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에세이

잃어버린 매트를 찾아서

6화 빙판길

by 노에시스



뭐가 쏟아져 내릴까. 12월 크리스마스 선물 따위를 바라는 게 아니었다. 영업을 나오자마자 날씨가 흐려서 나는 걱정스럽게 점을 쳐댔다. 내가 신통한 무당처럼 앞날을 내다볼 수도 없기도 하고, 날씨가 어떠하든 택시 기사답게 차분히 일하는 게 바람직했다. 그런데도 이날에 물기와 습기를 혼동할 만큼 초조해져서 마음을 붙잡기가 어려웠다.

습기가 서려 있던 앞 유리창만 보고 무작정 와이퍼를 켠 것이었다. 삑삑-삑삑 하고 마른 유리면에 와이퍼에 달린 고무 부분이 말려들어 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땅이 얼어서 미끄러질 수도 있을 텐데. 내일은 새벽에 나오지 말까. 저녁에는 손님이 없을 거야. 나도 모르게 막 어설픈 점괘를 풀어댔다.


변명하자면, 이토록 쩔쩔매는 이유가 있기는 하다. 얼마 전에 빙판길의 무서움을 경험해서다. 골목의 가파른 내리막을 지나가다가 드르륵하고 제동이 풀리면서 대략 십 미터를 쭉 미끄러진 적이 있는데, 이때 나는 브레이크를 밟지 못하게 막는 듯한 어떤 강력한 힘을 느꼈다.


물론, 빙판에서 마찰력을 받지 못하는 바퀴의 회전력을 유압이 감당하지 못해서였지만, 그것은 한 인간 존재로서 받게 된 내 감각에서는, 나를 비극으로 거칠게 몰아붙이는 불운의 기운이었고, 묻고 생각할 순간조차 주지 않는 강퍅한 손길 같은 것이었다. 등골이 서늘해지고 너무 몸이 놀라서 몸살이 난 듯 온몸이 욱신거려 왔다.


새벽이라 아무도 없어서 다행히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강제로 미끄럼틀에 태워졌을 뿐이라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며 애써 담담해지려고 노력했으나, 불가항력적 힘의 자국이 너무나 선명하게 남게 되었다. 그래서 쭈글쭈글해지다 못해 그만 무기력한 감정에 사로잡혀 버렸다. 이날에서야 고무바퀴가 빙판 위에서 무척이나 취약하다는 걸 뼈저리게 실감했다.

이후로 정말로 조상귀신이 내게 씌워진 건 아니지만, 두려워하게 만드는 어떤 생각에 씌워진 것 같았다. 겨울이 지나면 그 생각이 떠날 게 분명하다. 하지만 당분간은 땅이 촉촉해지면 불안한 심리를 떠안고서 도시 풍경을 바라보게 될 거라서, 생각이 원혼의 족쇄가 된 듯싶어서 마음이 편치 않았던 건 사실이다.


신기하게도 이런 불안에서 나를 해방시켜 준 경험이 있는데, 그것은 도로 위에서 찰나에 일어난 일이었다. 우중충해진 하늘은 공연이 곧 시작될 것을 알렸다. 세상은 점점 습해졌고, 자연의 현상이 불규칙한 번개처럼 번득거렸다.


먹구름에서 실실 새어 나오는 잔여물은 처음에는 이슬비였다가, 갑자기 딱딱한 자갈 같은 얼음 파편이 되어서 택시의 보닛을 두들겼는데, 곧 공중을 현란하게 빙빙 돌며 가뿐한 착지를 선보이는 눈발 선수 같은 게 되기도 한 것이었다. 이 변화가 두세 차례 반복되다가 하늘이 힘에 부친 건지, 하도 콧김을 내뿜어서 금세 수증기로 차올라 흐릿해져 버린 세상을 만들었다.


나는 물기에서 불성을 보았다. 물도 형태를 바꾸며 불꽃처럼 이글거리며 세상을 차갑게 데우는 것이었다. 와, 이 얼마나 놀라운 장관인가. 단단한 쇠도 달궈지면 붉고 노랗게 변하다가 물처럼 물렁물렁해진다는 게 생각났다. 단조로운 순간에도 변화에 변화가 엉키며 뒤척인다. 정보로만 언급하자면 이것은 비, 진눈깨비, 눈이다. 그런데 드넓은 세계 앞에서 보잘것없는 나란 존재 앞에서 자연이 기이한 춤을 춰준 것이 아닌가. 휙 하고 지나치던 차 안의 운전자들도 보고 있었을까.


