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입

미국은 무슨 생각을 할까?

by GOYA
1e154b10868229.5631a16e7ce8f.jpg 영국 주간지, The Economist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핸드폰은 오로지 내가 아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사용되는 기계였다. 번호가 있으면 그 사람과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지만, 번호가 없는 사람과 교류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인터넷도 연결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가지고 있는 핸드폰은 신기하게 무료 인터넷을 지원했다. 바로 SK텔레콤의 ‘프리존’이었다.

프리존은 중학생이었던 내겐 과분할 정도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정확히 그 인터페이스가 자세히 떠오르지는 않지만, 스포츠, 연예, 사회, 정치 등에 관한 뉴스가 굉장히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 나는 축구를 정말 사랑했기 때문에 매일같이 스포츠 기사란을 들락날락했다. 특히, 여름방학 기간에 유럽 리그는 이적 시장이 열리기 때문에 매일매일 어디를 갈 때마다 핸드폰을 들고 연신 새로고침을 눌렀다. 브라질의 신성 네이마르의 차기 행선지를 기다렸고 연신 터지는 슈퍼스타들의 이적 소식으로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그렇게 이적 시장 한 텀이 끝나고 스포츠 기사 업로드 속도가 느려지면서 나는 새로운 창에 호기심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사회란을 눌렀다. 그게 내가 정치, 사회 뉴스를 접한 첫 번째 시점이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나는 기숙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사실 가지고 놀만한 것들이 많이 없었다. 핸드폰도 사실상 없었거니와, 컴퓨터로 무언가를 볼 용기를 내지도 못했다. 그런 내게 한 가지 허용되는 게 하나 있었는데 바로 종이신문이다. 종이신문은 항상 아침식사시간에 기숙사 앞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 아침식사를 하면서 종이 신문을 옆에 끼고 찬찬히 기사를 읽었다. 항상 같은 신문을 본 건 아니고 가장 앞에 놓여있는 걸 집었다. 신문은 나만 읽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항상 보는 신문사가 달랐다. 그게 저녁 시간 축구와 더불어 내가 학교에서 부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치였다.


fb_icon_325x325.png 뉴스와 여러 사람들의 소식을 '문자'로 보기 좋은 플랫폼


대학생이 되고 나서부터 종이 신문은 더 이상 읽지 않았다. 이제 내가 종이신문을 집는 경우는 핸드폰을 쓸 수 없는 기내 상황과 같은 특수한 상황뿐이다. 주로 네이버 뉴스나 페이스북을 이용한다. 특히 페이스북은 뉴스 보기용으로 좋은 플랫폼인데, 일단 언론사들을 팔로우해놓으면 여러 언론사들이 쓴 기사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게다가 어떤 특정 언론사만 읽는 것도 아니라서 헤드라인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팩트를 가려낼 수 있다. 무엇보다 내가 페이스북을 좋아하는 이유는 스크랩이 간편하기 때문이다. ‘나만 보기’로 뉴스를 저장해놓으면 내가 필요할 때 언제든지 뉴스를 찾아서 다시 읽을 수 있다.

뉴스는, 뉴스를 만들어내는 언론은 그 사회의 눈이다. 세상에 단 하나의 정의만 있다면 뉴스는, 신문사는 많을 필요가 없다. 하나의 신문사가 한 개의 뉴스만 내보내면 그만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정말 많은 언론사가 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보수 언론사부터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 등 진보 언론사, KBS, SBS, MBC 등 지상파, JTBC, TV조선, MBN 등의 종합편성 채널 등등등 수없이 많은 수와 종류의 언론이 있다. 각자가 같은 내용을 내보낸다면, 전파 낭비, 자원 낭비, 인력낭비일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많은 언론사가 있는 이유는 한 사회는 한 가지 정의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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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여러 언론사


