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정체
브레이크와 액셀이 피아노 건반처럼 음을 갖지 못한 게 참 다행스럽다. 아마도 급급한 심경이 담긴 불협화음은 모두의 신경을 긁을 테니 말이다. 그러면 차라리, 경적을 울리는 게 더 낫다고 여길지 모르겠다.
정체된 도로 위의 형세는 정갈하다. 줄이 삐뚤어져서 막히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가만히 바라보는 것 밖에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런데 앞을 보면 막힌 길은 뚫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답답해져서 차창을 내렸다. 수십 대가 토하는 배기음이 귓가를 때렸다. 날 것의 도시 음악이다. 나는 그것을 우두커니 듣고 또 들었다. 조율되지 않은 팀파니가 탁하게 울리는 것 같았다. 값비싼 악기 하나가 아스팔트 위에 버려져 굴러다니는 게 아닐지 모르겠다며, 나는 다시 초조하고 걱정스러운 정서로 돌아왔다.
정체는 나의 숨통을 조였고, 앞으로 튀어 오를 순간만을 떠올리게 했다. 배기음은 골수까지 스며들었다. 축축해진 등골이 찬 바람에 닿아 서늘해지는 걸 느껴서, 히터를 켰다. 그러다가, 히터의 열기가 등골로 스며들었는데, 그 순간에 어떤 곡이 전율처럼 내 영혼을 울렸다.
그 곡은 바그너의 오페라 <발퀴레> 3막에서 울려 퍼지는 '발퀴레의 기행’이었다. 이 장면에서 발키리는 죽은 영웅들을 싣고 신들의 전당 발할라로 향한다. 지금 생각해 봐도, 숭고와 절망이 뒤섞인 선율은 정체된 도로와 기묘하리만큼 걸맞았다.
3막 도입부는 B 단조의 어두운 음색 위에서 비장하게 시작하는데, 저음 현이 불안정하게 떨리듯 반복되고, 리듬은 넘치는 기세로 바닥을 거칠게 긁는다. 아직 달리지는 않는데, 달릴 것만 같은 위세가 공기를 밀어낸다. 운전자의 의식 또한 그랬다. 전진의 기세가 단단히 감겨 있다. 정체된 도로에서 나는 그런 압력을 직감했다.
멈춰 선 차량도 기마 부대와 흡사해 보인다. 차는 서 있는데, 사람의 의식은 계속 앞으로 쏠린다. 용수철처럼 감겨 있다가 언제든 튀어 오를 준비를 한 채로. 전의를 품은 말이 콧김을 몰아쉬는 것처럼, 배기구에서는 모락모락 김이 오른다. 발굽이 땅을 박차기 직전, 딴딴하게 뭉친 뒷다리 근육과 터질 듯이 불끈거리는 핏줄. 쇳덩이 심장은 어둠마저 연료로 태워버릴 태세다. 정체는 멈춤이라기보다, 지연된 돌진인 것이다.
그러나 제자리걸음이 길어질수록, 웅장하고 화려한 전진의 기세와 달리 그곳에는 갑갑함과 신경질적인 자극, 희망 고문만 남는다. 그리고 매우 빠르게 달려야 할 다차선도로인데, 매우 느리게 가다 보면 점점 졸리게 같은 셈여림으로 가고야 만다. 긴장도가 상당히 올라가 있는 상태여서, 무리하게 껴들다가는 과하다 싶은 경적이 울리기도 했다.
드물지만, 배려 같은 게 연이어지기도 한다. 갈팡질팡하는 초보 딱지 차량이나 어떤 연유로 비틀거리는 차량이 그 대상이다. 그들의 서투름, 연약함은 우리 혹은 나의 것이기도 하다. 여백을 만드는 정적과 쉼표가 다채롭게 음률과 섞여 주어야 황홀한 곡조가 만들어지지 않던가. 그것은 정체로부터 탈피해서 숨을 고르게 하는 순간이 되어준다.
택시 기사인 나는 감상에만 젖어 있을 수 없다. 막힌 길에서 틈새에서 틈새로, 조금은 능청스럽더라도 나아가야 한다. 반 박자 먼저 움직이되, 방향지시등으로 충분히 알리고, 들어오는 차를 살핀 뒤 천천히 파고든다. 뒷좌석에서 눈으로 손님도 운전하기 때문에, 보기에 적절한 주행이 나와주어야 했다. 고작해야 신호 한두 개라도, 이동의 소모를 약간이라도 줄여 주며 나의 택시는 손님의 흡족한 마음에까지 조금씩 전진한다.
