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가가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나라

박물관 테마파크, 워싱턴 D.C (3)

by GOYA


나는 모든 여행을 준비할 때 가장 먼저 책을 빌린다. 주로 책을 통해 여행에 필요한 정보들을 습득한다. 가이드북은 물론이고, 여행을 할 때에는 사실상 역사적 명승지를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맥락을 이해하고자 역사 서적을 많이 읽는 편이다. 그렇다고 역사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가끔 재미있는 역사를 가진 나라도 있지만, 역사책은 내게 썩 맞는 책은 아니다. 단지 즐거운 여행을 즐기기 위한 고통의 과정일 뿐.


미국에 오기 전에도 미국 역사 서적 한 권을 읽고 왔다. 그런데 정말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계절학기를 수강하느라 시간은 많지도 않은데 내용은 많아 시간에 쫓겨 책을 읽었다. 게다가 짧은 역사를 장황하게 설명해 읽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같은 이유로 미국 역사박물관을 방문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는 자연사 박물관이나 우주 역사박물관을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도 4월에 투표를 위해 다시 방문할 워싱턴 D.C이기 때문에 지루함을 감내하고 역사박물관을 선택했다.

20200119_110954.jpg 아들 부시, 빌 클린턴,아버지 부시 그리고 지미 카터


분명 좋은 사료가 많이 있었지만, 하품이 나를 유독 많이 찾았다. 역사는 문화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도구 정도에 불과한데, 너무 세세했다. 이 정도의 관심은 내게 없었다. 그래서 나오는 하품을 입으로 가리면서 빠르게 관람했다. 그럼에도 좋은 선택이었다. 내가 ‘미국에서 알고 싶었던 것’을 찾았기 때문이다.

20200119_123030.jpg 누가 이 사람들을 모를까?

미국이 생산하는 최고의 수출품은 무엇일까? 미국은 세계 초강대국답게 많은 상품을, 제품을 생산한다. 애플, 구글, 넷플릭스 등에서 생산하는 제품과 서비스도 일품이겠지만, 내게 저 질문에 대한 답을 하라면 나는 주저 없이 $라 말할 것이다.


우스갯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달러는 미국이 생산하는 제품 중에 가장 높은 부가가치를 지닌 수출품이다. 돈의 실질적 가치는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액면상 가치는 100$까지 올라가니, 그 수익이 몇 천배에 달한다. 다른 나라도 같지 않느냐고? 미국처럼 사실상 무제한으로 지폐를 시장에 풀면서 인플레이션을 겪지 않는 나라는 기축통화국인 미국뿐이다.*


달러를 위시한 미국의 시장 경제 시스템은 사실상 세계를 장악하고 있다. 대한민국도 이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힘든데, 우리 메이저 언론사들은 미국의 여러 싱크탱크, 국제기관 등에서 내놓은 통계를 토대로 대한민국의 상태를 진단한다. 한국의 기업은 미국의 S&P, 무디스 등 신용평가사에게 등급을 받으며 그 등급을 토대로 채권 등을 발행한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에서 정책을 입안하는 관료들도, 학교에서 후대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많은 수의 교수들도 미국에서 학위를 받는다.


이런 패권이 자랑스러운지, 미국은 돈에 관한 전시장의 규모를 크게 만들어 놨다. 과거에 썼던 금화, 닉슨이 폐지한 금태환제, 브래튼 우즈 체제 등 미국이 세계 경제를 이끌었던 상징적인 몇몇 순간들을 전시하고 아이들에게 교육하고 있었다. 다른 나라에선 이렇게 돈과 관련한 전시를 큰 규모로 했던 것 같지는 않은데, 다시금 칼뱅주의 미국을 느낄 수 있었다.

com.daumkakao.android.brunchapp_20200209115752_8_crop.jpeg 미국식 자본주의의 상징, 맥도날드


그 돈을 전 세계로 뿌릴 수 있는 원동력은 단연 석유지만, 미국의 브랜드도 무시할 수 없다. 1900년대는 J.P Morgan, U.S Steel 등 Giant들이 활보했던 시대라면, 2000년대는 Amazon, Microsoft, Google 등 IT 공룡들이 서식하는 시대다. 이들은 단순한 장사꾼이 아니다. Microsoft의 빌 게이츠, Apple의 스티브 잡스, Amazon의 제프 베조스의 영향력은 영국의 보리스 존슨, 프랑스의 마크롱을 가뿐히 뛰어넘는다. 미국인의 시각에서 이들은 최고의 사업가이자, 미국의 영향력을 높이는 애국자다. 미국 역사박물관은 그들의 발자취를 당당히 미국의 역사의 일부로 인정했다. 약간의 흠집이 있어도 말이다.


왜 미국은 유니콘이 많을까? 내가 미국에서 풀고 싶었던 질문이다. 미국에 와서도 많은 고민을 했다. 앞서 적은 ‘길거리 창의력’에서는 길거리에 있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 덕분에 유니콘을 받아들이는 사고의 유연성이 늘어났다고 밝혔고 ‘또 다른 기묘한 프란시스코’에서는 유니콘의 새로운 기술에 익숙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샌프란시스코가 테스트배드 역할을 하면서 유니콘의 성장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완충지대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는 사실 기반이다. 유니콘이 태어나야 하는 당위를 설명하지는 못했다. 그 답, 박물관에서야 찾을 수 있었다. 미국은 상인들을, 장사꾼들을, 사업가들을, 사기꾼들을** 존경하고 위대한 위인으로 인정한다. 그 존경이 창업가가 꿈을 꾸고 투자자들이 돈을 대고 새로운 기술들을 소비자들이 쉽게 받아들이는 문화로 정착한 게 아닐까?



* 미국 달러의 2/3는 미국 국내가 아니라 해외에서 거래되고 있다. 가장 상징적인 거래는 석유다. 석유를 유로나 엔화로 결제하지 않는 이상, 달러의 아성을 넘볼 화폐는 세상에 없다. 이건 논란의 여지가 없다.

** 최고의 사업가들은 최고의 사기꾼이기도 하다. 거래는 협상이다. 회사에게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는 사업가는 곧, 소비자에게 ‘실제’ 가치보다 더 높은 가치로 상품을 거래했다는 의미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