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 작가들의 산실, 첼시 갤러리

뉴욕 미술 여행(2)

by GOYA

- 첼시 갤러리

20200303_161827dd.jpg 앤디 워홀, 프리다 칼로, 키스 해링, 바스키아

뉴욕에는 SOHO, Chelsea, China town 등 다양한 지역에 갤러리가 있는데 가장 유명한 지역은 아무래도 첼시 지역이다. 첼시 지역에는 매출이 조 단위를 훌쩍 넘기는 데이비드 즈위너(David Zwirner), 가고시안(Gagosian), 페이스(Pace) 등 세계적인 갤러리부터 Lehmann Mauphin, Hauser& Wirth, Doosan gallery 등 보다 규모가 작은 중소 갤러리들이 모여 있다. 이들이 판매하는 작품들은 갤러리와 직접 계약된 생존한 작가들의 작품, 죽은 화가들의 작품 혹은 Screen Print들이다.

나는 동시대 화가들을 잘 모르기 때문에 가이드 투어를 신청했는데 코로나 여파로 다른 인원들이 취소되었다. 그래서 나는 뉴욕에서 직접 예술을 하고 있는 예술가 가이드님과 단둘이 갤러리 투어를 했다.


20200303_160149dd.jpg 세상의 것을 가리는 현란한 색채


내가 가장 궁금했던 부분은 ‘어떻게 작품들이 미술관에 전시되나’였다. 미술은 살아있는 예술이다 보니, MoMA나 휘트니 미술관 같은 동시대 예술을 아우르는 미술관에서는 아직 살아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쿠사마 야요이, 데이비드 호크니, 데미안 허스트 등이 대표적이다. 미술관에 자신의 작품이 걸리는 것은 화가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영예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야구의 명예의 전당 같은 곳이다.

과거 작품이야 어느 정도 평가가 이뤄졌고 역사를 통해 시대를 충분히 반영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동시대는 다르다. 동시대는 역사적 해석도 시작되지 않았고 그 작가에 대한 평가도 아직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휘트니, 구겐하임, 모마의 큐레이터들은 그것들을 사모아 전시하는지 유통체계가 궁금했다.

가이드분이 예술 산업에 몸답고 있는 분이라 나름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모마의 큐레이터, 관장에게 자신의 작품이 선택되면 된다. 당연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갤러리가 요구하는 소위 ‘잘 팔리는’ 작품과 미술관이 요구하는 시대를 ‘반영하는’ 작품은 차이가 있다. 가령, 비잔티움 작품들은 과거 종교가 지배하고 있는 세계를 잘 담아냈다고 할 수는 있지만, 현대의 일반인에겐 그 가치가 크게 와 닿지 않는다. 중세 미술이 유독 한국에서 인기가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보통 사회 반항적인 ‘작품’ 속 ‘악’은 그들의 잠재적 소비자인 경우가 많다.

갤러리가 아닌 이상, 작가가 시장에 자신의 작품들을 내놓을 만한 곳은 없다. 요즘 SNS를 이용한 자기 홍보가 활발하지만, 그건 루키에게나 통하는 이야기고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기 위해서는 갤러리라는 창구가 꼭 필요하다. 이 이야기는 대한민국의 국민 가수인 아이유가 자신의 노래를 부를 날을 위해 마쉬멜로우, 잔소리, 좋은 날, 너랑 나 등 ‘상업성’이 짙은 노래를 불러 인기를 얻었다는 이야기와 비슷하게 들렸다.

20200303_161704dd.jpg 첼시의 갤러리들


마침 가이드님도 예술계가 한국의 가요 시장과 비슷하다고 이야기했다. 데이비드 즈위너, 가고시안, 페이스 등에서 데뷔를 하고 계약을 맺은 작가들은 한국의 대형 기획사(SM, JYP, YG)에 소속된 아티스트처럼 그들의 성공은 어느 정도 보장된다. 하지만 중소 갤러리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작품들을 팔며 계약기간을 오래 가져간 화가들은 예술시장에서 속칭 ‘싸구려’ 작품들을 그리며 성장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내가 방문한 3월엔 주로 신진 작가들이 데뷔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아쉽지 않았다. 오히려 훗날 시대를 비출 예술가들이 뭉툭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새롭고 신선했다. 가이드도 모르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보다 보니까 정말 새로운 미술을 만난 것 같았다.

20세기 이후, 로스코, 칸딘스키, 몬드리안 등 추상표현주의, 기하학적 추상 작가들이 정말로 많다. 이들 작품은 미국 어디서나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특히, 몬드리안은 더더욱.) 어떤 구상이 표현된 게 아니라 오로지 추상적인 붓터치가 어떤 패턴을 갖고 그려져 있는 그림만을 보다 보니, 약간 지루한 면이 있었다. 몬드리안은 언제나 수직과 수평을, 칸딘스키는 음악의 선율을 그린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책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방식의 추상적인 작품들을 보다 보니 흥미로웠다. 어떤 밑그림을 감추기 위해 여러 현란한 색을 동원한 작품도 있었고 윤형근을 비롯한 한국의 작가들도 만나볼 수 있었다.

시즌의 시작인 9-10월에 보통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된다. 하지만 이미 위대한 작가들의 위대한 작품들은 휘트니, 구겐하임, 모마에서 감상할 수 있다. 그들이 전시하는 게 완전히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된 새로운 작품이라면 탐을 내겠지만, 미술시장은 이미 상업성이 짙은 Screen Print라는 컬랙션을 판매하는 시장이 되어버렸다. 그들의 스크린 프린트를 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나에겐 신진작가의 풋풋한 작품들을 감상하는 편이 더 좋았다.


갤러리는 예측 불가능하다. 언제 무엇을 만날지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Art in New Y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