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saic, Canada

여행의 이유

by GOYA
IMG_0648.JPG ㅡ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로 유명한 호텔

많은 이들이 여행을 떠난다. 각자의 이유로. 멋진 풍경을 보기 위해, 재미있는 추억을 쌓기 위해 혹은 혹시 모를 로맨스를 기대하며 여정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다. 각자가 다른 이유로 떠나는 만큼, 여행지도 다양하고 여행하는 방식도 가지각색이다.

내 여행의 이유는 하나의 ‘계기’다. 여행이라는 괜찮은 명분은 내게 그 나라를 생각해 볼 여지를 준다. 생경한 중동의 역사, 서구의 문화, 종교의 발자취를 곱씹어 볼 여유를 주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미국을 여행이 아닌 인턴으로 온 이유도 이런 생각에서 비롯됐다.

Strict 한 이유 때문에 선택지에서 배제되는 여행지가 몇몇 있다. 광활한 자연을 맛볼 수 있는 곳, 서사가 없는 곳, 인간의 때가 묻지 않은 곳들은 대부분 내 흥미를 돋우지 못한다. 전에 다녀온 그랜드 캐니언이나 멋진 국립공원들을 보면 압도되고는 했지만, 내게 자연은 원래 그런 존재다. 압도되는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나면 언제나 흥미를 잃고 따분해졌다. 그래서 인간이 만들어 낸 아기자기한 도시, 문화, 예술을 느낄 수 있는 쪽으로 여행지를 택하는 편이다.

그런 내게 캐나다는 매력적인 여행지는 아니었다. 캐나다가 서구를 대표하는 선진국 중 하나지만, 그 위치에 맞는 서사가 없다. 이야기가 없었다. 영국에게는 대영제국이라는 찬란한 과거가, 미국에게는 현재라는 엄청난 이야깃거리가 있지만, 캐나다는? 분명히 그들이 존경하는 위대한 건축가('구겐하임 미술관'으로 유명한 프랭크 게리가 캐나다인이다.), 총리, 그들이 자랑할 만한 역사가 분명히 있을 테지만, 내가 알만한 이야깃거리는 없었다. 내가 부족한 탓이기도 하고 그들의 것에 관심을 갖는 한국인이 많이 없는 탓이기도 하다. 캐나다와 한국이 직접적인 연관성이 부족하고 캐나다의 이웃인 미국과 이미지가 상당수 겹치니까.(분명히 내가 알고 있는 미국의 모습이 사실은 캐나다의 모습인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캐나다에 별로 흥미가 없었다.

만약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나 스스로 캐나다를 여행할 생각은 1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행기표도 비싸고 같은 값으로 더 큰 효용을 얻을 수 있는 선택지가 지천에 널려 있다. 그럼에도 캐나다를 다녀온 이유는 내가 ‘지금’ 미국에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크게 두 나라를 이웃으로 두고 있다. 멕시코와 캐나다다. 멕시코는 미국의 남부, 캐나다는 미국의 북부와 접하고 있다. 하지만 둘과 미국의 관계는 판이하게 다른데, 멕시코와 미국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도 않으며, 문화적으로도 조금은 다른 양태를 보인다. 미국 내에서도 엄청난 인구를 점유하는 히스패닉이 미국 사회에 완전히 편입이 되었는지 고민해보면 간단하다. 그들은 미국에서도 스페인어를 주로 쓰며 멕시칸들과 어울리고 멕시칸 음식을 즐겨 먹는다. 하지만 캐나다는 다르다. 캐나다인들은 인종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미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 모두 유럽계 백인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이며, 영어를 주로 사용한다. 그리고 소득 수준도 엇비슷해 서구를 대표하는 나라들이다.

IMG_0630dd.jpg 점점 오지로 뻗어 나가는 가지

그럼에도 다르다. 미국에 오기 전에 읽었던 관련 서적에서 미국은 ‘멜팅팟’의 나라라고 한다. 이민자가 India에서 왔던, Korea에서 왔던 미국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를 따라서 동화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캐나다는 ‘모자이크’로 묘사한다. 각자가 백그라운드를 존중하고 캐나다라는 도화지에 각자의 색을 그린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약 5개월가량 있으면서 멜팅팟은 충분히 체험했다. 중국인 유학생이 아닌 Chinese American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피부색이 아니라 ‘America’라는 국가에서 찾았고 뿌리를 굳이 말하고 싶어 하지 않은 친구들도 있었다. (재미교포 2세 중에 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친구들도 적지 않았다.) 이민자들이 많지 않은 한국인에게 ‘정체성’이라는 화두는 쉽게 올라오는 주제가 아니다. 지방과 수도권의 경험은 다를 테지만, 결국 비슷한 문화를 공유했고 언어도 같으니까. 그런 내게 미국의 ‘이민자’들은 흥미로움, 그 자체였다. 같은 맥락으로, 미국과는 다른 캐나다의 이민자 문화가 궁금했다.

