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말, 들리시나요?

아삽의 시 묵상

by 노에시스
시편 77:1~9 [새 번역]
77:1 내가 하나님께 소리 높여 부르짖습니다. 부르짖는 이 소리를 들으시고, 나에게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77:2 내가 고난당할 때에, 나는 주님을 찾았습니다. 밤새도록 두 손 치켜 들고 기도를 올리면서, 내 마음은 위로를 받기조차 마다하였습니다.
77:3 내가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한숨을 짓습니다. 주님 생각에 골몰하면서, 내 마음이 약해집니다. (셀라)
77:4 주님께서 나를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하시니, 내가 지쳐서 말할 힘도 없습니다.
77:5 내가 옛날 곧 흘러간 세월을 회상하며
77:6 밤에 부르던 내 노래를 생각하면서, 생각에 깊이 잠길 때에, 내 영혼이 속으로 묻기를
77:7 "주님께서 나를 영원히 버리시는 것일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않으시는 것일까?
77:8 한결같은 그분의 사랑도 이제는 끊기는 것일까? 그분의 약속도 이제는 영원히 끝나 버린 것일까?
77:9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일을 잊으신 것일까? 그의 노여움이 그의 긍휼을 거두어들이신 것일까?" 하였습니다. (셀라)



비 오는 밤, 바람의 비명이라도 듣는 날이면, 저는 어딘가에 계실 하나님을 애타게 찾곤 했습니다. 버티고 견디다가 꺾여서 드러눕고야 마는 묘목같이, 제 마음도 넘어져 다시 오랫동안 못 일어날 것 같아서였습니다.


시인의 호소가 제 마음에 닿았습니다. 시인은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부르짖으며 기도하다가 지쳐 더 말할 힘도 잃었습니다(4절). 시인의 괴로움은 위로로 끝나는 문제는 아녔습니다. 그는 위로를 마다하면서까지 애타게 기도했습니다(2절).


시인은 왜 호소하였나?



저는 시인이 삶 그 자체로 힘겨운 것, 즉 '살아감'에서 자기 존재를 짊어져야만 하는 숙명적 괴로움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호소가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살아감'에는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살아내는 과정이 그 자체로 결과이자 산출된 답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인간은 답을 찾기 위해 산다기보다 ‘힘겨움’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사는 게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당혹스러운 날에는 어김없이 물음들이 차오릅니다. 그 물음은 밖으로 내던져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빼곡하게 채워진 물음에 영혼이 질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해할 수가 없는 물음들이, 그것이 망치가 되어 계속 영혼을 내리치는 충격을 주기도 하는데, 삶은 여전히 평온하고 아무런 해를 입지도 않는 것 같아서, 고독 속에 느끼는 그 ‘힘겨움’이 존재를 서서히 파괴하기도 합니다.



삶은 힘겹습니다. 그래서 살아도 산 게 아닌 것처럼, 회피하는 인생을 살기도 합니다. 자주 우리는 상반된 감정과 행동 사이에서 헤맵니다. 그 이율배반적 모습이 그러합니다. 언제나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으나 나도 모르게 분을 내고 있음을, 항상 고맙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으나 받은 것이 없는 듯이 조용히 지나침을.


삶이 주는 ‘힘겨움’에 지치다 보면, 희로애락의 얼굴 이면에서는 영혼이 비명을 멈출 줄을 모릅니다. 타인에게 드넓은 바다 같이 포용하고 멋진 태도와 인상을 전해 주고 싶지만, 자기 안에 황폐해지고 텅 빈 마음을 남들에게 들킬까 봐 두려워서 거짓의 옷을 입기도 합니다. 그렇게 저는 '힘겨움'을 견디지 못해 저 자신과 마주하지 못하고, 저란 존재로부터 도피를 선택하기도 합니다.



6,7절, 밤에 부르던 내 노래를 생각하면서, 생각에 깊이 잠길 때에, 내 영혼이 속으로 묻기를, 주님께서 나를 영원히 버리시는 것일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않으시는 것일까?



시인이 위로를 마다하면서까지, 하나님께 목이 쉬도록 호소를 멈추지 못한 건 힘겨움에 짓눌리지 않기 위한 발버둥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힘겹게 내쉬던 우리의 숨결마저도 느끼시는 분이십니다. 질문할 때,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할 실마리를 얻듯, 하나님께 호소할 때에 내 존재의 '힘겨움'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인식하게 되고 넘어설 실마리를 거기서 얻게 됩니다.



주님,

이 고통이 정말 당연한 건가요?

사는 게 원래가 이런 겁니까?

제가 무엇을 잘못했나요?

저는 왜 이 모양일까요?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하나님, 저에게 혹시 화가 나신 건가요?

하나님, 지금 제 말 듣고 계시지요?



물음은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나를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그분은 우리가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이미 곁에 계셨습니다. 그래서 기도는 그 사실을 기억하고 깊이 깨달아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나의 '살아감'에 홀로 걷고 있는 것 같으나 실상은 부르짖고 호소하기 전부터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셨다는 사실을요. 하나님은 기도하는 영혼을 만지시고, 다시 일어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필요한 힘과 용기를 주십니다.



하나님께 내 존재가 물음이 되고, 그것이 호소가 되어, 기도가 될 때, 하나님은 ‘힘겨움’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게 하고 담대히 넘어설 힘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 '힘겨움'을 완만한 언덕이 되게 하시며, 지치고 외로운 영혼을 푸른 초원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물음들이야 말로 하나님께 호소로 이어지는 영혼의 깊은 기도입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