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12시 첫째 솔방울과 함께 한 온라인 수업이 끝났다. 토요일 오전의 여유를 반납해서인지 수업은 길고 지루했다. 솔방울이는 장난감방에서 기다리는 아빠와 세 명의 동생들에게 끝났다는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고 뒤따라간 나는 장난 반 진심 반으로 당장 짐을 싸서 떠나자고 했다.
어디로? 봉평으로 말이다! 8월 마지막 주말은 2, 7 장인 봉평장이 열리지 않아 아쉽지만 그래도 괜찮다. 우리에게 봉평은 항상 그대로 충분했다.
이제는 모두 결혼을 하여 전만큼 자유롭진 못하지만, 신랑과 시동생은 스노우 보드를 너무 사랑해서 봉평 근처 한 스키장 앞에 작은 숙소를 마련했다. 보드를 타는 겨울 외에는 대부분 비어있어 언제든 갈 수 있었다. 그게 벌써 10년이 다 되어간다. 지금 8살인 솔방울이 태어났을 때부터 매년 여름은 그곳에서 지냈다. 자주 가다 보니 봉평은 봄도 좋고 가을도 좋았다. 코로나 이전에는 한 달에 한두 번씩 내 집처럼 봉평을 찾았었다. 숙소에는 필요한 것들이 대부분 있어 마음만 챙긴다면 언제든 떠나기 좋았다.
“아무리 그래도 어른 둘에, 애들 넷인데 이 가방 하나로 다 챙겨지네.”
여섯 식구의 1박 2일 짐이 네모난 보스턴백 하나로 챙겨진 것을 보니 너무 가뿐해서 민망한 웃음이 나왔다. 가뿐한 가방은 봉평으로 향하는 우리의 마음을 말해주는 듯하였다. 간단한 주전부리와 아침저녁으로 서늘할 강원도 공기를 생각하며 겉옷을 하나씩을 챙겨 들고 길을 나섰다. 급할 것도 없었다.
집 앞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봉평으로 진입하는 면온 ic까지 150KM, 언제나 정체구간인 여주 부근은 막내 들판이의 탄생으로 머릿수를 채워 전용차선을 타고 달릴 수 있었다. 밀리는 차들을 옆으로 두고 쭉쭉 내달리니 네 아이를 낳기 잘했다는 생각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면온 IC에 들어서면 남편은 창문을 열고 바람을 맞으며 속도를 줄인다. 오늘은 출발이 늦었지만 보통은 차가 밀리지 않는 새벽에 출발했고 도착하면 서늘하고 물기 가득한 아침 공기가 우리를 반겼다. 그러면 도시에서 답답했던 속은 달래지고, 메마른 마음도 촉촉해졌다.
숙소에는 짐만 두고 10분 거리 봉평 시내로 향하며 무엇을 먹을지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남편과 아이들은 아침밥으로 갓 지은 고소한 콩나물밥과 칼칼하고 구수한 장칼국수를 좋아한다. 그러나 장이 서는 날이면 그 행복함은 배로 커진다. 깨끗하고 넓은 주차장에 자리 잡고 앉아 천막을 치며 장사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각자 입맛에 맞는 먹거리를 생각한다.
단골 메밀전병 집 어르신은 아이들을 볼 때마다 많이 컸다며 예뻐해 주시고 셋째 산봉우리를 보고는 아빠를 꼭 닮았다며 작고 두툼한 손에 부꾸미를 하나 쥐어 주신다.
장 끄트머리 자리한 과일 가게에서는 그날 좋은 제철 과일을 물어 사면 저렴하고 실패가 없다. 나이 지긋하신 사장님 부부는 둘째 이파리를 볼 때면 손녀딸과 같은 나이라며 손녀딸 이야기를 하신다.
남편은 양은 대접에 담아 파는 천 원짜리 좁쌀 막걸리 한잔을 마시며 나와 운전대를 바꿔 잡고, 장인어른을 위해 막걸리 한 병을 따로 챙긴다. 아이들은 지나다니며 시식용 송화 버섯을 참기름을 콕 찍어 야금야금 먹고 한 손에는 달콤한 꽈배기를 한 손에는 구수한 뻥튀기를 들고 있다.
