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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YA Jun 15. 2020

여행을 보내며

선택과 집중.

 스물이 되면서, 내게 많은 자유가 주어졌다. 친구들과 어울림도 ‘사회생활’이라는 이름 아래, 건전한 활동이 되어 갔고 수험생처럼 공부에 매달릴 필요도 없었다. 과하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은 학점을 얻을 수 있었고 학기 중에 조금 과하게 공부를 하더라도, 끝이 보이지 않을 방학이 있어서 불태울 수 있었다. 열의 마지막과 스물의 처음은 그리도 달랐다.

 그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분에 넘치던 시간을 채웠던 건 여행이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꿈꿨던 여러 낭만적인 여행을 위해 돈을 모았고 계획을 짰다. 나의 여행은 도서관에서 책을 집는 순간 시작되었기에, 참으로 긴 여정이었다. 여행을 매개로 문화를 읽었고 그 문화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돈을 모으고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찰나처럼 스쳐가는 그 시간들이 아쉬워 카메라를 구매했고 그 순간을 조금 더 생동감 있게 기억하고자, 영상 편집을 배웠다. 여행이 뭐가 대단한가 싶겠지만, 여행은 내 삶의 많은 부분을 바꿨다. 스페인에서 만난 고야는 미술의 세계로, 치앙마이는 계획을, 터키는 종교를 선물했다. 그들은 내 세계관을 뒤흔들었고 여러 잣대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항상 행복하지는 않았다. 가슴 벅찬 여러 순간들도 있었지만, 친구와 반목하며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고 너무 치밀한 계획에 제 풀에 지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내 지난날에 대해 후회는커녕, 자랑스럽다. 어느 누구도 나와 같은 경험을 하지는 못했으리라 장담한다. 이런 과정이 나를 어떤 무리에서도 ‘권고야’라는 나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어디에서도 주어진 길을 따라가는 사람이 아닌 ‘나의 길’을 가는 사람이었다. 여행은 가끔은 격의 없이 모든 것을 내놓을 수 있는 친한 친구처럼 다가왔고, 어쩔 때는 나의 무언가를 나무라는 엄한 선생님과 같았다. 그런 여행과 당분간 ‘작별인사’를 고할까 한다.

 

 ‘경험’은 참으로 좋고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귀감이 되지만, 한편으로는 여러 갈래를 만들어 선택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내게 경험은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방법을 가르쳐주었지만, 어떤 한 구석에 몰입하지 못하는 산만함도 가져다줬다. 내게 경험은 양날의 검과 같았다. 더 많은 경험이 더 넓은 시야를 주겠지만, 이제 당분간은 내 세계에 집중할까 한다. 온전히 내게 집중할 차례다.

 경험은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많은 물음과 해답을 던져주지만, 그것이 커리어에서도 통하는 것은 아니다. 나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내 분야에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 전문성이 내 몸에 베였을 때, 비로소 그 경험이 빛을 발할 것이다. 지금은 먼 훗날을 위해 담금질을 해야 할 때다. 오늘도, 내일도 같은 일을 반복하겠지만, 그래야만 더 강한 무기가 된다.     


이제 보폭을 넓혀보자. 더 큰 그림을 그리자.


ps. 내게 여행의 의미는 굉장히 한정적이고 독특하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것부터 돈을 모으고 한국으로 돌아온 후 일지를 쓰는 이 모든 과정을 거쳐야만 나는 이것을 여행이라 부른다. 훗날, 친구들과 졸업 여행을 간다거나, 학회가 있어 해외로 출장길에 오르는 것을 나는 여행이라 표현하지 않는다. 단어만 같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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