먼저 캐나다와 미국의 가장 큰 차이점은 언어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캐나다의 공용어는 영어와 프랑스어다. 반면 미국은 영어 일변도다.(미국은 공용어가 없다.) 미국의 준주인 푸에르토리코는 스페인어를 사용하지만, 준주는 엄연히 준주다. 나라가 한 언어를 사용하는 게 특별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미국이나 캐나다의 역사는 서구 이민자들에서 발원한다. 영국이나 아일랜드 국민들만 아메리카로 이주한 것이 아니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계 상당수도 새로운 땅으로 이주했다.(미국의 ‘사실상’ 공용어가 독일어가 되었을 수도 있을 정도로 독일계 이민자 수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일자로 된 국경을 따라서 그 색이 완전히 달라진다.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이 모여 살고 있는 퀘벡 주에서는 영어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현지인들도 굉장히 많다. 반면 루이의 땅이었던 미국의 루이지애나주는 불어를 사용한다고는 하지만, 그 화자가 급속도로 감소하고 있다. 같은 대륙으로 이주했지만, 국경 하나로 그 정체성이 뒤바뀌는 것이다.*

IMG_0635.jpg 영연방(개신교 성공회) 국가에서 이렇게 큰 성당(가톨릭)을 가지고 있는 것도 모자이크를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한 국가를 운영하는데 두 개의 공용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작지 않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같은 방송국임에도 두 개의 언어로 방송을 내보내야 하며, 공문서들도 마찬가지다. 캐나다 총리의 자격으로 두 언어에 능통해야 한다고 하니, 그 관문에서 나가떨어지는 후보자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캐나다가 이렇게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의 문화를 짓밟지 않고 품으려는 모습이 그들이 ‘모자이크’의 나라임을 상징하는 모습이 아닐까 한다.

사실 이것만으로 캐나다를 관용의 나라라며 칭송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캐나다가 영연방의 일원이기는 하지만 과거에도 현재에도 프랑스는 영국에 못지않은 강국이다. 역사는 승자가 쓴다는 말이 있듯이, 캐나다 역시 강국 프랑스계 후손들을 쉽게 어찌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미국 정치권이 왜 이스라엘에 유독 친근한 스탠스를 취하는지 생각해보면 답은 간단하다.) 그리고 18세기 말에 독립을 이룬 미국과는 달리, 캐나다의 독립은 20세기에 와서야 진행된다. 아직 후손들이 완전한 가치관 형성을 이루기엔 부족한 시간일 수도 있다. 이 의문을 해소시키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제목 없음.png 몬트리올 중심가에 위치한 이누이트 공예 갤러리

내가 다녀온 토론토, 몬트리올, 그리고 퀘벡시티의 길거리에서는 어렵지 않게 공예품을 판매하는 전시장을 만날 수 있다. 번화가라면 하나씩은 꼭 있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만나볼 수 있는 곱상하고 수려한 자태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공예품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목은 길고 얼굴은 두꺼우며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공예품들을 전시하고 팔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누이트 공예품이라는 주석을 달았다.

캐나다의 이누이트족들은 미국의 인디언(Native American)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인디언은 인종차별적인 명칭이 될 수 있어 미국에서는 이들을 Native American이라고 부른다. 즉, 아메리칸 원주민이다. 이들을 부르는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미국의 아메리칸 원주민이라는 이름이 그들에게 부여하는 정체성엔 한계가 있다. 정말 유럽계 백인들이 이주하기 전부터 아메리카 대륙에 거주했던 ‘원주민’들을 통칭하는 단어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체로키족, 나바호족처럼 유명한 원주민들은 물론이고, 이누이트족도 해석에 따라서 포함될 여지가 있다.(이누이트족도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이다.) 결국 그들은 ‘인디언’이라는 터무니없는 단어에서 벗어났음에도 그들이 가진 어떤 것도 나타내지 못하는 가장 넓은 범위의 ‘정체성’을 이름으로 부여받았다. 반면 이누이트족은 그들의 언어로 ‘인간’이라는 Innuit(혹은 Inuit)라는 이름을 부여받았으니 그들이 가진 것들이 캐나다라는 사회에서 인정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공예품 전시장 이야기로 돌아오면, 미국에서도 원주민들의 공예품들을 파는 상점들은 흔하다. 나도 그랜드 캐니언 투어를 하면서 몇 군데,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에서, 미술관 근처에서 인디언 공예품들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갤러리를 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곳을 채우는 사람들은 나와 같은 여행객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이누이트족의 공예품은 현지인들이 삶을 살아가는 도심의 번화가에,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공예품은 미국을 여행 온 타지 사람들이 모이는 관광지에서 전시되고 있었다.

이누이트족 문화는 캐나다 주류 사회와 다르다. 그럼에도 그들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캐나다를 상징하는 상징물로 주로 사용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2010년에 열린 밴쿠버 동계 올림픽의 심벌이다. 이 모형은 ‘이눅슈크’라는 이누이트들의 상징으로, 포용, 우정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주해 온 자신들과는 다르지만, 같은 땅에 살면서 서로 관심을 갖고 생활의 일부로 인정하는 모습이 바로 ‘전시장’에 나타났다. ‘인디언스’라며 원주민들의 추장 모습을 희화화하고 종종 인종차별 구설수에 오르는 미국과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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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캘리포니아 등지에선 스페인어를 병기하고 있다. 스페인어도 엄연히 미국의 공용어가 되어야 되지 않느냐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캐나다의 불어와는 달리, 미국의 스페인어가 사회에 히스패닉이 완전히 융화되지 못하고 여러 사건에 휘말리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처럼 느껴졌다. 이는 어떤 학문적 배경 없이 나온 나의 경험에서 나온 생각이니 잘 판단하시길.


사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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