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두 노인
두 노인을 만났던 기억을 글로 옮긴다. 꽤 강렬했던 그 기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왜 그토록 강렬했던가를 두고 곰곰이 생각해 보자면, 하나의 부류로 나누기가 어딘가 애매하여 그런지, 해석하려던 의식이 과감히 침투하다가 패배감을 맛보게 되어서다. 그 패배감은 한밤에 끝나지 않았다. 며칠 후에 목격한 웃음 속에서 다시 마주하기도 했다.
두 노인은 막연한 인생을 쏙 빼닮은 존재 같았는데, 사회의 모퉁이나 어쩌면 끝자락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반대로 손님 중에서 부유층에 속한 노인들은 의외로 특별할 게 없다. 왜냐면 모범 답안 같은 느낌에 그 존재가 쉽사리 사무쳐버려서, 어디에나 뒤섞이는 간단한 묶음 같은 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구나, 하고 명료하게 해석되어서 명예와 부의 특성처럼 알싸했던 자극 뒤로 점차 희미해져 버리고는 했다.
나는 새벽 한 시에 내 집 근처에서 손님 한 분을 내려드렸다. 집에 들어갈지 고민하다가 보니 집 앞까지 미끄러져 버렸다. 출퇴근의 자유로움 이면에는 생각과 마음의 괴리가 눌어붙어 있다. 제아무리 몸이 거뜬하다고 신호를 보내도, 마음의 근원에서는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 집을 향해 마구 펄럭거린다.
우리 집 앞 버스 정류장에서도 뭔가가 펄럭였는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어둠 속에는 구십은 족히 넘은 할머니의 수줍은 손이 나부끼고 있었다. 생각이나 감정이 개입하기도 전에 몸이 반응했다. 나는 곧바로 그 앞으로 차를 세웠다.
가맹 택시 기사들 사이에서는 길손님을 태우면 콜 배정에서 밀려난다는 낭설 같은 게 있다. 택시 기사 앱에 관한 데이터가 비공개되어 있어서 경험적인 추론들이 난무한 것이다. 한 시간 이상 쉬면 그러하고, 콜을 멈추는 버튼을 자주 누르면 또 그렇고. 경기 침체가 체감될수록 그 미신들은 힘을 발하여 추종자들을 양성한다. 무엇보다 기사들은 밤에 거나하게 술을 마신 손님을 피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스마트폰을 조작해 택시를 부를 수 있다는 건, 일종의 진상 가능 여부 테스트가 되기도 해서, 여러모로 예전과 다르게 길손님은 환대받지 못하는 분위기다.
나는 미신에 연연하지 않았다. 내가 그리스도인이라서만은 아니다. 어느 손님들의 말 때문이었다. 스치듯 단 번의 만남에 불과할 수도 있는 손님과의 인연에 무게를 두는 이유는, 그러니까 되도록 삶을 낭만적인 이야기들을 쫓아다니며 채우고 살다가 떠나고 싶어서다. 젊은 남녀 손님들이 서로 모르는 사이가 분명할 텐데, 각자가 따로 내 택시에 탔을 때 짠 것처럼 똑같은 말을 했다.
“요즘 기사님들이 길에서 택시 잡는 손님은 잘 안 태우시더라고요. 우리 부모님은 앱으로 택시 부르지 못해요. 길가에 손 흔드는 어떤 할아버지가 저의 아버지일 수도 있어서요. 태워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탁드릴게요. 기사님.”
어떻게 그 손님의 부모를 태우겠는가. 확률이 얼마나 될까, 내가 알아볼 수나 있을까. 동화 같은 요청에 함유된 의미는 가히 인간적이고 낭만적이다. 그래서 나는 그 약속을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더구나 그것이 개인의 바람이기보다 사회의 요청처럼 들렸다. 대단할 능력이라곤 하나 없는 택시 기사가 보다 좋은 사회로 나갈 수 있도록 이바지할 수 있는 소소한 기회이기도 했다.
할렐루야, 성가의 합창이 관현악기 소리와 함께 내 귓가에서 울리는가 싶었는데, 택시에 타신 할머니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았다. 그 손님의 불편한 기색이 침묵을 가득 메웠다. 음악은 서서히 꺼졌다.
“안녕하세요, 어디로 모실까요?” 나는 어둠이 주는 불신과 불안을 몰아낼 주기도문처럼 차분하게 부드러운 음색으로 관용적인 말을 읊조렸다.
