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The Unknown
서른이 되기 전까지
20살의 여행은 지금과 참 많이 달랐다. 아무것도 몰랐고 모든 것이 새로웠다.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었던 예술품이 신기했고 백인들이 거니는 길거리가 이국적이었다. 하루하루가 새로웠고 세상은 다양했다.
5년이 지난 지금, 나는 새로운 것에 무뎌졌다 설렘은 사라졌고 익숙함에 익숙해졌다. 미국은 처음이었지만, 야자수가 늘어선 도로도, 백인들이 거니는 거리도, 위대한 작품들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조금 지루했다.
언젠가부터 나는 항상 내 앞에 놓인 선택지만을 택하기 시작했다. 선택지 안에 없는 것들에 대해서 크게 고민을 하지 않았다. 시카고에서는 로비 하우스를,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우버 본사를, 뉴욕에서는 FRB를 들렀다. 누군가에게 독특해 보일지 몰라도 내겐 그냥 일상의 연장선상이다. 스타트업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Uber를 찾았고 경제 이슈를 팔로우하는 내게 FRB는 익숙했다. 나는 항상 앞에 놓인 선택지에서만 놀았다. 예술 중엔 미술, 뉴욕 하면 돈, 시카고 하면 건축처럼 말이다.
5년이란 시간은 이미 나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있었다. 방향을 찾아 기뻤지만 내 세상에 매몰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이제 나는 새로운 것들에 대해 ‘잘 몰라서...’라는 핑계로 물러서기 일쑤였다. 20살의 나는 전혀 그렇지 않았는데 말이다.
나는 잘 몰라서 미국에서 이미 많은 기회를 놓쳤다. 필름 산업의 최고봉 Los Angeles에서 영화 한 편을 보지 않았고 셀럽에 관심이 없다는 이유로 그들을 찾아가 구경조차 하지 않았다. 멕시코는 흥미가 없어 가까운 거리임에도 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때는 괜찮았고 지금도 괜찮지만 분명 내게 미지의 세계를 볼 기회를 놓친 것은 틀림없었다. 나는 이미 세상에 흥미가 없어졌고 익숙함에 익숙해갔다.
내 세상에 매몰되는 것은 미지의 세계를 더 이상 만나지 못한다는 의미기도 했다.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세상에 60년은 더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나니, 하품이 절로 찾아왔다. 필라델피아에 오면서 다짐했다. ‘이번에는 다르리라.’ LA에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지만 필라델피아에서는 설렘을 다시 되찾겠다고.
한동안 겨울의 필라델피아는 지루했다. 내가 좋아하는 야구는 가을이 되면 시즌이 끝난다. 다른 스포츠를 볼까 싶다가도 작지 않은 티켓 비용 때문에 관람이 쉽지 않았다. 특히, 가난한 유학생에게 그런 스포츠는 그림의 떡이었다. 그래서 겨울 동안 필라델피아에서 저렴하게 꾸준히 즐길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찾아보다가 재미있는 Deal을 발견했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대학생들에게 EZseatU라는 좋은 멤버십을 제공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채워지지 않은 좌석을 대학생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다. 멤버십 비용은 단돈 25$로 가장 저렴한 좌석의 반값도 안 되는 좋은 제안이었다. 보자마자 별다른 고민 없이, 바로 멤버십에 가입했다. 그렇게 미지의 영역으로 향했다.
첫 공연은 Rachmaninoff의 Symphony No.3였다. Rachmaninoff가 교향곡 No.3을 이 곳에서 Philadelphia Orchesta와 초연했다고 알려져 있다. 오케스트라 공연은 처음이기 때문에 핸드폰도 끄고 물도 마시지 않고 기침도 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 조금 긴장하면서 봤는데 기대 이상으로 멋진 작품이었다.
