무 대단한 뜻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건축공학과 토목 공학이 전통 공학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고려해 볼 때 건축가에게 이 정도 칭호를 받는 건 큰 논리적 비약이 아니다.

도시는 인간이 만들지만, 인간이란 한없이 움직이는 도시의 혈관과 같아서 그 도시의 이미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우리는 막연히 도시를 떠올릴 때, 건축물을 가지고 그 도시의 이미지를 구현한다. 뉴욕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서울은 남산타워, 상하이는 동방명주, 런던은 타워 브리지와 같은 것들이 그런 역할을 한다.

건축물은 ‘인본주의’의 소산이다. 건축은 인간이 보기에 아름답고 기능적이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기도 하지만, 그것은 건축가의 선택 사항일 뿐이다. 결국 도시도, 건물도 인간이 만들었고 그 건물을 만든 이는 ‘건축가’로 그 건축물과 이름을 남긴다. 하지만 건축 전공 학생이 아닌, 일반인에게까지 건축가가 자기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킨 사람은 많지 않다. 인간의 문명을 발전시키는데 건축이 크나큰 공헌을 했는데도 말이다. 우리나라엔 김수근 정도가 있을까.

내가 다녀 본 여행지에서 건축물이 아니라 ‘건축가’의 흔적들이 인정을 받고 그 자신의 이름을 남긴 두 개의 도시(국가)가 있다. 가우디의 바르셀로나와 미마르 시난의 터키다. 이들은 도시에, 국토에 자신의 철학을 자신의 색으로 뿌려 놨다. 유명한 건축물은 문화재가 되지만, 박물관에 보관된 온실 속 화초와는 달리, 그 역할을 아직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가우디의 구엘 공원은 입장료를 받는 관광지가 됐지만,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혹은 카사 밀라는 그 역할인 성당과 주거의 역할을 이행하고 있다. 미마르 시난도 마찬가지다. 잘 알려진 모스크를 비롯해 작은 지방에 메흐메드 파샤 소콜로비치 다리 등은 아직도 모스크, 다리로 사용되고 있다. 건축물은 ‘기호’를 만족시켜야 하는 여타 예술과는 달리, 어느 정도 기능성을 보장하면서 예술성을 겸비해야 그 가치를 인정받는 예술의 분야다 보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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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Sagrada Familia - Antoni Gaudi, Süleymaniye Mosque - Mimar Sinan

이 두 지역은 내가 사랑하는 여행지다. 다른 지역들도 멋진 스카이라인과 친절한 사람들이 나를 반겼지만, 바르셀로나와 터키에서 얻은 추억만큼은 아니다. 그 추억의 전부가 가우디와 미마르 시난 덕분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그 추억의 풍미를 한껏 돋우는 것만은 분명하다. 쉴레 마니예 모스크를 보면서,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을 들어가 보면서 그들의 철학을 엿보고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 길을 걷다 보면, 같은 철학으로 뒤덮인 다른 공간을 볼 수 있으니, 그 경험이 '연속'되면서 내게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이제 세 번째 ‘건축가’의 도시로 간다. 마천루의 도시지만, 현대 건축의 한 획을 그은 거장의 숨결이 살아있는 도시기도 한, CHIC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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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를 사람들은 ‘건축의 도시’라고 부른다. 1871년 시카고 대화재 이후, 허허벌판이 된 시카고에는 많은 영감을 품은 건축가들이 몰려들어 마천루를 건설했다. 당시에는 10층 정도의 높이만 되어도 마천루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이들은 점점 하늘을 찌르면서 존 핸콕 센터, 윌리스 타워 같은 세계적인 마천루를 시카고에 쌓아 올렸다. 뿐만 아니라 마리나 시티, 트럼프 타워 등 높이뿐만 아니라 심미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한 작품들이 시카고 강을 중심으로 다닥다닥 붙어있다.

문제는 이런 도시는 세계 어디서도 쉽게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다. 분명 멋있는 광경이기는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서 높은 건물을 가지지 않은 도시는 없다. 서울의 여의도만 하더라도 높은 통유리 건물이 넘쳐나며, 뉴욕, 홍콩, 상해 등 기라성 같은 도시들은 많다. 하지만 우리는 이 도시들에게 ‘건축의 도시’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붙이지 않는다. 오히려 바르셀로나처럼 독특한 건축물들이 모여 있는 도시에나 어울리는 이름이다. 왜 ‘건축의 도시’라는 이름이 시카고에게만 헌정되었을까?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ioyd Wright)’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생애에 걸쳐 2번의 전성기를 맞는데, 첫 번째 전성기를 볼 수 있는 곳이 시카고다. 켄틸레버 구조를 적극 사용하여, 미국의 중서부의 초원을 집에 투영시켰다. 이를 ‘프레리 하우스’라고 한다. 작품들을 보면 면면이 그리 화려하지는 않은데, 직접 걸어보니 아직도 Oakpark주민들이 거주를 하고 있는 주택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참고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대표적인 후기 작품인 낙수장(Falling water)과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은 앞서 언급한 집들과는 스타일이 깨나 다르다.