“뭐요? 택시 양반, 방금 뭐라고 했어요?”
“네? 아, 어디로 가실 건지 여쭈어본 거예요. 어디로 가면 될까요?”
할머니 손님은 어느 지역 사투리를 살짝 쓰셨던 것 같은데, 기억을 떠올려보려고 노력해도 잘 생각이 나지가 않는다. 할머니의 톤은 점점 높아졌고 날카로워지셨다.
“거기! 거기 있잖아요.”
“예? 어디요?”
“어? 00 공원 거기. 아파트. 몰라?”
“아파트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못 가? 당신 택시 기사 맞아? 메다기는 어디 있어?”
귀가 잘 안 들리시기도 했고, 가시가 돋은 것처럼 말투는 거치셨다. 나는 예감했다. 긴 밤이 되겠구나. 이 일을 족히 삼십 년 정도를 해온 기사님이라면 척하면 척할 것이다. 거칠게 몰아세우는 할머니의 말은 경험이 적은 나를 나무라는 것만 같아서, 초라해진 느낌이 들었다.
내비게이션의 검색을 이용할 수가 없어서, 그리고 할머니 손님이 내게 길을 알려줄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해당 공원의 근처 지도를 살피면서 할머니의 댁을 추리하며 갈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가만히 계시지 않았다. 의심에 찬 말들을 신경질적으로 내뱉으면서 나를 산만하게 만드셨다. 하소연하듯이 고통스러운 감정의 파편들을 입에서 쏟아내셨고, 중간마다 지금 어디로 가는 거냐며 엉뚱한 말들을 이어 붙였다.
나는 적당히 대답하면서 감정을 추스르다가 그만 웃음이 나왔다. 나이가 들수록 어린아이가 된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나뿐인 나의 소중한 딸도 내 애정을 적잖이 챙겨가면서도 나의 사정을 봐주진 않았다. 졸리고 피곤해서 누워 있으면 놀아달라며 짜증을 부렸는데, 원하는 걸 해줄 때까지 멈출 줄 몰랐다. 이른 새벽에 나가보아야 해서 일찍 잠들어야 했는데, 적당하게 읽었다 싶어서 책을 덮고 떠나려고 하면, 자신이 잠들 때까지 책 읽기를 멈추지 말라며 아이는 엄격한 표정을 짓고서 내게 단단히 주의를 주곤 했었다.
그래도 아이만의 환상 세계는 부모의 삶보다 더 존엄하게 느껴지는 듯싶다. 모든 기대에 위에 둥실둥실 떠 있어서, 그것은 허망하고 지루하게만 느껴지는 나날도 이겨낼 만큼 존재만으로도 성소의 역할을 톡톡히 감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아이 같이 구는 할머니 또한 기대 위에 있었다. 앞서 젊은 남녀 손님들의 요청 말이다. 그 동화 같은 이야기에 매료되어 나와 그들이 함께 웃고 떠들던 행위는 필연적으로 닥칠 노쇠의 비극을 견디려는 의식 같은 거였다. 택시 안 공간에서도 인간은 운명에 저항했다. 그곳에서 핏줄로 이어진 부모는 우리 모두의 부모가 되었으며, 그 안에서 따사로운 소망이 응축되었다. 그것은 세월의 풍파를 정면으로 맞은 시간의 얼굴 앞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말자는 각오가 되었다.
도착할 때가 되자, 얼마냐고 할머니는 내게 물으셨다. 대략 만 육천 원쯤 나올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렸다. 할머니는 가방을 계속 뒤적거리시더니, 슬픈 어투로 자기가 가진 모든 재산이 만 삼천 원이라며 혼잣말로 중얼중얼하셨다. 그러면서 다시 한탄스러운 말을 내뱉었다.
“택시 기사가 내 전 재산을 다 가져가네. 나는 이제 어쩌나.”
어떻게 살아오셨나. 문득 아뜩한 생각이 밀려들었다. 마주한 세상은 맹수 같아서 그보다 더 사납게 대해야 자신에게 덤벼들지 않게 된다던 가치관이 할머니에게서 보이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곳에는 들짐승처럼 자기보다 약한 자를 찾아 부지런히 사냥하는 자들이 있다. 언제부터 귀가 먹으셨는지는 모른다. 단지 느껴지는 것은, 방금까지 홀로 험난한 밀림 속을 헤치다가 뚫고 와서는 내 택시에 타신 것 같았다.
