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를 만든 선택들
내게 2021년 겨울은 특별하다. 지금까지 희로애락을 함께 해왔던 대학과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이기 때문이다. 2015년에 인하대학교에 입학했던 나는 소중한 사람들과 멋진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성숙된 자아를 얻을 수 있었고 나의 시야를 조금 더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단순히 말뿐만이 아니라 나의 일련의 선택에 있어서도 실제로 그랬다. 공부를 ‘해야 한다’는 관념 속에서만 바라봤던 나는 공부를 ‘하고 싶어’ 대학원 진학을 결정했다. 단순히 즐기는 여행이 아니라 그 모든 순간에서 의미를 찾고자 독서를 하고 영상을 보고 여행기를 읽었다. 이런 순간들이 조금씩 모여 삶의 양식이 되었다.
2015년의 나와 2021년의 나는 많이 다르다. 훗날 내가 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적어도 2015년의 나보다 지금의 나가 그 목표에 더 가까이 있음은 확신할 수 있다. 그만큼 내게는 소중한 6년이었고 만족스러운 대학생활이었다. 그 순간들을 조금씩 정리해볼까 한다. 첫 번째는 용마루 학교 입부다.
내가 다녔던 학과는 그 규모가 그리 그지 않아서 그런지, 중앙 동아리에 참여하는 선후배가 많지 않았다. 중앙 동아리보다는 학과 소모임에 들어 친구들과 보험/금융/축구를 즐기는 친구들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학과 사람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전공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보고자 중앙동아리에 가입했다. 그때 들어간 동아리방이 바로 용마루 학교의 전 이름, 인하 선도회였다. 거창한 이유로 용마루 학교에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할 줄 아는 게 봉사뿐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봉사동아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용마루 학교는 인하대학교 학생들이 운영하는 야학교다. 검정고시 준비생들을 대상으로 하며, 단순히 학생들 교육뿐만이 아니라 학교 운영, 지원금 수주 등 봉사단체 전반에 대해 관리한다. 내가 가르쳤던 15/16년 학생분들은 대부분 60대 이상의 만학도 분들이었고 나는 그중에서도 중학교 수학을 가르쳤다. 동아리 소개에서 알 수 있듯이, 단순히 봉사시간을 채우는 정도의 활동이 아니었다. 일주일에 4시간은 물론이고, 격주로 교사회의 및 동아리 활동까지 준비해야 했다. 보통 동아리가 방학 중에는 어떤 활동도 하지 않는 반면, 이 동아리는 실제로 봉사 단체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학생분들을 위해서라도 쉴 수 없었다. 실제로 많은 시간을 동아리 활동에 쏟았다. 생각보다 부담스러운 일정 때문에 동아리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적도 여럿 있었지만 실행으로 옮길 용기는 없었다.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어떻게 저런 것까지 마다하지 않고 솔선수범하지?‘라는 경외감이 들었지만, 어느샌가 부원들이 모두 열정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봉사에 진심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이 동아리에 들어온 사람들 대부분은 공부, 봉사, 인간관계 중 무엇 하나에는 진심인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부원들을 적대하지 않고 마음을 열고 바라보니, 이처럼 좋은 사람들이 없었다. 자신이 그리는 미래를 들으며, 여러 현실적인 조언도 들었다. 그리고 남미로 오지 탐사를 다녀온 형, 아프리카로 신혼여행을 떠난 OB 형들의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앞으로 다가 올 대학 생활을 어떻게 풍요롭게 할지 행복한 고민을 했다.
검정고시를 앞둔 어느 날, 열심히 공부하시던 학생분이 대뜸 나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항상 고맙다며 간식을 챙겨주시고는 하셨지만, 그때 느낌은 사뭇 달랐다. 조카 혹은 손주를 대하는 조금은 ‘귀엽게 보시는’ 말투가 아니라 정말로 인생의 귀인을 만난 듯 공손했다. 그런 감사인사를 처음 들어본 나로서는 약간은 당황한 채로 학생분에게 왜 그러시냐고 여쭤보았다. 듣고 보니, 학생분은 어렸을 적 가정형편으로 일찍이 공부를 포기하고 돈을 버셨다고 한다. 학생분이 오랫동안 힘들게 일을 하셔서 형편이 한결 나아지니, 어린 시절 배우지 못한 게 한이 되어 한동안 마음속에 응어리가 지셨고 그때 용마루 학교를 아셨다고 한다. 이 작은 봉사단체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교육과 책 덕분에 자신은 검정고시를 볼 기회를 얻었고 방통대 심리학과에 진학하여 청소년들을 상담해주는 꿈이 생겼다며 정말로 나를 포함한 여러 선생님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하셨다. 결국 그분을 포함해 모든 학생분들이 검정고시에 합격하셨고 내게 감사를 표했던 학생분은 방통대에 진학하셨다.
당시 나는 갓 스무 살이 되었다. 스무 살이 누군가에게 인생을 바꿀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억만금을 기부해도 진정 어린 감사를 받기는 어렵다. 이 경험은 실제로 나 자신의 행동이 단순히 나 자신의 관점에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사회의 관점, 즉 사회에 미치는 영향까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사회를 바라보는 시야를 튼 중요한 사건이었다.
위와 같은 유명한 짤이 있다. 요약하자면, 직장을 얻으려면 직장 경험이 있어야 하는 이 잡마켓의 모순(?)을 냉소적으로 다룬 이미지다. 취준생 입장에서는 불쾌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대학 공부만 했던 학생을 뽑기보다는 그래도 다른 회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중고 신입을 뽑는 것이 가르치기도 쉽고 적응도 잘한다.
이는 대학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마 주변에 공모전, 대외활동, 장학금 등 쓰는 족족 붙는 친구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들의 자기소개서를 보면, 전에 붙었던 공모전 내용이나 대외활동 경험을 서술한다. 맞다. 아무리 분야가 다른 대외 활동이라고 할 지라도, 성실한, 뛰어난, 활동적인 학생을 싫어하는 곳은 없다. 이전 활동들이, 경험들이 지원자의 역량을 어느 정도 보장하니까 다음 단계 대외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용이하다.
나에게는 용마루 학교 봉사활동이 그런 촉매제가 되었다. 내가 학창 시절부터 가고 싶었던 해외 봉사 같은 경우도 용마루 학교에서 쌓은 300시간이 넘는 봉사시간이 큰 무기가 되었다. 해외 인턴을 지원할 때에도 장학금을 신청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봉사 정신이 투철한 학생을 싫어하는 단체는 없고 성적이나 여러 정량 지표가 비슷하다면, 실제로 ‘활동’한 경험이 있는 학생을 뽑는 것이 여러모로 합리적인 선택이다.
용마루 학교에 입부할 때만 하더라도,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과정이 아니라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 투철한 봉사 정신도, 사회를 생각하는 시야도, 뛰어난 행동력도 없었다. 내가 용마루 학교를 택한 것은 우연이었다. 4월 초에 동아리원을 모집하는 동아리(= 잘 안 팔리는 동아리)가 용마루 학교였을 뿐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결정은 내 진로나 훗날 있을 여러 선택에 큰 도움이 되었다. 실제로 용마루 학교가 아니었으면, 나중에 소개할 해외봉사도 다녀오지 못했을 것이고 멋진 선후배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보다 작은 우물 안에서 주어진 선택지만을 가지고 골몰하는 개구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