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집중.
스물이 되면서, 내게 많은 자유가 주어졌다. 친구들과 어울림도 ‘사회생활’이라는 이름 아래, 건전한 활동이 되어 갔고 수험생처럼 공부에 매달릴 필요도 없었다. 과하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은 학점을 얻을 수 있었고 학기 중에 조금 과하게 공부를 하더라도, 끝이 보이지 않을 방학이 있어서 불태울 수 있었다. 열의 마지막과 스물의 처음은 그리도 달랐다.
그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분에 넘치던 시간을 채웠던 건 여행이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꿈꿨던 여러 낭만적인 여행을 위해 돈을 모았고 계획을 짰다. 나의 여행은 도서관에서 책을 집는 순간 시작되었기에, 참으로 긴 여정이었다. 여행을 매개로 문화를 읽었고 그 문화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돈을 모으고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찰나처럼 스쳐가는 그 시간들이 아쉬워 카메라를 구매했고 그 순간을 조금 더 생동감 있게 기억하고자, 영상 편집을 배웠다. 여행이 뭐가 대단한가 싶겠지만, 여행은 내 삶의 많은 부분을 바꿨다. 스페인에서 만난 고야는 미술의 세계로, 치앙마이는 계획을, 터키는 종교를 선물했다. 그들은 내 세계관을 뒤흔들었고 여러 잣대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항상 행복하지는 않았다. 가슴 벅찬 여러 순간들도 있었지만, 친구와 반목하며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고 너무 치밀한 계획에 제 풀에 지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내 지난날에 대해 후회는커녕, 자랑스럽다. 어느 누구도 나와 같은 경험을 하지는 못했으리라 장담한다. 이런 과정이 나를 어떤 무리에서도 ‘권고야’라는 나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어디에서도 주어진 길을 따라가는 사람이 아닌 ‘나의 길’을 가는 사람이었다. 여행은 가끔은 격의 없이 모든 것을 내놓을 수 있는 친한 친구처럼 다가왔고, 어쩔 때는 나의 무언가를 나무라는 엄한 선생님과 같았다. 그런 여행과 당분간 ‘작별인사’를 고할까 한다.
‘경험’은 참으로 좋고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귀감이 되지만, 한편으로는 여러 갈래를 만들어 선택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내게 경험은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방법을 가르쳐주었지만, 어떤 한 구석에 몰입하지 못하는 산만함도 가져다줬다. 내게 경험은 양날의 검과 같았다. 더 많은 경험이 더 넓은 시야를 주겠지만, 이제 당분간은 내 세계에 집중할까 한다. 온전히 내게 집중할 차례다.
경험은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많은 물음과 해답을 던져주지만, 그것이 커리어에서도 통하는 것은 아니다. 나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내 분야에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 전문성이 내 몸에 베였을 때, 비로소 그 경험이 빛을 발할 것이다. 지금은 먼 훗날을 위해 담금질을 해야 할 때다. 오늘도, 내일도 같은 일을 반복하겠지만, 그래야만 더 강한 무기가 된다.
이제 보폭을 넓혀보자. 더 큰 그림을 그리자.
ps. 내게 여행의 의미는 굉장히 한정적이고 독특하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것부터 돈을 모으고 한국으로 돌아온 후 일지를 쓰는 이 모든 과정을 거쳐야만 나는 이것을 여행이라 부른다. 훗날, 친구들과 졸업 여행을 간다거나, 학회가 있어 해외로 출장길에 오르는 것을 나는 여행이라 표현하지 않는다. 단어만 같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