나는 음악 공연에서 자리를 크게 연연하는 관객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를 앞에서 보고 싶은 건 당연하지만, 그게 아닌 이상 가수의 얼굴은 사실 크게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가창력이 좋은 가수의 공연은 멀찍이서 지켜보고 뛰면서 즐기는 공연은 스탠딩으로 관람을 한다. 오케스트라는 눈으로 즐기는 공연이 아니기 때문에 자리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좋은 구경을 놓칠 뻔했다.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러 가기 전에, 유튜브로 찾아 몇 영상을 감상했다. 여러 악단에서 촬영한 음악들을 들었는데 사실 음악을 모르는 내게 이들의 연주는 항상 똑같았다. 언제나 바이올린은 바이올린의 소리를, 첼로는 첼로의 소리를 냈다. 올라올 때 올라오고 치고 나올 때 치고 나왔다. 어떤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해도 내가 느끼는 감상은 변함없었다. 적어도 유튜브로 접한 음악은 내게 큰 감흥을 주지는 못했다. 뭐가 유명한지, 어떤 개성을 지녔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음악에 대한 무지기도 하고 음악을 ‘청각’으로 즐겼기 때문에 든 착각이었다.
무대 위 지휘자의 모습은 많이 달랐다. 지휘자는 정말 그의 열정 모두를 쏟아붓고 있었다. 지휘자의 절도 있는 동작에 따라 오케스트라가 움직였고 민첩하게 반응했다. 작은 체구였지만 그의 움직임은 생동감이 넘쳤다. 생각보다 강렬하게 음악을 전개하기도 하고 차분하게 분위기를 깔기도 했다. 마치 그의 움직임이 노래로 표현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클래식을 MP3로 들어서는 안 되는 이유, 각 도시마다 필하모닉이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었다.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에 자신의 색을 덧입혔고 그들을 완전히 자신의 일부분으로 만들었다. 왼팔로 바이올린을, 오른팔로 첼로를 연주했다. 악보는 거들뿐이었다. 내가 들었던 선율은 라흐마니노프를 해석한 지휘자 야닉의 새로운 노래였다. 라흐마니노프의 Symphony No.3는 한국에서도, 유럽에서도, 미국에서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야닉의 해석은 오로지 이곳에서만 감상할 수 있었다.
EZseatU 멤버십으로 나는 1월 한 달 동안 세 가지 공연을 감상했다.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3번, 베토벤의 콘체르토 No.1과 No.5다. 그리고 3월까지 Beethoven Now기간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베토벤의 협주곡과 교향곡을 연주한다. 이렇게 무제한으로 클래식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 누군가에겐 정말 좋은 기회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쉽게 얻을 수 없는 기회기도 하다.
EZseatU가 아니었다면 나는 사실 그 흥미를 쉽게 잃었을 것이다. 한 번 정도는 공연을 봤을 테지만, 단 한 번의 경험은 사실 일상으로 들어오기엔 부족한 횟수다. 어떤 것이든 찰나의 순간을 만나기 위한 준비과정이 필요한 법이다. 고야의 작품에 빠지게 된 것도,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도 다 그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6개월가량 있었지만, 이제야 미지의 세계로 첫 번째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래도 파가니니의 라 캄파넬리, 베토벤의 Concerto No.5를 찾아 듣는 걸 보면 전문가는 안 될 지라도 좋아하는 음악들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것 같다. 이번 주엔 어떤 음악을 들려줄까 기대하면서 유튜브로 찾아보는 과정도 설렌다. 오랜만이다.
아는데 선택하지 않는 것과 몰라서 고를 수 없는 것은 다르다.
* 미술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미미하다는 의미일 뿐이다.
** 사진을 찍는다고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 새로운 것들은 당연히 많다. NBA 경기도 봤고 NCAA 미식축구 경기도 봤다. 하지만 그 경험은 단발성에 그쳤다. 나는 아직 필라델피아 76ers가 어느 정도 순위에 위치해있는지 모르고 미식축구의 꽃이라고 하는 슈퍼볼도 보지 않았다. 이런 경험은 일상으로 이어지지 않으니, 새로운 경험이라고 말하기 민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