각 언론사는 뉴스를 보도하면서 자신들의 색채를 담는다. 조선일보는 보다 친기업적으로, 한겨레신문은 같은 뉴스를 보다 진보적으로 담아낸다. 두 언론사 모두 팩트에 근거하겠지만, 다른 결론을 내는 경우가 왕왕 있다. 하지만 그 바운더리는 사회가 허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다. 가령, A언론사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입헌군주제 관점에서 비판했다면, 그것은 사회 구성원에게 공감을 얻어내기도 어렵고 아마 A언론사는 머지않아 사업 철수를 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언론사들은 각자 다른 소리를 내는 것 같지만, 우리 사회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바라보는 방향으로 그 소리를 낸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Fox 뉴스는 대표적인 보수언론사고 CNN, The NewYork Times 등은 진보적인 색채를 띤다. 같은 이슈를 다른 논조로 쓸 테지만, 그 이슈는 적어도 미국 사회의 구성원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이슈다. 그리고 그들의 소비자인 미국 국민들의 입맛에 맞는 논조로 글이 다듬어진다. 우리가 상대적으로 아프리카 내전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중앙일보나 한겨레가 그 기사를 실지 않는 이유와 같다.

미국 언론은 곧 미국의 생각이다. 미국의 입이고, 눈이고, 머리다. 그래서 미국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한 가지 콘텐츠이자, 채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미국에 오기 전부터 한 언론을 구독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언론을 구독하는 목적은 뉴스를 통해 미국의 사고를 이해하고 고급 어휘를 익히기 위함이었다.

많은 선택지가 있었다. Washington Post나 The NewYork Times처럼 일간지를 구독할 수도 있었고 CNN 같은 방송사가 만든 앱을 통해 접하는 방법도 있었다. 처음에는 무료인 CNN과 BBC 어플을 통해서 뉴스를 읽었는데 무료라서 동기부여가 크지 않았다.

그렇게 대안을 찾던 와중에, The Economist라는 주간지를 접했다. 무게감도 상당했고 미국의 사건들보다는 미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점, 국제정세 등에 초점을 맞춰 서술하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몇몇은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The Economist는 미국이 아니라 영국 발행 주간지다. 그래서 영국 철자 법칙을 따른다. 하지만 사실상 영미 주간지다. The Economist 구독자의 50% 이상이 미국인이고 미국에도 여러 곳에 지사를 두고 있다. 적당히 3자의 시각을 볼 수 있는 좋은 주간지라고 생각했다.(물론, 지갑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건 아니다.)

The Economist의 주 타겟층은 Well-Educated British/American이다. 즉, 영어 화자 중에서도 잘 교육된 사람들을 위한 주간지다. 그래서 어휘가 굉장히 어려운데, 모르는 단어를 포털에 검색해보면 GRE/GMAT 단어장에서 그 단어들이 나온다. GRE는 미국 대학원에 입학할 때, GMAT은 MBA 입시에 꼭 필요한 영어 능력시험이다. 즉, 일상 영어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어휘들이 아닌 굉장히 고급 어휘로 표현을 많이 한다. 이 타겟층에서 알 수 있듯이, The Economist는 경제 문제에서는 ‘시장주의자’ 보수적인 색채의 잡지다.

‘뭐 얼마나 다르겠어?’라는 자만으로 구독한 것도 있다. 나도 한국 뉴스 채널을 통해 꾸준히 뉴스를 팔로우하고 나름 국제정세에 비전공자 학생치곤 밝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국제 뉴스의 경우 대부분은 자체 보도가 아니라 인용 보도가 주가 되기 때문에 내가 보고 있는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

일단, 미국은 한국에 관심이 없다. 지나칠 정도로 없다. 내가 가장 놀란 부분인데, 한국 꼭지가 The Economist 지에 나는 경우는 1달에 한 번꼴이다. 상당히 많은 부분이 Asia에 할당되어 있고 중국은 따로 China라는 섹터에 중동은 Middle East/ Africa 섹터로 따로 분류되어 있는 데도 말이다. 일본도 사실상 없다. Asia에서 미국의 관심은 대부분 동남아시아와 India 차지다. 동남아시아에서는 특히 이머징 마켓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는 인도네시아에 관한 뉴스가 생각보다 많이 나온다. India는 빈부격차, 종교 갈등 등 파도 파도 끝이 없는 콘텐츠를 내놓고 있다.

