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지도 욕된 어느 왕조의 유물
캐나다 여행을 하면서 두 번째로 주안점을 둔 곳은 ‘사람’이다. 지금까지 여행은 친구와 혹은 혼자 다녔다. 가끔 현지에서 즉석으로 사귄 외국인 친구들과 Hang-out을 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살갑게 지내지는 않았다. 보통 술을 마시고 난 뒤, 몇 시간을 함께 보냈을 뿐 그 여정이 계속되지는 않았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적지 않은 사람들을 만난다. 학교에서 선후배로 만나기도 하고 사회에서 직장 동료로 만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사람과의 만남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흐르는 대로 가다 보면 만나는 사람들은 결국 나와 비슷한 부류들이다. 같은 학교에 다니거나, 이공계를 전공으로 하거나, 스포츠를 좋아하는 친구들, 내가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사람들이다. 그리고 더 넓은 범위인 사회에서도 비슷하다. 결국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는 어떤 목적을 갖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령, 내가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할 시절에 새로 만나게 된 인연들은 정치토론을 함께 한 충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생들, 축구를 좋아하는 2030 동호회 사람들 정도다. 결국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만 만나기 마련이다. 아예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내가 사는 세상에서 세계여행이나, 워킹 홀리데이는 유니콘처럼 소문만 무성했다. 많은 사람들이 떠난다는 것은 알았지만, 정작 주위에 다녀왔다는 사람은 없었다. 나름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주위에 적지 않음에도 말이다.
이번엔 지금까지 다녀 본 여행과는 조금 다른 여행을 계획했다. 주변엔 없는 유니콘을 직접 찾아가는 여행 말이다. 주변에 없으니, 그런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내 몸을 던져보기로 했다. 내가 택한 방법은 여행지에서 ‘동행’을 구하는 것이다.
'동행'이란, 혼자 온 여행객들이 일정을 맞춰서 같이 여행지를 돌아보는 하나의 새로운 여행 형태다. 보통 동행은 네이버 유명 카페(미여디, 네일동, 유랑 등), 카카오톡 오픈 채팅 등을 통해 구한다. 가까운 아시아 여행보단 시간과 비용적 측면에서 부담이 돼 주변에 같이 갈 친구들을 구하기 어려운 미주, 유럽여행에서 보통 동행을 구하는 편이다. 보통 동행을 구하는 사람들의 연령은 20대부터 30대 초반까지다. 즉, 배우자를 찾기 전 연령에 있는 사람들이 주로 찾는 여행 방법이다.
동행은 재미있는 문화다. 아예 처음 보는 사람들이 고국과 동 떨어진 곳에서 함께 며칠을 같이 여행한다니. 낭만적이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청춘만이 즐길 수 있는 귀여운 문화라는 생각도 들었다. 동행으로 함께 하는 친구와 내가 공유하는 것은 ‘여행’ 뿐이었다.
여행지는 랜덤 같으면서도 결정할 때 사람들 각각의 특성을 반영하기 때문에 여행지에 모이는 사람들 자체가 경향성을 보여주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바티칸시국을 여행하는 사람 중 가톨릭 신자 비율이 다른 여행지보다 높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시카고에는 건축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파리에는 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많이 올 것이다. 이건 굳이 증거를 제시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당연한 이야기다.
그런 면에서 캐나다는 다양한 사람들을 보기 적절한 동네였다. 글을 더 읽기 전에 캐나다를 떠올려보자. 캐나다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 캐나다를 대표하는 것 무엇이 있을까? Maple Tree, 로키 산맥 정도가 캐나다를 대표하는 상징이자, 여행지일 것이다. 백 번 동의하지만, 로키는 West Coast에 위치한 밴쿠버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주로 찾는 여행지다. 토론토, 몬트리올, 퀘벡은 그런 포인트는 아니었다. 굳이 찾자면, ‘도깨비’가 있지만 전 국민에게 사랑을 받았던 작품이니 만큼 한 곳에 편향되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일 것으로 기대했다.
사실 시작부터 삐그덕거렸다. 캐나다도 한 방향에 치우친 여행지였다. 그 치우친 방향 때문에 내가 여행을 계획하는데 애를 많이 먹었다. 단적으로 여자 여행객들이 많았다. 현지인들이 아니라 여행을 오는 한국인들 말이다. 보통 유럽은 축구를 좋아하는 남자와 멋진 풍경을 좋아하는 여자들이 모두 오기 마련인데, 캐나다는 남자들을 끌어들일 만한 매력이 부족해선지, 남자 여행객들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동행을 구하는데 애를 조금 먹었다. 보통 혼자 온 여성 여행객들은 동행으로 동성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납득이 안 되는 건 아닌지라 그냥 차분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오랜 기다림 끝에 다행히도 동행이 구해져 도시마다 여러 동행들과 여행을 다녔다. 천주교 신자와 함께 성탄절을 기념하는 미사를 드려보기도 하고(미사는 내가 예약했지만,,, 아무튼)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2019년 크리스마스 파티를 즐기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비록 하루 이틀뿐이었지만, 나와는 정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모두가 그렇듯이 나도 세계 여행을 꿈꿨던 적이 있다. 아프리카에서 코끼리도 보고 유럽 미술관들을 방문하고 방콕에서 세계를 여행하는 사람들과 함께 밤을 지새우고 얼마나 낭만적인가! 하지만 내게 시간은 한정적이었고 많은 선택지 중에 하나를 버려야 했다. 그때 ‘세계여행’을 지웠다. 언제나 낭만을 좇을 수는 없었다. 현실과 타협을 해야 했고 세계 여행은 그 현실과 가장 동 떨어진 '낭만'이었다. 그런데 동행으로 만난 세계 여행자들은 그 여행을 통해 인생을 배우고 있었다. 사실 무엇을 배웠는지 자세히 듣지는 못했지만, 나름 깊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모두가 말이다.