가능하다면 뚫린 도로로, 신호의 간섭을 최소로 받으면서. 모든 손님과 처음과 끝까지 잘 매듭지으면, 그런 날은 운수 좋은 날로 장식되려는 낌새가 보이기도 한다. 그럼 나는 신이 나버려서 피곤이란 것을 잊어버리고는 했다. 그러나 생각한 대로 다 된다면, 그게 인생이겠는가. 꽤 괜찮은 하루를 살기도 하고, 시간을 죄다 날려 먹은 것 같은 나날도 있는 법이다.
어디서부터 막힌 걸까.
모든 차가 바퀴를 굴리는 방법을 잃어버린 듯했다. 수분이 지나도 과연 가고 있는 게 맞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물을 마셔도 입안은 금세 텁텁해지고, 더 멈춰 있다가는 의식이 가장 밑바닥으로 침전될 것 같았다.
혼곤한 눈은 희끄무레한 게 보이는 것만 같고, 아스라한 터널 끝자락을 쫓아간다. 고요한 어둠을 따라서 갈지 말지 고민하던 중에, 그 자리에 누워 별을 보기로 한다. 아늑함에 젖어 버린다. 미동도 허락되지 않는 포근함이 강도처럼 나를 덮쳤다.
조각난 기억 속에서 헤매다가, 눈 뜬 채로 주정 부리던 뇌가 가까스로 깼다. 침잠하던 세계가 와장창 깨지면서 정신이 드는데, 다시 창문을 열고, 껌을 씹으며, 앉아서도 가능한 몇 가지 스트레칭 동작을 시도했다.
정체된 도로 위에 있다가 보면 까라지는 걸 자주 느꼈다. 충분히 잠을 자도 마치 음부의 권세같이 내 의식을 아래로 끌어당기는 기분이었다. 정체를 또다시 겪던 어느 날, 의식이 멈추고 자꾸만 아래로 흐르니까, 흥미로운 상상이나 벅차오르는 기대를 하면서 쳐진 의식을 끌어올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설레어서 발을 동동 구를 적에는 졸음이 오거나, 따분함 따위를 느끼지 못했으니 말이다.
당장에 정체된 도로 위에는 제각각으로 생긴 여러 차량이 보였다. 판타지 세계관을 좋아하는 나답게 상상했다. 종이 인형의 옷을 갈아입히는 일처럼, 먼저 자동차 껍데기를 걷어냈다. 그랬더니, 운전자와 함께 탄 사람들이 보였다. 눈과 입이 축 처진 채 앞만 보고 있거나, 따분하게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동승자의 장면 같은 게 떠올랐다. 도로가 너무 막히네요, 혼잣말을 중얼거릴라치면 그들 중 누군가가 대꾸할 것 같았다. 내 입꼬리가 피식 올라갔다. 그러다가, 차들이 앞으로 조금 움직였다.
앞차의 브레이크등이 켜졌다가 꺼지면서, 자동차의 뒷모습에서 얼굴이 보였는데, 뒤돌아보는 사람의 심각한 얼굴 같은 거였다. 아, 저 먼 기억에서 넘어오는 맑은 음률 하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동시에 찾아드는 정적. 그 얼굴은 만년 술래의 모습이던 것이었다.
거기서는 저마다 다르게, 제멋대로 멈춘다. 배꼽을 잡게 만드는 별난 표정과 동작에 배꼽을 잡고 땅바닥을 구르던 장면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누구랑 노는지도 그때는 매우 중요했다. 놀이는 둘째 치고, 누구랑 놀아야 재미있는가를 알고 있으니까.
이 놀이를 하다 보면, 동네 친구들의 다양한 모습이 보였다. 날쌔서 항상 앞서가는 친구, 술래를 자주 하던 친구, 엄마가 일찍 불러서 아쉬운 인사하던 친구, 동작마다 과장이 되어서 개그맨 같던 친구, 얼굴이 빨개져서 우기던 친구는 방귀가 나와서 덕분에 모두가 깔깔깔.
속으로 하하, 웃다가 보니까 금세 정체는 온데간데없었다. 정체가 흐르듯 지나가 버린 것이었다. 오호라, 이거구나. 나는 운전하면서 상상의 나래로 접어드는 걸 좋아한다. 내가 쉽게 상상에서 깨지 못하는 유형의 사람 같기도 하다.
