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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밍꼬 May 22. 2021

떡에 대한 고찰

이밍꼬, 떡을 좋아하긴 하는데 말입니다.

  부지런히 아침밥을 먹고 치우고 둘째 아이와 청소년 수련관에서 하는 미술 수업에 가려고 준비했다. 다른 세 아이들을 신랑에게 맡기고 나서는 길이라 발걸음이 가볍다. 아이와 신발을 신고 문을 열었는데 문이 열리지 않는다. 문틈 사이로 택배 박스가 보이는데 얼마나 무거운지 현관문이 열리지 않는다. 아침식사를 준비하며 남편이 어머니가 떡을 보내셨다고 했는데 벌써 도착했나 보다.


지난번 한 봉지에 두 개씩 들어있는 모싯잎떡 몇 개를 주셔서 맛있게 먹었다고 말씀드렸다. 내가 맛있게 먹으니 어머니가 떡을 주문했다고 신랑에게 전해 듣고는 '내 입이 방정이지' 싶었다. 우리 시어머니는 정이 많고 손이 크시다.


  나는 입이 짧고 같은 음식을 연이어 먹지 않는다. 원래는 잘 먹는 편이었지만 그리되었다. 결혼을 한 뒤로 양가에서는 맛있고 좋은 음식을 신나게 챙겨 주셨는데 그걸 다 받아서 오니 양이 넘쳤고 좋은 재료로 정성껏 만든 음식은 ‘처리해야 할 것’이 되어 버렸다. 안 되겠다 싶어 가능한 먹을 만큼만 가져오려고 하니 핑계가 되도록 입은 더 짧아지고 변덕스러워졌다. 이런 일은 자주 반복되어서 나는 음식을 챙겨 주시려 하면 지레 겁부터 먹었다. 무거운 박스는 열어보지 않아도 최소 모싯잎떡 두 박스는 될 것 같았다. 그래도 내일 오랜만에 시부모님이 오신다고 하니 한 박스는 나눠 드리고 남은 건 냉동실에 두고 어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결혼 8년 차에 조금은 수가 늘었지만 아직도 받는 나의 내공이 부족하다.


  남편은 내일은 오시는 시부모님께 마침 냉장고에 떨어진 달걀 구입을 부탁드렸다고 한다. 지금 시부모님이 사시는 금호동의 시장에서 파는 달걀은 맛이 좋아 온 식구가 좋아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랑에게 딱 한판만 사오시라고 ‘꼭’ 얘기하라 했는데 표정을 보니 아무 말도 안한 것 같다. 지난번에도 두 판을 사놓으셔서 한판만 들고 온 일이 벌써 두 번째인데 설마 또 두 판을 사오실까 싶었다. 남편에게는 잔소리일것 같아 나도 다시 말하진 않았다. 지난 번 두 판을 주실 때도 냉장고가 작아서 못 가져간다하니 식구 많은 집에서 이 작은 냉장고로 어떻게 사냐며 정말 걱정하셨다. 냉장고를 바꿔주신다 하셨지만 나는 손사래를 쳤다. 냉장고가 작은 건 아주 좋은 핑계이다. 그리고 정작 사용하는 나에게는 부족하지 않다. 아이들은 맛이 각각 다르고 나는 그때그때 장을 봐서 해 먹는 터라 그렇게 습관이 되었다. 같은 음식도 한두 번 먹을 만큼이면 충분하다.

 
  시댁뿐 아니라 우리 친정엄마도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엄마에게적당히 달라고 성을 내지만 우리의 엄마들은 개의치 않는다. 이때는 항상 비슷한 패턴으로 일이 일어난다. 내가 음식을 정 없게 거절하면 남편은 친정에서도 예스, 시댁에서도 두고 먹으면 된다고 음식을 받아온다. 신랑은 예스맨이다 아니 나의 엑스맨인 것인가? 나는 이미 맛본 음식이기도 하고 마음이 상해 가져온 터라 먹지 않게 된다. 아이들에게는 할머니가 너희 먹으라고 준 거니 남기지 말라고 잔소리로 압박한다. 그리고 냉장고에 몇 번 드나들어 아무도 안 먹는 음식을 째려보고 있으면 남편만 우걱우걱 먹는다. 남편은 무엇이든 말없이 잘 먹어서 고맙지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먹는 것인지 궁금하고 한편 미안하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 남편과 나는 큰소리로 다투게 되고(주로 내가 말하고 그는 듣지만) 집에는 찬바람이 분다. 그리고 화해하고 또 같은 일이 반복된다. 항상 이런 식이라 수업에 들어간 아이를 기다리며 떡 상자를 생각하니 마음이 갑갑하다.


  나도 알지만 유난히 내가 냉장고 속 사정에 예민하다. 어렸을 때부터 아빠는 냉장고 안에 쌓인 음식을 싫어했고 그걸로 엄마에게 뭐라 하셔서 큰소리가 자주 났다. 그때의 감정이 베여 있어서 그런지 냉장고에 음식이 많이 있으면 그냥 불안하다. 그리고 음식을 버리지 말라고 배우던 세대 아닌가. 음식이 많으면 남편도 나도 버리지 못한다. 그래서 전에는 많이 먹었지만 이젠 필요한 만큼만 만들고 먹는 법을 배웠다. 마지막으로 냉장고에 먹을 음식이 많으면 배달음식을 사 먹지 못한다. 어쩌다 한 번은 사 먹거나 시켜 먹어야지 육아에 치이는 나도 좀 살지 않겠는가. 냉장고 안에 신선도가 간당간당한 재료가 있으면 나는 또 냉장고를 열고 있을 텐데 말이다.

  챙겨주는 음식은 나에게 아직도 큰 과제이다. 이것만 저거만 요만큼 저만큼 좋은 것만 받자니 그건 너무 얄미울  같고, 챙겨준 음식을 안 가져가면 시어머니와 친정엄마는 서운해하시며 그만큼만 챙겨서 누구 입에 붙이냐며 걱정을 하신다. 그러고 오면 괜히 서운하게 해 드린 거 같아 마음이 안 좋고 그러니 처음부터 적당히 주시지 하며 괜히 음식을 보고 원망한다. 반찬 한번 받아본 적 없는 시댁을 둔 사람은 나한테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 하겠지만 배부른 자의 투정이라도 어찌할까. 나는 적당함을 원하는데 어머니들의 적당함과 나의 적당함이 다르다.


  둘째 아이를 기다리며 글을 쓰니 짜증이 내려간다. 글로 투덜거리며 비밀을 털어놓으니 마음이 가벼워진다. 무엇보다 이 글은 글쓰기 수업에서 과제로 쓰는 글이니 함께 읽고 무거운 떡 박스에 대한 집단 지성을 모아보고 싶다. 다양한 연령과 다른 입장의 생각이 정말 궁금하다. 명절 연휴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 휴게소에 버려지는 음식이 그렇게 많다니 이것은 비단 나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대면 수업이면 떡을 잔뜩 쪄가서 나눠 먹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대나무밭에 내 마음을 털어놓았으니 이미 받은 떡에 대한 무거운 마음은 내려놓고 얼른 가서 아직 말랑한 모싯잎떡을 먹어야겠다. 영광출신 시댁에서 보내는 모싯잎떡이 맛있긴 정말 맛있다.


 *아이와 수업을 다녀오는 사이 남편이 예쁘게도 정리해 놓았다. 떡은 네 박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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