내 과거를 반추해보면, 막무가내로 유럽 여행을 가고 그랬던 때 설렘이 지금처럼 계획된, 준비된 여행보다 더 컸었던 것 같기도 하다. 더 재미있었다.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재미도 있었고 새로운 것이 주는 짜릿함도 컸다. 반면 이제는 여행이 주는 감동이 예전만 못하다. 나도 그것을 알고 있고 여행보다는 여행이 알려준 다른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미술이나 클래식 같은 것들 말이다. (클래식은 미국에서 알아가 볼까 한다.) 결국 그 예상치 못한 것과의 조우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 텐데 그 설렘을 잃어버린 것 같아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부터 남들보다 조금 더 배웠다고, 다녔다고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우쭐한 태도로 살아가는 것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사실 세상에 내놓으면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인데, 감언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문득 떠오른다. 항상 경계하지만, 미처 그런 알량한 생각들을 걸러내지 못할 때가 있다. 사실 그런 것들을 안다고 대단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오히려 투박하지만, 정제되지 않은 세계여행의 경험이 다 육중하고 정석의 맛을 내뿜을지도 모르는데, 지금까지 그런 것들을 너무 경시하고 살지 않았나라는 죄책감도 들었다.
여행에서 지금까지 접해보지 않았던 다양한 분야의 사람을 만났다. 특별한 사람들은 아니다. 나중에 특별한 사람들이 될지도 모르지만, 내가 본모습은 평범했다.(특별한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보통의 사람들이고 우리가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여행으로 만난 만큼, 그들의 뚜렷한 특징이 가감되었을 뿐이다. 평소보다 조금 더 적극적이고, 계획적이고, 주관이 뚜렷한 것들 말이다. 그래서 더 잘 드러났다.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어떤 삶을 바라는지. 그들과 인연이 되어 세상 다른 곳에서 다시 만난다면 반가운 마음으로 인사를 건넬 테지만, 나는 그런 면에서 마냥 로맨틱하지 않다. 무너진 여러 인간관계를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그들에게 투영하는 것은 한국에 있는 내 주위 사람들이다.
내가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은 특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많은 고민을 털어놨다. 20대의 치기 어린 고민, 30대의 현실적인 고민, 남녀 사이에 있을 만한 걱정거리들. '자기 인생을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라는 사실에 흠칫 놀라기도 했다. 내 주위 사람들도 비슷할 것이다. 평범하지만 주위 사람들도 나름의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며, 자신만 끙끙 앓고 있는 고민들을 한두 가지 마음속에 품고 살아갈 것이다. 가까울수록 싫은 말을 꺼내기 어려운 것처럼 꽁꽁 싸매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것들에 좀 무심하다. 먼저 화두를 꺼내지 않으면 나서서 그의 아픈 부분을 들춰내고 싶지 않았고 남 인생에 적극적으로 간섭하지 않겠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어차피 성인이라면 그 인생에 ‘조언’이라고 건넬 내 촌철도 그의 생각 속에 있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단지 택하지 못할 뿐.
그런데 내가 너무 무심했던 것 같다. 오히려 애써 ‘외면’하려는 것은 아닐까. 남의 상처를 너무 얕게 본 것은 아닌가. ‘신념’이라는 빛 좋은 성벽 속에 꼭꼭 숨어 주위 사람들과 어느 선 이상의 소통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반문해보게 된다.
2018년에 내가 단어 하나를 만들었다. 혼자 만들었으니, 단어의 뜻도 내 마음대로 붙였다. 그 단어는 '자경'으로, '세상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임의의 뜻을 붙여서 마음속에 품고 다녔다. 세상은 나를 반영한다. 나의 부정은 머지않아 내게 다시 돌아오기 마련이다. 어느 때보다 매서웠던 19년 1월의 기억이 방증한다. 언제나 세상은 나에게 답을 주고 참회를 하게 한다.
이번 여행의 숨겨진 키워드는 '반성'이다. 다른 사람들의 삶을 엿보면서 너무 자기 주관적인 삶만을 바라보며 살지 않았는지 생각해보게 됐다. 여행을 할 때 상대가 따르지 않는다면 숙소와 식사 정도만 공유할 뿐 철저히 내 '계획'을 따랐다. 주관이 뚜렷하지만, 상대와 타협하지 않는 칼같은 면모이기도 했다. 분명 삶에 답은 없다. 포장된 길이 아니라 비탈길이라도 내게 맞다면, 그 길로 주욱 나아가는 것이 가장 올바른 방법이다. 가치관도 똑같다. 한 가치관으로 모두를 재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온도계로 길이는 재는 것과 비슷하달까. 하지만 우리가 이웃과 사회를 이루면서 살아가는 이상,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상대에게 공감하고 위로를 건네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듯하다. 가끔 이 사실을 잊곤 하는데, 가슴 한편은 꼭 상대를 위한 공간으로 남겨놓아 두기를.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 참회록, 윤동주
추신) 어떻게 보면, 쓸쓸하고 차란했던 '도깨비'의 삶이 투영된 퀘벡이란 여행지에 '반성'은 적절한 재제였을지도 모르겠다. 샤또-프롱트냑 호텔을 바라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