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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밍꼬 May 21. 2021

나를 다시 펼치다

이밍꼬, 인생의 전환점


  -애들아 조용히 좀, 가만히 좀, 딴짓 좀 그만해!


 이것이 나의 일상 삼중주이다. 나는 원래 상담심리사였다. 고2 여름, 패션잡지 ’쎄씨’의 한 귀퉁이에서 상담심리학자란 직업을 알았고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친구’라는 말을 자주 듣던 나는 상담사가 되고 싶어 졌다. 그래서 심리학과에 진학했다. 휴학기간 1년을 합하여 학부 5년, 한 번의 떨어짐 뒤에 들어간 대학원에서 2년, 상담사로 일하며 3년, 10년을 심리학과 함께했다. 그리고 결혼을 하였다. 평균 2년을 주기로 부지런하게도 아이를 낳고 키웠다. 그렇게 8년, 아이는 네 명이다. 아이를 키우며 상담자의 태도 세 가지 중 공감과 경청은 이미 날아가 버렸고 육아에 지친 나의 정제되지 않은 ‘날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이상한 진솔성만 남았다. 둘째를 키울 때까지는 어떻게든 일을 하려고 애썼는데 셋째가 임신된 것을 알고 마음을 비웠다.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 봐도 ‘나의 자아성취’를 위해 일하기에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심리학에 몸을 담았던 시간만큼 전업주부로 살았는데 아직도 ‘직업이 무엇이냐’고 묻는 칸에 전업주부라고 쓰는 건 목에 가시가 걸린 듯 껄끄럽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소식이 뜸하던 대학원 동기에게 연락이 왔다.


  -사실은 나 책 냈어.


  무엇이든 열심히 하던 동기가 책을 냈다고 하니 벌써 훌륭한 심리전문가가 되어서 심리학책을 낸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의 책은 일과 가족의 일상을 쓴 에세이였다. 아는 사람이 쓴 책은 꽤 재미있었다. 그녀를 알아서 재미있고 몰랐던 모습에 신기하고 자라 온 과거의 이야기는 지금 그녀 모습을 이해시켰다. 물론 심리학자라는 흥미로운 직업을 가지고 독특하게 세상을 보는 이야기는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봐도 재미있었다. 작가란 사람이 내 옆에서 나타날 줄은 몰랐다. 같이 책을 읽은 내 친구들은 재미있다며 내 이야기도 글로 써보라고 하였다. 내가 글쓰기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지만 그것이 내 마음의 씨앗이 되었다.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관련된 책에 자꾸 손이 갔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올망졸망한 아이들을 챙기며 하는 집안일만으로 버거웠다. 그러다 올해 초 사는 곳의 학습 센터에서 ‘초심자 글쓰기’ 강의를 발견하였다. 코로나 덕분에 수업은 비대면이라 집에서 들을 수 있었다. 기회가 왔다. 넷째는 아직 안아만 주면 잠을 많이 자는 시기여서 아이와 함께 듣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글쓰기 숙제도 있을 텐데 아이들을 보며 해낼 자신은 없었지만 ‘글쓰기가 무엇이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쓰는지’가 궁금했다. 목표는 수업을 끝까지 듣는 것이었다. 결혼 전에는 완벽하게 잘하고 싶어서 어떤 것들은 시도하지 않고 살았는데 ‘아이 넷의 아줌마’가 되고 보니 ‘좀 부족해도 된다는 뻔뻔함’을 내 삶의 선물로 받았다.


  비대면 초심자 글쓰기로 모인 수강생들의 열정은 진지하였다. 글쓰기에 대한 마음은 열정의 수강생들이 만든 파도의 추진력을 타고 항해하기 시작하였다. 같은 마음으로 모여 서로 격려하고 이야기하며 글쓰기에 대한 용기를 얻었고 서로의 글을 나침반으로 삼아가니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가 생각났다. 글쓰기가 재미있었다. 쓰기 위한 시간을 어떻게든 만들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육아에 바쁜 내게 나만의 시간이 생겼다. 몇 편의 짧은 글이 완성되었고 생활에 활기가 되었다. 무직 아닌 무직 생활 8년 만에 무엇을 해낸 기분이었다. 한 번쯤 정리하고 싶었던 복잡한 어느 날의 기억은 글을 쓰니 정리가 되었다. 글쓰기의 힘이 이것인가 싶었다. 지금도 막내는 아기띠로 내게 안겨 있다. 품 안의 아기가 주는 체온만큼 타자를 치는 내 마음도 뜨겁다. 글쓰기를 마음먹고 다시 나를 펼쳐보는 지금이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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