우리에게 특별한 일이 없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가 The Economist를 구독하기 시작한 19년 말에는 일본과 무역 분쟁 (사실상) 합의, 검찰 인사(1월 4주 차 꼭지), 북한과의 갈등, 미군 주둔 비용 문제, 끝을 모르는 부동산 가격 상승 등 꽤 많은 문제들이 폭풍우처럼 지나갔다. 그리고 이것들을 우리는 꽤 민감하게 반응했다. 적어도 한국 매체들은 많은 나라들이 우리의 이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기사를 많이 내놨다. 우리 메이저 언론사들은 그것들을 대서특필 했으니, 나는 그런 이슈들이 정말로 미국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지 알았다. 하지만 그들은 정말 일말의 관심도 없었다. 비참하리만큼. 직접적으로 미국과 관련이 있는 미군 주둔 비용 문제는 정말 한국에 국한된 문제였다. 방위비 분담금을 5배나 인상하겠다는 파격적인 이슈임에도 일언반구도 없었다. 국방부, 안보 관련 부처에 일하시는 분들은 관심을 가지겠지만 적어도 미국인에게 당면한 과제는 이란과 원만한 갈등 해결, 치솟는 부동산 가격(한국은 예시로 들지 않았다.), 영국의 브렉시트였다. 미국이 바라보는 한미 외교는 마치 우리가 동남아에 작은 나라와 일어난 문제들을 보는듯한 느낌이었다.


world-commodities-map_536bebb20436a.png 세상은 넓은데, 우리는..?


세계는 크게 3개의 경제권으로 이뤄져 있다. USMCA(제2의 NAFTA)로 엮인 북미, EU로 이뤄진 유럽 그리고 한국이 속한 동아시아 경제권이다. 대한민국 매체를 통해 세상을 보면 대체로 동아시아 경제권> USMCA>>EU 순서로 관심을 갖는다. 동아시아야 한국이 속해있으니 말할 것도 없고 USMCA에서도 그 관심은 US에 집중되어 있다. 우리는 뉴욕증시가 연일 신고가를 갈아치우고 있다는 사실엔 놀라워 하지만, 정작 캐나다엔 어떤 기업이 있는지 조차 모르는 형편이다. 그리고 EU인데, 사실 EU는 Brexit와 ECB의 금리 결정을 제외하곤 우리 한국과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다. 아마 한국에는 ECB 총재가 마리오 드라기에서 라가르드로 교체되었다는 기사를 뒤늦게 접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Brexit도 어떤 사건이 임박해서야 매스컴을 탈뿐, 보리스 존슨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한국 매체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는다. 보리스 존슨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도 많다.

The Economist는 영국 주간지기 때문에 유럽과 북미 소식을 주로 다루면서도 매주 브렉시트의 상황을 꾸준히 업데이트를 하고 있다. 지금 영국은 패를 내놓은 상황이고 사실상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지만, 영국이 설정한 마지노선이 유럽으로 하여금 심리적 압박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하는 등 굉장히 상세하게 그 과정들을 소개해주고 있다. 대한민국이 19년 하반기에 있었던 일본과의 무역분쟁을 정치, 경제, 역사, 문화 등 다양한 방면에서 바라본 것과 비슷한 맥락이었다.

앞서 말했지만, The Economist는 한국에 관심이 없듯이 일본에도 큰 관심을 갖지는 않는다. 그냥 ‘알아서 잘하겠지’라는 느낌이다. 대신 그 스포트라이트를 유럽이 받고 있다.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히 분석하고 설명한다. 앞서 언급한 브렉시트를 포함해 프랑스에서 지속되는 철도 파업, 변화하는 크리스마스 풍경 등 많은 면에서 그것들을 설명한다.