혹시 마주 오는 사람이 자동차처럼 보인 적이 있는가.
종전까지 운전하다가 차에서 내려, 공원 같은 인파가 몰리는 공간에 다급히 들어서게 될 때 몇 번 그런 느낌을 받았다. 사람들을 비껴가기 위해서는 뒤돌아서 보거나 옆을 살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사이드미러 위치 정도에 시선을 두고 살피려고 시도하는 것이었다. 그럼 아, 하루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구나, 하고 긴 숨을 크게 내쉬며 나의 시간을 다시 맞추었다.
평소에 나는 차와 사람이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운전자가 가림막으로 감추어져 있는 듯한 내부 구조 때문인지, 조금은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마치 그것이 익명의 가면이 되어주겠다고 꼬시는 것 같아서다.
막무가내로 차선 이동을 막거나, 갑작스럽게 끼어들거나 하는 건 가림막으로 자신이 감추어져 있다고 생각해서다. 물론, 그런 것들을 따질 필요도 없이 아예 뻔뻔한 자들도 있기는 하다. 차로 이동 중이 아니라 행인으로 걷고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 웃기다. 걷다가 갑자기 운전 중에 했던 행동처럼, 가던 방향을 바꾸겠다고 비키라며 몸을 과도하게 들이밀거나, 이쪽으로는 오지 말라며 바싹 붙이는 행동을 걸으면서 할 수 있을까?
사람 대 사람으로 마주하고 있다면, 금방 머쓱해지고 고개를 푹 숙이며 먼저 가시라고 서로 할 것이다. 예의에 어긋난 행동뿐 아니라 언행도 조심할 텐데 말이다.
이상하게도 앞의 한 수만 가려져도 사람은 그것을 까먹을 때가 있다. 다르게 생각해 보면 실수뿐 아니라, 지금 당장에 내게 압박처럼 다가오는 상황에서 더 좋은 결과가 멀찍이 떨어진 게 아니라 하나의 가림막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다고도 볼 수 있는데 말이다. 차 안이라는 가림막은 사람을 과감하게 만든다. 마주 서 있지 않으니 말이 거칠어지고, 신경은 날 선다. 익명성이 도로 위의 전쟁을 허락하는 것이다.
대규모의 전쟁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 그건 전쟁과 다를 바 없는 정체였다. 무질서가 지배하던 그때 그곳은 아직도 내게 선명하다. 그때 내 택시에 탄 손님들은 이구동성으로 총탄과 포탄이 떨어지는 실제 전쟁이 일어나면, 도로가 이럴 것 같다고 말했다.
어느 지역, 가을 축제에 사람들이 몰렸다. 나는 아시아계 외국인 가족을 태우고 그곳을 들어갔는데, 평소보다 세 배나 더 걸렸다. 그들은 축제가 한창인 중반부 즈음에 가서 피날레에 참여할 생각을 했던 것 같았다.
내 손님처럼 다수의 사람도 뒤늦게나마 참여하기 위해 축제 장소로 향했는데, 이미 늘어선 행렬을 보고 진입을 포기한 채, 다리 위에서 불꽃놀이를 즐기는 사람들도 은근히 있었다.
축제가 전쟁터로 변하게 된 이유는, 그러니까 이동 시간이 너무 길어져서, 그사이 축제가 끝나버리는 바람에 참여하려는 차량과 귀가하려는 차량 행렬이 한복판에서 뒤엉키게 된 것이었다.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차선 위에 새로운 줄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나뭇가지가 뻗쳐 나가듯 줄줄이 이어지다가, 그 중간에는 꺾여버린 가지처럼 버려진 차들도 보였다. 비보호 좌회전을 포기한 대수의 사람들은 중앙선 부근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는데, 그 자리에서 야영할 것처럼 굴었다.
간간이 비명 대신 고성이, 총소리 대신 경적이 사방에서 울렸는데, 도무지 어찌할 방도가 없는 상황이라서 그들의 분노는 꼭 알면서도 분풀이를 해대는 것 같이 느껴졌다. 축제는 모름지기 잔뜩 도취하여서 흥에 겨워야 하는데. 정말 축제를 경험한 이들이 맞나. 아니면 이건 진정한 의미에서 축제다운 축제가 아닐지도.
