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몫, 갈망 끝에 남는 것

아삽의 시 묵상

by 노에시스
시편 73:15~28 [새 번역]
73:15 "나도 그들처럼 살아야지" 하고 말했다면, 나는 주님의 자녀들을 배신하는 일을 하였을 것입니다.
73:16 내가 이 얽힌 문제를 풀어 보려고 깊이 생각해 보았으나, 그것은 내가 풀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73:17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야, 악한 자들의 종말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73:18 주님께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세우시며, 거기에서 넘어져서 멸망에 이르게 하십니다.
73:19 그들이 갑자기 놀라운 일을 당하고, 공포에 떨면서 자취를 감추며, 마침내 끝장을 맞이합니다.
73:20 아침이 되어서 일어나면 악몽이 다 사라져 없어지듯이, 주님, 주님께서 깨어나실 때에, 그들은 한낱 꿈처럼, 자취도 없이 사라집니다.
73:21 나의 가슴이 쓰리고 심장이 찔린 듯이 아파도,
73:22 나는 우둔하여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나는 다만, 주님 앞에 있는 한 마리 짐승이었습니다.
73:23 그러나 나는 늘 주님과 함께 있으므로, 주님께서 내 오른손을 붙잡아 주십니다.
73:24 주님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해 주시고, 마침내 나를 주님의 영광에 참여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73:25 내가 주님과 함께 하니, 하늘로 가더라도, 내게 주님 밖에 누가 더 있겠습니까? 땅에서라도, 내가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73:26 내 몸과 마음이 다 시들어가도, 하나님은 언제나 내 마음에 든든한 반석이시요, 내가 받을 몫의 전부이십니다.
73:27 주님을 멀리하는 사람은 망할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정절을 버리는 사람은, 주님께서 멸하실 것입니다.
73:28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것이 나에게 복이니, 내가 주 하나님을 나의 피난처로 삼고, 주님께서 이루신 모든 일들을 전파하렵니다.




시인은 악인처럼 살아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습니다(15절). 짧은 순간일지라도, 그의 마음은 선과 악의 속삭임 사이에서 심하게 흔들렸던 것입니다. “그래, 악인처럼 살면 안 돼.”라고 단호하게 돌아서면 그만이건대, 왜 ‘배신’이란 중대한 잘못을 자각하면서까지, 악인의 자리에서 쉽사리 결별하지 못했을까요?


그건 막대한 '자기 몫'을(26절) 얻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인간은 비어 있는 상태를 못 견뎌합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쟁취하고, 도전하고, 투쟁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속담처럼, 인간의 본성은 체면보다도 채움을 지향합니다. 심지어 아무것도 얻지 못한 상태에서도 '의미'라는 무형의 것을 부여잡으려고 하기도 합니다.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이 느껴져도 그것이 실낱같은 소망의 틈을 열어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보고야 말았습니다. 무언가를 갈구하며 얻기 위해 전투적으로 내달리는 인간의 모습에서 죽음으로 치닫는 비극적인 결말을 말입니다. 그것은 미끄러지면 바로 사망에 이르는 절벽 위에 서는 일(18절)이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 간절해질수록 끝내는 자기 목숨까지 내어 받칩니다. 해산의 고통 속에서 창작에 온 힘을 쏟다가 이르는 작가의 죽음이 숭고하게 느껴지는 건, 그 시도가 이미 모순적인 구조의 비극 안에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혹사하고 파괴하면서까지 뭔가를 얻으려는 노력에는 어떤 형태로든 잔혹함이 베여 있습니다.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시도가 끝에 다달을 수록 드러내는 건, 모순되게도, 이성을 잃은 짐승다움입니다(22절).



욕망의 항아리가 깨진 줄도 모르고 물을 붓는 행위에 온갖 지혜를 더 한다고 그것이 이루어질까? 물을 붓는 걸 멈추고 항아리의 깨진 구멍을 메워야만 합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원수를 고발하는 기도를 통해서, 마침내 자신의 짐승다움, 어리석었던 모습을 발견합니다.



비로소 그때, 시인은 자기 영혼의 깨진 구멍을 메우기로 결심합니다. 그 증거가 바로 자신의 영원한 몫이 하나님이시라는 고백(26절)입니다. 갈망은 사람을 쇠진시킵니다. 갈망은 빼앗겼던 것을 다시 빼앗으라고 강요하며,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해 대항하라고 합니다. 생을 이 같은 노력에 모두 강탈과 앙갚음으로 쏟는다면 끝내 마주하는 곳은 허무와 공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몫으로 두고 사는 이들의 삶은 강탈과 앙갚음의 원리가 바뀝니다. 강탈은 나눔으로, 앙갚음은 베풂으로 바뀌게 합니다. 원수와 화해하는 일은 인간에게 무척이나 어렵지만, 하나님은 그 같은 변화를 너무나 쉽게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시인의 존재를 변화시키셨습니다. 그래서 고통과 괴로움으로 삶을 연명하던 시인은 이제 다시 일어나 고백합니다,



나는 알게 되었습니다. 갈망 끝에 진짜 남는 것은 하나님, 곧 나의 몫이신 그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유일한 피난처가 되시며, 나는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세상에 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갈망 끝에 남는 건 ‘나의 몫’의 허무가 아니라, 존재의 속성을 변화시키며 주의 자녀답게 하시는 은혜입니다.




오, 주님. 나의 몫이 하나님이 되게 하소서.

주님은 나의 피난처가 되신 분이십니다.

주의 은혜를 전파하는 열망으로 차오른 삶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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