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물결이 만드는 큰 파도

박물관 테마파크, 워싱턴 D.C (4)

by GOYA

- 국립여성예술가미술관(National Museum of Women in the Arts, NMWA)

3 Sin(x)+4 Cos(x)=5 Sin(x+a)


미술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즐기는 사람 중 한 사람으로 항상 마음속 한편에 자책 같은 것이 하나 있었다. 세상의 반은 여성인데, 미술의 대부분은 남자 차지였다. 르네상스의 천재 3인방부터 후기 인상파의 3인방까지 남자가 아닌 화가가 없었다. 미술을 좋아하는 나도 여성 화가의 이름을 대라고 하면 야요이 쿠사마, 주다 시카고, 프리다 칼로가 전부였다. 주다 시카고와 야요이 쿠사마는 현대에도 활동을 하고 있는 예술가이고 프리다 칼로도 20세기에 활동을 했던 예술가다. 20세기 이전 미술 바닥은 남자들의 독차지였다.


여성들은 그 자체가 예술의 일부가 되었다. 우리가 위대한 화가의 위대한 작품이라고 여기는 다빈치의 모나리자, 앵그르의 그랑 오달리스크, 마네의 올랭피아는 모두 여성이 주인공이 되는 작품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나리자에서 ‘스푸마토 기법’을, 앵그르에서 ‘정형화된 아름다움’을, 올랭피아에서 ‘평면적인 화풍’에 관심을 가졌을 뿐이다. 모나리자, 올랭피아, 그랑 오달리스크 속 여성들에게 그 이상의 관심을 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호사가들이 좋지 않은 소문만 불러일으켰다.

Edouard_Manet_-_Olympia_-_Google_Art_Project_3.jpg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들.


나는 미술품을 작가의 생애에 초점을 맞춰 관람한다. 반 고흐는 노란색 색감이 짙어지는 그림들은 압생트에 중독되었을 적에 그린 그림이고 앙리 마티스의 야수파 작품들은 그가 병상에 누워있을 때 시작한 그림들이다. 피카소는 자신의 연인에 따라 화풍이 극적으로 변하는 화가 중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유명한 화가를 중심으로 그림을 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유명해야 내가 알 수 있는 정보가 많고 작품을 해석할 도구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 예술가 박물관에서 인상적이라고 여길만한 작품이 없었다. 직관적으로 의미가 드러나는 게릴라 걸스의 '여자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옷을 벗어야 하나?' 운동 정도가 인상적이었다.


IMG_20200118_211900_321.jpg 게릴라걸즈의 운동


미술관에 한국 작가들의 작품들이 많아 의아했다.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면, 응당 환영해야 마땅하나 다른 어떤 미술관에서도 한국 작품들을 본 적은 없었다. 아시아 작품이 있다면 과거 중국 왕조의 병풍이었고 일본 화가들의 작품이었다. 야요이 쿠사마도 일본을 대표하는 예술 고, 우키요에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한국에도 김환기, 이중섭, 박수근 등 걸출한 화가들이 여럿 있지만, 미국 어떤 미술관에서도 이들 작품을 보지는 못했다. 그런데 유독 국립여성 예술가 미술관에는 김수자를 비롯해 3~4명의 국내 여성화가 작품이 여러 개 전시되어 있었다. 일본 작품은 1개 정도가 전시되어 있는데 말이다. 이는 여성운동에 대한 한국의 열린 사회를 상징하는 단면일 것이다.

IMG_20200118_211900_333.jpg 한국 화가 김수자가 재해석한 보따리

분명 한국은 많이 부족하다. 아직도 사회에는 부조리한 면들이 많고 명망 있는 지식인들도 아쉬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젠더 갈등도 격해지면 격해졌지, 더 완화되었다고 보긴 어렵다. 게다가 여성인권의 사각지대인 아시아에서 1등은 사실 낙제를 겨우 면한 턱걸이 수준일 것이다.


그래도 이런 작은 변화들이 시대의 물결을 만든다. 르네상스라는 시대의 물결은 우연한 천재들의 탄생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의 경제적 부흥, 상업의 발달, 이슬람 세계와의 교류, 고대 지식들의 유입이라는 작은 물결들이 만든 시대의 흐름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미켈란젤로와 같은 천재들은 그것을 상징할 뿐이다. 아직은 미약한 물결이지만 이 변화들이 언젠가는 새로운 시대의 물결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유쾌한 반란을 생각해보게 되는 전시였다.


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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