무늬만 축제 같은 행사로부터 멀리 도망가고 싶었다. 귀가 행렬로 빠져나가는 모든 길이 막혀 있었다. 축제가 벌어진 장소는 섬이라서 더욱이 나는 고립된 느낌이 들었다. 일을 치르고 도망치듯 먼저 빠져나가는데만 전념하는 이 좁은 세상에서, 어딘가 모르게 나는 그만 외로워졌다. 콜을 끄고 멈춰 있을까도 생각했으나, 택시 기사로서 정체성마저 벗어던지면 더 동떨어지는 기분이 들어서 나는 최대한 차를 멀리 몰고서는 그대로 택시 영업에 나섰다.
손님들을 이어서 태웠다. 정체된 세상에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만났다고 해야 할까.
아무래도 그곳은 뜨거운 격전지 같아서, 모든 물자와 식량을 실어 나르듯 내 택시는 그것과 끊어질 수 없었다. 00역 앞에서 태운 젊은 부부는 축제가 벌어지는 인근의 거주민이었다. 방금 내가 그곳에서 왔다고 말하니까, 나의 증언을 듣고 싶어서 눈들이 커졌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조용히 있고 싶어서 집에서 나왔다고 했다. 축제 덕분에 둘만의 시간을 얻은 것처럼 말했다. 아마도 만족스러운 오붓한 시간을 보냈으리라고 나는 추측했다. 그들은 고맙게도, 내가 다시 영업을 이어갈 수 있게 전략적인 장소에서 내려주었다.
다시 들어온 전쟁터는 여전히 차량 행렬이 보였으나, 체증의 막바지에 이른 것 같았다. 손님을 태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돌아 나오는데, 십여 분을 기다린 다음 손님은 고교생들이었다. 우정 반지를 맞출 정도로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터라, 학창 시절의 추억을 만들기 위해 큰마음을 먹고 먼 길을 왔다고 말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축제장 안으로는 발도 못 닿고 밖에서 소리만 들었다고 말했다. 세 명의 소녀 손님들은 다시는 안 오고 싶다고 말해 놓고서도, 짧은 일기를 쓰듯 각자가 감상을 꺼내면서 계속 웃었다. 아마도 역설적인 이 경험은 잊지 못할 추억 중 하나가 될 듯싶었다. 소녀 손님들의 목적지는 섬에서 탈출하는 00 역이었는데, 여기로 향하는 길 또한 만만치가 않았다. 그들은 역까지 걷겠다고 했다. 내가 생각해도 제일 좋은 방법이었다. 가능한 도보 거리가 짧아질 수 있는 곳에 그들을 내려주었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축제 장소로 향했다. 거기서 지금 쯤에는 느지막이 식사를 마친 손님들이 택시를 부를 것 같아서였다. 나는 손님으로 중년 부부를 만났는데, 오랫동안 이곳에 살아와서 축제 날에 일정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그분들은 매뉴얼을 가지고 있었다.
축제가 과열된 이유를 그분들에게 들었는데, 정말 그게 맞는지 싶을 정도로 의아했다. 원래는 이 정도로 막히는 축제는 아닌데, 아마도 전에 없던 드론 쇼와 불꽃놀이가 추가되고 가수도 몇 명 더 늘어서 전국적으로 몰린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사람이 너무 많다 보니까 힘들었는데, 축제는 나쁘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축제는 가고 싶지 않았지만, 공연과 프로그램이 어떨지 궁금해졌다. 다들 이런 식으로 꾀이듯 가는 걸까.
아저씨 손님은 동네 사람들만 아는 맛집 정보를 어떻게 알고 모였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치셨는데 아마도 사람이 너무 많아서 식사조차 어려웠던 것 같았다. 그래도 중년 부부는 동요하거나 지친 기색이 없어 보였다. 적당히 조절하고 중심을 단단히 잡는 듯싶어서, 여유와 노련미가 느껴졌다.
도로는 정체되어 있었지만, 각자의 하루는 제 나름의 속도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그 틈을 따라 움직였다. 정체를 뚫은 것이 아니라, 정체 속에서 내 일을 했을 뿐이다. 브레이크등이 켜졌다 꺼지는 사이, 누군가는 다짐을 만들고, 누군가는 시간을 얻고, 누군가는 조용히 빠져나왔다.
정체는 여전히 답답한 풍경이다.
하지만 멈춘 것은 도로였지,
삶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