그의 첫 번째 전성기 작품들은 아름답지 않았다. 오히려 투박하다. 색은 칙칙하고 벽돌들은 질서 정연하다. 직선이 강조된 나머지 단조롭다. 로비 하우스에 들어가면, 계단 위쪽으로 하나의 아치가 나있는데 가이드가 말하길 이 공간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곡선이라고 한다. 곡선은 없고 직선만 가득하며, 천장은 층마다 그 높이가 다르다. 이들 작품의 특징은 ‘투박하고 칙칙하며 단조로운’ 아름다운 형용사와는 거리가 먼 단어들이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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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분야에서는 ‘다른 곳에는 어울리지 않는 건물을 지어라.’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주변의 것들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물은 결국 다른 곳과는 결이 달라 어색해진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아버지 ‘르 꼬르뷔지에’와는 반대에 서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철학을 잘 녹인 표어라고 생각한다.

시카고는 앞선 ‘흑림의 도시’에서 밝혔듯이, 우리에게 익숙한 동네는 아니다. 농업이라는 우리와 관련 없을 것만 같은 산업을 영위하고 있으면서, 사실상 시카고를 받쳐줄 세컨드 도시도 전무하다. 뉴욕 하면 필라델피아와 보스턴, 로스 엔젤레스 하면 샌디에이고와 샌프란시스코, 라스베이거스가 같이 떠오르는데 반해, 시카고는 이미 잊힌 러스트 벨트의 도시들(클리블랜드, 디트로이트 등)과 한데 묶이는 외로운 도시다. 시카고의 높은 빌딩에서 내려다보면 보면 알 수 있듯이, 일리노이는 평원으로 이뤄져 있으며 굉장히 투박한 동네다. 그가 살았던 위스콘신도 마찬가지다. 이런 외로움과 투박함을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수평성’으로 구현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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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성’하면, 몬드리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대부분의 미국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수직과 수평, 그리고 다양한 색깔로 구성되어 단조롭지만 확실한 존재감을 뽐내는 작품이 바로 몬드리안의 작품이다. 보통 몬드리안뿐만 아니라 그의 영향을 받은 대부분의 작품에서 수직은 ‘역동성’을, 수평은 ‘안정’을 상징한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집들을 보면 대부분 지평선과 맞닿아 있는 쪽이 긴 직사각형 모양으로 건축물들을 설계했다. 그가 Oak Park에 지었던 건축물들은 대부분 집이었다는 점을 상기해 볼 때, ‘안정’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집은 인간에게 어떤 걱정 없이 편안히 몸을 누일 수 있고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수평성’을 통해 집에 ‘안정’과 ‘정체성’을 불어넣었다.**

오크 파크에 위치한 여러 작품들은 여전히 집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볼 수 있던 건 외부 전경이었다. 하지만 몇 개의 작품들은 박물관처럼 돈을 내고 가이드를 들으면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었는데 Robie House가 그중 하나다. 로비 하우스에서 첫 번째로 특이했던 점은 낮은 천장이었다. 천장이 굉장히 낮아 조금만 키가 큰 사람이라면 머리를 조심해야 했다. 가이드가 말하기를, 손님들에게 약간의 긴장감을 주기 위해 천장을 일부러 낮췄다고 한다. Robie라는 사람이 무얼 하던 사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손님과 알게 모르게 기싸움을 벌여야 하는 사업을 하는 사람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보았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멋진 작품들을 많이 설계했지만, 그것만큼이나 이 오크 파크와 시카고에 있는 조그마한 주거용 집도 깨나 유명하다. 그 점이 참 마음에 든다. 예술은 일반인의 삶과는 동 떨어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가끔 받는다. 겨우 미술관이나 몇몇 포인트에 들려야만, 예술을 감상할 수 있다. 예술이 콧대를 세우는 어쩔 수 없는 어른들의 논리도 있겠지만, 결국 일상에서 예술과 접할 수 없다는 점은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작품들은 Oak Park에서 굉장히 소박하다. 주위와 조화를 이루려고, 자신의 명성을 드높이고자 세련된 모습으로 집을 설계하지 않았다. 내가 찾아보고 이 곳에 방문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의 작품을 지나쳤을 것이다. 그 정도로 소박했다.

그리고 확실하다. ‘수평성’이라는 개념만 가지고 오크 파크를 둘러보면,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작품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누가 봐도 이 작가의 작품이다.‘라는 올곧은 철학이 작품에 투영되어 있었다. 가우디의 바르셀로나처럼, 미마르 시난의 터키처럼 시카고의 Oakpark는 그의 철학이 담긴 마을이었다. 작품 간의 거리가 마을 수준이니, 조금 더 응축된 느낌이었달까.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예술을 두 가지로 분류한다. 아폴론 예술과 디오니소스 예술이다. 아폴론의 예술은 치밀한 계획과 정확한 계산 등으로 만들어졌으며, 건축이 이에 해당한다. 디오니소스적 예술은 무질서한 상태에서 나오는 예술로 음악이 이에 해당한다. 각자 코스모스와 카오스를 상징하는 신이기도 하다. 리하르트 바그너의 친구이기도 한 니체는 이 책에서 ‘디오니소스’적인 예술을 찬미하지만, 내가 끌리는 예술은 오히려 아폴론적인 예술, 건축이다.

