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홀로코스트나 2차 세계대전에 대해 큰 관심이 없다. 분명 가슴 아픈 사건임은 분명 하나, 우리에게도 그에 상당하는 아픈 역사가 있다 보니 관심이 떨어진다. 게다가 독일이나 폴란드가 아닌 미국에서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을 방문하는 것도 난센스 해서 원래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에 가지 않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정보를 수집하는 와중에 세상 어느 곳보다 자료도, 모습도 잘 정리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자투리 시간을 내서 부랴부랴 홀로코스트 메모리얼로 향했다.
다니엘의 일기
박물관 실내는 정리가 잘 되어있었는데 조금 투박한 모습이었다. 아마도 수용소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처럼 보였다. 전시장도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다니엘이라는 한 유대인 청년의 인생을 토대로 그의 역경을 따라가는 전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실물을 본뜬 전시 등이 감정을 이입해 전시를 감상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게다가 전시장을 올라가기 위한 엘리베이터는 마치 수용소의 그것처럼 느껴져 조금 섬뜩하기도 했다.
전시장의 분위기는 차분하고 공기는 묵직했다. 끔찍한 사진들도 여럿 있었다. 사직 속에선 검게 그을린 시체, 뼈만 앙상한 사람들이 도구를 들고 일을 하고 있었다. 사람을 가축처럼 도살하고 살육했던 장면들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어 상당한 거부감이 들었다.
분명 방대한 자료와 전시로 유익한 박물관이었으나, ‘감동적인’ 박물관은 아니었다. 마지막 한 순간이 없었다면 스쳐 지나간 박물관 중 하나로 기억했을 것이다.
불꽃은 꺼지지 않는다.
구조상 가장 마지막에 볼 수 있는 공간에는 촛불이 스르르 타고 있었다. 홀로코스트로 희생된 유대인들을 추모하는 공간이었다. 이 공간에서 촛불은 불을 뿜으며 타들어갔고 꺼지기도 했다. 꺼질 때면 지나가는 관람객들이 주위 촛불에서 불을 옮겨주어 그 빛을 다시 되찾았다.
‘왜 유대인들은 반항하지 않았을까?’ 항상 궁금했다. 똑똑한 유대인들이 불의에 순종하고 반란이 없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어떻게 해도 죽을 거 반란을 하는 편이 여러모로 이롭다. 모든 유럽에서 유대인은 소수였지만, 적어도 수용소에서는 유대인들이 다수였으니까. 항상 이런 의문을 품고 유대인에 관한 책들을 읽었는데 홍익희 저자의 ‘세 종교 이야기’가 내 응어리를 명쾌하게 풀어줬다.
내가 종교를 이해하는 관점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자신의 나라 없이 살아온 민족이다. 언제나, 어디서나 그들은 소수였고 그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게토라는 그들만의 공간을 구축했다. 이 게토는 런던에도, 파리에도, 암스테르담, 바르샤바, 비엔나 등 유럽 각지에 있었다.* 이들은 유럽 대륙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민족이었다. 예수를 죽인 저주받은 민족이라는 표면적인 이유와 자기들끼리 호의호식하는 현실적인 이유때문이다. 차별과 멸시는 물론이고, 추방 등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언제나 점조직처럼 분산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떤 지역에서 몰락해도 유대인이라는 민족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유럽 각지에 뿔뿔이 흩어져 있던 민족이 나치라는 구심력에 의해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선택된 민족이 향한 곳은 야훼의 곁이 아니라 지옥이었다. 매일같이 자기 민족들이 픽픽 쓰러졌고 사라져 갔다. 그 현장에서 랍비 등 유대교 지도자들은 저항보다는 항복을 택했다고 한다. 그들은 저항이 잠깐의 행복을 가져올지라도 더 큰 보복으로 찾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민족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희생시켰다.
갑자기 유대인 이야기로 빠진 이유는 앞서 말한 촛불로 가득한 방이 이 이야기를 담아냈기 때문이다. 촛불은 유대인의 생명을, 그 공간은 유대민족을 상징했다. 그들은 수용소에서 자신의 희생을 감내했다. 자신의 해방이 아닌 민족의 해방을 택했다. 나치의 악의로 유대인들은 하나둘 생명을 잃어갔다. 하지만 곁에 유대인이 있기에, 아직 세상엔 촛불이 남아있기 때문에 그 공간은 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 살아남는다. 자신의 불꽃은 꺼질지라도 유태 민족이 이 세상에 살아있으면 언젠가 또 다른 불꽃이 타오를 테니까.
*책의 저자는 16세기 스페인, 17세기 네덜란드, 18세기 영국, 20세기 오스트리아 등 유럽의 강국 속에는 항상 유대인이 있었다고 서술한다. 이유는 유대인들이 고리대금업을 꽉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은 ‘신’의 것이라며, 시간으로 돈을 버는 고리대금업을 기독교에서는 금지했지만 기독교 교리에서 자유로웠던 유대인들이 고리대금업, 금융업을 지배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