말없이 지나치던 그들도 세계에 몰입한 관람객이 아니겠는가. 둥그스름한 유리로 둘린 쇳덩이 안에서 내달리는 그들은 겉으론 냉랭한 듯 보여도, 변덕스러운 세상에 맞서서 목적을 따라 머리와 가슴은 차가웠다가 뜨겁기를 반복한다. 울긋불긋 전의 되는 세계의 변화는 사물과 의식을 전진하면서 내게 닿았다. 시선을 잠잠히 두는 것만으로도 세계의 이 기상천외한 공연을 만끽하는 기분이 든 것이었다.

공연의 끝에는 진득한 감상이 남는다. 도로를 배회하며 변덕스러운 날씨를 느끼다 보면 괜스레 내가 다 부끄러워졌다. 내 마음이 고정된 하나의 생각과 감정만을 내세우고 근심과 염려로 펼쳐질 미래만을 부르고 있던 것이었다.


딱 떨어지듯 하나로 세상을 답을 내려는 시도들은 거짓부렁이 같은 게 아닌가. 아첨꾼, 사기꾼, 도박꾼들이라 부르며 그런 시도를 경계했던 내가 그러고 있었다니. 변덕스러운 날씨에 불과하다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 특별한 경험은 정말로 내가 미끄러지지 말아야 할 지점이 어딘가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관조하면 할수록 새로운 감상을 얻게 되는 이 황홀한 세계에서는, 부정에 사로잡혀 있으면 긍정으로 만나게 될 것들을 놓치게 되어서, 그것만큼 애처로워질 수가 없는 것이다. 없을 것 같던 곳에도 콜이 막 뜨기도 하고, 있을 것 같아도 안 뜨는 게 택시 영업이고 인생인데.


세계에 관한 긍정적인 내 감상은 순간의 유희로 그치지 않았다. 조금은 바보 같은 생각이라 여길지는 모르겠으나, 원래 놀라운 광경이나 감상 같은 걸 얻은 후에는 현실감각이 떨어진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나 지하철 시간대와 노선을 살피는 데에 퍽 힘겹고 어떤 정신에 의해 귀가 본능이 약해지기도 한다.

멈춰 세워 놓고 그 열정적인 흐름을 이어가라고 영혼을 흔들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주로 경기장이나 문화의 중심지와 번화가, 대학가 부근에서는 경제적인 효율을 포기하고 택시로 한 번에 이동하는 손님들이 꽤 많은 것이기도 하다.


택시 기사인 나는 그런 손님이 좋다. 자기 시간에 깊이 몰입되어 있어서, 예민하게 굴지 않는 손님들이 내게 열정적인 힘을 전달해 주는 기분이 들었다. 특별히 나와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택시를 타기 전 일행과의 인사나 통화, 동행하는 일행끼리의 대화에서, 이어진 침묵을 타고도 내게 전해졌다.


그들의 대화에 억지로 참여하려 들거나 엿들으려고 하지는 않지만, 떠도는 영혼처럼 그들과 뒤섞여 있는 건 어쩔 수 없다. 내게 눈과 귀 두 개가 달린 특성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다만 내 눈은 감을 수 없으나 입은 닫을 수는 있었다.


열정적인 손님들에 관한 인상을 대략 나열해 보면 이렇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왁자지껄 신나게 떠드는 손님들, 멋지게 잘살아보자고 삶을 진중히 다시 매듭짓는 손님들, 일의 무게에 눌리지 않고 즐겁게 임하려는 손님들, 여행을 순수하게 즐기는 자들, 선량한 웃음을 짓는 손님들. 내일로 춤추듯 넘어가는 사람들.

성실히 암벽을 오르는 듯한 손님들의 열정은 화학적인 온도를 넘어서 택시를 데울 만큼 너무나 뜨거운 것이어서, 내 영혼의 살갗에 닿았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달라도 그 에너지가 내게 전달된 것이었다.


마주한 우연은 가벼운 잔상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들이 추는 생의 춤에 몸을 흔들면서 나는 이 세상을 살아갈 마찰력을 얻는다. 퉁퉁, 우연처럼 깃들어서 어디선가 들려오는 경쾌한 북소리에 내 무기력한 네 바퀴는 스텝을 밟을 줄 아는 네 발이 된다.


이제 나는 왜 미끄러졌는지 묻지 않는다.

무엇에 미끄러지고 있는가.

어디서 미끄러지면 안 되는가를 묻게 되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