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보이지 않는 것들

볼 수 없었다 = 알 수 없었다

by 노에시스


요한복음 9:35~41[200주년 신약성서]


39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이 세상에 심판하러 왔습니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게 하고 보는 이들은 소경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바로 보이지 않는 것들로 가득합니다. 제 딸이 울음을 터트리거나 갑자기 열이 난다던 지 할 땐 이미 보고서 알아차려야 할 때를 놓친 것이겠죠.



가끔 제대로 살펴보지 못해서 놓쳐버린 것이 많은 날도 찾아옵니다. ‘왜 몰랐지? 내가 왜 그랬을까?’ 눈을 똑바로 뜨고 하루를 산 건지 의심하게 됩니다. 그런 날에는 밤이 길어집니다.



그런데 그보다 저를 당황스럽게 만드는 건, 눈을 뜨고도 제가 저 자신을 속이려 드는 순간을 마주할 때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평생을 시각 장애로 고생하다가 눈을 뜨게 된 자를 두고 놀라지도, 함께 기뻐하지도 않고,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일에서 비롯되었다고 그를 내쫓아 버렸던 바리새인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율법을 눈이 멀어 읽어보지 못한 사람처럼 위선적인 태도를 보여주었습니다. 도리어, 40절, “우리도 소경이란 말이요?” 뻔뻔한 태도로 예수님께 따져 물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앞에 예수님이 어떤 분인 줄을 보고도 몰랐습니다. 오히려 눈이 멀었던 자가 먼저 보게 되고 믿게 됩니다.



장애로 인해 교회의 문턱을 넘는 건 어려운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장애도 넘어섭니다. 무의식의 심연도 넘어 섭니다. 신앙은 영혼의 감각으로 인지되는 앎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앙은 옹졸한 나의 세계에서부터 벗어나 드넓은 신의 세계로 들어가는, 탈아의 길입니다.



갈망하는 영혼만이 주를 볼 수 있습니다. 진실한 자만이 주를 따르는 삶의 여정에 나섭니다. 감춰진 자신의 꿍꿍이가 그럴사한 변명이 되어 하나님의 창조세계 질서에 균열을 낼 수 없으며, 자신에게 당신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따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없이도 계시는 이시며, 이 세상 모든 게 하나님의 품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에게로 이끄는 깨달음의 과정들을 마주하게 하십니다. 한계단씩 오르던 짧막한 기억이 어느덧 아찔한 높이감을 선사하는 것처럼, 자신을 만나려는 진실한 자들에게 영혼의 감각으로 세계를(하나님을) 느끼게 하십니다.



탄생에서 죽음으로 가는 여정은 생각보다 짧습니다. 자기 욕망을 감추어가며 궁색한 변론을 늘어 놓기에는, 하나님이 지으신 이 세계의 아름다움이 너무나 많아 경험하며 감탄하기가 바쁩니다.



주님. 어리석은 판단과 선택으로 저의 세계가 좁아지려할 때, 주님을 속이고 제가 저를 속이려고 할 때, 주님께서 저를 치셔서라도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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