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D.C. 굉장히 고리타분한 도시다. 세계 정치의 중심이라 불릴 만큼 많은 외교관들이 활동하는 도시며, 미국식 삼권분립을 상징하는 연방 의회 의사당, 백악관, 연방 대법원이 위치한 도시다.
의회 민주주의,연방 의회의사당
세계에는 이런 계획 수도들이 여럿 있다. 호주의 수도는 멜버른도, 시드니도 아닌 캔버라고 터키의 수도는 이스탄불이 아닌 앙카라다. 이들은 모두 ‘정치적인’ 기능을 한다. 정부 기관과 관련 안건에 대해 상의를 하고 외교관들이 서로 교류하며, 많은 싱크탱크에서 다양한 정책을 내놓는다. 굉장히 다이내믹하고 박진감이 넘치는 일들이 매일 처리되는 멋진 도시지만, 여행자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그래서 터키에서 앙카라를, 호주에서 캔버라를, 캐나다에서 오타와를 들리는 여행객들은 많지 않다. 아무리 멋진 건축물과 다양한 이야기가 있더라도 이건 여행객을 위한 상품이 아니다. 보통 이런 도시는 여행객들을 환대할만한 여유가 없는, 오히려 살벌한 경비로 긴장감이 넘치곤 한다.
이에 반해, 워싱턴 D.C는 계획도시치곤 포지셔닝을 굉장히 잘한 수도다. 분명 미국 동부를 여행하는 사람들 대부분의 목적지는 워싱턴 D.C가 아니라 뉴욕이다. 그리고 여행객들은 그다음 목적지로 거리가 멀지 않은 워싱턴 D.C를 택한다. 적당히 볼거리도 있고 다른 도시기도 하니까.
바둑판 도시,워싱턴 D.C
워싱턴 D.C는 계획도시다. 바둑판처럼 Avenue와 Street이 교차하고 백악관과 연방 의회 의사당을 잇는 큰 대로가 있다. 그리고 미국의 전부가 있다.
워싱턴 D.C를 쭉 둘러보면, 토마스 제퍼슨, 에이브러험 링컨, 마틴 루터 킹 Jr 등 존경받는 위인들을 기억하는 공간들을 만날 수 있다. 미국인들이 갖는 국가에 대한 자부심, 자긍심, Patriotism(Chauvinism?)을 직접 만나볼 수 있는 도시기도 하다. 이를 가장 쉽게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은 사실상 워싱턴 D.C 여행의 전부인 ‘박물관’이다. 워싱턴 D.C는 박물관 테마파크다. 미국을 대표하는 여러 국립 박물관들을 ‘무료’로 마음껏 관람할 수 있다. 워싱턴 D.C 여행이 사랑받는 이유이자, 따분한 이유다.
박물관은 한 사회의 모습을 과감히 보여줄 수 있고 집약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장소 중 하나다. 박물관에서는 다른 여행지가 담을 수 없는 시간을 공간에 담을 수 있다. 미국의 우주전쟁 역사를 엿볼 수 있고 남북전쟁의 현장을 직접 느낄 수 있다.
미국 자연사 박물관, 우주 박물관, 아프리칸 아메리칸 박물관, 아메리칸 원주민 박물관 등등 워싱턴 D.C에는 정말 많은 종류의 박물관들이 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는 않아서 모두 둘러볼 수는 없었는데 나는 고심 끝에 총 4 곳의 박물관을 방문했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국립 여성 예술가 박물관, 미국 역사박물관 그리고 내셔널 갤러리다. 이번 여행은 박물관에서 시작해 박물관으로 끝났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의회 의사당을 방문한 것을 제외하곤 대부분 박물관에서 일정을 보냈다. 가히 박물관의 올란도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