이날만큼은 나도 메밀전병에 수수부꾸미, 맛있는 순대와 떡볶이, 튀김까지 더 열심히 뱃속으로 넣어 둔다.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배를 채우면 우리는 장터 중간 메밀 커피 집에 나란히 앉아 꾹 눌러 짜주는 색색의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쥐고 휴식을 취한다.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간이 맞으면 타요 열차를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돌 수 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강둑을 건너 문학의 숲까지 돌고 오는 타요 열차를 타면 놀이 공원에 온 것 같은 기분이다. 가을 축제에 운영하는 깡통 열차는 짜릿한 재미가 더 하다.
사람이 없는 한적한 시간이면 주차장 한편 놀이터는 우리 집 아이들 차지가 된다. 크지 않아도 모든 놀이터는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 같다. 요새는 코로나로 인해 사람 많은 집 앞 놀이터를 가지 못하기 때문에 오랜만에 숨이 차오르도록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나도 행복해진다.
이튿날은 여유롭게 나와 효석달빛언덕으로 향했다. 한여름이라면 물 맑은 흥정계곡에 발을 담그고 왔겠지만 8월 말 봉평의 더위는 한풀 꺾여 있었다. 태풍에 물이 불어나 들어가지 못할 때에도 가뭄에 물이 말라한 뼘이나 물이 줄었을 때에도 우리는 매년 흥정 계곡을 오갔다. 다니다 보면 봉평을 깨끗하게 유지하려는 주민들의 노력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는데 흥정계곡은 그런 마음이 크게 느껴지는 곳 중 하나이다. 10년째 오는 타지인의 마음은 그 노력에 항상 감사함을 전한다.
오늘은 그렇게 흥정계곡을 건너뛰고 효석달빛언덕으로 향했다. 이곳은 아이들 모두가 좋아하는 곳이다. 몇 년 전 어느 날 봉평에 트로이 목마 같은 크고 낯선 당나귀가 나타났다. 무엇일까 몇 번을 바라만보다 입구를 찾아 들어간 곳이 효석달빛언덕이었다.
봉평의 대표작,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 선생님의 생애와 관련된 것을 테마로 만든 곳이다. 효석달빛언덕 안의 여섯 장소에서 모두 도장을 받아오면 마지막 장소인 꿈 꾸는 달 카페에서 기념품을 받을 수 있다. 커다란 당나귀는 그중 하나의 장소인 달빛나귀 전망대였다.
마지막 도장을 받는 꿈꾸는 달 카페는 책을 좋아하는 첫째 솔방울이 특히 좋아하는 장소이다. 쌀쌀해지면 카페 중앙 커다란 난로에는 장작불이 때지고, 그 뒤로는 책들이 가득한 책장이 둥글게 벽처럼 에워 쌓고 있다. 아이는 난로와 책장이 주는 안락함에 한번 앉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는다. 남편과 나도 모닥불 앞에서 불을 바라보면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하며 긴장했던 마음을 풀게 된다.
여름의 끝자락인 오늘은 모닥불이 없지만 카페의 유리문을 모두 열어 놓아 시원하게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니 기분이 좋다. 어느새 아이들은 나귀 광장 앞 냇가에 들어가서 흥정계곡을 다녀오지 못한 아쉬움을 첨벙거리고 있다.
작년도 올해도 봉평은 한적하다. 그러고 보니 메밀꽃 필 무렵이었다. 봉평 곳곳에는 메밀싹이 무릎께만큼 자라 있고 열흘 정도 지나면 산허리가 온통 메밀밭으로, 피기 시작한 꽃은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장면이 펼쳐질 것이다. 메밀꽃 필 무렵이면 봉평은 일 년 중 가장 북적였다. 축제 기간 내내 메밀꽃을 보기 위한 사람들을 태운 관광버스가 줄지어 오갔고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 밭을 배경 삼아 전국 각지에서 모인 장사꾼들과 요란한 각설이 공연이 이어졌다.
사람 없는 일요일 오후, 한적한 효석달빛언덕 돌계단에 앉아 아이들 노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메밀꽃 축제의 소란함이 그리워진다. 코로나로 모두가 어려운 시기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지나고 내년에는 아장아장 걷는 막내 들판이의 손을 잡고 요란 법석한 메밀꽃 축제의 한가운데를 걸어 보고 싶다.
이효석 선생님은 기억의 공간으로 고향인 봉평을 떠올린다고 했다. 봉평이 주는 편안함은 우리에게도 그와 같다. 봉평은 우리만의 이야기와 기억으로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우리도 그것을 발판 삼아 팍팍한 일상을 살아간다. 오랜만에 이곳을 찾은 오늘의 기억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