듣지 못한다는 건, 길을 잃는 것보다 먼저 사람을 잃는 일이다. 어쩌면 삶이 두려운 건, 앞날을 예상하지 못해서 아니겠나. 귀는 막막한 미래 앞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믿으며 버틸 수 있도록, 신뢰의 성읍을 쌓아 올리는 첫 번째 기관이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면 불안을 걷어낼 수가 없어서 고역스럽다. 하지만 귀가 들리지 않아도 아늑한 터전에서 지내는 사람도 있다. 진정한 귀는 영혼에 달려 있으니까 말이다. 할머니는 안타깝게도 그것을 밀림에서 잃어버리고 오신 것 같았다.
“아휴, 할머니 전 재산 누가 안 가져가요. 어떻게 가져가겠어요. 만 원만 주세요.”
나머지 삼천 원만 남기면 정말이지, 내가 전 재산을 가져가는 건 아니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할머니의 영혼은 깐깐해서 신화 속 존재들을 속이는 농담처럼 응대해야 할 것 같았다. 여러 번 말하니까 알아들으셨다. 다행히도 그것이 통했다.
“좋은 택시 기사님이었네. 고마워. 덕분에 잘 왔어.”
할머니는 황급히 사라지셨다. 새벽에 홀로 택시에 몸을 맡기는 일이 두려우셨나 보다. 희열이 파도치듯 은은한 달빛을 동반한 채 고요한 택시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단돈 육천 원으로 얻기에는 과분한 기쁨 같은 거였다.
그러나 금세 파도는 사라졌다. 요금을 아예 안 받으면 좋았을 텐데. 내 영혼이 입을 열어 지껄인 것이었다. 동시에 딸깍딸깍하며 긴박한 초침 소리가 들렸고, 메다기에 채워야 할 요금과 내 체력이 저울질되면서, 어둑어둑한 밤공기에 짓눌리는 느낌을 받았고, 급격한 피로감이 찾아왔다. 빛 가운데로 들어선 것 같았는데. 추락이었다.
아직 노인이라고 불리기 애매한 손님들, 그러니까 육십 대 전후의 신사분들은 거스름돈을 잘 받지 않는다. 젊은데 열심히 사는 모습이 보기 좋다면서, 고생하게나, 됐어. 수고해, 하고는 멋지게 내리시는 분이 한둘이 아니다.
아직 경제활동을 할 수 있거나, 그간 쌓아두어서 여유가 있는 분들이었다. 어머니뻘 되시는 손님들은 추운데 따듯한 커피 한 잔 사 먹으라고, 마음도 데워주셨다. 아마 그들의 호의를 합하면 만 육천 원보다도 훨씬 차고 넘친다는 계산이 떨어졌다. 생각할수록 더 깊은 구렁으로 떨어지고야 마는 몰락을 경험한 것이었다.
이다음에 나는 한 할아버지 손님을 만났다.
해가 중천에 떠 있을 즈음, 나는 삼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어느 할아버지가 차 문을 열고 앞자리에 털썩 앉으신 것이었다. 낯선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면 행상을 더 면밀하게 살피고는 한다. 그래서인지, 그 할아버지의 외모에 관한 인상은 아직도 선명하다.
할아버지는 흰색 오리털 점퍼에 하얀 비니를 엉성하게 쓰셨는데, 드러난 부근에는 하얀 머리털 몇 가닥이 듬성듬성 나 있는 거 말고는 거의 대머리에 가까웠다. 고음역의 목소리는 가볍게 날리는 듯한 가냘픈 느낌이라서, 자유롭고 천진난만한 성격을 지니고 계실 것 같았다.
“기사님, 만 원을 드릴 테니 저랑 티브이 좀 가지러 가시겠어요?” 차분하게 내 의사를 묻는 할아버지는 해맑게 웃는 얼굴을 하고 계셨다. 나는 알겠다고 주소를 불러달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 과정에서 얼마 전 새벽에 만났던 할머니가 떠올라서, 긴장되어서 몸이 경직되는 느낌을 받았는데, 할아버지 손님은 머뭇거림 없이 주소를 술술 말씀하시고는 말을 이어가셨다.
“운전만 해주시면 돼요. 제가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는데, 트럭을 부르려고 하니까 돈을 많이 달라고 하네요. 어제도 다른 택시 기사님이랑 옮겼어요. 이제 몇 개만 더 가지고 오면 돼요.”