제목 없음.png 시카고의 모든 것을 보겠다는 각오로..

내가 작성한 여행 계획표다. 예상시간, 분류와 목적지까지 정리되어 있다. 나의 여행 계획표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아직까지는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 차를 놓친 적도 없고 비행기가 연착되지도 않았으며 예상치 못한 변수가 내 계획에 등장하지도 않았다. 십 여 개국을 다녔고 일수로는 1년 가까이를 외국에서 보냈음에도 말이다.

여행 계획표가 내 정체성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해 예시로 가져왔다. 변수를 싫어하고 모든 것을 예상 가능한 범위로 이끌어내는 계획을 짠다. 예측 불가능한 날씨와 같은 것은 최대한 내게 좋은 가능성을 주는 선택을 한다. 카파도키아에서 벌룬을 타려고 터키를 시계 반대방향으로 돈 게 그 대표적인 예다. 보통 터키는 이스탄불에서 출발해 카파도키아, 안탈리아, 데니즐리 순서로 나라를 순회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었는데, 날씨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벌룬은 겨울에 운행을 잘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해진 여행 계획에서 최대한 겨울과 벗어나야 했다. 그래서 반대로 돌았다. 아테네, 에페스, 데니즐리, 콘야를 모두 돌고 나서야 하이라이트인 카파도키아로 갔다. 결과적으로 3일 내내 벌룬이 떴으니, 성공적인 계획이었다고 볼 수 있다.

여행 계획뿐만 아니라 내 인생이 원래 그렇다. 내 인생에는 항상 계획이 서 있다. 멀수록 대략적으로 가까울수록 짜임새 있게 그 계획들이 짜여 있다. 하나의 조각이라도 떨어지면 실패하는 사상누각의 형상이지만, 위태로운 상황이야 말로 나를 강하게 만드는 방법이라는 기치 하에 그 위태로운 줄다리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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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감동을 담지 못한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로비 하우스’를 보면서 처음에는 큰 감흥이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다 알고 갔으니까. 캔틸레버 구조, 수직성, 정체성,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라는 사람 모두 조사해갔다. 그럼에도 내부로 들어가자마자, 감정적으로 동요됐다. 예기치 못한 감동에 눈물이 흐를 뻔했다. 보통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불빛들이 감동을 줬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불빛에 비쳐 아름다운 무늬를 내는 조명은 환상적이었고 마치 천장에 햇살이 드는 것처럼, 빗살무늬로 장식한 천장 등도 영예로웠다. 그 순간만큼은 그 투박한 공간이 나를 세심하게 배려해주며, 나를 포옥 감싸 안아주는 것만 같았다.

고개를 들어 보고 있었기 때문에 약간의 웃음기만으로 눈물을 다시 흘려보낼 수 있었지만, 주위에 사람들이 없었다면 분명히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을 것이다. 예술 작품들을 보며 눈물이 났던 것은 프라도 미술관에서 만난 고야의 ‘검은 연작’ 이후 두 번째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평원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그 시대에는 흔치 않은 켄틸래버라는 위태로운 양식을 사용했지만, 결국 그것은 몬드리안처럼 ‘안정’ 감을 주었다. 외관은 차갑고 투박하지만 그 투박한 모습이 오히려 내부의 포근한 모습과 대비되어 극적인 분위기 반전을 꾀했다. 대비는 내게 묘한 긴장감을 주었으며, 하나라도 어긋나면 끈이 풀린 바이올린처럼 깜짝 놀랄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그것들이 재즈처럼 한데 어우러져 하모니를 만들어줬다. 그 하모니는 나를 담금질시키며 나와 공명했다.

KakaoTalk_20191204_232025499.jpg 나름 감동받은 표정입니다.

결국 이런 서사적인 반전을 일으킨 것은 그의 내공 덕분이다. 어느 누구도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플롯과 구성, 이것을 나는 ‘올곧은 철학’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는 항상 이데아 속 하나의 이상적인 모습을 가지고 환경, 주인에 맞춰 작품들을 만들었다. 큰 특징들로 그의 작품을 헤아릴 수 있을 만큼, 그는 하나의 철학을 가지고 공간을 설계했다. 적어도 오크 파크와 시카고에 있는 것들은 그러했다. 그럼에도 달랐다. 비슷한 구조를 가져가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에게 그 공간은 한없이 너그러웠다. 그에 맞는 분위기를 조성했으며, 그의 동선에 맞는 맞춤형 옷이었다. 그의 작품은 모두가 알아보는 ‘개성’ 있는 건축물이었지만, 주인을 위한 너그러운 ‘집’이었다.


‘올곧은 철학’을 담은 모두의 공간이자, ‘너그러움’을 담은 주인의 집, 그리고 그 세계를 설계한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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