우리는 유럽을 사실상 선진국 집단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일반인 관점에서 유럽을 관광 이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미국으로 이민을 간 사람들은 많지만, 유럽으로 이민을 간 사람들은 확실히 미국보다 숫자가 덜하다.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다. 막상 유럽 브랜드를 떠올려보면 생각보다 다양하지 않은 브랜드에 놀라기도 한다. 유럽 브랜드 중에서 프랑스 명품, 독일 자동차를 빼곤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 드물다. 개인 단위에서 투자도 아마존, 애플, 마이크로 소프트 등 미국 회사에 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유럽 기업에 투자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찾기 어렵다. 어떤 대학 철학과 교수가 자신을 제외하고는 독일 철학을 독일에서 공부한 사람이 학교에 전무하다며 학계에서 다양성이 상실되고 있다는 식의 인터뷰를 접한 적이 있다. 그 교수도 퇴임을 앞둔 시점이었다.

세상은 이렇게 많은 시점으로 세상을 본다. 중동에도, 아프리카에도, 유럽에도, 아시아에도 자신들에게 많은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오직 한국만 미국 일변도에 머무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주변엔 생각보다 많은 기회가 있다. 중국이라는 잠재력도, 시장도 큰 나라가 지척에 있고 독일, 스위스와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의 정밀기계, 첨단소재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일본도 이웃국가다. 분명 역사 문제, 이념 갈등은 해결해야겠지만, 나라 간 갈등이 없는 관계가 어디 있을까. 한국사회는 너무 심각하리만큼 중국을 혐오하고 일본을 비난한다.* 이런 관계는 우리에게 도움이 일절 되지 않음에도 말이다. 가끔 정말 많은 기회가 있는데 우리가 사실상 외면을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미국보다 넓은데 말이다.


* 여기서 일본과 중국은 민간인을 기준으로 한다. 역사, 정치, 정부 문제 등은 일반인이 처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1200px-The_Economist_Logo.svg.png 주간지의 Apple이라 불리는 The Economist

The Economist를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익숙지 않은 단어들로 긴 기사를 읽는 것은 꽤 고역이다. 나도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해서 주간지를 읽는 게 아니다. 그리고 The Economist 뿐만 아니라 르몽드, 알자지라, 사우스 모닝 차이나 포스트, 환구시보(?) 등의 세계적인 언론이 보도하는 중요한 내용은 중앙일보 등에서 번역해 내보낸다.

그럼에도 The Economist를 읽어보기로 한 이유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얼마나 큰지 실감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국어로 된 텍스트와 영어로 된 텍스트가 담는 정보의 크기가 얼마나 차이 나는지 The Economist 강독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다. 한국인을 상대로 한 언론과 세계를 상대로 하는 언론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었다. 내용의 질이나, 포함하는 범위 모두 거대했다.

그리고 미국, 영국 그리고 서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텍스트를 읽는 게 확실히 도움이 된다. 미국인, 서양인들과 Hang-out도 좋지만, 정제된 모임이 아니라 가볍게 만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 대부분은 출처가 불분명하다. 친하게 지냈던 영국인도 브렉시트를 Idiot 한 행동이라고 비난했지만, 최근 총선을 보면 여전히 영국은 Brexit를 지지를 하고 있다. 그것도 보수당의 의석이 전회 대비 증가했다. 한국 사람들이 주로 여행을 가는 캘리포니아와 뉴욕주는 Blue State으로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찍어 온 지역이다.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은 트럼프를 싫어하고 클린턴과 바이든을 지지하겠지만, 트럼프가 당선됐고 2020년에도 지지율이 우리가 직접 체감하는 것보다 높다. 트럼프를 지지했던 기반은 캘리포니아와 뉴욕이 아닌 러스트 벨트, 빈 벨트, 크라이스트 벨트라고 불리는 낙후된 공업지대, 농장지대, 기독교(개신교) 주다.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중부 사람들이 트럼프를 지지하니, 우리에겐 트럼프를 지지하는 것이 Weird 하게 느껴질 수밖에. 인문학적 배경과 현실을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는 건 가까이에 있는 친구가 아니라 정제된 텍스트다. 우리 주변에 한국 사회에 관심 있는 한국인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보면 답은 간단하다.


사진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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