택시는 사람을 싣는 차다. 물건만 실으면 과태료가 나온다. 더구나 그건 화물차 기사들의 밥줄을 건드리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와 주소지로 이동하면서 나름대로 선을 그었다. 왕복 한 번이다. 반복하면 골치가 아파질 수도 있으니. 그리고 사실상 이사라기보다 사람이 탔고 놓고 온 물건을 가지러 가는 수준이니까.
할아버지는 전에 살던 빌라에 짐을 가지로 들어가셔서 오랫동안 안 나오셨다. 혹시 혼자 들기가 힘든 걸까, 작은 티브이라고 했는데. 늦은 오후라 간간이 차들이 오갔다. 주정차들로 빼곡한 좁은 골목길이어서, 대기할 장소가 마땅치 못했다. 그래서 물 위를 가만히 떠 있기 위해 발을 구르는 일처럼 그곳에서도 비슷한 노력이 필요했다.
할아버지가 나오셨다. 티브이는 보이지 않았다. 프라이팬과 플라스틱병으로 꽉 찬 비닐봉지 같은 걸 꺼내오셨다. 그리곤 다시 건물로 들어가셨다. 아, 큰일 났다. 이건 이사다. 이사 중에 몇 가지 물건을 가지러 간 게 아니라, 택시를 어물쩍 이사 트럭처럼 사용하려고 하시려는 것이었다. 나는 또다시 마주 오는 차를 피하려고 끙끙댔다.
또 한참 있다가 다시 나오셨다. 컴퓨터 본체와 오래된 밥솥, 세제 통과 리모컨을 주섬주섬 들고 나오셨다. 서로 간의 이해를 한 번 정리해야겠다는 각오가 섰다. 단순한 몇 마디였다. 선생님, 저는 이삿짐을 모두 못 옮겨 드려요. 이 정도만 하시고 이제 가시지요. 할아버지는 여전히 해맑게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하시고는, 나와 함께 트렁크와 좌석에 짐을 실었다.
하늘은 붉어지고 있었다. 출발할 때 헤드라이트를 켰다. 이전의 장소로 돌아가면서 시간 대비 요금의 효율을 계산해보고 있었다. 한 시간가량 정차되어 있던 시간이 대부분이라, 만 원이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한숨이 나왔다. 나는 스스로 이건 평소 영업과 다른 시각으로 사고해야 한다고 되뇌었다.
조약돌 줍는 놀이하는 것도 아니고, 이사를 한답시고 종이 상자 하나 갖춰두지 않고서 이루어진 비효율적인 이 모든 과정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쩌려고 이러시나.
잠깐 사이에 내가 관찰한 그분의 웃음은 여유로운 성품에서 나오는 내공 같은 게 아니었다. 동작도 나무늘보처럼 느릿했고, 의욕 같은 게 없어 보였다. 친절한 말투는 타인과의 관계에 무관심하기에, 그저 누구에게나 구사하는 습관적인 말투였던 것 같았다. 나는 가는 중에 기만당하기 딱 좋은 기사와 승객이라는 이 얕은 관계를 걷어내 보기로 마음먹었다.
앞으로 남은 물건은 얼마나 있으며, 이사를 어떻게 할 생각이신지를 물으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할아버지는 내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늘어놓으셨다. 다 듣고 나서 할아버지의 삶의 궤적을 얼추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차마 연세를 여쭈어보는 건 못했다. 대화를 너무 급하게 몰고 가서, 수급자라는 것까지 말씀하셨기에, 혹여나 여태까지 이렇게까지 밖에 살지 못했냐는 모욕으로 들릴까 봐서였다. 상당 부분 감출 것 하나 없이 솔직하게 말씀을 이어가셨지만, 그래도 나는 처음 만난 사이라서 끝까지 조심스럽게 할아버지를 대했다.
할아버지는 지금도 무척이나 일하고 싶어 하셨다. 젊을 적부터 공장에 들어가 일하다가 잘리기를 여러 번 반복하셨는데, 완벽하게 해냈다고 스스로 여겨도 실수가 잦아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하셨다. 뒤늦게야 자신에게 장애 같은 게 있다는 걸 알아차리셨는데, 안타깝게도 장애 판정이 안 나와서 어떤 돌봄을 받지 못하면서 살아왔던 것이었다. 나는 발달장애인 센터에서 이년 반 정도 일했던 터라, 어느 정도는 장애 유형을 살펴볼 수 있는 감이 있었는데, 한 가지 떠오르는 장애가 있기는 했으나 대화를 나눌수록 더더욱 애매해지긴 했다.
결국 어느 때부터인가 그분은 일하기를 포기하셨다고 했다. 아마도 일터에서 잘리는 과정은 회사에 손해를 입히면서 생긴 처사라서, 아마도 거친 언사와 모욕을 받지 않았을까 싶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건 속살보다도 무르고 훨씬 연약해서, 괜찮은 척 굴어도 상처의 깊이에 따라 마음의 불구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수급비로 오랫동안 살아온 삶은 분명 자신이 원하던 삶은 아니라고 하셨다. 반듯한 직장이 없어서 결혼도 못했고, 자녀도 없이 혼자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할아버지는 다시 일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일을 하고 싶다, 그 반복되는 말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지독한 외로움 같은 게 느껴져서, 나는 한동안 머리가 핑 돌았다.
건강의 문제로 노화가 빠르게 진행된 게 아니라면 팔십은 거뜬히 넘어 보이셨다. 나와 함께 짐을 옮기다가도 현관 턱을 내려오다가 휘청하셨는데, 팔을 붙잡아 드린 내가 다 아찔했다. 손바닥의 감각에서 간신히 세워 놓은 인형처럼 흐물흐물한 가벼움이 느껴졌다. 이대로 머뭇거리고 있다가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오늘은 이만 쉬었다가 내일 이사하실 거라면서, 내게 번호를 알려달라고 하셨다. 만감이 교차했다. 전류가 몸이 뚫고 지나간 것처럼, 혼미하고 어지러웠다. 땅은 그대로 멈추어 있는데, 지진이라도 난 듯이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미 확고한 대답을 정해놨기 때문이었다. “아니요.”라고. 어쩔 수 없다며, 최대한 에둘러 말하는 적절한 방식을 위해서만 뇌를 사용했다. 나의 속내를 꿰뚫어 본 누군가가 하늘에서 맹렬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만 한숨이 나왔다.
교회 봉고차를 가져와 이사를 끝내드릴까 고민하긴 했었다. 그런데 오가다가 대화하면서 이사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바퀴벌레가 셀 수 없이 나와서였다. 들어갔다가 뒤늦게 나왔던 건, 물건에 달라붙은 바퀴벌레를 털어내려고 했던 게 아니었을까. 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게 정말 부끄러웠다. 도망갈 생각만 하고 있었으니.
관계를 이어가지 않고 떠날 결정을 내린 이유에는 내가 꺼낸 종교 이야기에 치를 떠시는 것 같아서였다. 부정한 반응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종교 언급을 애초에 가톨릭, 불교, 개신교로 삼분하여 꺼냈는데도, 한 번만 더 종교 이야기하면 부정을 쫓기 위해 침을 내뱉으실 것만 같았다. 웃음이 가시고 욕설 같은 게 이다음에 툭툭 나놨는데, 종교는 이 분에게 금지어 같은 거였다.
됐다. 여기까지. 뒤돌아서 도망치듯 떠나온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계좌 이체하겠다며, 스마트폰을 조작하다가 못하겠다고 내게 넘겨주었는데, 아뿔싸, 전 재산이라고 말씀만 안 하셨지, 이번 달 수급비에서 남은 돈이에요, 이걸로 넘겨야 해요,라고 하시는데, 나는 초과한 몇천 원은 떼고 약속했던 만 원만 받겠다고 하면서, 내 계좌로 돈을 옮겼다. 할아버지는 고맙다고 하셨으나 내 손가락은 떨렸다. 벼룩의 간을 빼먹는 게 이런 거였어. 정말 씁쓸했다.
나는 서둘러 영업에 나섰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온몸에 하얀색 옷을 입고 있어서 그런지, 설마 예수님이셨나. 그 생각이 싫어서 더 급히 도망쳤다. 내가 오를 구원의 기회는 이걸로 끝인가. 하도 갖가지 생각이 들어서, 콜이 뜨는 걸 몇 번이나 놓쳐버렸다. 이날은 풀썩 늙어버린 기분이라서 일찍 들어가서 쉬었다.
아무리 빠르게 달려도 이대로 삶이 정체되어 버릴 거란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갈고리가 같은 게 차에 걸려 있는 기분이 들었다. 노쇠의 저주가 아주 빠르게 나를 조여 오는 것이었다.
오, 주님, 어디에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